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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의 농촌 살기] 서른 몇 개나 되는 장독을 보면…

[서재영의 농촌 살기] 서른 몇 개나 되는 장독을 보면…

얼마 전에 장독을 네 개 샀다. 지난해 아는 스님의 소개로 두 개를 사서 써보았더니 기왕에 쓰던 독에 비해 모양새도 좋고 잘 구워진 듯하여 더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독을 항아리라고 부르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독과 항아리는 다른 것이다. 몇 마디 하자면, 독은 장을 담그는 큰 그릇을 말하고 항아리는 그보다 작은 그릇을 말한다. 독과 항아리의 중간쯤 되는 그릇은 중두리라고 한다. 이처럼 크기에 따른 이름이 있는가 하면 쓰임새와 모양에 따라 옹기의 이름이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나도 주워들은 식견이므로 잡설은 이쯤에서 그만두자. 독을 사러 가자면 트럭이 필요한데 내게 트럭이 없으니 별수 없이 또 친구의 신세를 져야 한다. 그래서 친구를 불렀다. “방바닥에 엉덩이만 지지고 있지 말고 장독이나 사러 갈까?” “어디루?” “충남 홍성이여.” “그쪽 동네에는 뭐 먹을 만한 음식이라도 있나?” 나이가 들면서는 어째 죄다 먹는 것 타령이다. “바다가 코앞이니까 먹을 거야 지천이겠지.” 잠시 후 친구가 더블 캡을 끌고 나타났는데 혼자 온 게 아니라 두 녀석을 더 데리고 왔다. 장독을 사러 가자는 게 아니라 아예 놀이를 가자는 심보다. 그래. 놀이 삼아 한 바퀴 돌아다녀 보지 뭐. 38번 국도를 타고 안성, 평택을 거쳐 안중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촌놈들이 언제 이 길을 다시 갈지 모르는 일이어서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 휴게소에서 바지락 칼국수로 점심을 찍었다. 그러고는 두어 번 전화 통화로 길 안내를 받고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무형문화재 전수자가 토기를 굽는다는 곳인데 마당에 온갖 옹기들이 즐비하다. 전시관이라고 쓰인 곳에 들어가서 둘러보고 있을 때 주인 여자가 왔다. “아까 전화했던 사람들이유?” “그렇습니다. ” “맘껏 둘러보시구 저짝으로 오셔서 차 한 잔 하셔유.” 우리는 곧 주인 여자가 말하는 쪽으로 갔다. 질흙으로 구운 찻잔에 담긴 녹차를 한 잔씩 얻어마셨다. 차를 마시며 우리는 주인 여자로부터 자기네 옹기 자랑을 한동안 들었다. “이짝으루 따라들 와유.” 차를 다 마셨더니 이번에는 이쪽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그 이쪽은 옹기를 만드는 작업장 건물을 빙 돌아서 가야 했는데, 그곳에 있는 알맞은 크기의 장독을 보면서 가슴이 알싸하게 저려왔다. 장독들이 저마다 내뿜는 숨결이 겨울의 찬바람을 데우고 흐린 햇살을 맑게 튕겨내는 것처럼 보이던 거였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후에 주인 여자에게 물었다. “이놈들은 얼마짜리래유?” “그러니까 이 정도 크기면… 삼십만원은 줘야 쓰것는 데유.” 헉! 그야말로 숨이 탁 막혔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비쌀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깎고 깎아서 한 놈에 이십오만원씩 주고 네 개를 샀다. 바닷가로 가서 해물 안주로 낮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 친구 트럭의 카오디오에서는 무명 가수의 트로트 메들리가 흘러나오고 나는 얕은 잠에 빠졌다. 육칠 년 전부터 이런저런 경위로 독을 사거나 얻은 게 서른 몇 개쯤 된다. 처음에는 남이 쓰던 독을 얻었고 나중에는 하나 둘 사들였다. 그중에는 잘 구워진 놈도 있고 그렇지 않은 놈도 있을 것이다. 잘 구워진 옹기는 겉과 속이 한결같다고 한다. 또한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적어도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야 된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에 비유하자면, 어느 것의 정점에 도달해야만 심신이 온전해진다는 얘기가 아닐까. 어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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