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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에서 배우는 '정상 경영학'] 등산화 속 잔모래를 손톱으로 꺼내는 이유

[엄홍길에서 배우는 '정상 경영학'] 등산화 속 잔모래를 손톱으로 꺼내는 이유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 관대한 리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듯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는 태도로 조직을 대하는 우두머리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이런 자는 아무리 형식적인 지위가 높아도 힘으로 사람들을 찍어 누르는 폭력무뢰배 두목과 다를 바 없다. 리더란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최소한 자신에게 엄격해야 타인에게도 엄격함을 요구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엄 대장이 산에 가면 독재자가 된다고 했다. 대원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조금이라도 빈 틈이 보이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엄 대장 자신에게 철두철미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최선을 다하는 대장의 태도가 없다면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대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좋아서 산을 타는데, 어쭙잖게 큰소리만 치는 실력 없는 대장을 따라 히말라야까지 가서 고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자기관리란 아무리 큰 조직의 리더라도 사소한 일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국가 지도자가 국민에게는 절약과 내핍을 요구하면서, 자신은 전 세계의 최고급 요리와 술만 먹고 마시고, 외국 순방이나 다니면서 나라 형편에 걸맞지 않게 겉멋이나 잔뜩 들어 있다면 국민은 속으로 비웃을 것이다. 설사 국가 지도자가 먹고 마시는 음식과 술의 가격이 국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다 해도 이는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폼 잡는 데 돈 쓰고, 낭비가 몸에 밴 지도자가 아무리 선진국이 어떻고 국민복지가 어떻고 떠들어 본들 국민에게 설득력을 가지기는 어렵다. 음식값·술값을 아껴봐야 국가 예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기서 지도자가 공동체를 대하는 태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준비의 마지막 단계는 신발을 신는 것인데, 등산화를 신는 것은 구두나 운동화를 신는 것과는 다르다. 군대에서 행군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신발을 쉽게 벗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발 바닥에 묻어 있는 한두 개의 모래알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를. 그래서 보병들은 행군 시작 전에 군장을 꾸리면서 양말을 깨끗이 털고, 군화 바닥의 이물질을 꼼꼼하게 점검한 다음 군화를 신는다. 산악인들도 이 점은 마찬가지다. 등산화를 신는 것은 등정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등산화를 신는 것은 행군 떠나는 병사가 군화를 신는 것처럼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군화를 제대로 신지 않아 행군에서 발바닥이 망가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의미를 안다.

돌가루 때문에 목숨 잃을 수도

엄 대장의 경영 힌트 ▶ 자기관리란 사소한 일에서 출발한다 ▶ 잔모래 하나가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 산에서는 텐트가 바로 신전(神殿)이다 ▶ 평소 자기관리는 결정적인 순간 힘을 발휘한다 ▶ 장기적인 성공은 운(運)만으론 부족하다
엄 대장은 등산화 신는 것도 철저하다. 보통은 양말을 몇 번 털어 잔모래를 없애고, 신발을 거꾸로 들어 툭툭 턴 다음 발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엄 대장은 다르다. “신발에 혹시 작은 모래알이라도 있을까봐 신발 바닥을 위로 해서 완전히 하늘로 들어올려 햇빛에 비춘 다음,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손톱으로 모래나 먼지를 하나하나 털어낸다. 엄 대장이 신발 신는 것을 여러 번 보지만 항상 마찬가지다. 내가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속으로 ‘아니 저런 좀팽이가 있나. 신발 하나 신는 것 가지고 뭘 저렇게 꾸물거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러 번 원정을 같이 다니면서 생각해 보면 저런 마음가짐이 엄 대장을 살렸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김세준 중앙일보 프라이데이 편집위원의 평이다. 이에 대해 엄 대장은 “일단 운행(등반을 운행이라고 표현한다)을 시작하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등산화를 벗을 수 없다. 조그만 돌가루라도 들어가서 발이 불편하면 신경 쓰이게 마련이고, 이는 운행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파리가 사람 잡는다는 말 들어 보았나. 자동차 운전을 하는데 차 안에 들어온 파리를 잡으려다 핸들 조작을 잘못해 죽은 사람이 실제로 있다고 한다. 등반에서도 돌가루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조그만 돌가루 자체가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그러나 돌가루 때문에 집중도가 떨어져 다른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돌가루 들어간 신발을 다시 신으려고 고산지대에서 체력 소모한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인간으로서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기에 준비 과정에서 사소한 부분도 철저해야 한다.” 텐트와 관련한 일화도 있다. 베이스 캠프에서 산악계 선배 한 분이 아이젠을 장착한 신발로 걸어다니다 실수로 엄 대장의 텐트를 밟아 약간 찢었다. 신발로 밟아 찢어진 텐트가 찢어져 봐야 얼마나 찢어졌겠는가. 그러나 엄 대장은 선배에게 정색을 하고 이러시면 안 된다고 질책했다. 실수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선배였지만 하도 정색을 하기에 황당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엄 대장이 “산에서 텐트는 생명이다. 비록 베이스 캠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는 마음가짐의 문제다. 자신의 생명처럼 다뤄야 할 텐트를 순간의 부주의로 밟았다는 것은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고 하자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텐트 약간 찢어진 것으로 선배를 질책할 수 있는 것은 엄 대장 자신이 텐트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베이스 캠프에서 ‘엄홍길의 텐트는 보면 바로 안다’고 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야외 생활이란 아무래도 정돈하기 어렵고, 물건을 대충 늘어놓기 쉽지만 엄 대장의 텐트는 장비를 언제라도 쉽게 찾을 수 있게 제자리에 놓여 있고, 항상 깨끗하게 청소돼 있다. 어찌나 텐트를 정돈하는지 셰르파들은 엄 대장의 텐트를 ‘신전(神殿)’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산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곳 같다는 의미인데 실제로 엄 대장은 산에 가서 설치하는 자신의 텐트를 산신에 대한 ‘신전’이라고 생각한다.

산에서 텐트는 신전(神殿)이다 “인간이란 사소한 것에서 흐트러지면 마음가짐도 흐트러지고 종국에는 목적 의식도 약해진다. 리더로서 판단하는 것은 중요성을 가려야 하겠지만 대장인 나 자신의 생활태도와 관련해선 사소한 것이 없다. 모두가 중요하다. 그것이 내가 리더로서 산에서 긴장하면서 정신력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대장인 내가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대원들을 긴장하게 할 수 있다.” 엄 대장은 1985년 에베레스트 원정을 시작한 이래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역이다. 세계적 등반가로 성공하게 한 20년의 기간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끊임없는 자기관리의 기간이기도 했다. 한창때의 힘으로도 올라가기 어려운 8000m 고봉을 40대 중반인 지금도 오르내린다는 것은 웬만한 체력관리·자기관리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엄 대장은 서울에서도 몸 컨디션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주의한다. 사람 좋아하는 성격이라 산악계 선후배 만나서 기분 좋게 어울리는 시간이야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일정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한다. 일단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조건 도봉산에 간다. 보통 1주일에 2~3회 정도인데, 한 번에 5시간 정도의 등반을 한다. 산에 대한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평생 산에 다닌 엄 대장이, 그것도 6대륙의 고봉만 수십 번 다녀온 사람이 틈만 나면 도봉산에 올라가는 이유는 프로 골퍼들이 매일 연습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험준한 산에서는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마음을 가다듬고 산신제를 올리는 후먼원정대.

97년 84세로 세상을 떠난 벤 호건은 특유의 정교한 샷을 무기로 진 사라젠·잭 니클로스·게리 플레이어와 함께 4대 메이저 대회를 제패한 영웅이었다. 호건은 “하루 연습을 안 하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캐디가, 사흘을 쉬면 갤러리가 안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는 음악가들도 마찬가지다. 평생 연습했지만 하루도 쉬지 않는 것이 악기인 것이다. 엄 대장의 도봉산 등반은 프로 골퍼들과 음악가들의 연습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체력 유지를 위해 아침에 규칙적으로 하는 일은 수영이다. 해군수중폭파대(UDT) 출신에게 수영 실력은 물어볼 것도 없다. 매일 한 시간 정도의 수영으로 체력을 다지고 틈이 나면 도봉산에 오르면서 음식에도 신경을 쓴다. 아무것이나 잘 먹는 식성이지만 카페인 성분이 든 음식, 자극적인 음식은 가급적 멀리한다. 평소에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이 결정적인 순간 유용하기 때문이다.

성공은 運만으로는 부족하다 실력없는 사람도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도 있고, 자기관리가 형편없는 저급한 인간도 때를 만나면 활개치는 것을 자주 본다. 이것은 부조리가 아니라 인간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성공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운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성공을 뒷받침하는 실력과 엄격한 자기관리 없이 성공의 유지는 불가능한 것도 인간세상이 생겨 먹은 모습이다.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지도자가 등장하고, 수많은 스타가 명멸하지만 한 순간의 반짝거림이 아니라 오랫동안 빛을 발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자기관리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얄팍한 재주와 그럴듯한 언변은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 신뢰할 수 있는 인품에 철저한 자기관리가 겸비돼야 긴 세월 동안 유지할 수 있다. 엄 대장이 20여 년을 전문 산악인으로 성장해 온 과정 자체가 철저한 자기관리의 연속 과정이다. 8000m 고봉 하나를 오르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프로젝트이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무려 28번 시도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28번의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기 위한 체력과 정신력을 20년 동안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것은 엄격한 자기관리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고산 등반은 정신력이 실력을 좌우한다는 측면에서 골프와 비슷한 점이 있다. 엄 대장에게 영원한 숙제처럼 보였던 안나푸르나는 89년 겨울 첫 도전 이래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안나푸르나에서 벌어진 엄 대장의 4전5기 드라마는 처절한 사투였다. 그것은 체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의 사투이기도 했다. 네 번씩이나 자신을 거부한 산에, 그것도 한 번은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한 산에 다섯 번째 도전한다는 것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정신력과 투지는 타고난 면도 있지만 끊임없이 이를 유지하기 위한 엄 대장의 자기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큰 사업도 시작은 미미했을 것이고, 처음 시작한 사람은 대부분 겸손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성공은 사람을 타락시킨다. 저급한 인간들은 제대로 성공하기 전에 타락부터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처음 시작한 이후 조그만 성공은 사람에게 자신감이라는 선물을 주지만, 큰 성공은 사람에게 교만이라는 악덕을 가져오기 쉽다. IMF 이후 벤처 붐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에서 창업에 나섰다가 명멸해간 많은 청년 기업가 가운데 최선의 노력을 하고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은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는 주위의 찬사에 도취하고 자기관리에 실패하면서 사라져갔다. 소박한 연구실에서 수수한 옷차림이지만 열정과 아이디어를 무기로 창업한 많은 벤처 기업가는 몰려드는 자금으로 생긴 거품이 만들어 준 대박에 도취했다. 이들의 회사를 가보면 서울 강남에 미국 투자은행 수준의 으리으리한 사무실과 임원실을 꾸며놓았었다. 기업 경영의 정도를 제대로 배우기 전에 겉멋과 허영에 먼저 빠져든 이들의 실상이 어떠했는지는 그 이후의 결과가 말해준다. 남 앞에 서는 사람은 당당해야 한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당당해야 한다. 자신에게 당당해야 리더는 타인에게도 당당해질 수 있다. 이는 평생 악기를 연주해 온 음악가가 하루의 연습을 빼먹었을 때, 청중이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영자로서, 팀장으로서 타인들을 이끄는 입장이라면 자신의 긴장을 유지하고 이로써 타인의 긴장을 유지시켜 조직 전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당당함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당당함은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출발한다. 엄 대장이 철저한 자기관리로 조직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철저한 자세는 살아 있는 리더십 교과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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