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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프롬의 헛된 꿈

가스프롬의 헛된 꿈

Hoping for A Gusher 러시아 국영 에너지 회사 가스프롬의 중역들은 이번 달에 자기 회사가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리라 기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가스 분쟁 소식 때문이 아니라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알리는 주식 상장 소식으로 말이다. 가스프롬은 기업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르면 1월 말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식 시장에 상장돼 외국인들에게 자사 주식의 49%까지 구매하도록 허용한다. 이 같은 결정은 가스프롬을 세계 주요 에너지 기업의 하나로 키우려는 계획의 첫 번째 조치다. 실제로 최고경영자(CEO) 알렉세이 밀러는 “앞으로 5년 이내에 가스프롬이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으로 큰다”고 기대한다.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대다수 주요 석유회사들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한 회사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세계 최대 규모이면서 가장 값싼 원유와 가스 매장량을 가진 회사의 주식을 살 기회는 이 주식의 사자 열풍을 불러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스프롬의 경우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무엇보다 이 회사가 사기업이 아니라 크렘린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하나의 정치적 수단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새해 첫날 러시아는 유럽 가격으로 가스 구입비를 지불하라는 압력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친서방 오렌지 혁명을 일으킨 우크라이나를 응징하려는 의도도 적지 않게 담긴 조치였다). 우크라이나 가스관에 연결된 유럽의 고객들은 곧바로 가스 공급이 줄어들자 큰 불만을 나타냈다. 며칠 내 우크라이나와의 종합적인 협상으로 가스 공급은 회복됐고,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하게 됐다. 하지만 믿을 만한 에너지 파트너로서 러시아의 평판은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 되겠다는 가스프롬의 장기 목표도 흔들리게 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만약 모스크바가 “국제 경제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잠재적 고객과 마찬가지로 잠재적 투자자들도 불안해졌다. “캐나다나 멕시코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엑손모빌이나 셰브론이 이들 나라에 원유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를 상상할 수 있나?”라고 런던 F&C 자산운용의 간부인 캐리나 리트백은 반문했다. 따라서 지금은 가스프롬을 세계 금융 시장에 내놓는데 최적의 상황이 아니다. 최적은커녕 너무 나쁘다. 가스프롬은 2003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동지인 밀러가 인수한 이래 대대적인 자체 정화운동을 벌여왔다. 현재 가스프롬의 최대 외국인 투자자인 모스크바 소재 허미티지 자산운용의 바딤 클라이너에 따르면, 가스프롬은 수입 극대화에 “대단한 진전”을 이루었다. 모든 국제 고객들(우크라이나는 제외)에게 보내는 가스 공급은 과거처럼 막후 중간책을 거치지 않고 이제 가스프롬이 직접 담당한다. 밀러는 가스프롬이 1997~2001년 어설픈 지분 물타기를 통해 잃은 가스전(田)들을 되찾으려는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지금까지 잃었던 자산의 3분의 2를 되찾았다. 허미티지의 투자 담당 임원 아나톨리 로마노프스키는 “가스프롬은 옛 소련 시장에서 가스값을 완전한 시장 가격으로 받아내려고 서두른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가스프롬의 광대한 매장량은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매력이다. 가스프롬은 알려진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16%를 보유하며, 세계 상위 20위에 드는 석유 회사인 동시에 세계 최대의 가스 공급자다. 이 회사의 시장 자본 평가는 입증된 매장량 10억 배럴당 130만 달러에 불과해(엑손모빌은 1700만 달러가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값싼 에너지 주식 중 하나다. 가스프롬의 주식이 불과 5년 만에 51센트에서 7.90달러로 상승했고, 러시아 국내 주식 구매자들이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주식 매매를 예상해 서둘러 사 모은 덕분에 지난 한 달 사이 12%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싼 에너지 주식 중 하나라는 사실은 마찬가지다. 러시아 최대 기업으로서 가스프롬은 최근까지도 보호주의 장벽의 “울타리”로 보호받았고, 점점 더 민족주의 성향을 보이는 푸틴 정권 하에서 외국인들의 매매 허용은 가능성 없어 보였다. 푸틴이 은퇴하면 가스프롬을 이끌고 싶어한다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 총체적 비효율성이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로 이 울타리는 사라졌다. 완전한 시장 가격을 부과하겠다는 최근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스프롬의 생산량 중 실제로 국제 시장 가격으로 파는 양은 4분의 1이 채 안 된다. 나머지는 러시아 국내와 옛 소련 공화국들 중 벨로루시처럼 러시아에 충성하는 나라들에 싼값으로 공급한다. 벨로루시는 1000㎥당 47달러를 내고 사 간다. 가스프롬의 전략 개발 책임자는 인프라 시설을 유지하고 현재의 생산 수준을 유지하는 데만 향후 15년간 1730억~2030억 달러의 외국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만한 돈이 들어올지는 분명치 않다. 모스크바에 있는 르네상스 캐피털의 수석 전략가 롤랑 나시는 “울타리 제거” 요인이 이미 시장에서 가격에 반영됐기 때문에 가스프롬 주식 가치는 하락한다면서 “이 회사는 자체적으로 도저히 줄이지 못했던 엄청난 경상비 지출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지난주 우크라이나와의 결전에서 드러났듯이 가스프롬은 러시아의 새로운 석유 대기업이라기보다는 소련 해체 후 새로 등장한 착취정치의 한 수단으로 비쳐졌다. 표면상으로 보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협상은 시장논리의 승리였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가스에 지불할 가격은 1000㎥당 230달러로 인상됐다(투르크메니스탄을 통해 들여오는 값싼 가스와 합산하면, 우크라이나는 궁극적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 비싸진 평균 90달러를 가스 구입비로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최소한 유럽 시장에 한 단계 가까이 가는 조치다. 하지만 1990년대 가스프롬에서 일했던 은행가 제롬 질레트는 “이번 합의에 분명히 수상쩍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가스프롬으로부터 직접 가스를 구매하지 않으며, 최근 설립된 회사인 로스우크레네르고를 통해 구매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사는 옛 소련권에서 거래되는 싼 가스 가격과 유럽 가격 사이의 차액으로 이득을 챙기는 종이 회사 중에서 가장 최근에 설립된 회사다. “분명한 점은 이번 합의가 가스프롬이나 러시아에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타결되지 않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성사됐다는 점”이라고 질레트는 말했다. 끊임없는 부패 의혹이 투자자들 사이에 경고음을 발한다. 런던의 주요 펀드 매니저들은 외국 기업의 영국 내 상장 규제를 강화하라고 요구한다. F&C의 리트백은 모호한 관리 기준과 수상쩍은 동기 때문에 러시아 등 옛 소련 공화국들의 기업들이 특별한 경계 대상이라고 말한다. “일부 기업들의 경우 자금 조달이 아니라 기업 이미지 제고 목적으로 상장하는 듯하다”고 리트백은 말했다. “정말 자본 조달이 필요한 기업이라면 주주들이 갖는 우려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가스프롬은 현재 뉴욕은행이 발행하는 특별 미국예탁증서(ADR)를 통해서만 주식을 국제 시장에 판매한다. 하지만 조만간 외국 구매자들이 일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식 시장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런던 같은 국제 주식 시장을 통해 직접 주식을 구입하도록 할 예정이다. 비록 제때 투자자들의 평가를 개선시킨다 하더라도 가스프롬은 여러 정부를 상대로 처리해야 할 새로운 문제가 있다. 이번의 우크라이나 때리기는 유럽의 많은 에너지 당국자들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청정하고 값싼 연료로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정도와, 천연가스 공급국 러시아에 의존하는 정도가 급격하게 커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다. 모스크바의 가스관 폐쇄는 아제르바이잔 등 다른 가스 공급 국가들을 통과하는 대체 가스관 건설 계획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 이탈리아 산업부 장관 클라우디오 스카졸라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원자력 발전 정책이 거부됐음에도 불구하고, “핵 에너지 이용 문제가 다시 거론된다”고 했다. 가스프롬의 새 발트해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에 이미 참여 중인 독일조차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동쪽에서 오는 가스 공급이 신뢰할 만하다는 점이 확실할 경우에만 가스 공급이 늘어난다”고 미카엘 글로스 경제장관은 경고했다. 1월 1일부터 선진 8개국 모임인 G8 그룹 의장직을 맡은 푸틴이 에너지 안보 문제를 올해 G8의 첫 번째 의제로 다루겠다는 점은 대단한 아이러니다. 러시아가 계속 가스프롬을 정치적인 무기로 사용하는 한, 세계 에너지 시장은 더 이상 안전을 확보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전술은 국가적 자산인 가스프롬의 가치를 갉아먹게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투자자들에게 러시아 투자의 위험성을 일깨워 주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이 요구하는 가스프롬 주식의 평가절하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With ANNA NEMTSOVA in Kiev and RANA FOROOHAR in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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