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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不’-평준화로 멍드는 학교 현장

‘3不’-평준화로 멍드는 학교 현장

우리나라 교육의 현주소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기교육을 하고,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과외공부에 매달리며, 고교 졸업자의 82.1%가 대학에 들어가지만 대한민국 교육에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하는 이를 찾기는 힘들다. 오히려 공교육에 절망해 조기유학을 떠나는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중산층 가정으로까지 번지면서 기러기 가족을 양산하고 있다. 조기유학의 확산은 곧 공교육의 실패요, 외화 유출에 따른 경제적 손실, 계층 간 위화감 조성, 두뇌 유출 증가로 인한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1998년 1562명이었던 초·중·고교 유학생은 2004년 1만6446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공식적인 유학·연수 적자만도 33억6000만 달러다. 세계적 싱크탱크인 미국 랜드연구소는 “한국의 조기유학 붐을 부유층의 일탈행동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한국 교육 시스템의 실패를 보여주는 심각한 징후인데, 한국에선 이 문제가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기유학 연령 갈수록 낮아져 문제 이번 조사에서 오피니언 리더 100명 중 74명이 ‘경쟁력 낮은 교육’을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10가지 문제 중 공동 2위로 꼽았다. 아울러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26명이 교육 경쟁력 강화를 들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1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21세기 지식정보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기에 우리 교육현장은 너무 참담하다. 중·고교생들은 ‘공부는 학원에서, 잠은 학교에서’ 해결한다. 그 바람에 지나치게 팽창한 사교육 비용을 대느라 부모는 허리가 휜다. 입시 위주로 달달 외우는 획일화된 학교교육에 창의력은 멍들? 무너진 교권과 공교육의 현실에 교원들은 허탈하다. 한국만큼 대학 입학에 올인하는 나라도 없다. 초등학교부터의 모든 과정이 대학입시로 통하며, 온 식구가 매달린다. 한국에서의 세칭 일류대학 합격은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에 달려 있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경쟁력은 <표> 에서 보듯 한참 처진다. 173개 4년제 대학 중 서울대 한 곳만 겨우 세계 90위권에 머물 뿐이다. 문제 해결의 시발점은 고등교육에서 풀어야 한다. 대학입시 제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고교 교육이 정상 괘도로 돌아간다. 그런데 현행 대입 제도상 수험생의 지적 능력과 당락은 수능시험 소수점과 내신이 좌우한다. 지적 능력과 함께 예·체능, 봉사정신, 리더십 등을 종합 평가하는 미국과 너무 다르다.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不) 정책’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대학에 교육부는 논술시험 유형까지 지도한다. 고등학교는 1974년부터 30년도 넘게 평준화의 덫에 갇혀 있다. 모든 곳을 획일적으로 묶어 놓고 똑같이 가르치니 학생들은 학교에서 잠을 잔다. 학교의 노력과 상관없이 학생 머릿수대로 정부가 보조금을 준다. 전국 고교의 46%, 서울 시내 고교의 70%가 사립이다. 정부가 공립과 똑같이 교사 월급을 지원하고, 학생도 배정하고, 시설도 고쳐주니 변화를 꾀하려 들지 않는다. 일부 사립에선 교사를 채용하며 돈을 받고, 집안 식구들이 학교의 이런저런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참여정부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해 외부에서 이사를 뽑도록 했다. 여기서 우리나라 교육 문제의 핵심은 사립학교 문제와 대학입시 정책을 함께 바꿔야 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립학교에 대해 선별적으로 자율권을 주는 식으로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모든 사립을 똑같이 구속하지 말고, 건학이념이 건실한 곳-대학 부속 고교나 종교단체 운영 사립고교-에 대해선 자율권(수업료 결정권, 학생 선발권, 교육과정 운영권)을 줄 필요가 있다. 관심 있는 기업이 자립형 사립고교를 세울 수 있도록 하고, 문제가 많거나 자립 의지가 없는 사립고교는 정부가 인수하는 게 낫다.”(한양대 정진곤 교수)

한국은 규제, 일본은 개방 교육 평등주의를 신앙처럼 알았던 일본이 마침내 교육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초등학생들이 상처받으면 안 되니 함께 손 잡고 달리기 시합을 하던 일본에서 4월부터 초·중학교 교감에 기업 경영인 등 교사 경험이 없는 민간인이 등장한다. 공립학교 교장직은 2000년부터 민간에 개방해 92명이 재직 중이다. 국가는 교과과정의 틀을 짜는 필수적 역할만 하고 나머지는 학교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다. 획일적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교양과 열정이 있는 주부들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해외 경험이 많은 기업인이 영어를 가르치고, 첨단지식을 꿰찬 기술자가 수학·과학을 강의하는 학생에게 초점을 맞춘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과 경쟁의 원칙은 ‘학교선택제’로 이어진다. 대학입시는 이미 자율화돼 있고, 공립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스스로 선택하도록 연내에 법을 고칠 방침이다.
결국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문제는 입시 위주 교육이 아닌 ‘잘못된 입시를 위한 교육’에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교육 현실은 뒤집었다가 엎었다 쳇바퀴만 돌았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 사이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보고, 이젠 별로 기대도 안 한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교육 전문가다. 대통령·장관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교육 문제가 나오면 열변을 토한다. 선거철이면 교육 문제 개선 방안이 단골 공약으로 등장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어울려 나눈 이야기의 끝은 자녀교육 문제다. 그런데 결론은 없다. 큰일이라고 한숨만 내쉬며 공감하다가 돌아선다. 우리 사회의 현안인 저출산을 비롯해 청년실업, 부동산 가격 상승, 이공계 기피 및 산업경쟁력 저하도 따지고 보면 그 근원은 경쟁력 낮은 교육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교육 관련 갈등만 해소해도 우리 사회 문제의 절반 이상이 해결된다는 말도 나온다. 그렇다. 교육이 변해야 경제가 산다. 교육이 달라지지 않으면 국가경쟁력도 없다.


#1
3월 18일 청와대 인터넷 사이트 열린 마당에 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죽음의 트라이앵글-누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 같은 제목의 동영상이 실린 사이트 주소와 ‘제발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주십시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사이트를 클릭하면 성적을 비관해 자살한 학생의 뉴스 보도를 시작으로 5분여 동안 음악과 영상이 이어진다. 동영상은 이땅의 대학입시 제도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2008년 대입은 내신-수능-대학별 고사로 이뤄진 ‘아름답지만 최악의, 죽음의 삼각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정부와 교사-학원-대학들의 힘겨루기가 만들어낸 담합이라고 공격한다. 동영상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번졌다.

#2
3월 23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을 벌이며 머리를 싹둑 잘랐다. 이어 등록을 유보한 세 명의 등록금 400만원으로 ‘돈 띠’를 만들어 여럿이 부여잡고 본관에 등록금을 내러 갔다가 현금을 직접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천원짜리로 이었더니 498m, 만원짜리로 59m, 오천원짜리로 102m였다고. 이보다 앞서 3월 10일 서울지역 대학생교육대책위원회 소속 학생 150여 명은 광화문에서 ‘교육재정 확보하라’는 띠를 두른 채 삼보일배 행진을 벌였다. 매해 봄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학가를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등록금 동결 투쟁(凍鬪)-‘개나리 투쟁’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3
대학 도서관에 ‘NG(No Graduation=졸업유예)족’이 많아졌다. 취업이 어렵자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이다. 한 학기는 보통이고, 1년 이상 늦추기도 한다. 기업체 면접시험을 볼 때 대학 졸업자보다 졸업 예정자가 유리해서다. 2∼3학년 때 휴학한 뒤 해외연수를 가거나 영어·컴퓨터 공부를 하는 경우는 그래도 낫다. 졸업학점을 이수하고도 논문을 내지 않거나 졸업시험을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의도적으로 수강신청을 철회하거나 교수에게 F학점을 달라고 간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졸업을 앞둔 4(四)학년을 ‘사(死)학년’으로 부른다. 이처럼 대학이 ‘취업 정류장’이 되니 첫 직장을 잡는 입직(入職)연령이 갈수록 늦어진다. 이미 한국의 입직연령은 평균 27.2세로 OECD 평균(22.1세)보다 5년이나 늦다.

#4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가도 대졸 신입사원을 대하는 기업체 인사 담당자의 표정이 그리 살갑지 않다. 대학교육이 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것과 차이가 나고, 그래서 재교육 비용이 만만찮아서다. 사용자단체인 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직원 100명 이상 53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대졸 신입사원의 업무성과에 대해 만족한다는 응답은 25.9%에 불과했다. 또 평균 20.3개월을 재교육해 실무에 투입하며, 여기 들어가는 1인당 재교육비는 6218만원. 그래서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요즘 대학에서 배출하는 학생들 다수가 불량품”이라며 “기계 불량품은 바꿀 수 있지만 사람 불량품은 바꾸지도 못해 기업으론 비용 부담이요, 국가 차원에서도 손실”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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