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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발’이 증명하는 40년 기술 역사...‘건축 설비 1호 명장’의 품격 [대한민국 명장]

박진관 건축 설비 명장
기능장 부터 명장까지 건축 설비 분야 최초 그랜드 슬램
마지막 목표는 ‘안전한 일터’ 만들기...“직접 몸으로 보여줄 것”

박진관 명장 (건축설비분야)이 사회복지법인 매실보육원 보일러 설비를 점검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건축물의 혈관과 신경이라 불리는 ‘건축 설비’는 박진관 대한민국 명장이 빚는다. 건축 설비는 건축물의 효용을 높이기 위해 설치된다. 주로 전기·난방·조명·급수·배수에 필요한 시설물 등이 있다. 

박 명장의 손길이 닿는 시설물들은 건축물 곳곳에 자리 잡는다. 마치 인체의 혈관, 신경과 닮아있다. 건축 설비가 없는 건축물은 그 가치가 0에 수렴한다. 박 명장은 다양한 건축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건축설비 분야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박 명장은 이 분야 ▲기능장 ▲기술사 ▲공학박사 ▲건축설비분야 제1호 대한민국 명장 등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국내 최초 인물이다. 이밖에 ▲배관기능사 ▲배관기능장 ▲용접기능사 ▲건축설비 기술사 등 관련 자격증만 10여 개다. 

오랜 시간 달려왔다. 쉴 법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잠시도 몸을 쉬지 않는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젠 남을 돕는다. 이유는 단 하나. ‘명장이 명장 답기 위해서’다. 박 명장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구슬땀을 흘린다. 건축 현장에서, 그리고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에서.

박진관 명장(왼쪽)이 감리를 담당한 한 건설현장에서 관계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손, 발이 부르트도록...40년 걸어온 기술 외길

“아이고 먼 길 오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오는 길 힘드셨죠. 이야기 나누기 전에 밥부터 먹고 합시다. 여기가 40년 전통 국밥집 입니다. 보기엔 허름해 보여도 맛도 좋고, 손님들 오면 늘 모시는 곳 입니다. 가시죠”

박 명장을 처음 마주한 건 부산에 위치 한 어느 한 국밥집. 으레 취재진을 부산에 초대할 적이면 자주 방문 하는 집이라 소개했다. 짙은 다크서클에 충혈된 눈, 곳곳에 흙먼지가 쌓인 투박한 손. 그가 기자를 맞이한 모습이다. 그 속에서 박 명장이 묵묵히 걸어온 길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1962년 출생인 그는 어릴적 부터 가난했다. 2남 3녀 중 장남인 박 명장에겐 기술만이 살 길 이었다. 어디든 기술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살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장유중학교, 김해건설공고, 창원기능대학을 거쳐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술을 갈고 닦아왔다. 

박 명장이 중학교를 다닐 적, 어머니의 건강히 급격히 악화됐다. 병원비를 낼 돈은 마땅치 않았다. 결국 학업을 포기하려 했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위해서다. 그럼에도 박 명장의 어머니는 아들을 생각했다. 본인의 병원비를 학업에 사용하도록 권했다. 아들은 어머니를, 어머니는 아들을 지극히 아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어머니의 건강은 호전됐다. 그럼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향한 곳은 김해건설공고다. 중학교 3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의 한 말씀의 영향이 컸다. ‘이 교실에서 공부한 너희 선배가 네덜란드 국제 기능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너희도 한번 국제 기록을 이뤄봐라.’ 이 한마디가 소년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그렇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품고 김해건설공고로 진학했다.

김해건설공고에서는 돈 걱정을 잠시나마 덜 할 수 있었다. 가난해 월 회비(수업료)도 내지 못하던 그를 지켜본 선생님이 연구수행 자격을 인정해 준 까닭이다. 당시 연구수행 자격으로 학교를 다닐 경우 월 회비가 면제 됐다. 여기에 더해 특화생 제도 혜택도 받았다. 돈으로 학업에 지장을 받자 힘겨워 하던 박 명장을 딱히 여긴 선생님의 보은이다.

시간이 흘러 1980년 8월, 고등학교 시절 건설 현장의 실습생으로 건설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밥은 학교에서 해결했다. 잠은 실습실 뒤 ‘제도판’ 세 개를 겹쳐서 잤다. 아직 어렸던 고등학생 청년은 그곳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고래꿈을 꿨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다. 그만큼 그는 간절했고, 절박했다. 그가 살아온 방식이다.

박 명장은 과거를 회상하며 “현장 실습생부터 시작해 배관기능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이후 창원기능대학에 입학해 배관을 전공해 배관 기능장을 취득했다”며 “오직 기술 외길만 걸어오던 중, 부산지역 1군 건설업체에 스카웃 돼 그곳에서 또 다시 기술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간절했던 그에게 기술은 솔직했다. 장인 정신으로 갈고 닦은 기술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현장맨’으로 통하던 그가 오롯이 ‘현장’에서 익힌 지식은 그를 2013년 명장 반열에 오르게 했다. 건축 설비 분야로 명장에 임명된 사례는 박 명장이 처음이었다. 

박 명장과 나란히 앉아 과거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 잠시 그의 손이 스쳤다. 거칠지만, 단단했던 손이 그가 살아온 길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었다. 가혹한 현실 앞에 흔들리던 젊은 날의 청년이 오직 두 손으로 이뤄낸 담대한 결과물이었다.

 사무소 내에 진열된 각종 기념패 상패, 방송 출연 사진액자 앞에 박진관 명장이 서있다.[사진 신인섭 기자]
아버지의 기일에도, 그는 보육원을 챙겼다

2월 4일은 박 명장의 아버지 기일이다. 그는 아버지의 기일에도 보육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추운 겨울 떨고 있을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서다. 평소 봉사활동을 이어오던 보육원의 보일러가 고장난 것이 화근이다. 엄동설한에 차가운 물로 아이들을 씻길 수는 없었다. 새벽 4시, 그는 그렇게 보육원으로 향했다. 박 명장은 “이른 아침 아이들 만큼은 따뜻한 물로 씻기고픈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부산에서 그는 ‘명장’ 보다 ‘봉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걸맞게 그의 봉사 이력은 화려하다. 그 원천에는 ‘기술’이 있다. 그가 가진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을 돕는 일종의 ‘재능기부’ 형식으로 봉사를 이어왔다. 주말만 되면 ‘배관기능장’도, ‘공학박사’도 아닌 ‘보일러공’으로 탈바꿈한 그를 마주할 수 있다.

박 명장과 봉사활동의 첫 만남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2년 대학 재학 당시 박 명장은 농촌봉사활동을 경험했다. 누군가에겐 하나의 추억으로 그치는 이 경험이 박 명장을 본격적인 봉사의 길로 인도했다. 이후 2009년 그는 봉사활동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보냉가설 봉사단원’에 가입하게 된다. 보냉가설은 ▲보일러 ▲냉동기 ▲가스 ▲(건축)설비의 줄임말로 각각의 첫 글자로 시작하는 업종 기술인들이 모인 비영리 민간단체다.

그가 봉사에 이토록 진심인 이유는 단 하나. 그도 힘들어 봤기 때문이다. 본인이 살이 찢어질 듯한 추위를 몸소 겪어 봤으니, 이 같은 경험을 다른이들은 하지 않게끔 돕기 위해 직접 발벗고 나서는 것이다.

박 명장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건설 현장에서 먹고 자면서 추위를 숱하게 겪어봤다”며 “추위가 주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이를 누구보도 잘 알기에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을 돕고자 매주 꼭 봉사활동을 나선다. 이는 나 자신과의 약속일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와의 약속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박 명장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 2020년 ‘제 32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자원봉사상을 수상했다. 지난 23년 꾸준하게 이어온 재능기부 활동 및 기초수급세대 기름보일러 교체, 집 수리 봉사활동 등을 인정받은 셈이다.

당시 그가 받은 상금은 3000만원. 거액임에도 불구하고 박 명장은 이 상금 마저도 남을 돕는데 사용했다. 상금 전액을 매월 실시하는 기초수급자 보일러 구입 비용으로 기부하기로 한 것. 명장이라는 명성도 좋지만, 이 같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자체에 보람을 느낀다는 그다.

1군 건설사와의 법적공방 전, 박 명장이 준비한 서류들. [사진 박진관 명장]
약자에겐 한 없이 부드럽게, 강자에겐 한 없이 엄하게

이렇듯 한평생 남을 돕기 위해 살아온 그지만, 정작 스스로를 불같은 사람이라 칭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약자를 지키기 위해 싸워 왔다는 그다. 실제 기자가 그의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본인의 키를 훌쩍 넘을 만한 각종 서류들이 탑을 쌓고 있었다.

그의 휴대폰에는 오래된 메시지가 있다. ‘소송건 정말 감사합니다. 베풀어 주신 은혜 너무 고맙습니다. 억울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씀이 맞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듯 직접 도와 주시는 모습에 너무 감동 이었습니다.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약자들을 지켜주세요.’

발단은 박 명장과 국내 굴지의 1군 건설사 하도급업체와의 ‘법적 공방’이었다. 10 여년 전 박 명장은 A씨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는다. ‘스테인레스관에 이음시 실리콘을 바르면 부실시공이 아닌가’ 라는 질문이었다. 박 명장의 답은 간단했다. ‘당연히 부실시공이다.’

해당 문자를 보낸 A씨는 발주처에 부실 시공이라는 제보를 남겼다. 이에 하도급업체는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항소심 결심공판을 앞두던 중 박 명장에게 부실시공을 입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실상 국내 1군 건설사와 개인의 싸움이다. 위험부담이 컸다. 그럼에도 박 명장은 직접 A씨와 현장을 방문했다.

스테인레스 배관을 확관해 전기 아크 용접으로 가접을 거친 후, 실리콘으로 시공한 명백한 사실을 확인한 박 명장은 해당 현장을 즉시 사진으로 남겼다. 곧바로 그는 담당 재판부에 부실시공을 입증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약자에겐 한 없이 약했고, 강자에겐 한 없이 엄한 그다.

박 명장의 탄원서를 계기로, 담당 재판부는 판결을 연기시켰다. 이후 재판부는 박 명장을 법정에 출석 할 것을 통보했다. 박 명장은 억울한 이를 위해 직접 법정으로 나섰다. 2시간 30분 가량의 PPT 발표가 이어졌다. 부실시공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박 명장은 부실시공에 대한 근거를 조목조목 짚어냈지만, 상대 감정인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박 명장이 감정인의 감정보고서가 잘못된 점을 밝혀낸 셈이다. 결국 A씨는 2심에서 무죄를 받고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와 관련해 박 명장은 “당시 해당 1군 건설사는 직접 A씨를 고발하지 않고, 하도급 업체를 시켜 A씨를 고발했었다”며 “A씨는 1심에서 7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 받은 상황이었는데, 도저히 억울해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진관 명장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포기하지 못한 비례대표의 꿈...“명장은 명장 다워야”

그의 최종 꿈은 ‘안전한 일터’ 만들기다. 이를 위해 그는 국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앞서 22대 총선 당시 박 명장은 국회의원 김해 을 국민의힘 후보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당시 그의 목표는 산업 현장의 전문가로서 직접 근로자 안전을 위한 법안을 만들겠다는 목표 하나였다.

당시 그는 “국민이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건설현장 불법 카르텔을 타파하고, 건설현장 부실시공의 근본적 대책 마련과 산업현장 안전사고 방지대책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아쉽게 총선에서 낙마 했지만, 안전안 일터를 위한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는 법안을 만들어내는 국회에 여전히 현장 전문가가 부재하고 있는 만큼, 또 다시 국회의 문턱을 직접 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박 명장은 “건설 안전 분야에 전문가가 없다. 저는 현장 기능원 출신으로 30년 가까이 현장에 있었다. 이 시간동안 이론과 현장의 괴리를 절실히 느꼈다”며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법은 현장에서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직접 노동자들의 법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명장은 명장 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에서 명장 훈장을 내려준 만큼, 이를 잘 활용하는 것도 명장의 역할”이라며 “여러 직장에서, 또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명장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존경 받을 만한 행동을 직접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긴 인터뷰를 끝으로 박 명장은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이런 세상에 내 같은 사람 하나 있어야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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