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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한나라당-현대차 최근 혼란 왜 일어났나

잘 나가던 한나라당-현대차 최근 혼란 왜 일어났나

얼마 전 국내 중견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너인 회장이 주요 임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중 오너가 얘기를 나누던 한 임원을 가리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신, 내일부터 사장해!” 멈칫 하던 분위기는 오너가 폭탄주를 한 잔 제조해 건네면서 “우리 회사에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필요해”라고 하자 금세 풀렸다. 모두 해당 임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날 그 임원은 만취가 됐다. 하지만 다음날 그 오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근한 해당 임원은 물론이고 그 얘기를 들었던 이들까지 오너의 다음 조치를 기다렸지만 말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당사자가 고심 끝에 찾아가 물었다. 그랬더니 오너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내가 그랬어? 술이 좀 취했나 보네.” 직원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평판이 좋았던 이 임원은 결국 그날로 사표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후유증은 그 임원 혼자만의 마음의 상처로 끝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든 임직원이 오너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 사례를 들려준 한 서치펌(헤드헌터) 관계자는 “이후 핵심 직원들의 이탈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개별적으로 (이직)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내가 이 직장에서 어디까지 승진할지, 언제까지 생존할지 내 스스로 예측하지 못하고, 오너나 상사의 한 마디에 좌우되는 곳에서 언제까지 있으란 얘기냐.” 한마디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방향 못잡는 리더, 흔들리는 조직 최고 리더와 조직은 조직원들에게 명확한 방향설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경영의 기본이다. 이 방향설정을 위해 리더가 제시한 기준과 잣대는 명확해야 한다. 모든 조직원이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곳을 알고, 나름대로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조직은 최고 리더가 모든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 방향을 제시하면 조직원들이 자신의 위치와 직급과 상황에 맞춰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에 ‘좋은 조직’이란 여전히 ‘먼 산’인 게 현실이다. 유행처럼 각종 제도를 화려하게 도입하지만 정작 바뀌어야 할 1인자가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일사불란해야 한다’는 1인자의 의지와 리더십은 있지만, 합리적·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곳은 많지 않다. 기업에 조언하는 컨설턴트들이 최근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흔들리는 조직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기업만이 아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임박하면서 정치권의 치부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지난 4월 12일, 언론에는 근래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다. 지난해 말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후보 사퇴를 하는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다. 남자의 눈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 사회에서, 더구나 국회의원의 눈물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는 왜 눈물을 보였을까? 요즘 유행하는 감성정치를 위한 제스처였을까. 박 의원은 “오늘은 웃으면서 하겠다”고 기자회견을 시작했지만 “6개월 동안 준비해 오다 갑작스러운 오세훈 바람에 밀렸는데 억울하지 않으냐”는 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끝내 손수건을 꺼내야 했다. 그는 눈물을 여러 번 닦은 후 “우리나라 정치문화가 제대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언론들은 이 말을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이미지 정치’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전했다. 꿈(서울시장)을 포기한 데 대한 아쉬움으로 본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요즘 정치권을 지켜보고 있는 전문가들은 다른 의견을 개진했다. 개인의 눈물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눈물샘의 깊이가 꽤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 정치에서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은 지금도 늙지 않고 있습니다. 과거 3김이 어땠습니까. 누구한테 뭘 줄지, 언제 뭘 할지에 대해 본인만 알지 아무도 몰랐어요. 목표지점 없이 등산하는 것과 똑같죠. 맨 앞에 선 사람은 쉬고 싶으면 쉬고, 자기 마음대로 길을 택할 수 있지만 뒤따라가는 이들은 언제 쉴지, 어느 길로 갈 건지 모르기 때문에 쉽게 지치고 맙니다. 한 시간마다 쉰다고 하면 스스로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잖아요. 한마디로 불투명·불확실한 거지요. 이런 3김 스타일이 지금도 여전해요.” 20년 가까이 정치 컨설팅을 하고 있는 박성민 MIN 대표는 “바로 이런 상황이 한나라당의 공천 비리를 생산하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과거 중앙당이 갖고 있던 권한을 시·도당으로 분권화하는 과정에서 명확하고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언제 뭘 할지, 경선으로 갈지 외부 영입으로 갈지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 설정이 이뤄지지 않자 속이 탄 후보자들이 반칙(뇌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정치권에서 전략가로 꼽히는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이에 동의했다. “특히 국회의원보다 자치단체장에 이권이 많다는 것을 안 후보자들이 발로 뛰는 노력만으로는 공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지름길(뇌물)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연간 예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성남시의 경우 공천 호가가 20억원에 이른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중국 학생이 외면하는 한국 기업 하지만 현실은 간단하지가 않다. 불확실한 앞날이라는 수렁에 빠진 이들이 후보자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은 이른바 중진들도 앞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과거만큼 영향력을 갖지 못해 뇌물에 대한 대가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리가 성립되는 구조다.

▶최근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져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이번 사태는 그의 1인 체제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차라리 과거의 1인체제 시절이 일하기 좋았다는 푸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3김의 결정은 오너의 결정과 같았거든요. 정치적 고민도 안 했어요. 오더(지시)가 내려오면 소신이고 뭐고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중진들은 더해요. 예전엔 5선은 일정한 영향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속된 말로 구닥다리일 뿐이에요. 5선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좋은 이미지가 있느냐 없느냐죠. 5선 관록보다 이미지 좋은 초보가 더 유리하니 계보정치가 될 이유가 없죠. 이게 오늘의 현실입니다.”(박성민 대표) 강력한 구심력으로 줄을 세우던 1인체제가 무너지자 중력을 잃은 채 파편화된, 좀 과장하면 춘추전국시대라는 의미다. 표출되는 양상은 다르지만 기업이라고 이런 현실에서 비켜서 있는 건 아니다. “요즘 중국에는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과 나란히 경쟁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많습니다. 회사 규모도, 직원 연봉도 대등해요. 그런데 중국 대학생이나 엘리트를 대상으로 ‘가고 싶은 회사’를 꼽으라고 하면 한국기업은 한참 처지거나 순위에 들지도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네끼리 다 해먹는다’‘너무 막 대한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아닌, 직급을 인간적으로 차별하는 계급으로 여긴다는 거죠.” 다국적 인사조직 컨설팅회사인 한국왓슨와이어트 김광순 사장은 “우리가 그동안 상호 인정하는 대등문화가 아닌, 서열화에 익숙한 권위주의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사장은 “협력업체를 을(乙)로 대해왔던 대기업 임직원들은 중국 협력업체도 그렇게 대한다”면서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아는데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냐’고 되묻는다”고 말했다. 회사 메커니즘이 그렇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김 사장에게 “오너도, 오너에게 총애 받는 힘 있는 부서장들도 모두 자신의 한마디에 회사가 팍팍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컨설턴트 출신의 한 대기업 임원은 “오너는 항상 제도 위에 있는 ‘말하는 법’”이라고 했다. 어디나 그렇듯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머리를 돌리기보다 리더의 머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의 현대자동차 사태도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김 사장은 풀이했다. “밀어붙이라”고 하면 일사불란하게 이를 실행하는 조직문화에서는 힘 있는 사람의 판단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사불란 속에 있는 이들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불안을 느끼지 않는 점도 있다. “부분이 전체를 대변한다는 프랙탈 이론이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마치 벽지가 부분 모양과 전체 모양이 비슷한 것처럼, 리더의 행태는 그대로 전체 조직의 행태(문화)가 되는 겁니다. 조직에 권위주의가 사라질 수가 없는 구조죠.” 국내 대기업을 주로 컨설팅하는 회사의 한 임원은 “우리 사회 전체를 이런 방식(프랙탈 이론)으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의 모든 부분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김광순 사장에게 프랙탈 이론을 들려주자 그는 “기업과 (정치권)권력의 관계에서 모든 것들이 파생된다”고 말했다. 그 관계가 무한하게 복제돼 사회 전체로 퍼진다는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뭡니까. 누구나 예측할 수 있게 하라는 겁니다. 기업도 그렇지만 정부도 권위주의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문제는 이런 권위주의가 눈에 보이는 위로부터의 개선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그것도 물에 불은 흙처럼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국회의원 아니라 영업사원 같다” “(정당이) 완전히 바뀌고 있습니다. 우선 권한이 중앙당 내에서도 분화되고 있고, 시·도당으로도 내려가면서 옛날 같은 리더십이 없어졌어요.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의장이 있지만 실제 주도하는 사람이 없죠. 이니셔티브만 쥐고 있을 뿐이고.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는 아예 이니셔티브도 없어요. 이 리더십 공백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이미 당원에 의한 경선 방침을 정한 탓에 여기서 비리가 나옵니다. 당원 모집 과정이나 당비 대납 비리가 대표적이죠. 한나라당은 시·도당으로 권한 위임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공천)비리가 생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진들끼리 서로 조정하면 됐지만 요즘에는 동네마다 계파가 다 있어서 서로 견제하느라 돈을 받은 만큼 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비리가 되는 거죠.”(박성민 대표) 힘 있는 조정자, 모두를 결집시키는 어젠다를 제시하는 리더가 없으니 도토리 키 재기 하듯 건건이 충돌하는 권력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박성민 대표는 “이번에 공천 비리가 터진 한나라당의 경우 박근혜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제한적 권위주의에 반대한다고 한 후 (당이 지향해야 할) 방향 설정은 하지 않고 절차적 민주주의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과거 1인체제가 권력 절차에 대한 리더십까지 장악했던 탓에 공백이 더 커지면서, 최근에는 소속 당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이들이 없을 정도가 됐다. 권력의 원천이었던 ‘1인’이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권력의 원천이 대중으로 드러나자 초선은 물론 중진들까지 이 다수의 대중을 좇아가느라 사분오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명확한 노선을 제시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력 판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요즘 웹사이트를 운영하지 않는 정치인이 없어요. 저도 매일 들어갑니다. 젊은 의원들은 벌써 인터넷 카페들을 찾아 다니며 연계를 시도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대중을 조직했는데, 이제는 조직화된 대중(카페)을 찾아가 ‘나도 당신들의 의견에 동조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구체적인 이슈를 가지고 인터넷에 들어와 있거든요.” “꼭 영업사원이 된 것 같다”는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의 한탄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도 50대 이상에서는 느낄 수 없다는 게 정치권 젊은 세대들의 생각이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은 “소위 대중정치가 시작되면서 한나라당은 한 번도 정권을 잡아본 적이 없다”면서 “그래서 그런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중진들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외부 환경에 의해 억지로라도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많은 전문가들은 최근 터진 한나라당 공천 비리, 현대차 사태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여기’란 시대 흐름을 외면한 채 권위주의적 마인드를 버리지 못한, 고정관념에 붙들려 있는 지점이다. 정치권과 기업의 문제가 사실은 하나의 뿌리라는 것이다.

“악마는 세부적인 데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점은 본질을 덮어버린 채 유야무야 끝나는 것이다. 지난 18일 허태열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숱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그동안 진행된 모든 감찰을 마무리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대해 당내에서도 “적당한 수준에서 흉내만 내고 덮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 수사는 진행 중이지만, 본질은 검찰의 수사가 아니라 기업 조직 내부의 체질 변화에 있다. 검찰이 기업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보화 시대의 생존은 제도의 혁신보다 마음의 혁신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 지쳤어요. 6개월 동안 서울의 48개 지역구를 구두가 닳도록 뛰었습니다. 하지만 4월이 되도록 언제 경선을 한다는 말은 물론이고 어떻게 경선을 한다는 기준이나 잣대가 전혀 없었어요. 깨끗하고 당당한 정치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후보자 간은 물론이고 조직 전반에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룰(rule)은 신뢰 아닙니까? 그런데 ‘당신이 순진한 거야’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더구나 경선 후보자 인터뷰 날 아침 90세가 넘으신 부친을 뇌 수술실에 보내드리고 갔는데 ‘외부 영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만 하는 겁니다. 외부 영입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불임 조직이라도 됩니까. 당에서 만든 아이를 놔두고 이렇게 입양을 해도 되는지 당혹스러웠어요. 상향식 공천? 물론 좋은 겁니다. 하지만 레이스(경선)를 하게 하려면 트랙이 어떤 건지, 타임테이블(일정표)은 또 어떻게 되는지 제시해 줘야 할 게 아닙니까. 내일 할지 모레 할지 이유도 없이 계속 연기되다 보니 긴장은 높아지고 경쟁이 과열돼 인신공격까지 하게 되는 겁니다.” 눈물의 사퇴를 했던 박진 의원은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변화의 와중에 있는 한국 정치의 모든 것이 포함된 하나의 좋은 케이스스터디 감”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원칙과 세부적인 룰(절차)을 매뉴얼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문법처럼 명문화하자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서양 속담 하나를 인용했다. ‘악마는 세부적인 데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 프랑스는 시대에 맞는 체제를 찾기 위해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에서 1968년 ‘68혁명’까지 200년 가까운 혁명을 통해 ‘구체제’(앙시앵레짐)를 벗어 던졌지만 단두대를 등장시키는 등 참혹한 대가를 치렀다. 물에 불은 흙더미는 임계점을 넘으면 산사태가 되는 비극을 불러온다. 무너지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국내 조직이 겪는 의사결정 허점
기업이나 정당이나 국내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문제는 확립된 의사결정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의사결정에 관한 메커니즘은 단독 또는 소수 의사결정자만 참여하는 ‘오너형’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룹 구조조정본부 수뇌부 및 그룹 회장단을 상시적인 의사결정의 축으로 삼고 있는 삼성그룹은 오너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너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른 기업에서는 이런 보완장치가 흔치 않다. 이런 기업에서는 자신이 결정해야 할 일을 계속 위로 미루는, 권한 회피 현상이 일어난다. 한 대기업에서는 공장의 화장실 수리업체 선정까지 오너 결재를 받는 웃지 못할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성공한 벤처기업에서도 덩치에 맞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다. 한 인터넷기업의 경우 창업 초기에 시작한 전원합의제 때문에 비효율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작건 크건 전원합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리더십과 독선을 혼돈하는 리더들에게 있다. 리더가 앞에서 방향을 제시하면 어떠한 이견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성과를 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독단적 리더십의 특징은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사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차분히 설득하고 대안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권위와 명분을 앞세워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하는 것이다. 최근 연임에 실패한 KAIST의 로버트 로플린 총장이 이런 경우다. 마지막으로 가부장적 조직 구조와 유교적 분위기다. 3김으로 대표되는 과거 국내 정당 정치는‘따르는 것이 바로 선’이라는 맹목적 추종을 만들었다. 기업에서도 ‘줄을 잘 서야 한다’ 거나, CEO를 사석에서 스스럼 없이 ‘형님’으로 부르는 임원들까지, 직위가 아닌 개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조하는 현실이 많다. 의사결정 과정은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에 손을 들어주는 과정이 아니라 경영진 간에 충분한 토론과 의견 개진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 내 의사결정을 위한 기본규칙(Governing Rule)을 명확하게 확립해야 한다.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누가 참여할지, 최종 결정은 누가 내려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해진 기준에 따라 그대로 실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직은 궁극적으로 단기적 목표가 아닌 중장기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 단기 실적에 목을 매는 미국식 전문 경영이 가지지 못한 한국형 오너 경영의 강점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이진희 더모멘텀그룹 이사·jhlee@the-momentum.net
서광원 기자 (ara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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