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가 만든 스포츠 영웅
베이비붐 세대 체육기자가 뒤돌아 본 지난 50년간 미국 스포츠의 명승부“우리는 왜 그토록 스포츠에 빠져 드나” 아버지가 그날 오후 내게 하신 말씀은 사실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과 야구 간의 영원한 삼각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말이었지 싶다. 그러나 방과 후 집으로 달려왔던 기억은 선명하다. 머지않아 랜치하우스들이 들어섰던 공터를 지나고 주방에서 찬 음료수를 들고 나를 기다리시던 엄마를 지나, 완벽한 훅 슬라이딩 자세로 14인치 RCA 흑백 텔레비전 앞으로 안전하게 미끄러져 갔다. 아버지는 이미 자리를 잡고 계셨다. 마침 월드시리즈 7차전의 후반부가 진행되던 순간이었다. 우리는 꼴도 보기 싫은 뉴욕 양키스의 패배를 기원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양키스의 포수 요기 베라가 양키 스타디움의 좌익 공간으로 직선타구를 날렸다. 주자는 두 명이 나가 있고, 브루클린 다저스가 6회 현재 2대 0으로 이기는 상황인지라 나는, 사실 나뿐 아니라 보스턴 토박이라면 누구나, 양키스의 역전 가능성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저스의 외야수 샌디 아모로스가 공을 쫓아가더니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가며 파울 폴 가까이에서 손을 뻗어 잡았다. 그런 다음 내야수에게 바로 던져 타자는 1루에서 병살로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브루클린 다저스의 첫(그리고 마지막) 우승을 축하했다. 그때가 1955년이다. 여덟 살 생일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텔레비전으로 스포츠를 구경한 첫 번째 기억이다. 나를 비롯한 베이비붐 세대가 텔레비전으로 스포츠를 구경해온 지도 어느새 반세기가 흘렀다. 아버지는 베이브 루스, 갈색 폭격기(조 루이스), 달리는 유령(레드 그레인지) 등 전설적 영웅들이 활약한 스포츠의 황금기를 사셨다. 그러나 아버지 세대의 대다수 팬에게 그 장관(壯觀)은 라디오나 신문의 스포츠난에서 펼쳐졌다. 베이비부머들은 영웅들의 경기 모습을 중계방송으로, 나중에는 해외경기까지 중계방송으로 직접 구경한 최초 세대다. 스포츠가 할리우드를 제치고 미국의 연예산업으로 떠오른 일도 놀랄 일이 아니다. 옛날 옛적에 메릴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라는 잘 어울리는 사람끼리 동화 같은 결혼을 했다. 이제 운동선수는 창공에 빛나는 최고의 별이 되었다. 성도 필요 없이 이름만으로 누군지 알 수 있다. 마이클, 미아, 랜스, 데릭, 타이거, 알리. 미국인의 생활에서 스포츠의 비중은 날로 커졌다. 우리 시대의 가장 복잡한 이슈들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프리즘, 아니 바로 유일한 프리즘인 셈이다. 인종차별(1968년 올림픽의 블랙파워 제스처, 프로미식축구에 흑인 쿼터백과 코치가 없는 현상, 힙합 복장을 금지한 프로농구의 복장 규정)이나 성차별(수정교육법 9권, 빌리 진 킹 대 보비 릭스의 성 대결, 1999년 여자 월드컵) 등. 요즘 신문에 불법 마약이나 노조 파업 기사가 나오면 운동선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스포츠에 채널을 맞추면서 비극을 목격한다. 나는 1962년 위대한 웰터급 복서 에밀 그리피스가 링 안에서 베니 (키드) 파레트를 때려 죽이는 모습(KO된 지 열흘 후 사망)을 지켜보며 눈을 의심했다. 1975년에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암말 러피안이 벨몬트 경마장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슬퍼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선 테러범들이 이스라엘 선수들을 학살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스포츠가 공동의 위안제 역할을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9·11 테러의 고통이 한창일 때 미국인들이 구장과 운동장에 몰려가 애도하고 “성조기가 여전히 휘날리는 모습”을 세계에 보여준 일은 전혀 놀랍지 않다. 우리 세대의 한 예언자는 “매체가 메시지”라고 주장한 바 있다. 내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스포츠보다 더 좋은 예가 없다. 텔레비전은 스포츠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내가 처음 텔레비전을 보던 시절 방송에선 주로 야구와 권투 같은 기본 종목만 나왔다. 대학에 진학할 무렵엔 프로미식축구(NFL)가 국기(國技)나 마찬가지였다. 10여 년의 간격으로 중계된 두 경기가 통상 촉매 구실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조니 유니타스의 소속팀 볼티모어 콜츠가 연장전에서 뉴욕 자이언츠를 물리친 1958년 결승전과 “브로드웨이” 조 네이머스가 볼티모어 콜츠를 상대로 뉴욕 제츠의 승리를 장담한 뒤 실제로 승리를 일궈낸 3회 수퍼보울(1969년)이다. 나이 든 베이비부머들은 정서상 여전히 야구를 가장 좋아하지만, 프로미식축구(군대 냄새를 풍기는 용어와 작전, 테크노 분위기, 필드에서 어슬렁대는 그 많은 거구의 젊은이)는 미국의 국력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스포츠가 됐다. 복잡한 규칙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깔끔하게 직선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작은 화면에 쏙 들어간다(얼마나 걸릴지 경기 시간을 대중하기 어려운 야구와 달리 텔레비전 방송 일정을 잡기에도 아주 좋다). ‘먼데이 나이트 풋볼’은 말하자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가 등장하기 전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인 셈이다. 수퍼보울은 링링 브러더스 서커스단이 세 곳에서 동시에 벌이는 서커스에서 힌트를 얻어 지상…, 에, 그러니까 미국에서 지상 최대의 쇼가 됐다. 옛날 같으면 텔레비전으로 스포츠 경기를 구경한 다음 루실 볼이나 레드 스켈턴(광대)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재닛 잭슨과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맹활약한(하프타임 공연 때 팀버레이크가 잭슨의 젖가슴을 노출시킨 일) 수퍼보울에선 어느 팀이 이겼더라? 1980년대가 되면서 텔레비전 덕분에 또 하나의 프로 스포츠가 상상도 못한 대인기를 누리게 됐다. 프로농구(NBA)는 결승전 경기조차 황금시간대에서 밀려나 심야 이중녹음 방송으로 전락했던 처지였다. 그러나 리그는 변신에 나섰다. 텔레비전 방송은 농구의 스피드, 멋진 점프 동작, 도시적 세련미(말하자면 ‘마이애미 바이스’의 도래를 알리는 선배격)를 포착하고, 아울러 매직·래리·마이클이라는 위대한 3인방을 널리 알렸다. 이로써 프로농구는 최고의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고, NBA는 순식간에 상업 제국으로 커갔다. 설령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광고를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NBA처럼 세계를 상대로 적극 홍보에 나선 리그는 없었다. 그러나 선지자적 안목을 갖춘 데이비드 스턴 NBA 총재조차 그러한 국제적 수출이 눈 깜짝할 사이에 야오밍(중국), 토니 파커(프랑스), 마누 지노빌리(아르헨티나), 더크 노비츠키(독일) 같은 선수들의 수입으로 이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NBA가 새 출발을 즐길 무렵 ESPN이라는 작은 케이블 사업이 등장해 스포츠의 지형을 또다시 바꿨다. 텔레비전은 전에도 간간이 비인기 종목에 슬쩍 관심을 보이곤 했다. ABC의 ‘와이드 월드 오브 스포츠’라는 프로가 특출나게 잘했다. 하루 24시간을 모두 스포츠 프로로 채워야 하는 상황에서 ESPN은 호주식 축구, 여자 소프트볼, 포켓볼 등 오만가지 경기로 시간을 때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ESPN은 유별난 종목에서 벗어나 주류와 최신 흐름을 수용했다. 비치 발리볼이나 스케이트보딩 같은 신생 종목이 ESPN의 후원 아래 프로 리그로 컸다. 그처럼 X게임(X-Games)은 대세로 자리 잡았고, 그에 따라 올림픽이라는 초대형 TV 행사는 옛날(심지어는 고대) 학교 같은 인상을 풍겼다. ESPN 혁명이 모든 방영 종목에 유리한 결과만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스포츠센터’의 게임 하이라이트가 인기를 끌면서 정작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렸다. 슬램덩크, 홈런, 엔드존 세리머니 등을 중점적으로 보도하면서 훌륭한 선수들의 기본 기량이 녹슬게 됐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스포츠는 여전히 가장 흥미진진한 현장 쇼다. 그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아마추어 연예인 선발대회보다 더 짜릿하고 예측을 불허한다. 올림픽은 그 진실을 누누이 입증해 보이다가 급기야는 “지나칠 정도로 선수들의 신상을 캐는 바람에” 장난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과잉 노출로 흥미를 잃게 되기 전만 해도 우리는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애를 딛거나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예상을 깨고 시상대에 오른 남녀의 놀라운 무용담에 감동했다. 그런 이야기의 숭고함을 사랑했고, 물론 아주 재미나게 비열한 측면은 더욱 사랑했다. 토냐와 낸시처럼 우리를 사로잡은 이야기가 있었던가(우리에겐 스캔들을 밝히는 치사한 본능이 있어서 그 장대한 올림픽 드라마에서 착한 여자 케리간 대신 악녀 하딩에게 스타의 지위를 부여했다)? 두 선수가 마침내 릴레함메르 겨울 올림픽에서 맞대결을 벌이자 시청률은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방송은 피겨 스케이팅 열기에 편승해 그 경기를 주말 방송의 주 메뉴로 삼았다. 시청자들은 트리플 루츠, 트리플 액셀 등의 고난도 묘기를 수없이 보고 또 봤다. 같은 경기를 계속 돌려도 차이점을 아는 사람이 없어 그냥 봤다. 이윽고 방송 과다로 시청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야구 방망이에 슬개골을 얻어맞는 일 같은 엽기적인 사건은 또다시 보기 어렵다는 점을 시청자들이 깨달았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대신 액션 드라마 ‘소프라노스’로 눈을 돌렸다. 스포츠의 위대한 무용담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누가 지어내겠는가? ‘빙판의 기적’(1980년 겨울 올림픽에서 아이스하키 미국팀이 소련팀을 이긴 일), 더그 플루티가 연출한 막판의 48야드 결승 패스 터치(1984년, 미식축구), 프랭코 해리스의 ‘완벽한 공 받기’(1972년, 미식축구), 조 몬태나에서 드와이트 클라크로 이어진 ‘터치다운 패스’(1982년, 미식축구), 밥 비먼의 놀라운 도약(1968년, 멀리뛰기), “파울 폴을 맞춘” 칼튼 피스크의 홈런(1975년), 홈런을 친 뒤 절뚝거리며 베이스를 다 돈 커크 깁슨(1988년), 마스터스 대회 연장전에서 40여m 샌드웨지 칩샷을 성공시킨 래리 마이즈(1987년, 골프), 메리 루 레턴의 완벽한 뜀틀 경기(1984년, 올림픽 체조), 캘리포니아 대학팀이 스탠퍼드대 고적대 속을 뚫고 간 터치다운(미식축구), 눈발을 뚫고 날아가는 아담 비나티에리의 롱킥(2002년, 미식축구), 벨몬트 스테이크스에서 펄펄 난 세크리테리아트(경마), 듀크대가 켄터키대를 극적으로 물리친 크리스천 레이트너의 롱슛(1999년, 농구), “하블리첵이 공을 가로챘습니다!”(1965년, 농구), 공을 가로채 종료 버저 소리와 함께 슛을 성공시킨 마이클 조던의 신기, 결승골을 성공시킨 후 웃통을 벗고 스포츠 브라를 내보인 브랜디 체스테인(1999년, 축구), 올림픽 성화에 점화하는 무하마드 알리(1996년),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한 뒤 오열한 타이거 우즈(2006년). 내가 좋아하는 몽타주가 있다. 데이브 로버츠의 도루, 빌 뮐러가 마리아노 리베라를 상대로 때려낸 싱글홈런, “빅파피”(데이비드 오티스)가 두 번이나 연장전에서 수훈을 세워 이긴 일, 커트 실링의 “피 묻은 양말”, 보스턴 레드삭스가 양키스를 물리치고 그 여력으로 마침내 86년 만에 우승하게 만든 조니 데이먼의 만루홈런 등의 합성사진이다. 그런 순간들과 기타 순간들이 집단적으로 우리 생활의 비디오트랙이 됐다. 너무 자주 재방송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그 원래 장면을 생방송으로 봤던지, 또는 모두 DVD로 봤던지 기억이 아리송하다. 그러나 난 기억한다. 기본적으로 베이비부머 스포츠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극성이다! 난 그것들을 몽땅 봤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그럴 테지. 당신은 스포츠 기자이고 그게 일이니까.” 그러나 난 20년 이상 뉴스를 취재하면서 진지한 기자들이 “장난감 부서”라고 콧방귀 뀌는 체육부에서 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로즈보울(가장 권위 있는 대학미식축구 대회)을 보고 싶은 순간에 오렌지보울(로즈보울 다음가는 대회)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을까 봐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뉴스를 취재하다 보니 오렌지보울이고 로즈보울이고 모두 구경하기가 만만찮은 장소에 자주 다녔다. 그러나 중요한 게임은 결정적 순간은 무슨 수단을 쓰든 꼭 보겠다는 나의 노력은 비장했다. 텔레비전 덕분에 대학농구대회가 열리는 3월이 전국민이 도박하는 달로 바뀌기 전부터 나는 대학체육의 열성팬이었다. 한번은 중서부 지역의 대홍수를 취재하러 갔다. 결승전은 빼놓지 않고 봤던 그동안의 전통이 깨질 판이었다. 매리언(일리노이)에서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보조 발전기로 업무를 보던 경찰서를 발견했다. 배를 저어 안으로 들어가서 역시 자기네 배를 탄 경찰관들과 나란히 자리 잡고 앉아 앨 머과이어가 소속한 마케트 대학 워리어스 팀이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 니카라과로 산디니스타 혁명을 취재하러 갔으니 결승전을 계속 봤던 전통은 틀림없이 깨질 판이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용케 공항까지 가서 파나마시티로 가는 비행기를 얻어 탄 다음 미군 방송으로 결승전 경기를 봤다. 그런 고생보다는 사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벌인 다른 노력들이 더 위험했는지도 모른다. 우아한 결혼식에서 별로 우아하지 않게 몰래 빠져나가 호텔 바에서 죽친 적이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온갖 모임에 지각했다(아니면 일찍 자리를 떴다). 그 이유는 경기가 예상 외로 길어졌기(또는 파티가 그리 되든가) 때문이다. 잠깐 점수나 보고 온다고 빠져나와 만찬을 주최한 사람들의 속을 상하게 한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마라톤을 보러 간 줄 알 정도였으니까. 이런 일들이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다. 어디를 가든 휴대용 텔레비전이 있어야 구색이 갖춰진다고 믿는 집안에서 자랐으니 말이다. 그런 매너에 익숙지 않은 사람 중에는 나의 태도에 불쾌감을 넘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집사람과 함께 시골에서 주말을 보내려고 뉴욕을 탈출했던 적이 있다. 맘에 드는 프랑스 요리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일과를 마무리하고 옛날 스타일 여관의 멋진 방으로 일찍 들어갔다. 가리개가 달린 침대까지 완비했지만 텔레비전이 없어서 완벽하지 못했다. NBA 결승전의 중요한 장면을 놓칠지 모른다는 초조감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휴게실에 가서 경기 마지막을 보고 와도 되겠어?” 난 몇 시간 뒤… 돌아왔다. 그 뒷일을 간단히 말하면, 우리 부부는 “경기 마지막을 보는 행위”의 정의를 탈무드식으로 자세하게 내리는 데 나머지 주말을 다 보냈다(게임이 그때 막 시작됐을 가능성은 아예 배제해야 하나?). 결혼생활의 “끝장”이라는 의미도 아울러 논의됐다. 이게 다 광기라면 그건 우리 세대의 광기다. 베이비부머는 줄기차게, 때론 다른 생각은 일절 하지 않고 가장 좋아하는 이 취미생활을 추구해왔다. 스포츠라는 드라마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베이비부머들에겐 60년대 내내 공감대를 형성한 또 다른 표현이 있다. “전 세계가 지켜본다”는 말이다. 우리가 옳았다. 다만, 월드컵 이야기였다. 4년마다 열리는 그 성대한 잔치의 중간에 우리는 우리의 작은 세계에 모인다. 설명을 들어보시라. 1976년 시카고에서 살던 때 시외 출장을 마치고 막 사무실에 돌아왔다. 동료들은 모두 화이트삭스의 경기를 보러 가면서 내 표도 사뒀다. 그러나 난 고향 팀 셀틱스와 피닉스 선스 사이에 벌어지는 NBA 결승전 5차전을 놓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한 동료가 타협책을 내놓았다. 구장에 갖고 가라며 준, 원시적이고 디자인이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휴대용 텔레비전이었다. 마무리 투수 구스 고시지가 클리블랜드의 마지막 타자를 처리했을 무렵 농구 경기는 막 달아올랐다. 처음에는 텔레비전을 무릎에 올려놓고 보았다. 그러나 주위에 수십 명이 몰려와 구경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이 보도록 치켜들어야 했다. 농구가 연장전에 들어갈 때 마침내 경비원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쪽 관중석에만 여전히 사람들이 모여 소리지르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을 구단주에게 보고했다. 전설적인 빌 비크가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경비원의 무전기에서 들렸다. “거기 실컷 있도록 내버려둬.” 난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이 NBA 역사상 가장 멋졌다고 말하는 경기(세 번의 연장전 끝에 셀틱스가 128대 126으로 선스를 물리쳤다)를 코미스키 파크에서 끝까지 보는 데 성공했다. 자정 직전에 마침내 경기가 끝나자 거기 모인 친구들과 낯선 사람들 사이엔 유대감이 형성돼 있었다. 지금도 펜웨이 파크나 질레트 스타디움에서 고향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 그런 유대감을 발견한다.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서도 그 유대감을 발견한다. 사실 난 혼자가 아니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가 어디서든 본다. 내 동생 빌리, 사촌 잭, 친구들인 앙과 론 , 그리고 테리, 게다가 보게 된 경위야 어찌 됐든 우리 딸 새러 등등. 중요한 경기가 끝나면 내 전화가 울리면서 그중 한 사람이 묻는다. “그거 봤어?” 물론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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