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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해저의 나치 화학무기

발트 해저의 나치 화학무기

Roiling the Baltic Waters 1947년 6월 소련 해군의 콘스탄틴 테르슈코프 함장에게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압수한 나치 화학무기 3만4000t을 발트해에서 가장 깊은 곳에 여름이 끝날 때까지 버리라는 지시였다. 발트해상의 대다수 소련 상선과 군함에는 독일에서 약탈한 물건들이 적재돼 있었다. 테르슈코프에게는 영국에서 빌린 소형 화물선 두 척과 소련군 소속 트롤선 두 척, 그리고 강제 동원된 독일인 선원들밖에 없었다. 그는 지정된 폐기 장소인 고틀란드 베이슨(스웨덴과 라트비아 사이에 있다)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자 좌절감을 느꼈다. 그는 일기에 “이런 속도로 임무를 완수하는 데는 10개월이나 걸릴 전망”이라고 썼다. 꾀가 많았던 테르슈코프는 그 대안으로 좀 더 가까운 곳을 택했다. 덴마크 보른홀름섬 동쪽의 작은 섬 크리스탄소 인근의 수심 100m 정도의 해역에 버리기로 했다. 그해 12월 테르슈코프는 임무를 완수했다. 약 60년 뒤 그가 선택한 폐기 장소는 치명적인 곳이 돼버렸다. 지난해 9월 러시아와 독일은 50억 달러의 공사비를 들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비보르크부터 독일 동북부 해안의 그라이프스발트까지 발트해 밑바닥을 지나가는 1200㎞ 길이의 가스관을 건설하자는 계약에 서명했다. 가스관의 예상 루트는 테르슈코프의 폐기 장소 중 두 곳, 즉 고틀란드와 보른홀름 유역에 가깝다. 러시아와 발트 3국의 환경운동가들은 가스관 공사 때문에 물속의 낡은 화학 포탄들이 파괴돼 바다를 오염시킬까 우려한다. 러시아 환경정책연구소의 알렉세이 야블로코프는 “발트해에 가스관을 건설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그곳 해저는 포탄들로 가득하다. 최소한 포탄 폐기 장소들의 지도부터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트해는 다른 의미에서도 지뢰밭이다. 유럽 동부에서 서부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문제는 더욱더 복잡하고 긴급한 문제가 돼간다. 발트해 가스관 사업에서 51%의 지분을 갖는 러시아의 가스프롬은 최근 최대 고객인 독일과의 직접 연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우크라이나 같은 중간 경유국들에 통행료를 내지 않으려는 계산에서다. 이중으로 된 발트해 가스관은 운송 능력이 520억㎥에 달하는 2013년에는 독일 가스 수요의 50% 이상을 공급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독일의 에너지 체계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촉발했다. 최근 러시아가 가격 문제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육상 가스관을 차단한 사건은 그런 우려를 더욱 부추겼다.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B. Z.는 최근 ‘러시아는 독일과 갈등을 겪게 되면 가스를 차단할 것인가’라는 머리기사를 게재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원들은 러시아에의 과도한 의존을 피하려면 독일이 원자력 발전을 지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과의 갈등을 유발했다. 전 사민당 당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최근 북유럽 가스관 건설 컨소시엄 의장직을 100만 유로의 연봉에 수락했다(우크라이나에서도 원자력 발전으로 자생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와의 가스료 협상을 타결한 뒤 지난주 의회에서 실시된 불신임 투표에서 패배했다). 슈뢰더는 유럽인들을 설득해야 하는 힘든 홍보 과제를 안게 됐다. 가스관의 지정학적 중요성뿐 아니라 그것의 안전성마저 납득시켜야 할 판이다. 테르슈코프가 일기에서 썼듯이 소련인들은 수천 개의 화학 포탄을 그냥 바닷속에 던져버렸다. 그것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 자체가 악몽이다. 설상가상으로 공중 투하 폭탄들은 수면으로 부상하는 습성이 있었다. 테르슈코프는 “트롤선에서 기관총 사격을 퍼부어 그 폭탄들을 터뜨려야 했다”고 적었다. 부양성이 있는 일부 폭탄들은 1950년대 들어서까지 스웨덴 해변에 계속 올라오곤 했다.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도 그 포탄들의 내용물(주로 수포성 작용제인 겨자가스와 미란성 독가스가 많고 신경가스인 타분도 있다)은 여전히 치명적일 가능성이 있다. 겨자가스는 DNA를 파괴하고 암을 일으키며, 포탄 껍질이 분해되기 전에 해저에서 최소한 5년간 견뎌낸다. 바닷물이 녹슨 포탄 속으로 침투할 경우 6주 정도 지나면 그 신경가스가 무력화되지만, 그 기간에 신경가스에 접하는 모든 생명체가 죽고 만다. 그래서 발트해상의 모든 어선은 신경가스 해독용 장비를 갖추도록 의무화돼 있다. 1969년과 1985년에는 어망에 걸린 겨자가스 포탄 때문에 덴마크 어부들이 입원한 사건이 두 차례 있었다. 체코 과학자 이리 마투세크는 최근 발트해 연구에서 화학 무기 내용물 유출의 위험성은 “수천 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썼다. 발트 3국은 자국의 안전을 동쪽과 서쪽의 두 강대국이 무시한다고 투덜댄다. 리투아니아의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 총리는 “누구도 우리의 견해는 묻지도 않았다. 모든 일이 우리의 등 뒤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당시 폴란드 대통령이던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프스키는 해저 가스관 프로젝트를 “환경에 위험한 사업”이라고 지칭하며 그 대안으로 두 번째 가스관을 폴란드 영토 위에 건설하라고 요구했다. 유한 파르츠 전 총리를 비롯한 에스토니아 정치인들은 1982년 제정된 유엔 해양법 협약을 거론하며 가스관 건설을 막기 위해 자국의 영해를 확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여기에는 이웃 핀란드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핀란드는 가스의 대부분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가스관 건설을 지지한다. 러시아는 발트 3국과 폴란드의 반대를 ‘러시아 혐오증’의 발로이자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는 시도라고 일축한다. 가스프롬의 대변인 세르게이 쿠프리아노프는 “우리 러시아도 발트해 연안국이다. 우리도 여느 나라 못지 않게 발트해 생태 보호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업 추진 전에 가스프롬과 독일 측 파트너인 에온·BASF가 모든 필요한 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주장했다. 친크렘린 성향의 정치 분석가 글레브 파블로프스키는 이달 초 발생한 가스값 분쟁은 “새 가스관 건설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증명했다”며 “리투아니아와 폴란드는 그 계획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들은 반대할 경제적 이유를 찾지 못하자 발트해의 화학 무기 오염이라는 색다른 명분을 들고나왔다”고 주장했다. 에너지에 굶주린 유럽은 발트해 가스관 건설을 거부하는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특히 첫 번째 가스가 공급되는 2010년에 북해산 석유와 가스 재고량은 바닥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독일 녹색당도 원자력보다는 가스를 선호한다. 유럽은 아직까지 치명적인 히틀러의 가스 폭탄들이 에너지 가격에 미칠 영향도 감안해야 할 듯하다. 장병걸 cbg58@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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