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는 ‘귀족도시’가 될 것인가? 판교 신도시 중대형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1800만원에 이르자 ‘판교는 돈 많은 이들만 갈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서민의 주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건설한 분당은 ‘강남 2중대’가 된 지 오래다. 지금 추세라면 판교도 이 같은 전철을 밟을 게 뻔하다. 판교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먼저 ‘허’부터 알아보자. 우리 속담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다. 겉이 떠들썩하고 화려할수록 오히려 속은 비어 있다는 말이다. 일반분양을 시작하기 이미 몇 년 전부터 판교는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예고했다. 판교는 ‘소문난 잔치’내지 ‘속 빈 강정’이 될 것인가? 판교를 ‘소문난 잔치’로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판교가 강남을 대체할 고급 신도시가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전체 주택 중 임대아파트 비율 40%, 전용면적 25.7평 이하 중소형아파트가 66%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고소득 자산가들이 자신들의 주거지역으로 선호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들 자산가가 관심을 갖는 주택 규모는 적어도 강남권의 40~50평형대 이상 아파트들이다. 이 때문에 판교를 개발하더라도 부자들의 지역 커뮤니티가 형성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았던 것 같다. 또 분양 후 5~10년에 이르는 긴 ‘전매금지 기간’도 걸림돌이다. 입주 후에도 2년 반~7년 반 동안 사고팔 수 없기 때문에 부자들이 입성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한마디로 판교는 평범한 신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그럴듯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앞으로 나올 신도시들이 대부분 판교처럼 임대아파트와 중소형 위주로 개발되고 전매 금지도 부동산 경기 상황에 따라 풀릴 수 있다. 이 때문에 판교의 가치는 결국 입지의 가치로 평가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판교는 귀족도시라는 의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현재까지 만들어진 수도권 신도시 중에서 가장 완벽한 생활 기반시설과 녹지공간, 교통 인프라 등을 갖춘 판교 신도시가 정부의 개입에 의해 서민들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많았다. 지난 3월 분양에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서 33평형 아파트의 분양가가 평당 1200만원 선에서 결정돼 다소 불만스럽기는 해도 서민 중산층에도 기회가 주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8월 분양에서는 중대형 평형의 분양가가 44평형의 경우 8억원이 넘고, 이 중 채권 매입과 계약금을 합해 총 2억5000만원 정도는 있어야 접수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대출 규제로 빌릴 수 있는 돈도 고작 분양가의 20∼30% 정도이므로 서민층은 꿈도 꾸기 힘들다. 애당초 강남 대체 신도시로 고급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만들었던 판교가 임대아파트 건립 등을 통해 서민 주거지로 자리매김하는 듯했지만 고분양가로 인해 또다시 고급 수요자 아니면 넘볼 수 없는 곳이 된 것이다. 서민과 중산층 그리고 부유층이 공존하는 신도시를 지향하는 정부와 소득과 자산에 따른 거주 지역의 차별화를 만들어가는 도시 주민 중 누가 궁극적인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인가?
판교는 입지로 보면 ‘귀족도시’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1960년대 말 허허벌판이었던 강남을 개발해 조성한 강남 신도시와 80년대 말 주택 200만 호 공급을 위해 급조했던 분당 사이에 있다. 개발한 지 30년이 지난 강남은 오랜 기간 편의시설과 문화, 교육 등 기반시설이 성숙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주택과 시설이 노후화되고 있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장기 계획에 의해 개발된 도시가 아니라 급조한 계획에 따라 빨리 빨리 지어진 강남에서 지금은 재건축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집값을 잡는다는 명분 아래 강남의 리뉴얼에 발목을 잡아놓고 있는 상태다. 강남에서 일찌감치 터 잡은 장기 거주자들은 더 나은 주거지를 찾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정치적인 또는 정책적인 이유로 뉴타운 개발과 U턴 프로젝트 등을 내놓으며 강북의 재개발을 밀어주는 방식으로 강남의 주택 수요를 분산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강북은 한양 천도 후 600여 년 동안 만들어진 좁은 길을 갖고 있다.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도로망 등 기반시설의 근본적인 확충이 어렵다. 이 때문에 강남 대체지로 거듭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강남 주민이 강북 뉴타운으로 이사가길 바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롭게 개발되는 판교가 좋은 이유는 강남과 분당 사이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녹지 및 자연 환경 등 삶의 여건은 양쪽 신도시보다 월등하다. 강남역까지 전철로 15분 정도 걸리고, 경부고속도로 진입과 서울 강남권 진입도 매우 쉽다. 판교는 평형의 조화도 면에서도 앞으로 나올 송파 신도시 등 2기 신도시에 비해 결코 나쁘지 않다. 분양 면적 기준으로 20평형대가 32%(9500가구), 30평형대 34%(1만100가구), 40평형대 이상 대형이 34%로 택지개발지구로는 뛰어나다. 더욱이 40평형대가 5100가구, 50평형대 이상이 2274가구에 달해 강남권 상류층의 대체 주거단지로 손색이 없다. 학군도 좋다. 공립학교(초등학교 10곳, 중학교 6곳, 고등학교 6곳) 외에 자립형 사립고, 특성화고, 특목고 같은 우수 교육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또 유해시설의 입지를 제한하는 에듀파크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인구밀도도 ha당 95명(분당 198명), 용적률이 동쪽 170%, 서쪽 145%(분당 198%), 녹지율 35%(분당 27%)이며 5만 평의 친수테마파크(중앙공원)가 조성되는 등 친환경 신도시라는 점도 호재다.
판교의 상품성 중 공헌도가 큰 것은 아무래도 교통시설이다. 판교 신도시 교통망은 광역교통개선 대책 중 하나인 영덕~양재 간 도시고속화 도로(민자 건설)와 분당~판교~강남을 잇는 신분당선 전철(2010년 완공 예정), 여주~광주~판교에 이르는 여주~성남선(2012년 완공 예정), 분당 지역의 이매역 환승 및 추후 서판교 지역 간 연결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판교IC 구조 개선도 눈길을 끌고, 국지도 23호선, 용인~판교 도로도 8차로로 확장된다. 그 밖에 국지도 57번의 우회도로 확충, 신분당선 판교역의 대규모 환승 센터 조성, 광역버스 및 버스전용차로 도입 등으로 대중교통망도 크게 활성화될 전망이다. 판교는 총 20만 평 규모로 벤처시설 및 소프트웨어 관련 업체와 정보통신 관련 연구소가 들어서 주거와 자족기능을 골고루 갖추게 된다. 특히 동판교에 자리 잡은 중심상업 지역과 도시지원시설용지 사이에 에듀파크가 조성되고, 정보기술대학원과 특목고가 들어선다. 이 때문에 판교는 강남으로 이주하려는 학군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도시 지원시설들은 분당 수내동, 정자동 일대의 업무시설과 더불어 분당과 판교를 제2의 강남으로 도약하게 만들 요인이다.
중소형 아파트와 임대아파트가 많고 중대형 아파트는 34%밖에 되지 않는 판교가 귀족도시가 되는 이유는 정부의 규제에서 출발한다. 이미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제정된 2003년부터 예고된 일이지만 집값을 잡기 위해 애쓴 정부의 노력은 결국 주택수요 억제 등 규제 정책으로 나타났고 이것은 양질의 주택 공급이 끊기는 결과를 불러오고 있다. 현재 용적률 축소와 분양가 규제로 입지가 좋은 곳은 아파트 건축 메리트가 떨어지게 되었다. 양도세 강화와 개발부담금, 기반시설부담금 등 각종 준조세의 증가는 재건축을 포함한 일반 아파트 공급을 축소시키고 있다. 고급주택의 수요에 따른 공급이 따르지 않으면 머지않아 고급주택 품귀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강남권 아파트 일반분양 물량은 이미 2005년부터 크게 감소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강남권에 새 아파트 공급은 거의 끊기게 된다. 따라서 재건축 조합원 지분을 매입, 새 아파트를 마련할 여력이 없는 강남권 거주 중산층에 판교 선호도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또 내년부터 본격 시행하게 될 실거래가 과세도 판교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수도권 주택보급률이 낮기 때문에 현재의 가구 분화 속도 등을 감안한다면 신규 택지 개발의 필요성이 높다. 하지만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도입한 실거래가 과세는 신규 택지 공급을 위한 토지 보상을 실거래가로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겨주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판교와 같은 강남을 대체할 만한 신도시는 공급되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점이 판교의 희소가치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제2차 수도권 광역교통 5개년 계획’에서 수도권에 광역전철 4개 노선 총연장 88.2㎞를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단계적으로 건설키로 했다. 신분당선은 2015년 용산역까지 연장될 계획이며, 간선도로 11개 구간 50.7㎞도 2009년까지 단계적으로 완공된다. 이에 따라 새로 구축되는 광역교통망의 주요 수혜지역 아파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남권을 동서로 횡단하는 지하철 2호선, 3호선, 7호선과 더불어 신분당선과 분당선이 완성되면 강남권을 종단하는 새로운 주거 개발의 축이 형성된다. 신분당선과 분당선은 양재역, 강남역, 선릉역 등 2호선 환승역이 생기며 도곡역, 신사역의 3호선 환승역과 논현역, 강남구청역 등 7호선 환승역이 생긴다. 신분당선은 양재, 청계, 판교를 거쳐 분당선 정자역과 만나고 다시 용인 수지를 거쳐 수원으로 이어지게 되므로 분당구 정자동은 2개 종단 노선의 환승역으로서 최고의 강남 접근성을 자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미군기지 이전과 U턴 프로젝트 등을 통해 새로운 개발이 이루어지는 용산역 동부이촌동, 한남동 등 용산구와 강남대로를 중심으로 한 역삼동, 도곡동, 양재동 일대 그리고 판교, 분당 등은 하나의 벨트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주거 중심축으로 떠오를 공산이 매우 크다.
판교가 강남의 주변지로 제2의 분당 역할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제2의 강남으로 새로운 중심지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면적 3500만 평에 인구 150만 명의 강남권과 면적 600만 평에 인구 40만 명의 분당에 비교할 때, 281만 평에 인구 12만 명의 판교가 과연 중심지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강남과 분당이 노후화되면서도 새로 개발할 지역이 없기 때문에 신도시로 탄생하는 판교가 상업 업무와 주거의 모든 면에서 강남과 분당의 새 중심으로 자리매김한다. 구도시에 비해 도시시설 면에서 작은 차이점만 있더라도 신도시의 경쟁력은 높아진다. 따라서 판교는 제2의 분당이라기보다는 강남과 분당이 강남권으로 포섭되면서 새로운 강남의 중심지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판교는 고급주택만 들어선 소위 ‘베벌리힐스’가 되지는 않겠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 등으로 인해 향후 5~10년 사이에 새로운 강남으로 떠오르는 지역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향후 강남권 집값이 급등해 강남 대체지의 필요성이 거론되면서 강남권 남측 지역을 대규모로 개발하게 된다면 판교의 중심지 기능은 짧게 마감될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다. 강남 대체지 개발에 대해서는 내년 이후 대선 주자 등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겠지만 강남 기득권 세력과의 이해가 상충되는 측면이 있어 개발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공동주택인 아파트촌으로 형성된 도시가 귀족도시가 되기는 어렵다. 도시계획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부족한 도시 인프라를 벌충해 주는 아파트를 선호하고 지금은 고층아파트가 부유층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이런 트렌드는 차츰 변해갈 것이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크처럼 초고층에서 사는 부자들도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충분히 보장되는 쾌적한 단독주택이 생긴다면 이런 곳으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 초고층 거주자인 이 부자들이 새로이 몰려가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면 새로운 단지형 고급 단독주택 시대를 열어갈 것이다. 판교 아파트촌이 미국의 베벌리힐스나 호주의 포인트파이퍼와 같은 귀족도시가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판교 내의 고급 단독주택지와 대장동 등 주변의 고급 주택지는 다르다. 부촌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보인다는 얘기다. 투기 때문에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이 취소된 대장동 일대와 석운동, 백현동, 동원동 일대는 장기적으로 고급 주택지로 개발 가능성이 큰 곳이다. 판교와 분당에서 공원이 가까운 연립주택지들이 쾌적성을 선호하는 추세에 맞춰 새롭게 조명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