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지지 않는 종파 간 유혈 투쟁
사그라지지 않는 종파 간 유혈 투쟁
자르카위는 사라졌지만 그 잔혹한 테러의 영향력은 여전해 대통령 이하 모든 미국 관리가 표정 관리에 바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잘마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의 사망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누가 그의 뒤를 잇든 세계의 지하드(이슬람 성전) 전사들이 단시일 내 자르카위 같은 인물을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르카위는 수법이 유별나게 잔인한 괴물이었다. 그래서 희생자들은 물론 같은 수니파 동료들조차 그를 두려워했다. 테러리스트 중 테러리스트인 그는 언제나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무서운 인물이었다. 수니파 인사들은 잔혹성과 능력을 겸비한 그의 위세에 눌려 입을 다물거나 손을 잡아야 했다. 자르카위의 비위를 건드리면 본인은 물론 가족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끔찍한 모습으로. 지난 두 달 동안만 해도 자르카위 집단은 라마디 일대의 수니파 족장 11명의 암살을 주도했다. 모두 신생 이라크 정부와 대화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됐다고 이스라엘 역사가 아마트지아 바람은 말했다. 따라서 미국 대사가 이라크의 수니파 저항세력과 동조자들에게 보내는 암묵적 메시지는 이것이다. 이제는 밝은 곳으로 나와도 되고, 시아파 동포들을 호의적으로 대해도 된다. “딩동. 이제 마녀는 죽었다”고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는 언론과 인터뷰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익명을 요구했다. 칼릴자드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전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정부와 신생 이라크 정부는 저항세력의 일부 지도자와 직접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화해 여건이 조성됐다”고 칼릴자드는 말했다. 그 여건 가운데 하나는 여섯 달 동안의 흥정 끝에 안보 관련 요직에 새 장관들을 임명한 일이다. 자와드 알볼라니 신임 내무장관과 압둘 카데르 모하메드 자심 국방장관(전자는 시아파이고 후자는 수니파다)은 “민병대와 관련이 없고, 모든 징후로 보아 종파 성향이 없다”고 칼릴자드는 말했다. 수니파 저항세력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보자면, 이 두 장관은 사담 후세인 군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는 장점도 있다. “두 장관 모두 이라크의 모든 사회와 선이 닿는다”고 대사는 말했다. “그러나 두고 보자. 이 두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자르카위 이후 이제 화해 정치가 가능해졌을까? 일부 긍정적 조짐이 있다. 자르카위가 숨지고 불과 며칠 뒤 저항운동을 지지해 오던 일부 수니파 인사가 그를 비난하면서 협상 테이블에 돌아올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은 지난 3년 동안 좋은 계기라고 생각했다가 실망하는 일을 워낙 많이 겪어 아직 큰소리치기 힘들다고 인정했다. 후세인 체포, 총선, 주권 이양 등이 그런 경우였다. 그 해답은 자르카위의 유산이 지닌 시공간적 영향력에 달렸다. 이름 없는 떠돌이 성전 운동가로 시작할 때부터 자르카위는 자신의 잔혹한 명성을 동경하는 이슬람주의 청년들로 이뤄진 독자적 국제운동을 주도했다. 상당수가 이제 이라크에서 그의 투쟁을 이어받으려 한다. 안사르 알수나라는 이름의 저항단체는 지난 토요일 시아파 암살단을 잡았다고 주장하며 세 사람을 참수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를 인터넷에 올렸다. 마치 자르카위의 투쟁은 계속된다고 시위하는 듯했다. 심지어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오른팔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볼 때도 자르카위의 잔인한 전술(그런 참수 비디오와 시아파 아녀자의 대학살)은 때때로 도를 넘었다. 비록 알카에다에 충성을 다짐했다고는 하지만 자르카위의 행동은 늘 빈 라덴과 뚜렷이 달랐고, 요르단이나 모로코에서의 테러를 통해 국제적 성전을 치르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테러 전문가들은 자르카위가 유럽에서 ‘백인’ 전사를 모집하는 일에도 관여했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자금을 조성하고 싸우는 일은 물론 서구 목표물들에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일에 이용할 목적이었다. 여권상의 문제가 없고 백인사회에서 표가 안 나기 때문이다. 자르카위는 인터넷에서 벌이는 사이버 성전 기술에서도 상관들을 앞질렀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보금자리를 꾸릴 형편이 못된다. 따라서 인터넷은 테러리스트들의 새로운 ‘기지’로 떠올랐다. 그곳에선 새 세포와 음모가 자발적으로 형성되고 자르카위의 수법이 널리 연구된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웹에 올린 내용물 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자르카위가 미국인 하청업자 니컬러스 버그의 목을 직접 베는 끔찍한 비디오다. 자르카위의 사이버 메시지를 열심히 전파하는 전도사 가운데 런던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가을 체포된 이르하비 007이라는 해커가 있었다(이르하비는 아랍어로 테러리스트를 뜻한다). 웹사이트에서 벌인 증오의 선동 행위로 자르카위의 영향력은 캐나다까지 미쳤다. 캐나다 당국은 2주 전 한 조직을 검거했는데 그것이 갓 태동한 테러 세포가 아닐까 우려했다. 캐나다 의회에서 인질을 잡는다는 토론토 테러 음모에 관여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이르하비 007이었다. 신원이 유니스 트술리로 밝혀진 그는 수상쩍은 워싱턴 DC의 컴퓨터 사진들을 갖고 있었다. 사이버 세계에서 자르카위의 전설은 때론 빈 라덴에 필적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는 잔혹성의 새 기준을 세웠으며, 새로운 선전 모델을 창출했다”고 무슬림 급진주의를 연구하는 보스턴대의 후사인 하카니는 말했다. “활동 내역을 그처럼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사람은 없었다.” 이슬람 교리를 근거로 인간의 사진 이미지를 모두 금지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저항세력조차 요즘에는 비디오 부서를 차렸다고 하카니는 말했다. “거실에 할아버지 사진을 걸어놓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패던 작자들이다.” 탈레반 대원 사이에서는 이미 자르카위를 성인으로 떠받드는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는 무슬림 세계의 수퍼 스타”라고 탈레반의 한 고위 간부는 말했다. 자비훌라라는 가명의 그는 자르카위가 탈레반과 함께 싸우던 시절 알고 지냈다. “그의 죽음은 알카에다와 모든 무자헤딘의 입장에서 세계적인 비극이다. 대신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말세 분위기의 종파분쟁을 일으킨다는 자르카위의 원대한 이라크 구상이 이제는 자체 생명력을 얻어 더 이상 그가 없이도 계속될까. 이 질문은 그가 남긴 유산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때 생기는 가장 큰 궁금증이다. 자르카위가 시아파를 대상으로 잔혹 행위를 저지른 덕분에 이제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에는 증오와 불신이 뿌리내렸다. 이것이야말로 전력부족 사태나 고치지 못한 하수도와 전염병 문제보다 이라크의 일상이 안고 있는 더 최악의 현실이다. 그 때문에 미군이 철수하면 곧바로 전면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자르카위의 시아파 사원과 경찰서 공격이 무시무시한 시아파 암살단이 탄생한 주원인이라고 미국의 정보 관리들은 생각한다. 그에 따라 수니파 주민들 사이에선 저항세력 지원 열기가 더욱 강해졌다. “종파주의는 자르카위의 유산”이라고 아랍연맹의 이라크 종신특사 목타르 라마니는 말했다. “이라크 국민의 최대 공통점은 서로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모두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무서워한다.” 부시 정부가 이라크전이 일어나기 전 자르카위를 이라크와 알카에다 사이의 연결고리로 강조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자르카위가 후세인과 어떤 접촉선이 있는지 전혀 분명치 않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뒤 이 테러 지도자는 자신이 떠들어대던 바로 그 존재, 다시 말해 이라크에서 알카에다를 대변하는 인물이 됐다. 그는 이라크를 미군 병사들이 주둔하기에 훨씬 더 위험한 곳으로 만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테러 전쟁의 ‘중심 전선’으로 부르도록 만드는 데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다는 얘기다. “옛 단체들은 처음에 입으로만 이슬람주의를 부르짖었으나 자르카위는 진정으로 이슬람화하면서 저항운동의 국제화를 주도했다”고 미군의 한 정보장교는 혹시나 이름을 밝혔다가 입을지도 모르는 피해를 꺼려 익명을 전제로 말했다. 칼릴자드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자르카위가 반미 저항운동을 좀 더 큰 운동으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인정했다. 대사는 또 자르카위가 최근에는 자신의 세력을, 정작 자기 때문에 생겨난 시아파 암살단에 맞서는 ‘수니파 민병대’의 이미지로 바꿔 새삼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분쟁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칼릴자드는 말했다. “지난 8~10개월을 뒤돌아보면 종파분쟁이 최대는 아니더라도 주요한 분쟁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저항세력은 시아파 민병대로부터 수니파를 보호한다고 자처한다.” 지금도 이라크와 세계 각국에는 자르카위와 그가 3년 동안 저지른 잔학행위를 규탄하지 못하는 수니파가 많다. 지난주 이라크국민당 소속의 온건한 수니파 정치인 미탈 알알루시가 용기를 냈다. 자르카위 사망 직후 그를 규탄하지 않은 정부 내 수니파 인사들을 비난했다. 언론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일단 카메라를 벗어나면 그를 순교자로 부르는 수니파 정치인들이 있다고 알알루시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정치인들은 자르카위를 아랍의 친구로, 시아파 민병대와 연계된 잔혹한 암살단의 공격에서 수니파를 지켜주고 복수할 능력을 지닌 유일한 세력으로 간주했다. 그들에게 그의 죽음은 손실이며, 곧 시아파 마흐디군과 바드르 여단의 득세를 의미한다고 알알루시는 말했다. “그들은 안타까워했다”고 알알루시는 국제지대(옛 녹색지대) 내의 안가에서 담배를 뻐금거리며 말했다. “눈에 다 쓰여 있다.” 이라크의 수니파 주민 사이에선 이제 협조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차츰 무르익는 듯하다. 무슬림학자협회의 에삼 알라위는 지난주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자르카위를 비난했다. 영향력이 큰 이 단체는 과거엔 질문을 회피하거나 자르카위가 미국인들의 작품이라고 주장했었다. 이 협회는 이라크 저항세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으며, 정부와의 협상 개시 여부를 논의하면서 공개적으로 자르카위의 협박을 받았다. 이제 알라위는 “우리가 자르카위나 알카에다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한다. 자르카위와 그가 저지른 행위는 사실상 이라크 저항운동의 모습을 왜곡했다. 그것이 오래전부터 자르카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었으며, 그 점을 분명히 한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수니파 국회의원인 셰이크 할라프 알일라이얀도 용감하게 나서서 “자르카위는 정부와의 대화에 반대했지만 대화가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지는 않는다. 선지자께서도 이교도들과 타협했다”고 말했다. 이제 더 큰 문제는 빈 라덴이 안전 확보에 전전긍긍하는 동안 자르카위의 집단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영향력을 확대했느냐는 점이다. 미·영 관리들은 지난해 가을 영국과 보스니아에서 시작된(그리고 토론토 세포의 분쇄로 절정에 이른) 일련의 검거 사태는 아직 남아 있는 빈 라덴의 중앙지휘체제보다 자르카위의 영향력과 더 관련 있는 듯하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일부 미국 관리는 전 세계에 방송되는 죽은 자르카위의 영상을 보면서 무슬림 청년들이 성전의 영광을 재고하기 바란다. 그러나 어쩌면 이제 자르카위주의라 이름 붙은 이념이 생명력을 얻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잡범 출신의 자르카위가 “사상의 세계에 진정한 유산을” 남겼는지 모른다고 미 해군 대학원의 존 아킬라는 말했다. “한 가지 사상은 이라크의 저항운동과 내전을 융합하는 일이었다. 또 다른 사상은 성전의 인터넷화 추진이었다.” 그래서 진짜 전선과 사이버 전선이 공존하는 이 전쟁은 계속된다. MARK HOSENBALL in Toronto, SARAH CHILDRESS and SALIH MEHDI in Baghdad, RON MOREAU and SAMI YOUSAFZAI in Kabul and EMILY VENCAT in London 최한림 parasol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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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의 변모하는 위협 |
아프가니스탄- 태동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에 숨은 오사마 빈 라덴은 이제 이 투쟁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역할을 대신 맡았으나 위험하기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창립자 사우디에서 건설업자의 상속자로 태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성전운동에 매진했다. 1988년 소련군이 철수하자 알카에다를 조직했다. 92년 왕년의 동맹이었던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사상가 망명생활을 하던 이집트인 급진주의자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98년 알카에다에 합류했다. 테러리스트 경험이 있는 그가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빈 라덴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면서 세계는 해로운 새 사상의 출현을 접하게 된다. 죽음의 자리 알카에다의 3인자 자리에 앉아 오래간 사람은 없었다. 과거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 중에는 체포된 9·11 테러 기획자 칼리드 샤이크 모하메드(오른쪽)가 있다. 요즘은 압둘 하디 알이라키가 유력한 후보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떠들지 않는다. 이라크- 변질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이라크 조직의 책임자가 되면서 알카에다는 전에 없이 잔혹해졌다. 자르카위는 성전이라는 미명 아래 이라크 전역에 증오심을 심고 사람을 학살하면서 빈 라덴의 권위를 훼손하기에 바빴다. 빈 라덴의 ‘왕자’ 알카에다 지도자가 결코 1순위로 원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자르카위는 잔인한 성격 덕분에 자연적으로 이라크에서 서구와의 전쟁을 주도할 인물로 떠올랐다. 경쟁자들 당장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르카위의 뒤를 이을 인물로는 2인자인 아부 압델-라흐만 알이라키, 저항 세력의 간판 격인 압둘라 라시드 알바그다디, 이집트 태생의 성전 전사 아부 아유브 알마스리(오른쪽)가 있다. 부하들 자르카위가 죽기 전에도 160명 이상의 간부급이 체포되거나 살해됐다는 보도가 있다. 상당수가 지난주 죽었다. 그러나 생존자들은 투쟁을 계속한다. “지도자들의 죽음이 우리에게는 생명을 뜻한다”고 자르카위의 2인자는 경고했다. “우리의 끈기를 늘릴 뿐이다.” 지구촌으로 번지는 테러 신세대 성전 운동가들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테러 세포를 자가 증식한다. 자급자족하는 이 테러 세포들은 알카에다의 사상만 본받을 뿐이다. 마드리드 2004년 3월 11일 러시아워의 통근열차에서 배낭폭탄이 터져 191명이 숨졌다. 스페인 당국은 2년간의 조사 끝에 이 테러가 알카에다를 흉내냈지만 직접적 연관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런던 지난해 7월 7일 네 명의 자폭범이 지하철과 버스 승객 56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공식 보고서는 범인들이 알카에다와 관련된 증거가 분명치 않으며, 인터넷 정보를 보고 싸구려 화공품을 이용해 폭탄을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토론토 캐나다 의회를 기습해 총리를 참수한다는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는 국내 테러 음모 혐의와 관련, 성인 10여 명과 청소년 5명이 체포돼 기소를 기다린다. 변호인단 가운데 한 사람은 근거 없는 혐의라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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