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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흐르는 서울 내곡동 ‘그린벨트’ 일대…‘투기 세력 위험’은 여전 [가봤어요]

[논란의 그린벨트]④
동네 곳곳 임대·매매 광고물 붙어있지만…담담한 분위기 지속
비정상적 개발이익 노린 투기 세력 투입 주의 당부도

 서울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1번 출구 전봇대에 붙어있는 임대 전단지 [사진 박세진 기자]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서울 서초구 내곡동은 고요했다. 서울 지하철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내곡동에 위치한 여러 상가와 함께 대단지가 가장 먼저 보인다. 특히 높이 솟은 청계산 아래로 ‘서초포레스타’ 아파트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불볕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녹음이 우거져 선선했다. 마을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내곡동은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서울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 계획’(8·8 부동산 대책)의 후보지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정부가 10여 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했지만 정작 내곡동 일대의 분위기는 침착했다. 마을 주민도, 지역 공인중개사 모두 담담한 반응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내곡동 ‘그린벨트 해제’ 풍문이 이어져 온 까닭이다. 내곡동을 포함한 ‘서울 그린벨트 대규모 해제’ 소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나왔다. 12년 만에 내곡동 그린벨트 해제 계획이 다시금 고개를 내민 셈이다.

공인중개사·주민들 동요 없어…“파급력 없어 보여”

이렇다 보니 내곡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기자가 방문한 부동산중개업소 다섯 곳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아울러 ‘그린벨트 토지’와 관련된 매물 상담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조용하고, 한가했다.

내곡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A 씨는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는 언제 풀려도 이상하지 않을 입지”라며 “정부 발표 직후 문의가 잇따르긴 했지만, 크게 유의미하게 보진 않는다. 애당초 내곡동은 늘 그린벨트 해제 0순위인 곳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매물을 보유한 이들도 섣불리 매물을 매매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 B 씨도 “그린벨트 해제 소식은 호재임은 틀림없다. 다만, 내곡동 일대가 들썩일 만큼의 파급력은 없어 보인다”며 “내곡동 일대 아파트 가격은 꾸준히 상향선을 그리는 만큼 그린벨트 해제와 동시에 내곡동 일대 인프라가 더욱 개선된다면 집값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별다른 문의가 없는 상황이지만, 투기 및 기획부동산 우려도 나왔다. 기획부동산은 주로 개발되지 않은 토지나 농지에서 이뤄진다. 해당 부지를 매입한 뒤, 여러 필지로 나눠 개인이나 소규모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부동산 사업을 일컫는다. 

내곡동 마을에 걸려있는 토지 매매 현수막 [사진 박세진 기자]

이날 기자와 만난 공인중개사 C 씨는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매수할 때 특히 주의를 요했다. 기획부동산이 매수해 다수인에게 지분거래로 일괄 매각하는 등 비정상적인 개발이익을 노린 투기 행위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C 씨는 “그린벨트가 해제된다고 하면 사람들은 투자를 많이 하고 싶어 한다. 토지 원가가 싸지만, 그린벨트가 해제될 경우 그 가격이 10배 이상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며 “혹여나 그린벨트가 풀리지 않을 경우 또다시 그 땅을 수년간 묵혀둬야 하기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매력적인 투자 수단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 부지를 매입을 하더라도 특히 기획 부동산을 주의해야 한다. 기획 부동산은 토지의 다단계 판매 사업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토지의 경우 아파트와 달리 실거주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마치 ‘로또’라 생각하고 철저한 분석 없이 뛰어 드는 사람도 많다”며 “지금은 기획 부동산 사기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내곡동에서 언제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내곡동 일대 그린벨트 지역 투기 세력에 대한 위험성을 주의했다. 당장 매물 문의가 없더라도, 언제든 투기 세력이 투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이미 해당 토지 일대에는 투기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들어왔다”며 “해당 지역 매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투기 세력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 것 같지만, 당장 이익이 될 수만 있다면 웃돈을 지불해서라도 들어올 가능성이 있기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효선 NH 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도 “이미 내곡동 지역은 예전부터 투기 세력이 모인 곳”이라며 “지난 이명박 정권 때부터 투기 세력이 많이 들어온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린벨트 해제 논의가 나올 때마다 예상 지역이 늘 비슷하게 나오는 만큼 투기 세력에 대한 우려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내곡동 마을 주민이 하천변을 따라 산책하고 있다 [사진 박세진 기자]

정부의 목표 ‘집값’ 안정...현실은 달라

8·8 부동산 대책은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오르는 집값 안정을 목표로 한다. 주택공급을 확대해 집값을 잡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8·8 부동산 대책이 서울·수도권 집값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보는가’ 라는 질문에 내곡동 공인중개사, 마을 주민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인중개사 D 씨는 “그린벨트가 풀리고, 내곡동 일대 아파트 물량이 공급된다고 해서 집값이 잡힐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며 “요즘 아파트는 실거주의 목적도 있겠지만, 투자 수단의 성격이 강해 아파트로 자금이 모이는 상황이기에 쉽사리 집값이 진정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곡동 주민 E 씨도 “내곡동 일대에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서면 당연히 그곳 인프라도 더 좋아지는 것 아닌가”라며 “이곳 주민들이 늘어나 교통이 불편해질 가능성은 있겠으나, 집값을 잡기 위한 대책이라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그린벨트 해제로 집값을 당장 잡는 것은 어렵고 당분간 집값 상승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내곡동 ‘아파트 불패’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20~30년 후 아파트 가격 하락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아파트 가격에 있어 절대라는 것은 없다”며 “물론 내곡동 일대 아파트 가격이 쉽게 떨어지진 않겠으나, 상황에 따라 집값이 지나치게 고평가됐을 경우 아파트 가격은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 내곡동 일대 집값이 올라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할수록 시장의 힘이 세지는데 돈이 많이 풀릴 경우 시장의 힘은 더욱 세진다”며 “실제 노무현 정부 부동산정책의 결정판인 2005년 8·31 대책이 나오자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졌는데, 당시 M2(시중에 풀린 총통화량)은 1000조였다”며 “다만 지금은 M2가 4000조원을 넘어선 만큼 돈의 힘이 그사이 4배 커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화량이 늘어난 만큼 재건축시장이 시장을 주도하진 않는다”며 “이미 너무 커져 버린 부동산 시장을 정부가 직접적으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정부의 정책도 가격과 거래량의 변동 폭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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