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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의 재기를 꿈꾼다

명왕성의 재기를 꿈꾼다


미국 천문학자들, 태양계 행성 지위 되찾아주려 애써 미 애리조나주 플랙스태프에 위치한 로웰 천체관측소의 밥 밀리스 소장에게 명왕성은 여전히 태양의 아홉 번째 행성이다. 명왕성을 태양계에서 퇴출시킨 국제천문연맹(IAU)의 결정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해왕성 너머에 있는 ‘X 행성’의 존재를 수학적으로 예측한 사람은 로웰 천체관측소의 설립자인 퍼시벌 로웰이었다. 1930년 그 행성을 발견하고 ‘플루토’[로마신화의 ‘하계(下界)의 신’]란 이름을 붙여준 곳도 로웰 관측소였다. 다른 중요한 발견도 했지만 관측소의 대표적 업적은 역시 명왕성 발견이다. 이 때문에 밀리스는 IAU가 지난 여름 투표에서 명왕성을 제외하는 식으로 ‘행성’을 정의하는 일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명왕성이 원래 지위를 되찾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명왕성이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밀리스만이 아니다. 다른 천문학자들도 행성에 관한 IAU의 새 정의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비단 명왕성뿐 아니라 바위와 얼음 또는 가스를 많이 가진 우주 물체에 모두 그런 정의를 적용하면 잘못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졌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태양 주위를 돌거나 멀리 떨어진 별이건 모두 그렇다. 비록 IAU는 2009년까진 다시 정기총회를 열지 않지만 ‘행성’에 관한 정의를 새로 내린다는 취지로 내년에 임시총회를 열자는 방안들이 제기된다. 그렇게 되면 명왕성이 기존의 지위를 회복할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그 노력을 주도하는 사람은 애리조나주 투산에 위치한 행성과학연구소의 마크 사이크스 소장과 2015년 명왕성에 도달할 예정인 우주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의 주요 책임자 앨런 스턴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선 여전히 명왕성을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이라고 부르는 스턴은 “IAU의 정의는 너무 많은 측면에서 결함이 있기 때문에 더 훌륭한 정의가 나올 때까지 3년간을 못 기다리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명명법을 둘러싼 이런 싸움은 천문학의 세부 영역에서 생기는 견해 차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밀리스 소장과 스턴처럼 행성의 구성과 지질학적 과정에 관심이 있는 행성 과학자들과, 행성의 질량과 궤도를 연구하는 ‘역학자(力學者)’ 간의 이견 때문이다. IAU의 정의에 따라 행성에서 제외될 우주 물체들은 “각기 매혹적이고 독특한 조그마한 세계”라고 밀리스는 말했다. 그는 1988년 명왕성의 (미세한) 대기(大氣)를 발견한 팀의 일원이었다. 당시 팀원들은 명왕성이 저 멀리 떨어진 별 앞을 지나는 순간 그 별에서 나오는 빛이 갑자기 어두워지지 않고 서서히 어두워지는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명왕성에 대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IAU의 새로운 정의는 역학자들의 입김을 보여준다. 새 정의에 따르면 행성이 행성으로 인정받으려면 자신의 궤도 주변 천체들을 쓸어버렸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체 중력이 지배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왕성은 이 정의에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명왕성의 궤도는 해왕성 저 너머에 있는 ‘카이퍼 벨트’(산이나 대륙 크기만 한 수천 개의 얼음 덩어리가 흩어져 있음) 속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해왕성 너머에 위치한 카이퍼 벨트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물체도 역시 행성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른 별들의 주위를 맴도는 ‘행성들’도 마찬가지로 제외될 듯하다. 그런 ‘행성’은 현재까지 약 200개가 발견됐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는 별들조차 지구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그 별의 주위를 도는 물체가 궤도 주변의 바윗덩이 등을 정리했는지 여부는 파악이 영원히 불가능할지 모른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사소한 논란처럼 보인다. 예컨대 토마토가 과일이냐, 야채냐를 결정하려고 개최하는 회의 같다. 그러나 여기엔 자존심이 걸려 있다. 미국이 발견한 유일한 행성인 명왕성의 지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미국 학자들이 주도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실 일부 천문학자는 명왕성의 지위를 빼앗으려는 표결에 반미주의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사석에선 제기한다. 전문가들의 자존심(쉽게 말해 자금지원 문제)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밀리스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자신의 연구 분야이자 로웰 관측소의 전문 분야인 지상 망원경을 통한 태양계 연구가 수많은 무인 행성 탐사선이나 지구 궤도를 도는 망원경 탓에 무용지물로 전락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카이퍼 벨트의 발견은 지상 망원경들에 예측가능한 미래까지 충분한 일거리를 제공했다. 10만 개를 넘을지 모를 새로운 우주 물체를 발견하고 그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는 일이다. IAU의 새 정의는 “요즘 행성 연구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인 카이퍼 벨트 공간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의 망토”를 씌우는 듯하다고 밀리스는 말했다. 그렇다면 명왕성은 제 아무리 작고 멀리 떨어진 별이지만 스스로 막강한 친구 몇 명을 확보한 셈이다. 명왕성은 스스로 세계의 천문관과 교실에 모형이 진열되도록 많은 역경을 이겨왔다. 로웰 관측소에서 견습직으로 일하던 클라이드 톰보란 이름의 젊은 과학자가 발견하게끔 자신을 드러내기까지 했다. 비록 퍼시벌 로웰이 명왕성의 존재와 위치를 추론할 때 사용한 계산이 잘못된 자료에 근거했다는 사실이 수십 년 뒤 밝혀졌지만 말이다. 사실 그 조그만 행성은 딱 맞는 시기에 우연히 그 자리에 있어 보여졌을 뿐이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동생의 모습을 인산인해의 수퍼보울 경기장 사진에서 다시 찾아내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런 별의 퇴출은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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