- 5위 - 신동빈 롯데 부회장… 은둔 벗어나 변화 주도
신동빈 롯데 부회장은 더 이상 ‘은둔의 경영자’가 아니다. 경영수업을 마친 그가 현장을 누비며 롯데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9월 1일 소공동 롯데호텔의 일본 캐주얼웨어 브랜드 ‘유니클로’ 국내 론칭 기자회견장. 기자는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맛보는 신동빈(50) 롯데 부회장에게 다가갔다.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하는 한국 부자 순위에서 5위(1조261억원)에 올랐다고 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잖아요.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고. ” 그는 이어 “맘대로 처분할 수 없는 주식을 가진 경영자를 부자라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주식을 포함한) 총 재산으로 평가하면 순위가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식 말고 가진 것은 아파트밖에 없다”며 “서울의 97평짜리 아파트와 도쿄(東京)에 있는 아파트가 전부”라고 밝혔다.
돌발 질문에도 ‘은둔의 경영자’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기자회견 때 수많은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그가 개별적으로 다가간 기자들에게는 태도를 180도 바꿔 달변을 뽐냈다. 약간의 일본어 억양만 빼면 우리말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했다.
신격호(83) 롯데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본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MBA를 마쳤다. 그 후 노무라증권에서 8년을 보낸 그는 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하면서 가업에 합류했다. 그 뒤 호남석유화학 상무 ·일본 롯데 이사 ·코리아 세븐 전무 등을 맡으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95년 그룹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97년 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그룹 2인자로 등극했다. 현재 호남석유화학, 롯데닷컴, 롯데제과 대표이고 지난해 10월 그룹 정책본부장을 맡으며 지휘권이 크게 강화됐다.
신 부회장은 그간 공식 행사 등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왔다. 그래서 언론에선 그를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측근들의 얘기는 다르다. 그는 베일에 싸인 은둔자가 아니라 수줍음 많고 겸손함이 몸에 밴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컬럼비아대학 MBA 시절, 당시 한국 학생은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이필상 고려대 교수 등 고작 다섯 명 정도였다. 그런데도 당시 그가 롯데그룹 2세란 사실은 화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때 같은 과정을 밟은 장대련 연세대 교수는 “20년이 지나 자문위원으로 그를 만나고서야 동문인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할 정도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거화취실(去華就實).’ 신격호 회장 집무실에 걸려 있는 이 글은 겉으로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을 멀리하고 실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신 부회장도 어릴 때부터 이를 몸에 익혀선지 허세를 부리지 않고 검소하다. 언론 노출을 자제하는 것도 아버지 신 회장의 영향이 크다. 참모들이 어쩌다 언론에 나와달라고 청해도 “아버지는 기업가가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를 겨뤄야지 대외 활동에 힘을 쏟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하셨다”며 사양한다고 한다. 부(富)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한번은 측근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돈 버는 재미를 경영에서 찾으라고 하셨죠. 기업 해서 번 돈은 기업에 재투자해야지 부동산을 사고 팔아 쉽게 돈 버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요. ”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롯데호텔에서도 그의 행동은 조심스럽다. 특별 대우를 받는 법이 없고, 웨이터에게 음식을 주문할 때도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아랫사람에게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며, 출근할 때 직원들과 어울려 엘리베이터를 탄다(그의 전용 엘리베이터는 없다). 가족이 있는 일본을 한 달에 두세 번씩 오가면서도 수행원 없이 직접 가방을 들고 다닌다.
신 부회장이 현재 그룹 경영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회사 측은 여전히 건재한 신격호 회장을 의식한 탓인지 “아직 경영수업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여러 정황들에서 이미 상당한 입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수업 중이라고 하기에 15년은 너무 긴 시간이 아닌가. 그가 한국롯데를, 그의 형 신동주(51) 일본롯데 부사장은 일본롯데를 맡는 것으로 신 회장의 후계구도가 잡혔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룹 내에서 별로 없다.
지난해 10월 그룹 정책본부장에 취임한 신 부회장은 현재 본격적으로 그룹의 경영정책 수립을 지휘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정책회의를 주재하며 최근 들어 주문 사항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 측근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계열사 CEO들에게 “외환위기 때 기업들이 도산한 것은 수익성 다지기에 앞서 외형적인 성장만 추구했기 때문”이라며 “업계에서 누려온 롯데의 지위도 현재에 안주해서는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고객의 니즈를 읽고 핵심역량에 집중하라”는 등의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그가 롯데에 바꿔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그룹의 경영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작업도 해왔다. 컬럼비아대학 MBA 시절 지도교수에게 추천을 의뢰해 경영자문단을 꾸려 3년여 걸친 경영겦뗑?부문 진단도 올해 초 마무리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수들은 “롯데의 체질을 개선하고 시스템화하는 작업이 신 부회장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그는 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글로벌한 사고방식을 가진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은둔’했다고들 하지만 그가 그동안 롯데에서 한 일은 많다. 롯데가 석유화학 분야의 덩치를 키우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은 90년 그가 한국에서 처음 경영수업을 받은 곳이다. 지난해 말에는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는 이사 시절부터 나프타 분해공장 증설을 주도해 외부조달에 의존하던 원료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했고, 외환위기 중에도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다졌다. 현재 그룹 전체 매출의 40%를 육박하는 석유화학사업은 유통사업과 더불어 그룹의 한 축이 됐다. 최근 인수한 현대석유화학과 KP케미칼 등과의 통합이 마무리되면 호남석유화학은 에틸렌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그는 96년 그룹 내 물류 시스템을 통합해 롯데로지스틱스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룹 내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이 향후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각사 전산실을 비롯한 그룹 내 정보통신 분야를 통합해 97년 롯데정보통신도 설립했다. 그룹 관계자들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 분야의 발전가능성에 주목해 투자를 서두른 것도 그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그는 인터넷 쇼핑몰 롯데닷컴, 생활포털 사이트 롯데타운을 오픈해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롯데월드 등 각 계열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하나의 아이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세븐일레븐의 첨단 물류시스템과 백화점 ·할인점 등 전국 점포망을 활용토록 했다. 그는 세븐일레븐과 롯데닷컴 등 유통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최근의 카드사업 진출, 할인점 및 슈퍼마켓사업 강화, 해외시장 공략 등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나온 신규사업 역시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94년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을 인수해 편의점 사업에 진출했고, 99년 로손 인수로 급속 확장했다. 2001년 말 세븐일레븐은 국내 체인점업계 최초로 1,000호 점을 돌파했다. 현재 세븐일레븐의 실적은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의 경영능력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얘기도 있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신 부회장은 실적이 저조해도 가감하지 말고 숫자 그대로 보고하라고 주문한다”며 “시장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라고 전했다. 또 “신 부회장은 현재 전략상품을 강화해 세븐일레븐의 이익 폭을 넓혀가고 있다”며 “편의점업계 1등 업체로 키울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룹 내에서 신 부회장은 철저한 현장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혼자 세븐일레븐이나 TGI프라이데이스 매장에 들러 어묵을 데워 먹거나 물건을 사는 일이 종종 있다. 그냥 이용만 하는 게 아니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한다. 세븐일레븐에서 김밥이 점포당 하루 몇 개가 팔리는지까지 정확히 체크할 정도다. 도시락공장을 방문해 직접 위생상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2001년 오세조 연세대 교수와 공저한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 의 출간 기념회 때의 일이다.
주인공으로 참석해서도 그는 옆에서 열리는 세븐일레븐 상품전시회에 더 관심을 보였다. 여느 때처럼 수행원 없이 전시회장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담당 직원이 “일반인 출입은 안 된다”며 막았다. 사정을 해 한 번 더 들어가려다가 다시 제지당했지만 그는 끝내 부회장임을 밝히지 않았다. 한 측근은 “사무실에 앉아 있지 못하고 늘 현장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사 매장은 물론 경쟁사 백화점이나 호텔을 혼자 돌아보며 진열상태나 접객요령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고 한다. 유니클로 론칭 기자회견장에서도 기자들이 “에비뉴엘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칸막이가 많아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등 아주 구체적인 지적을 했다. 꼼꼼한 현장관찰이 없었다면 지적하기 힘든 얘기였다.
롯데는 지난해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론칭해 식음료 부문의 해외 유명업체와 제휴를 강화한 데 이어 올해에는 일본의 캐주얼웨어 유니클로를 도입하는 등 해외업체와 제휴해 직매입, PB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 같은 해외 브랜드 중 상당수는 현장주의자인 신 부회장이 생활 속에서 경험해보고 도입을 추천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MBA를 마친 후 곧바로 아버지 회사로 입사하지 않았다. 다른 기업에서 평사원으로 일하며 ‘겸손’을 배우라는 신격호 회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노무라증권(런던지점)에서 보낸 8년은 그에게 겸손 외에도 글로벌 경제와 금융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었다. 그 후 15년. 그는 아버지 회사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이제 배운 대로 경영할 것이다.유통을>
9월 1일 소공동 롯데호텔의 일본 캐주얼웨어 브랜드 ‘유니클로’ 국내 론칭 기자회견장. 기자는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맛보는 신동빈(50) 롯데 부회장에게 다가갔다.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하는 한국 부자 순위에서 5위(1조261억원)에 올랐다고 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쓸 수 있는 돈이 아니잖아요.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고. ” 그는 이어 “맘대로 처분할 수 없는 주식을 가진 경영자를 부자라고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주식을 포함한) 총 재산으로 평가하면 순위가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주식 말고 가진 것은 아파트밖에 없다”며 “서울의 97평짜리 아파트와 도쿄(東京)에 있는 아파트가 전부”라고 밝혔다.
돌발 질문에도 ‘은둔의 경영자’는 차분하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기자회견 때 수많은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그가 개별적으로 다가간 기자들에게는 태도를 180도 바꿔 달변을 뽐냈다. 약간의 일본어 억양만 빼면 우리말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했다.
신격호(83) 롯데 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부회장.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본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MBA를 마쳤다. 그 후 노무라증권에서 8년을 보낸 그는 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하면서 가업에 합류했다. 그 뒤 호남석유화학 상무 ·일본 롯데 이사 ·코리아 세븐 전무 등을 맡으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95년 그룹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97년 그룹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그룹 2인자로 등극했다. 현재 호남석유화학, 롯데닷컴, 롯데제과 대표이고 지난해 10월 그룹 정책본부장을 맡으며 지휘권이 크게 강화됐다.
신 부회장은 그간 공식 행사 등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왔다. 그래서 언론에선 그를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측근들의 얘기는 다르다. 그는 베일에 싸인 은둔자가 아니라 수줍음 많고 겸손함이 몸에 밴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컬럼비아대학 MBA 시절, 당시 한국 학생은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이필상 고려대 교수 등 고작 다섯 명 정도였다. 그런데도 당시 그가 롯데그룹 2세란 사실은 화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 때 같은 과정을 밟은 장대련 연세대 교수는 “20년이 지나 자문위원으로 그를 만나고서야 동문인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할 정도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거화취실(去華就實).’ 신격호 회장 집무실에 걸려 있는 이 글은 겉으로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을 멀리하고 실익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신 부회장도 어릴 때부터 이를 몸에 익혀선지 허세를 부리지 않고 검소하다. 언론 노출을 자제하는 것도 아버지 신 회장의 영향이 크다. 참모들이 어쩌다 언론에 나와달라고 청해도 “아버지는 기업가가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를 겨뤄야지 대외 활동에 힘을 쏟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하셨다”며 사양한다고 한다. 부(富)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한번은 측근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돈 버는 재미를 경영에서 찾으라고 하셨죠. 기업 해서 번 돈은 기업에 재투자해야지 부동산을 사고 팔아 쉽게 돈 버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요. ”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롯데호텔에서도 그의 행동은 조심스럽다. 특별 대우를 받는 법이 없고, 웨이터에게 음식을 주문할 때도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아랫사람에게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네며, 출근할 때 직원들과 어울려 엘리베이터를 탄다(그의 전용 엘리베이터는 없다). 가족이 있는 일본을 한 달에 두세 번씩 오가면서도 수행원 없이 직접 가방을 들고 다닌다.
신 부회장이 현재 그룹 경영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회사 측은 여전히 건재한 신격호 회장을 의식한 탓인지 “아직 경영수업 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여러 정황들에서 이미 상당한 입지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수업 중이라고 하기에 15년은 너무 긴 시간이 아닌가. 그가 한국롯데를, 그의 형 신동주(51) 일본롯데 부사장은 일본롯데를 맡는 것으로 신 회장의 후계구도가 잡혔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룹 내에서 별로 없다.
지난해 10월 그룹 정책본부장에 취임한 신 부회장은 현재 본격적으로 그룹의 경영정책 수립을 지휘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정책회의를 주재하며 최근 들어 주문 사항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 측근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계열사 CEO들에게 “외환위기 때 기업들이 도산한 것은 수익성 다지기에 앞서 외형적인 성장만 추구했기 때문”이라며 “업계에서 누려온 롯데의 지위도 현재에 안주해서는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고객의 니즈를 읽고 핵심역량에 집중하라”는 등의 주문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그가 롯데에 바꿔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그룹의 경영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작업도 해왔다. 컬럼비아대학 MBA 시절 지도교수에게 추천을 의뢰해 경영자문단을 꾸려 3년여 걸친 경영겦뗑?부문 진단도 올해 초 마무리졌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수들은 “롯데의 체질을 개선하고 시스템화하는 작업이 신 부회장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며 “그는 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글로벌한 사고방식을 가진 경영자”라고 평가했다.
‘은둔’했다고들 하지만 그가 그동안 롯데에서 한 일은 많다. 롯데가 석유화학 분야의 덩치를 키우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 계열사인 호남석유화학은 90년 그가 한국에서 처음 경영수업을 받은 곳이다. 지난해 말에는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는 이사 시절부터 나프타 분해공장 증설을 주도해 외부조달에 의존하던 원료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했고, 외환위기 중에도 고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다졌다. 현재 그룹 전체 매출의 40%를 육박하는 석유화학사업은 유통사업과 더불어 그룹의 한 축이 됐다. 최근 인수한 현대석유화학과 KP케미칼 등과의 통합이 마무리되면 호남석유화학은 에틸렌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그는 96년 그룹 내 물류 시스템을 통합해 롯데로지스틱스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룹 내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이 향후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각사 전산실을 비롯한 그룹 내 정보통신 분야를 통합해 97년 롯데정보통신도 설립했다. 그룹 관계자들은 인터넷 등 정보통신 분야의 발전가능성에 주목해 투자를 서두른 것도 그의 공으로 돌리고 있다.
그는 인터넷 쇼핑몰 롯데닷컴, 생활포털 사이트 롯데타운을 오픈해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롯데월드 등 각 계열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하나의 아이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세븐일레븐의 첨단 물류시스템과 백화점 ·할인점 등 전국 점포망을 활용토록 했다. 그는 세븐일레븐과 롯데닷컴 등 유통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최근의 카드사업 진출, 할인점 및 슈퍼마켓사업 강화, 해외시장 공략 등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나온 신규사업 역시 대부분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94년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을 인수해 편의점 사업에 진출했고, 99년 로손 인수로 급속 확장했다. 2001년 말 세븐일레븐은 국내 체인점업계 최초로 1,000호 점을 돌파했다. 현재 세븐일레븐의 실적은 만족스럽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의 경영능력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얘기도 있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신 부회장은 실적이 저조해도 가감하지 말고 숫자 그대로 보고하라고 주문한다”며 “시장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라고 전했다. 또 “신 부회장은 현재 전략상품을 강화해 세븐일레븐의 이익 폭을 넓혀가고 있다”며 “편의점업계 1등 업체로 키울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룹 내에서 신 부회장은 철저한 현장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혼자 세븐일레븐이나 TGI프라이데이스 매장에 들러 어묵을 데워 먹거나 물건을 사는 일이 종종 있다. 그냥 이용만 하는 게 아니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한다. 세븐일레븐에서 김밥이 점포당 하루 몇 개가 팔리는지까지 정확히 체크할 정도다. 도시락공장을 방문해 직접 위생상태를 점검하기도 한다. 2001년 오세조 연세대 교수와 공저한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 의 출간 기념회 때의 일이다.
주인공으로 참석해서도 그는 옆에서 열리는 세븐일레븐 상품전시회에 더 관심을 보였다. 여느 때처럼 수행원 없이 전시회장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담당 직원이 “일반인 출입은 안 된다”며 막았다. 사정을 해 한 번 더 들어가려다가 다시 제지당했지만 그는 끝내 부회장임을 밝히지 않았다. 한 측근은 “사무실에 앉아 있지 못하고 늘 현장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사 매장은 물론 경쟁사 백화점이나 호텔을 혼자 돌아보며 진열상태나 접객요령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고 한다. 유니클로 론칭 기자회견장에서도 기자들이 “에비뉴엘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칸막이가 많아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등 아주 구체적인 지적을 했다. 꼼꼼한 현장관찰이 없었다면 지적하기 힘든 얘기였다.
롯데는 지난해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론칭해 식음료 부문의 해외 유명업체와 제휴를 강화한 데 이어 올해에는 일본의 캐주얼웨어 유니클로를 도입하는 등 해외업체와 제휴해 직매입, PB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 같은 해외 브랜드 중 상당수는 현장주의자인 신 부회장이 생활 속에서 경험해보고 도입을 추천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은 MBA를 마친 후 곧바로 아버지 회사로 입사하지 않았다. 다른 기업에서 평사원으로 일하며 ‘겸손’을 배우라는 신격호 회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노무라증권(런던지점)에서 보낸 8년은 그에게 겸손 외에도 글로벌 경제와 금융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었다. 그 후 15년. 그는 아버지 회사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이제 배운 대로 경영할 것이다.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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