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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방중 때 배운 건 ‘부동산’

김정일, 방중 때 배운 건 ‘부동산’

연초부터 북한의 개혁개방이 화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0일부터 약 1주일간 중국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광둥(廣東)성의 광저우(廣州), 선전(深 ) 등 경제특구를 주로 방문했다. 이는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 때 코스와 비슷하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향후 개혁개방이 주목되고 있다. 이에 앞서 그는 2001년 1월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 지역을 방문하고 “(변화 모습이) 천지개벽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도 중국 남부 광둥성 경제특구의 하이테크 산업단지 등을 시찰했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았을까. 김 위원장이 몇 년 전 상하이에서 천지개벽된 중국의 모습을 봤다면 이번 방문지인 선전 등에서는 천지개벽의 원동력을 봤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중국의 천지개벽 원동력은 뭘까? 해외 투자자들이 수십 년간 물밀듯이 들어온 이유를 먼저 봐야 한다. ‘14억의 인구, 엄청난 내수시장, 풍부한 노동력, 정부의 각종 우대정책…’. 이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은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부동산에 대한 권리 보장’이었다. 해외 투자자의 초기 투자금 상당 부분은 부동산(토지 확보 및 건물 신축)에 쓰인다. 따라서 해외 투자자의 부동산에 대한 권리 보장 여부는 재산권 보장의 척도다. 해외 기업들이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기준인 셈이다.

부동산 열풍의 中 개혁개방 25년 중국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개혁개방을 추진한 지 25년이 지났다. 최근에도 매년 9%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는 나라다. 이런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부동산이다. 최근 중국의 부동산 열풍과 관련한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하나는 중국의 최고 부자 이야기다. 일부 평가기관은 2005년에도 중국의 최고 부자로 ‘국미(國美)그룹’ 황광위(黃光裕·37) 총재를 선정했다. 황 총재는 홍콩과 동남아 화교의 중심인 광둥성 출신이다. 그는 87년 1월 1일 베이징(北京)에 100㎡(30평 정도)짜리 ‘국미전기’라는 작은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그가 사업을 시작한 뒤 중국은 개혁개방과 함께 전자산업과 유통업이 급격히 성장했다. 중국의 유통시장은 매우 복잡하다. 땅이 넓은 만큼 중간 대리상이 많다. 전근대적인 거래 관행도 많다. 황 총재는 이를 개선해 중간 대리상을 과감히 줄여 전국적인 전자제품 체인점 사업을 했다. 90년대 중국 주민들의 전자제품 수요가 급증했다. 더구나 중간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이 있자 장사가 잘됐다. 동시에 주요 도시의 길목에 가게를 열었기 때문에 ‘부동산 가치’도 덩달아 올랐다. 때마침 부동산 개발 열풍까지 불어 준마가 날개를 얻은 격이었다. 한국의 L사가 패스트푸드점을 하면서 내막은 부동산 사업을 한 것과 비슷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미그룹은 그 후 부동산 투자와 개발 전문회사도 설립했다. 한국인 투자자 김모씨의 사례도 살펴보자. 김씨는 2004년 여름께 상하이에 부동산을 구매했다. 몇 번의 상하이 방문을 통해 서울보다 더 발전된 도시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상하이에 집을 하나 사면 자식들 공부를 보내거나 임대를 줘도 손해는 안 볼 것 같았다. 거기다가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부추김도 한몫했다. “2008년 올림픽 때까지는 중국 부동산은 무조건 갑니다.” “중국 위안화 절상이 임박하였는데, 지금 투자하면 꿩 먹고 알 먹고입니다.” 실제로 중국 위안화가 평가 절상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돈의 가치가 올라 재산이 불어난 셈이다. 마침내 김씨는 “그래 일단 지르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05년 5월 11일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해 소위 ‘5·11조치’를 발표했다. 최근에는 집값이 떨어졌다. 상하이가 가장 심하다는 등의 소문을 들은 김씨는 투자금을 날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김씨의 사례를 통해 이제 중국 부동산 산업은 강력한 규제책이 필요할 만큼 과도하게 성장한 것이다.

‘토지사용권제도’가 열풍 원인
25년 전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도 중국은 토지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부동산 열풍이 불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토지사용권제도’ 라는 명품을 발명했기 때문이다. 토지사용권제도란 토지의 소유권은 국가가 계속 가지되 토지 사용을 필요로 하는 자가 일정한 사용료를 내고 일정 기간(70년, 50년 등) 그 권한을 갖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토지 소유권은 국가가 계속 갖기 때문에 사회주의 토지공유제도라는 중국 헌법 이념이 유지된다. 대신 ‘토지 사용권’을 확실히 보장해 줌으로써 투자자들의 ‘부동산 권리’에 대한 불안을 씻어 준다. 사적소유제 국가에서 개인들이 받아야 할 토지거래 대금을, 중국 정부가 일괄하여 ‘토지 사용료’ 명목으로 거둬들이니 그 돈만도 엄청나다. 이 돈이 중국 경제 개발의 강력한 밑천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처음에는 ‘토지사용권제도’를 계획한 게 아니다. 헌법상 토지 사유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김정일 위원장이 방문한 지역인 선전에서 80년대 초 토지사용권제도를 처음 채택했다. 특히 선전은 경제특구로서 홍콩과 동남아 등의 화교자본이 부동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를 높이 평가한 중국 정부는 88년 제1차 헌법 개정을 할 때 전국적인 부동산 관련 법제를 정비했다. 그 후 약간의 조정기는 있었지만, 중국 부동산 산업은 중국 경제 성장의 제1의 원동력 역할을 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 부동산 개발 성공 조건 북한의 김 위원장은 이번 선전 방문으로 이런 부동산의 역사를 잘 배웠을 것으로 본다. 물론 ‘북핵 문제’의 해결은 북한 개혁개방의 전제조건이다. 개혁개방이 본격화하려면 북핵 문제가 풀리고, 전략 물자나 원산자 규정 등 투자를 위한 핵심 이슈가 해결돼야 한다. 이런 전제가 해결돼 북한이 본격적인 중국식 개혁개방의 길을 걷는다면, 최우선으로 중국과 같이 부동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북한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했을 경우의 부동산 방향을 예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토지이용권제도 전국화(특구에서 전국으로, ‘남북’에서 평양으로)= 북한도 토지임대법과 개성공단부동산관리규정 등에 중국의 토지사용권 제도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토지이용권’ 제도다. 그러나 북한 경제 전반의 개혁개방이 성공하려면, 토지이용권제도를 전국화, 일반화해야 한다. 중국과 같이 헌법을 개정할 수도 있고 새로운 법을 제정할 수도 있다. 현재의 토지임대법을 개정해 정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개발 방향은 남(개성)과 북(신의주)의 경제 특구에서, 전국과 평양으로 확대되는 방식이 될 것이다(중국은 남쪽의 경제 특구에서 동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고, 다시 동해 연안의 발전을 바탕으로 서부 대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을 취했다). 공단·인프라에서 상점을 지나 주택으로= 2006년부터는 개성 공단의 개발이 확대되고 에너지·통신·물류유통 등 북한의 인프라 구축 사업이 본격화한다. 이처럼 사회 인프라가 구축되고 공단 확대가 본격화하면 사무용 오피스·상가 등이 개발될 것이다. 그리고 북한 주재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급 주택을 시작으로, 북한 주민들의 소득이 향상되면서 본격적인 주택 개발이 이뤄질 것이다. 이때가 북한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남한의 기업들이나 개인 투자자들의 북한행이 본격화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한반도 경제권 형성= 민족은 단순한 핏줄 문제가 아니다. 동일한 언어와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다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경쟁요소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화교 자본 진출 과정이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강화하면 중국과 화교자본, 그리고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북한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남한 기업은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북한 개혁개방에 참가하는 남한 정부와 기업의 목표는 ‘한반도 경제권’의 형성이 돼야 할 것이다. 중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동북 4성화(東北4省化)’가 아닐까. 잃어버린 10년 회복= 잃어버린 10년이란 지난 10년간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쉬어버린’ 10년이 아닐까. 오히려 북한은 93년 이미 중국식 개혁개방을 벤치마킹해 토지임대법을 제정하는 등 대외개방을 준비했지만 지난 10년간 수차례의 자연 재해와 지루한 핵 협상으로 개혁개방의 기회를 놓친 것이 ‘원조 잃어버린 10년’은 아닐지. 어쨌든 북한은 중국이 25년간에 걸쳐 이루어온 개혁개방, 특히 부동산 개발을 10~15년으로 압축해 성공시켜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이 주체가 되고 시장원리 따라야= 토지는 영원한 생산의 원천이고 휴식의 공간이다. 또한 인구는 늘어가고 토지는 희소가치가 있다. 따라서 토지와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시장은 필연적으로 투기성을 띨 수밖에 없다. 금융이 발달해 부동산 또한 하나의 상품으로 변하면서 이러한 투기성은 더욱 확대됐다. 따라서 모든 국가는 부동산의 공공성에 입각, 정책들을 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중국에서 보듯 기업이 주체가 된 부동산 개발이 활성화돼야 한다. 특히 시장 자체의 수요가 확대되는 것(시장원리의 작동)이 전제돼야만 북한 부동산 개발도 성공할 수 있다. 또 북한 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유통사업도 유망한 투자 분야다. 중국의 중쉬(中旭)그룹은 지난해 북한 정부와 평양제일백화점을 10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했다. 중국경영보(中國經營報)는 “지난해부터 대북 투자에 대한 중국 기업의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중쉬그룹의 평양제일백화점 인수 소식이었다”고 전했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필연적이다. 다만 그 속도와 방법이 문제될 뿐이다. 남북 경협의 방식과 수준에 대한 한국 내의 논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이 집안 말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나서 북한을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더욱 깊숙이, 그리고 더욱 빨리 끌어들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의 경쟁은 필연적이다. 북한 부동산 투자를 위한 제도 정비와 개발 자금의 확보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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