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중견기업] 월등한 디자인으로 의류시장 주도
[파워 중견기업] 월등한 디자인으로 의류시장 주도
명품 말고는 한국에서 파는 옷도 라벨을 보면 대부분 중국이나 동남아가 원산지로 표시돼 있다. 한때 한국을 먹여 살렸던 섬유 산업은 이제 더 이상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지난해 매출 3426억원에 당기 순이익 98억원을 기록한 한세실업은 남들이 다 “채산성이 없다”고 포기한 의류 수출 전문 회사다. 그것도 자기 브랜드가 아닌 100%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수출이다. 매출 전액은 달러로 들어온다. 구시대적 표현을 빌리자면 ‘외화획득의 공신’이다. 의류 OEM 납품에다 자기 브랜드도 없으니 지금은 잘돼도 앞날은 비관적인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2002년 2000억원이던 매출이 올해 4300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12년에는 1조20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IT 제품이 주력산업으로 떠오른 2006년에도 한세실업의 성장은 그칠 줄 모른다. 원가 경쟁력, 특히 인건비 경쟁력에서 이미 결판이 났을 것 같은 의류 수출업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비결은 해외 생산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소득 1만7422달러(IMF·2005년 기준)인 한국의 소득수준에서 OEM 수출은 어림없다. 이미 오래전에 한세실업은 탈(脫) 한국을 택했다. 그래야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988년 사이판에 처음 해외 공장을 세운 이래 98년에는 니카라과, 2001년에는 베트남, 2004년에는 중국, 2005년에는 과테말라와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웠다. OEM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가 원가 경쟁력인데 수(手) 작업이 많은 의류 산업의 특성상 인건비가 비싸면 해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인건비 대비 숙련도가 높다. 실제 두 지역 공장은 한세실업이 납품하는 업체 중 상대적으로 품질 관리가 까다로운 유명 패션 브랜드에 납품된다. 리미티드(Limited), 아버크롬비(Abercrombie), 갭(Gap), 나이키(Nike)가 그런 경우다. 과테말라와 니카라과는 일정량에 한해 미국에 무관세 수출이 가능하다. 또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신속한 납품이 이뤄진다. 주로 시어스백화점·월마트·타깃 등 대형 마트에 납품한다. 대형 리테일러(retailer·소매점)는 대량생산과 납기가 핵심이다.
경영 노하우가 우리 경쟁력 하지만 저임금의 대량생산만으로 중국·인도는 물론 동남아 국가와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다. 현지에서 한국인이 공장을 운영하면 임금이나 복지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국인 관리자들까지 고려하면 원가경쟁력이 결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과 인도를 어떻게 따돌렸을까? “그게 경영 노하우죠. 우리가 적어도 중국이나 인도보다는 20년 정도 의류 생산·수출 경험이 길지 않습니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게 하루아침에 따라올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단순 임가공에서는 중국이나 인도 등에 밀릴 수밖에 없지만 제품에 맞는 원단을 찾고, 주문자가 요구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이 앞선다는 게 한세실업 김동녕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6~7년 전부터 OEM의 개념을 바꿨다. 상표는 주문자의 것을 붙이지만 디자인이나 제품은 오히려 한세 쪽에서 직접 제안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한국의 패션 산업은 이미 상당 수준에 와 있습니다. 한국 디자이너들도 수준이 높죠. 이런 자원을 활용한다면 OEM에서도 남다른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미국의 대형 바이어들도 이런 납품업체를 원하고 있었다. 패션의 트렌드는 급속히 바뀌는데 수동적으로 생산만 하는 업체로는 소비자의 구미를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대형 소매상들은 일일이 어떤 옷을 생산해 달라고 샘플을 주지 않는다. 대강의 스타일이나 원단만 지정해 준다. 그러면 한세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원단을 고르고 샘플을 만든다. 물론 바이어에게 결정권이 있지만 한세실업도 제품 개발에 상당 부분 참여한다. 이렇게 선택된 옷들이 미국의 대형 마트에 대량으로 납품된다. 심지어 아무런 사전 가이드라인 없이 한세가 제안하는 제품 중 일부를 택하는 곳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인 타깃(Target)이 그런 경우다. 타깃은 1년에 두 차례 납품업자들의 제품 전시회인 로드쇼를 개최한다. 한세실업 같은 OEM 전문기업 70~80곳이 전시회에 참가해 타깃의 바이어로부터 낙점을 기다린다. 사실상 제품력 콘테스트인 셈이다. 여기서 발탁된 상품들이 타깃 백화점으로 납품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주는 주문만 받아서 납품하다간 군소 업체로 전락하기 쉽다. “바이어들이 점점 더 많은 영역을 납품업체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능력이 없는 생산 업체는 단가도 점점 낮아지고, 물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죠.” 이런 추세 때문에 한세실업도 최근 3~4년간 연구개발실을 대폭 강화했다. 디자인팀·피트(fit) 디자인팀·원단팀으로 구성된 연구개발실에는 현재 디자이너만 25명이 근무하고 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2~3명이 근무했던 곳이다. 25명 중 20여 명이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미국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들이 미국 시장의 트렌드를 읽고 미국 바이어들이 원하는 컨셉트의 제품을 만든다. 그렇더라도 원가 경쟁력과 제조능력을 갖춘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의 위협이 점점 커지지 않을까? 혹시 지금의 호황이 스러지기 전 밝아지는 촛불 같은 건 아닐까? 하지만 김 회장 생각은 달랐다. “저도 2005년 미국이 섬유 수입 쿼터를 폐지하면서 걱정 많이 했습니다. 중국 업체들이 대량으로 물건을 내놓을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상황은 달랐습니다. 적어도 우리 주력 제품인 니트의류에서는 당분간 저희를 비롯한 한국 업체들의 강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바이어들이 ‘아직은 중국과 한국 제품에 차이가 크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특정 업체와 깊고 오래 거래 김 회장이 미래를 낙관하는 데는 또 다른 근거가 있다. 미국의 대형 소매점이 M&A 등으로 점점 대형화하면서 납품업체도 검증된 대형업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K마트와 합병한 시어스 백화점이다. 업체가 점점 대형화하면서 OEM에도 전문성을 갖춘 대형업체를 원하고 있다. “미국 바이어들의 최근 추세는 ‘딥 앤드 내로(deep&narrow)’ 전략입니다. 소규모 업체 여러 곳과 거래하기보다는 좁고 깊게 특정 업체와 거래물량을 늘리면서 단가도 낮추고 품질력도 확보하자는 거죠. 소규모 업체의 저가 전략은 더 이상 힘들 겁니다.” 김 회장은 72년에 한세통상이라는 회사를 세워 76년 의류수출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79년 오일쇼크가 나자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그때 경쟁력 없이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거래처가 등을 돌린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가 규모를 늘리고, 몇몇 대형 거래처와 10년 넘게 거래관계를 유지해 오는 것도 그때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이미 ‘딥 앤드 내로’ 현상이 시작되면서 한세에도 주문이 몰리고 있다. 김 회장은 “바이어 요구대로 다 생산해 주면 우리 매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2008년 국내 패션사업도 진출 OEM에 디자인 등 연구개발 능력을 합친 것이 경영전략적인 측면에서 주효했다면 꾸준한 품질과 납기 등 생산 과정의 안정은 공장의 원활한 운영과 관계가 있다. 다른 기업인들도 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과 동남아로 나갔지만 현지 공장 운영에서 실패한 경우가 많다. 중국·동남아는 물론 중남미에서 별 탈 없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 회장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다행히 아직 우리 해외공장은 큰 문제 없어요. 무엇보다 큰 테두리에서 잘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회사가 다닐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면 극렬한 분열은 없습니다. 근무 여건 좋고, 임금이 높고,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면 그들도 열심히 합니다. 또 서로 자주 대화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게 없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한세실업은 모든 공장에 한국인 공장장이 나가 있다. 공장장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직원들의 경조사 챙기기다. 결혼식에도 가고, 생일파티도 해 주고, 운동도 같이 한다. 물론 김 회장도 현지에 출장가면 직원들의 행사에 직접 참석한다. 후진국일수록 이런 스킨십이 의외의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과의 소통을 위해 한세실업에 입사하는 모든 남자 직원들에게 현지 공장 근무를 의무화하고 있다. 여직원도 희망하면 해외 근무를 할 수 있다. “많은 회사가 본사와 공장이 물과 기름 관계예요. 본사 직원들은 공장의 간부는 물론 심지어 공장장까지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자기들은 ‘인텔리’고 공장 근무자는 ‘공돌이’라는 의식이죠. 그렇게 해서는 좋은 제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OEM의 경쟁력은 결국 공장에서 나오는데 공장을 무시하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잖아요? CEO부터 공장을 자주 찾고 중요성을 강조해야 일할 맛이 나죠.” 실제 한세실업의 또 다른 대표이사인 이용백 사장도 공장장 출신이다. 한세실업은 2003년 온라인 서점인 YES24를 인수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다들 의외의 일이라고 여겼지만 김 회장은 나름대로 포석이 있었다. 온라인 유통에 진출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인수 당시 경영권 인수 비용으로 200억원 이상을 지급하면서 한세실업은 창립 이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분할지급을 해도 되는 돈이었지만 이익이 많이 나 한꺼번에 지급했다. 2004년까지 적자에 허덕이던 YES24도 지난해부터 흑자(12억원)로 전환했다. 올해는 매출 2000억원에 18억원의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YES24의 노하우는 오는 10월 말 오픈할 예정인 온라인 패션쇼핑몰 ‘istyle24. com’으로 고스란히 전수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YES24의 노하우와 물류센터를 활용하면 큰 초기자본 투자 없이 패션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선 국내의 대중적인 브랜드 위주로 판매를 할 생각이다. 2008년 이후에는 국내 패션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2008년 이후 여성 캐주얼 브랜드를 하나 인수해 국내 패션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내수와 수출을 합해 2012년에는 매출 2조원의 패션·온라인 유통 전문 회사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이다. 한세실업은 극심한 원가 경쟁 속에서도 디자인과 연구개발이라는 특유의 경쟁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김 회장이 말한 경영 노하우다. 또 ‘의류 OEM 생산→온라인 유통→온라인 패션 쇼핑몰→오프라인 패션 유통’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사업 진행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한물 간 OEM 사업이 이런 큰 구상의 밑천이 됐다. 김 회장은 1970년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어쩌면 젊어서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2000년대에도 OEM 업체를 경영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1년에 24번씩 해외공장을 찾아가는 부지런함도 더해졌다. “제가 처음 이쪽에 몸담은 76년과 2006년의 OEM은 완전히 다릅니다. 밖에서 보면 다 같은 OEM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어요. 그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양산업이 되죠. 계속 변화해 간다면 사양산업은 없습니다.” 첨단산업도 좋지만 자기 일을 첨단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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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노하우가 우리 경쟁력 하지만 저임금의 대량생산만으로 중국·인도는 물론 동남아 국가와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다. 현지에서 한국인이 공장을 운영하면 임금이나 복지 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국인 관리자들까지 고려하면 원가경쟁력이 결코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과 인도를 어떻게 따돌렸을까? “그게 경영 노하우죠. 우리가 적어도 중국이나 인도보다는 20년 정도 의류 생산·수출 경험이 길지 않습니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게 하루아침에 따라올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단순 임가공에서는 중국이나 인도 등에 밀릴 수밖에 없지만 제품에 맞는 원단을 찾고, 주문자가 요구하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이 앞선다는 게 한세실업 김동녕 회장의 설명이다. 김 회장은 6~7년 전부터 OEM의 개념을 바꿨다. 상표는 주문자의 것을 붙이지만 디자인이나 제품은 오히려 한세 쪽에서 직접 제안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한국의 패션 산업은 이미 상당 수준에 와 있습니다. 한국 디자이너들도 수준이 높죠. 이런 자원을 활용한다면 OEM에서도 남다른 경쟁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미국의 대형 바이어들도 이런 납품업체를 원하고 있었다. 패션의 트렌드는 급속히 바뀌는데 수동적으로 생산만 하는 업체로는 소비자의 구미를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대형 소매상들은 일일이 어떤 옷을 생산해 달라고 샘플을 주지 않는다. 대강의 스타일이나 원단만 지정해 준다. 그러면 한세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원단을 고르고 샘플을 만든다. 물론 바이어에게 결정권이 있지만 한세실업도 제품 개발에 상당 부분 참여한다. 이렇게 선택된 옷들이 미국의 대형 마트에 대량으로 납품된다. 심지어 아무런 사전 가이드라인 없이 한세가 제안하는 제품 중 일부를 택하는 곳도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백화점인 타깃(Target)이 그런 경우다. 타깃은 1년에 두 차례 납품업자들의 제품 전시회인 로드쇼를 개최한다. 한세실업 같은 OEM 전문기업 70~80곳이 전시회에 참가해 타깃의 바이어로부터 낙점을 기다린다. 사실상 제품력 콘테스트인 셈이다. 여기서 발탁된 상품들이 타깃 백화점으로 납품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주는 주문만 받아서 납품하다간 군소 업체로 전락하기 쉽다. “바이어들이 점점 더 많은 영역을 납품업체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능력이 없는 생산 업체는 단가도 점점 낮아지고, 물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죠.” 이런 추세 때문에 한세실업도 최근 3~4년간 연구개발실을 대폭 강화했다. 디자인팀·피트(fit) 디자인팀·원단팀으로 구성된 연구개발실에는 현재 디자이너만 25명이 근무하고 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2~3명이 근무했던 곳이다. 25명 중 20여 명이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미국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들이 미국 시장의 트렌드를 읽고 미국 바이어들이 원하는 컨셉트의 제품을 만든다. 그렇더라도 원가 경쟁력과 제조능력을 갖춘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의 위협이 점점 커지지 않을까? 혹시 지금의 호황이 스러지기 전 밝아지는 촛불 같은 건 아닐까? 하지만 김 회장 생각은 달랐다. “저도 2005년 미국이 섬유 수입 쿼터를 폐지하면서 걱정 많이 했습니다. 중국 업체들이 대량으로 물건을 내놓을 것으로 생각했죠. 하지만 상황은 달랐습니다. 적어도 우리 주력 제품인 니트의류에서는 당분간 저희를 비롯한 한국 업체들의 강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바이어들이 ‘아직은 중국과 한국 제품에 차이가 크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특정 업체와 깊고 오래 거래 김 회장이 미래를 낙관하는 데는 또 다른 근거가 있다. 미국의 대형 소매점이 M&A 등으로 점점 대형화하면서 납품업체도 검증된 대형업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K마트와 합병한 시어스 백화점이다. 업체가 점점 대형화하면서 OEM에도 전문성을 갖춘 대형업체를 원하고 있다. “미국 바이어들의 최근 추세는 ‘딥 앤드 내로(deep&narrow)’ 전략입니다. 소규모 업체 여러 곳과 거래하기보다는 좁고 깊게 특정 업체와 거래물량을 늘리면서 단가도 낮추고 품질력도 확보하자는 거죠. 소규모 업체의 저가 전략은 더 이상 힘들 겁니다.” 김 회장은 72년에 한세통상이라는 회사를 세워 76년 의류수출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79년 오일쇼크가 나자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그때 경쟁력 없이는 조그마한 충격에도 거래처가 등을 돌린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가 규모를 늘리고, 몇몇 대형 거래처와 10년 넘게 거래관계를 유지해 오는 것도 그때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이미 ‘딥 앤드 내로’ 현상이 시작되면서 한세에도 주문이 몰리고 있다. 김 회장은 “바이어 요구대로 다 생산해 주면 우리 매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2008년 국내 패션사업도 진출 OEM에 디자인 등 연구개발 능력을 합친 것이 경영전략적인 측면에서 주효했다면 꾸준한 품질과 납기 등 생산 과정의 안정은 공장의 원활한 운영과 관계가 있다. 다른 기업인들도 원가를 낮추기 위해 중국과 동남아로 나갔지만 현지 공장 운영에서 실패한 경우가 많다. 중국·동남아는 물론 중남미에서 별 탈 없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 회장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다행히 아직 우리 해외공장은 큰 문제 없어요. 무엇보다 큰 테두리에서 잘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 회사가 다닐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면 극렬한 분열은 없습니다. 근무 여건 좋고, 임금이 높고,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면 그들도 열심히 합니다. 또 서로 자주 대화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게 없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한세실업은 모든 공장에 한국인 공장장이 나가 있다. 공장장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직원들의 경조사 챙기기다. 결혼식에도 가고, 생일파티도 해 주고, 운동도 같이 한다. 물론 김 회장도 현지에 출장가면 직원들의 행사에 직접 참석한다. 후진국일수록 이런 스킨십이 의외의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과의 소통을 위해 한세실업에 입사하는 모든 남자 직원들에게 현지 공장 근무를 의무화하고 있다. 여직원도 희망하면 해외 근무를 할 수 있다. “많은 회사가 본사와 공장이 물과 기름 관계예요. 본사 직원들은 공장의 간부는 물론 심지어 공장장까지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자기들은 ‘인텔리’고 공장 근무자는 ‘공돌이’라는 의식이죠. 그렇게 해서는 좋은 제품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OEM의 경쟁력은 결국 공장에서 나오는데 공장을 무시하면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잖아요? CEO부터 공장을 자주 찾고 중요성을 강조해야 일할 맛이 나죠.” 실제 한세실업의 또 다른 대표이사인 이용백 사장도 공장장 출신이다. 한세실업은 2003년 온라인 서점인 YES24를 인수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다들 의외의 일이라고 여겼지만 김 회장은 나름대로 포석이 있었다. 온라인 유통에 진출하기 위한 첫 단계였다. 인수 당시 경영권 인수 비용으로 200억원 이상을 지급하면서 한세실업은 창립 이후 처음으로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분할지급을 해도 되는 돈이었지만 이익이 많이 나 한꺼번에 지급했다. 2004년까지 적자에 허덕이던 YES24도 지난해부터 흑자(12억원)로 전환했다. 올해는 매출 2000억원에 18억원의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YES24의 노하우는 오는 10월 말 오픈할 예정인 온라인 패션쇼핑몰 ‘istyle24. com’으로 고스란히 전수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YES24의 노하우와 물류센터를 활용하면 큰 초기자본 투자 없이 패션 쇼핑몰을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선 국내의 대중적인 브랜드 위주로 판매를 할 생각이다. 2008년 이후에는 국내 패션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2008년 이후 여성 캐주얼 브랜드를 하나 인수해 국내 패션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내수와 수출을 합해 2012년에는 매출 2조원의 패션·온라인 유통 전문 회사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이다. 한세실업은 극심한 원가 경쟁 속에서도 디자인과 연구개발이라는 특유의 경쟁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김 회장이 말한 경영 노하우다. 또 ‘의류 OEM 생산→온라인 유통→온라인 패션 쇼핑몰→오프라인 패션 유통’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사업 진행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한물 간 OEM 사업이 이런 큰 구상의 밑천이 됐다. 김 회장은 1970년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어쩌면 젊어서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2000년대에도 OEM 업체를 경영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1년에 24번씩 해외공장을 찾아가는 부지런함도 더해졌다. “제가 처음 이쪽에 몸담은 76년과 2006년의 OEM은 완전히 다릅니다. 밖에서 보면 다 같은 OEM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어요. 그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사양산업이 되죠. 계속 변화해 간다면 사양산업은 없습니다.” 첨단산업도 좋지만 자기 일을 첨단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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