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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전쟁 전 세계 ‘단백질 상품화’ 뜨겁다

단백질 전쟁 전 세계 ‘단백질 상품화’ 뜨겁다

온 국민에게 허탈감을 안겨줬던 ‘황우석 쇼크’가 여전히 잠들지 않고 있다. 황 교수 연구에 국민이 열광한 것은 난치병 치료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특히 바이오 산업이 가진 엄청난 부가가치에 관심이 쏠려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황 교수 파문으로 자칫 바이오 산업 전체가 뭇매를 맞아 연구·개발 속도가 둔화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산업은 연구가 활발하다. 이에 따라 21세기 ‘산업의 금맥’이라 불리는 단백질 등 바이오 산업의 현주소와 전망을 진단했다. <편집자> 2003년 미국 국립인간지놈연구소는 인간의 유전자 암호를 풀 수 있는 ‘지놈 지도’를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당시 전 세계는 생로병사의 해답을 풀 수 있는 ‘비밀의 문’이 열렸다고 열광했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줬다. 마찬가지로 21세기 프로메테우스들은 신만이 볼 수 있던 생명의 비밀을 인간에게 펼쳐보였다고 평가했다. 암을 비롯한 4000여 종의 난치·불치병 치료의 길이 열렸다고 했다. 당시는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으로 세계 과학계가 떠들썩했다. 하지만 열광도 잠시였다. 생명과학계는 지놈 지도 만으로는 인간의 난치병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놈 지도 완성이 질병 극복으로 가는 ‘길’을 밝힌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 질병의 98%를 발생시키는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을 규명하지는 못했다. 지놈 연구를 주도했던 셀레라 지노믹사는 “유전자 규명으로 인간의 난치병을 극복한다는 초창기의 장밋빛 꿈은 이제 단백질 규명이라는 새로운 화두로 옮겨갔다”고 전망했다. 미 맥시즌사의 설립자인 윌렘 핌스테머 박사도 “사람 조직 내에서 일꾼의 역할을 하는 단백질 구성을 낱낱이 밝혀 질병의 원인을 규명해야 하는 새로운 목표물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 해외 유수의 과학 언론들도 일제히 단백질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세포 내에 단백질의 위치만 밝혀내면 엄청난 연구다. 유전자 배열을 규명하기 위한 1990년대의 ‘인간 지놈 프로젝트’에 비할 만한 가치다.” (사이언스 2005년 8월 호) “인간 단백질 지도 작성을 위한 세계 기구인 휴포(HUPO)는 신약 개발의 후보 물질을 규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향후 바이오 산업은 유전자가 아닌 단백질로 귀결될 것이다.” (네이처 2005년 9월 호)

2002년 노벨화학상 ‘단백질 연구’ 단백질이 ‘포스트 지놈 시대’를 열 것이라고 했다. ‘포스트 지놈’이란 생명체의 DNA 정보를 모두 밝혀낸 지놈 이후의 시대를 뜻한다. 실제로 기초적인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데 기여한 존 펜(미 버지니아대 교수)과 다나카 고이치(일본 시마쓰사 엔지니어), 쿠르트 뷰트리히(취리히대 교수) 등 세 명이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단백질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미 캘리포니아공과대학 프랜시스 아널드 교수는 2004년 논문에서 “포스트 지놈 프로젝트를 통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가 규명돼 세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전망했다.

▶단백질의 구조를 확대한 모습. 단백질 분자는 수십 개의 끈으로 이뤄져 있다. 이 끈이 나선으로 감기거나 느슨한 코일 모양 혹은 서로 얽히고 설켜 공이나 막대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HUPO도 “포스트 지놈의 중심인 프로테오믹스에는 4000여 종에 달하는 불치병 정복의 해답이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테오믹스란 단백질 간의 상호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기능 이상 또는 구조 변형 등을 설명하는 기술이다. 스웨덴 울렌 박사(HUPO 내 인간 단백질 지도사업 주도)는 “지놈 프로젝트의 진정한 완성은 단백질 연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같이 단백질이 규명되면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현실화된다. 양변기에 모든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바이오칩이 장착돼 현대 의학에서 풀지 못한 불치병을 미리 진단해 줄 수 있다. 또 쇼핑몰에서 구입한 약품 투여 로봇이 개인의 단백질 이상 유무를 체크해 이에 맞는 약을 처방해 준다. 단순히 증상을 치료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질병의 뿌리부터 치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신약 개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

한국 단백질 연구 세계 10위권 단백질 연구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전문가들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연구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지놈 프로젝트’에서 사실상 소외됐던 한국이 ‘포스트 지놈 프로젝트’는 발 빠르게 대처했다는 얘기다. 한국의 단백질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연세대 백융기 교수(현 HUPO 부회장)는 “이 연구는 향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약 개발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현재 산업자원부·보건복지부·과학기술부 등 정부 주도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며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놈 연구에서 뒤처졌던 일본도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부의 ‘2006년도 특정연구개발 사업시행계획’에 따르면 올해 총 4272억원의 자금이 생명기술(BT)과 나노기술(NT) 분야에 투자될 예정이다. BT 분야는 미래 신산업 창출을 위해 이미 추진 중이던 21세기 프런티어 사업과 바이오 사업에 총 1488억원이 투입돼 연구가 진행된다. 또 ‘차세대 바이오 신약·장기개발’ 분야도 2005년 100억원에서 2006년에는 15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바이오 단백질 칩 등 4개 기술 연구를 지원한다. 이웃 나라인 일본 역시 올해 단백질 상호작용 규명을 위한 연구에만 100억 엔(약 900억원)을 투자한다. 각 국가들이 앞다퉈 단백질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셈이다. 단백질 항체 전문 기업인 랩프런티어 관계자는 “현재 질병 치료의 연구단계에서 사용되는 항체의 경우 100마이크로그램당 220~550달러 수준에 판매되고 있다”며 “같은 양의 금(1그램 14달러)과 비교할 때 10만~40만 배나 비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백질 연구 사업을 놓고 21세기 형 ‘금맥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상과학 영화가 현실로?


“소변만 눠도 진단에서 치료까지”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A씨(32)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단백질 칩이 내장돼 있는 바이오 변기에는 A씨의 소변 속에 있는 단백질의 양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분석 프로그램 칩이 내장돼 있다. 변기 손잡이를 통해서는 혈압·체온 등이 자동으로 측정된다. 또 양치질을 하는 도중에는 자동 브러시를 통해 A씨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극소량의 혈액이 채취된다. 이 혈액은 단백질 칩에 반응해 소변 결과 등과 함께 병원의 자동 진료 데이터베이스로 보내진다. A씨는 화장실을 나와 주방 식탁 의자에 앉는다. 본인의 몸에 알레르기나 아토피를 일으키지 않는 식단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그는 이에 앞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종합검진 때 알레르기·아토피 검사를 했다. 이들의 반응 검사를 할 수 있는 바이오 파스를 팔에 잠깐 붙였다 떼면 분석 결과를 금세 알 수 있다. 그래서 A씨의 식단이 짜인 것이다. 식사 후 바이오 약물 냉동고의 문을 열자 자동으로 형형색색의 작은 알약 몇 개가 A씨를 위해 물컵과 함께 놓여 있다. 바로 직전에 보내진 시료의 검사 결과에 따라 병원 중앙컴퓨터에서 가정 상비약으로 보관된 바이오 약물 몇 가지가 처방된 것이다. 먼저 파란색은 어제 마신 술을 분해하는 알코올 분해효소제, 빨간색은 지난번 신체 검사에서 20년 후 치매 발병이 진행될 수 있다고 통보받은 후부터 복용하는 치매형성 억제단백제, 노란색은 10년 전 초기 대장암으로 진단받은 후부터 먹는 면역항암제다. 거기에 오늘은 두 가지가 더 처방됐다고 전자 메시지가 왔다. 보라색은 오늘 H25RT타입 감기 바이러스가 검출되어 이를 위한 항체치료제가 첨부됐으며, 핑크색은 한 달 전 A씨가 오늘 여자친구를 소개받기로 한 날로 일정표에 입력했는데 그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어트랙틴이라는 단백질이 처방됐다. A씨가 냉동고 문을 열고 이들을 꺼내 물 반 잔과 함께 마시는 순간은 3초. 이 3초간의 노력으로 A씨는 평균 수명 120세의 세상을 살게 된다.


단백질은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SCV’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은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발생 과정을 거쳐 생명체로 태어난다. 한 생명체가 갖고 있는 전체 유전자를 지놈이라 하고, 이 숫자는 생물체마다 일정하다. 가령 사람은 생각보다 적은 2만6500개 정도고 선충은 1만8700여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애벌레나 올챙이들이 커서 성체가 되어도 지놈 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지놈이 만드는 전체 단백질(프로테옴)의 구조와 기능이 바뀌어 태어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생명체의 다양성과 이 안에서 어떻게 단백질이 작용하는가를 알 수 있다. 전체적인 생명분자의 흐름은 유전자-리보핵산(RNA)-단백질로 이어진다. 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는 매우 복잡한 단백질 사이의 대사조절에 의해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신호전달이 이루어진다. 이 중 어느 한 개의 단백질이라도 잘못되면 병이 생기는 것이다. 단백질은 수많은 변형 과정을 거쳐 제대로 기능하는 단백질이 된다. 때로는 독버섯 등 해로운 물질에 의해 RNA 합성이 만들어지지 않아 결국 단백질을 생성해내지 못해 생명체가 죽는 경우도 생긴다. 단백질은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모든 생명체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드론·SCV·프로브’와 같은 일꾼인 셈이다.


단백질 칩? 스낵인가요?
회사원 김 대리는 출근길 지하철 신문에서 ‘단백질 칩(Protein Chip) 상용화 임박, 인류 보건에 획기적 기여 예상’ 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김 대리는 잠시 이 생소한 단어에 멈칫하다가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포테이토 칩, 고구마 칩, 양파 칩에 이어 몸에 좋은 단백질 칩이 나오는구나. 그럼 탄수화물과 지방으로 고생하던 내 뱃살이 얼마나 줄어들 수 있을까?” ‘칩(chip)’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사례다. 칩이란 일반적으로 ‘잘게 썰어 기름에 튀긴 과자’라는 의미 외에 과학용어로 ‘집적회로의 기본단위를 이루는 작은 반도체 기판’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과거 IT 변혁의 핵심이었던 반도체에 이어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단백질 칩’이 또 다른 혁명을 주도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백질 칩은 작은 기판 위에 단백질을 집적한 것으로 우리 몸안에 있어야 할 단백질들의 양이 많은지 적은지 한번에 쉽게 알아내 질환을 진단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따라서 칩에 집적되는 단백질의 선정에 따라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의 종류가 달라진다. 대개 ‘항체’라 불리는 단백질을 집적하게 된다. (자료 : 후지모토 다이사부로 지음 『단백질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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