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일 많은 간호사 돕는 아이디어

일 많은 간호사 돕는 아이디어


제도 혁신으로 격무에 찌든 간호사들의 직무 만족도와 효율성 제고한다. 당신은 다음의 두 병원 중 어느 곳에서 치료받고 싶은가? 미국 남서부에 있는 A병원은 간호사 수가 매우 적다. 간호 업무에 요구되는 지적·정서적 압박감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곳 간호사들은 질적인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레베카 매티스(40)는 이런 심리적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여름 16년간 종사해온 간호사직을 그만뒀다. 긴급 환자 한 명이 발생하면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 업무가 지연되고, 그 때문에 밀린 업무를 나중에 처리하느라 허둥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매티스는 “마치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듯했다. 어떤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기까지는 시간문제였다. 그러면 여생을 그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B병원(피츠버그대 의대 부속병원인 UPMC 셰이디사이드)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몹시 바쁜 날에도 만사가 물흐르는 듯하다. 공포심보다는 생동감이 넘쳐난다. 심장병과의 간호사 신시아 호스테틀러(51)는 “직장 생활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미국의 병원들 중 어느 한 곳을 무작위로 선택할 경우, B병원보다는 A병원 같은 곳일 확률이 훨씬 더 높다. 현재 미국 전역의 간호사들은 업무량 과다와 자긍심 결여 속에서 근무한다. 직장 상사들이 간호사들을 치켜세우는 발언은 입 발린 말일 뿐이다. 미 간호학 저널의 다이애나 메이슨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 입사한 간호사들은 그런 분위기를 참지 못한다. 그들은 과거에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간호사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병원을 퇴직한다.” 미 병원협회(AHA)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미국 전역의 병원에서는 정식 간호사가 11만8000명(수요 인력의 8.5%)이나 부족하다. 환자들에겐 나쁜 소식이다. 헬스 어페어지(誌)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정식 간호사를 충원할 경우 연간 6700명의 환자가 죽음을 면한다. 정말로 부끄러운 현상은 병원 간호사 업무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UPMC 셰이디사이드 병원의 경우처럼 이런 상황을 바로잡는 일은 가능하다. 가장 큰 업적을 세운 사람은 셰이디사이드 병원의 부원장인 타미 메리먼이다. 그녀는 간호 업무의 질적인 향상과 혁신을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 간호사 출신인 메리먼은 복잡한 병원 절차가 간호사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9년 전 UPMC 셰이디사이드 병원의 수간호사가 됐을 때 여러 해결책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간호사들이 중앙 의료용품 보관소에 다녀오는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메리먼은 “평균적인 병원에서 간호사들은 1년 동안 지구 둘레만큼의 거리를 걸어다닌다”고 말했다. 그래서 거즈·변기 같은 기초 의료용품들을 병실에 비치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간단한 시정 조치만으로도 한 병동에서 간호사들이 의료용품 보관소에 다녀오는 횟수는 1주일에 700회 이상 줄었다. 수술 병동에 간호사 2명을 파견해 오로지 수술 환자의 입실 절차만을 전담하도록 한 조치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줄여줬다. 그 전에는 간호사가 정맥주사기를 가지러 가거나 환자를 제시간에 검사실로 데려다 주던 도중에 새로 도착한 환자의 입실 절차에 매달리곤 했다. 입실 절차는 최대 45분까지 걸리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그 간호사의 다른 환자들을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업무를 분담시켜 모든 간호사의 일정은 좀 더 예측가능한 흐름을 보이게 됐다. 초과근무 시간도 16% 줄어들었고, 덕분에 절약된 비용은 추가로 파견된 간호사 2명의 인건비를 상쇄하고도 남았다. 메리먼은 그 같은 개혁이 그저 상식에 따른 조치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매우 진보적인 개혁이었다. 2003년 셰이디사이드는 ‘병상 간호 개혁’(TCAB)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선발된 3개 병원 중 한 곳이 됐다. TCAB는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과 보건증진연구소(IHI)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그 목적은 간호사가 환자들에게 소홀해지도록 하는 비효율적인 요소들(예컨대 불필요한 서류업무)을 없애고 팀워크를 향상시켜 간호사 보유율을 높이는 일이다. 요즘 메리먼은 금요일마다 자유롭게 새로운 생각을 짜내려는 회의를 연다. 그 회의에는 간호사와 간부들, 심지어 환자 가족들도 참석해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메리먼은 또 TCAB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병원들과도 생각을 나눈다. 그 결과 수많은 개혁 방안이 나왔다. 이제 셰이디사이드 병원은 산소 공급 장비를 수술이 끝난 환자의 병실에 남겨둔다. 야간에 다시 필요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조치다(재설치에 드는 시간을 20분 절약한다). 만일 간호사들이 담당 업무가 너무 많아 도움을 필요로 할 경우엔 자신의 의료용품 운반수레 위에 붉은 깃발을 꽂아 놓는다. 녹색기를 꽂아둔 간호사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도움을 줄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황색기를 꽂은 간호사는 맡은 업무가 있지만 급한 일은 아니다. 메리먼은 심지어 환자 가족들에게도 응급 의료팀을 소환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는데 병원 측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고 가족들이 느낄 때를 배려한 조치다. 그녀는 “가족만큼 환자를 잘 보살피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허다한 업무에 치여 정신이 없는 간호사들에게도 이 제도는 안전망을 제공한다. 간호사 베스 쿠즈민스키는 “다른 중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환자 가족이 이런 방식으로 즉각적인 도움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제도들을 비롯한 수십 가지의 혁신적 아이디어는 그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다. 셰이디사이드뿐만 아니라 현재 TCAB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10개 병원 모두에서 그렇다. 로스앤젤레스의 세다스-시나이 병원과 휴스턴의 MD 앤더슨 암 병원도 그런 병원이다. 이들 10개 병원 모두에서 간호사의 직업 만족도가 향상되고 초과근무가 줄었다. 정식 간호사의 이직률도 2003년의 연간 15%에서 요즘엔 4%로 대폭 낮아졌다. 이는 병원 측의 비용 절감으로도 이어진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간호사가 근무시간 중 환자를 직접 돌보는 평균 시간이 40%에서 52%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환자들의 낙상(落傷)·욕창(褥瘡) 감소, 그리고 치명적인 합병증으로부터 환자를 구하는 확률의 증가로 이어졌다.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의 고위 프로그램 책임자인 수전 하스밀러는 “모든 병원이 TCAB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간호사와 환자 모두를 위해 그런 일은 빨리 일어날수록 좋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의대생들, 교육부 내년 복귀 조건 '휴학 승인에 "협박"

2"사교육 무시 못 해"...서울대 합격자 '이 지역'에서

3‘전자산업 쌀’ 살핀 이재용 회장, 필리핀 생산 거점 찾아 “기회 선점”

4파두, 국내 반도체 제조사에 SSD 컨트롤러 공급…31억원 규모

5"올여름 정말 길었다"...100년 새 여름 한 달 늘어

6풍성해진 문경새재, 문경약돌한우축제에 10만여 명 다녀가

7"반려동물과 함께 즐기는 축제 한마당" 포항시, 오는 12일 반려동물문화축제 개최

8"자연속 삶 꿈꾸는 중장년층 로망을 현실로" 경북 영양군에 귀산촌 시범마을

9"게임·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 한자리에" 대구콘텐츠페어 오는 12일 개막

실시간 뉴스

1의대생들, 교육부 내년 복귀 조건 '휴학 승인에 "협박"

2"사교육 무시 못 해"...서울대 합격자 '이 지역'에서

3‘전자산업 쌀’ 살핀 이재용 회장, 필리핀 생산 거점 찾아 “기회 선점”

4파두, 국내 반도체 제조사에 SSD 컨트롤러 공급…31억원 규모

5"올여름 정말 길었다"...100년 새 여름 한 달 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