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막으려 설정한 그린벨트…역대 정부 개발 위해 풀었다
[논란의 그린벨트②]
박정희 정부, 英‧日 벤치마킹해 도입
이후 주택 공급 명분 개발 허용…수도권 과밀화 지적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가 서울과 인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등을 풀기로 하면서 신규택지 조성과 새로 공급하는 주택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총 8만 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를 조성한다는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 서울시는 장기전세주택2인 ‘신혼 20년 전세자가주택’ 등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신혼 20년 전세 자가주택’은 신혼부부가 소득 기준에 상관없이 처음 10년 간 전세로 거주하고 아이를 낳으면 평수를 넓혀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주택이다. 두 자녀 이상 출산한 부부는 20년 후 시세보다 10%~20% 더 저렴하게 해당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오세훈 시장은 “20여 년 가까이 시행한 장기전세주택의 효과를 보면 다른 주거 형태에 거주한 분들에 비해 출생률이 20~30% 높다는 자료와 경험치가 있다”며 “아무리 마른 수건을 쥐어짜도 연간 4000호 이상 물량을 확보하는 게 불가능했다. 어디에 더 지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제안을 해 온 것”이라고 그린벨트 해제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대도시 팽창 막으려 시작…주택 공급 위해 해제
그린벨트를 해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강남구 세곡동 일대 등 34㎢를 해제한 바 있다. 이전 정부에서도 경제활성화와 주거·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됐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그린벨트 제도는 언제 시작해 어떻게 변화(일부 해제) 했을까.
그린벨트 제도는 서울 등 주요 대도시의 무분별한 팽창을 관리하고 국가 안보 등의 목적으로 1971년 7월 박정희 정부가 도입했다. 당시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의 성장이 함께 진행되면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린벨트 도입 당시 영국(그린벨트), 일본의 근교 지대 제도 등 주요 국가의 성장관리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도시를 포함해 도청소재지, 공업도시 및 환경 보전이 필요한 도시 등 총 14개 도시권을 대상으로 그린벨트가 지정됐다. 전체 면적은 5397㎢로 우리나라 국토의 5.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서울시의 그린벨트 면적은 129.4㎢, 이후 1972년 8월 23.4㎢의 그린벨트를 추가로 지정하고 이듬해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14.02㎢의 그린벨트가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166.82㎢로 늘어났다. 서울시를 비롯해 인천광역시, 경기도 등 수도권 그린벨트는 1977년 기준 1566.8㎢ 수준이었다.
이후 노태우 정부가 태릉선수촌, 과천경마공원, 하남미사리 조정경기장 등 공공시설을 짓기 위해 수도권 그린밸트 해제 길을 열었고 김대중 정부부터 본격화했다.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외국인 투자, 서민주거 안정,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782㎢ 부지의 그린벨트를 풀었다. 춘천, 청주, 제주 등 7개 중소도시권역 그린벨트는 전면 해제하고 수도권과 부산·대구를 비롯한 7개 대도시 권역 그린벨트는 부분 해제했다. 다음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 정부는 그린벨트 654㎢를 풀었다.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 서울 송파구와 경기 성남시 일대 부지의 개발제한 허들을 치웠다.
이명박(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린벨트를 해제했지만, 규모는 대폭 축소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푼 그린벨트 부지 규모는 88㎢, 서울 강남·강동권 약 5㎢ 규모의 그린벨트 해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집값 하락기였던 박근혜 정부 때는 그린벨트를 32.8㎢ 정도만 풀었다. ‘뉴스테이’로 불리던 민간 기업형 주택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서울 문래, 경기 과천주암, 의왕초평 등 수도권 3개 지역 약 1.36㎢ 면적 부지의 그린벨트를 해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일부 그린벨트를 개발했다. 2018년 2530가구 규모 신혼희망타운 공급을 위해 수서역 인근 그린벨트를 풀었고, 2021년에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자체 사업인 신내4지구(790가구) 주택공급을 위한 해제가 있었다. 당시 정부는 서울 그린벨트 해제가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반대로 관철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 지방 경제 활성화와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풀기로 했다. 첨단 산업 유치를 위해 필요할 경우 1971년 그린벨트 규제가 도입된 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환경평가 1·2급 그린벨트 개발도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시 국무조정실과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13번째 민생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토지 이용 규제 해소 및 지역경제 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8.8 주택대책’에서는 서울시와 함께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도 약속한 바 있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에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집값을 잡겠다는 것은 과거 정부에서 이미 검증된 실패한 정책인데, 이를 되풀이하면서 녹지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할 경우 수도권 인구 집중으로 인한 과밀화, 지방 도시 인구 감소, 국토 균형개발의 어려움 등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성명을 통해 “그린벨트는 미래세대에 물려 줄 유산이자 도시 삶의 환경, 생태, 안전을 지키는 장치”라며 “집값 안정 효과 없는 공급 확대를 위해 수도권 허파인 그린벨트를 허물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이제라도 그린벨트 해제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그린벨트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관리를 강화하고 확대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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