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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레전드, 강하고 즐겁고 조용한 고급 세단

혼다 레전드, 강하고 즐겁고 조용한 고급 세단

레전드는 90년대 초에 대우자동차가 ‘아카디아’란 이름으로 조립·생산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차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레전드는 4세대 모델이다.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넘치는 힘과 탁월한 정숙성을 자랑한다.
필자가 혼다(本田)를 처음 접한 것은 2003년 봄이다. 당시 나고야(名古屋)대학의 연구원으로 일본 자동차 산업을 연구할 때다. 일본 도쿄(東京)의 혼다 본사를 방문했을 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필자를 안내했던 것은 홍보실 직원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인간형 로봇인 ‘아시모’였다. “김상, 곤니치와(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접견실로 안내하는 아시모의 뒤를 따라가며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 기술의 혼다가 이런 거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국에서 수년간 자동차 담당 기자를 했지만 혼다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이 고작 오토바이로 시작한 회사, 미국에서 어코드·시빅이 인기 있는 회사, 작지만 엔진 기술이 뛰어난 회사 정도였다. 이후 도요타(豊田)보다 더 강한 독특한 인자가 있는 혼다에 대한 호기심이 타올랐다.



산골 마을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라곤 초등학교가 전부였지만 기술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던 창업자 소이치로(本田宗一郞)의 인생, 그리고 그를 내조해 혼다의 초석을 다진 경영의 달인 후지사와 부사장, 소이치로의 유전자를 받은 5명의 이공계 출신 사장들, 흰옷을 입은 스즈카(鈴鹿) 공장의 작업자들, 그리고 꿈에 대한 도전들…. 혼다를 연구하면서 시종일관 느낀 것은 재미있고 신나는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혼다는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인 1962년 일본 최초의 자동차 서킷을 만들었다. 나고야에서 두 시간 떨어진 스즈카 서킷에서는 올해도 포뮬러원(F1) 경기가 열린다. 혼다 창업자 소이치로는 “잘 놀기 위해서 일한다”고 했다. 그는 일 자체에 몰두하는 것이 놀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큰 목소리에 호탕한 성격으로 기인처럼 살았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미래의 꿈에 대한 도전이었다. 창업 당시부터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목표로 했고 그런 꿈을 향해 줄기차게 달음질쳤다. 46년에 동네 오토바이 수리점으로 창업했던 혼다는 지난해 매출 90조원, 순이익 6조원의 일본 5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달리기 선수 레전드 = 혼다코리아는 그동안 3,000만원 전후의 실속 있는 어코드와 CR-V로 한국 수입차 시장에 안착했다. 레전드는 6,800만~6,900만원의 프리미엄 모델로 렉서스 ES350·BMW 525·아우디 3.0 등과 경쟁한다. 이 차는 2004~2005 일본 ‘올해의 차(Car Of the Year)’ 및 ‘최첨단 성능(Most Advanc-ed Technology)’에 선정됐었다. 혼다의 레전드는 한마디로 ‘달리기 선수’다. ‘잘 달리는 차’ 하면 BMW나 아우디·포르셰가 떠오를 것이다. 이에 대해 혼다 본사 홍보실의 이다 다쓰야 팀장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혼다는 안전과 동시에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세계 자동차 회사 중에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차는 BMW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일반 월급쟁이가 구입하기에는 너무 비싸다. BMW 325의 경우 일본에서는 5,000만원(국내는 6,000만원)이나 한다. 가격은 30%나 싸지만 BMW와 맞먹는 운전의 즐거움을 주는 차가 바로 혼다다.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차가 혼다다.” 레전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도쿄 모터쇼를 취재하고 혼다의 도치키 서킷에서 레전드를 시승했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 수입된 레전드를 다시 타 봤다. 레전드 초기 모델은 90년대 초 대우차가 ‘아카디아’란 이름으로 부품을 거의 그대로 들여와 조립·생산해 한국에서도 익숙한 차다.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차는 4세대 모델이다. 미국에서는 ‘어큐라(Accura) RL’이란 이름으로 판매된다. 레전드는 강한 힘이 느껴진다. 레전드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 최초로 차세대 4륜 구동 시스템을 달았다는 점. 네 바퀴 모두 노면의 상태를 인식해 독립적으로 구동력을 전달하는 것이다. 혼다는 현재 나온 4륜 구동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고 주장한다.
뛰어난 동력 성능 = 시동을 걸면 엔진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정숙성에선 렉서스에 떨어지지 않는다. 레전드는 최고 295마력을 내는 고성능 V6 3.5ℓ 엔진을 달았다. 차체 경량화도 빼놓을 수 없는 레전드의 숨겨진 기술이다. 엔진의 힘을 바퀴에 전달하는 프로펠러 샤프트를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 무려 100kg을 줄였다. 기존 모델보다 8%에 달하는 경량화를 실현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고효율의 연비는 물론이고 앞뒤 50대 50에 가까운 무게 배분으로 안정된 주행과 뛰어난 코너링 성능을 발휘한다. 자동 5단인 이 차는 수동 형태로도 쓸 수 있다. 가속페달을 밟았더니 기분 좋은 엔진음이 들려온다. 혼다는 전통적으로 높은 회전수의 엔진을 개발한다. 이런 점에선 BMW와 비슷하다. 2,000∼3,000rpm(분당 엔진 회전수) 저회전에서의 엔진음과 4,000~ 5,000rpm 중회전의 깊은 베이스음의 엔진음, 그리고 7,000rpm이 넘어가면서 들리는 고회전에서의 엔진음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가속페달을 조금 깊게 밟으면 5,000rpm을 훌쩍 넘는다. 정지 상태에서 불과 6초 만에 속도계는 시속 100km를 넘어선다. 4단도 아닌 3단에서다. 3단만으로 140km가 나온다. 풀가속을 하면 시속 200km를 손쉽게 넘긴다. 백미러에는 멀어져 가는 차들이 보인다. 코너링은 그야말로 레전드의 자랑이다. 4륜 구동의 접지력을 실감하게 한다. 레전드는 전륜 구동 기반의 4륜 구동이지만 앞바퀴가 코너에서 미끄러지는 언더스티어 현상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돌아 나가는 급격한 코너에서도 시속 120km로 유지한 채 회전해 봤다. 지면에 딱 달라붙는 듯한 접지력과 깊게 팬 시트에 몸이 단단히 고정돼 몸이 쏠리는 원심력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스포츠카 형태로 튜닝된 서스펜션은 적당한 강도다. BMW보다는 부드럽고 렉서스보단 딱딱하다고나 할까. 아스팔트 지면의 요철에 따른 진동도 적절하게 전해져 도로와의 호흡을 가능하게 한다. 도로와의 대화를 완전히 차단한 렉서스의 정숙성과 물렁물렁한 서스펜션과는 딴판이다. 만족할 만한 엔진 파워와 안정된 코너링을 느낄 수 있다. 아무래도 레전드는 운전사를 따로 두고 뒷좌석에 편하게 기대 타는 ‘쇼퍼 드리븐’으로 이용하기에는 아깝다. 넘치는 힘을 적절히 제어하는 첨단 기술의 접점을 직접 몰아 보고 싶은 욕구가 넘치는 차다.
호화로운 실내 인테리어 = 혼다는 레전드를 개발하면서 그동안 도요타보다 열세였던 실내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 마무리 재질의 고급스러움과 가죽 시트의 질감이 부드럽고 매끈하다. 공기 정화 시스템이나 오디오 스위치 위치 등 인체공학을 고려한 배열로 운전 중에 손쉽게 스위치를 조작할 수 있다. 바람을 가르는 에어로다이내믹(Aerodynamic) 디자인도 돋보인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와이퍼까지 안으로 숨겨 디자인의 군더더기를 완전히 제거했다. 내부는 고급 가구나 악기 외장재로 사용되는 컬러 메이플 무늬목으로 치장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천연목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냈다. 또 그동안 경쟁사에 비해 약점으로 지적됐던 오디오도 보강했다. 차체 설계 단계부터 보스(BOSE)사와 공동 개발한 오디오 시스템은 수백 가지 음향 측정 데이터를 통해 실내의 소재까지 계산에 넣었다. 운전석이나 조수석, 뒷자리 어디에 앉아도 360도 균형 잡힌 서라운드 음량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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