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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둘째 형은 포커 치며 사람 골라”

[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둘째 형은 포커 치며 사람 골라”

김우중 회장의 가계(家系)를 얘기할 때 형제들이 하나같지 않게 저마다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만 둘째 형 김관중(전 대창기업) 회장은 유별나다 할 정도로 집안에서도 많은 화젯거리를 남기고 있다. 김우중 회장이 아예 둘째 형님을 만나 얘기를 들으라고 했을 만큼 김관중 회장은 군인의 길을 걸어왔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성장에서부터 다른 형제들과는 어딘가 달랐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우리 형제하고 돌연변이처럼 독특한 분이라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특별나요, 허허허. 사고(思考)의 폭도, 행동하는 범위도 워낙 넓지만 다른 형제들이 볼 때는 전혀 기업인 같지도 않아. 이런 일도 있었어요. 나는 상상도 못했는데, 생일이 되면 형제들은 물론이지만 회사의 이사급 이상을 전부 집에 초대를 해요. 그래놓고 축하 인사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준비했던 만원짜리 신권을 30만원이든 50만원이든 봉투에 넣어 주고는 음식상 차린 거 다 먹을 때까지 전부 둘러앉아 포커든 고스톱이든 하라 그거요. 거기서 인물을 고르더라고, 허허허! 오락이지만 인간성이 다 나온다 그거지요. 다음번 인사 발령 때 진급할 사람을 거기서 찾아내는 거야. 형님은 그런 자리에서 아주 정확하게 보인다 거든? 나는 모르겠는데 그런 형님이에요. 허허허. 나도 그렇게 한번 해볼까 몇 번 생각 했다가 못했어. 우린 이사도 많지만 하여간 내가 흉내를 못 낼 정도로 거물이고 낭만파요.” 김우중 회장은 연방 웃었다. 실제로 김 장군(김관중)은 춤도 잘 추고 노래는 집안에서 따를 사람이 없을 만큼 마이크를 잡으면 선구자에서부터 막 흔드는 노래까지 30분은 독무대를 연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한 김 장군이 어린 시절에는 무척 개구쟁이였던 것 같다. “아버지와 헤어진 것은 경기고를 졸업하던 19세 때지만, 내가 형제 중에서 매를 제일 많이 맞았어요. 아버님의 교육이 워낙 엄하셨기 때문에 툭하면 눈 밖에 벗어나는 짓을 해서 종아리가 얼얼하도록 얻어맞았어요.”

32년간 청렴한 군 생활 아버님한테 벌은 도맡아서 받으셨습니까? “핫핫. 뒷간(화장실)의 ‘퍼내기 작업’은 노상 내가 맡아서 했지요. 장작을 패게 하는 벌도 받았고, 밭갈이도 시키셨고. 그러나 그건 꼭 벌이 아니라 평소에도 교육적인 면으로 자주 시키셨어요. 어떨 때는 두 시간 세 시간씩 꿇어앉아 먹을 갈아야 했던 적도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것이 교육이었던 것 같아. 아, 매는 우중이 하고 (보통 때는 김 회장이라고 불렀다) 엇비슷하게 많이 맞았을 걸? 핫핫핫.” 이러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김 장군은 6·25가 터지자 지금은 없어진 생도 1기로 입대해 1981년 준장으로 전역을 하기까지 32년간을 복무했다. 그런 때문에 김 장군에 대한 일화는 긴 세월 탓도 있겠지만 군 생활에서 많이 남아 있다. 소령 때 그는 군인이면서도 미국 LA 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근로 장학생으로, 말하자면 접시 닦고 노동하고 하우스 보이 등을 하면서 공부하는 일꾼 유학생인 셈이었다. 그때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이 김재명 전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김 장군은 이 시절에 터득한 것이 성실이었다. 그는 성실의 중요함을 철저히 터득했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해 일에 실패하는 경우는 적으며, 늘 부족한 것은 성실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때의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이 성실하면 돈도 생기고 지(智)도 생기고, 사람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의 미국 생활에는 늘 친구들이 주변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아마 친구가 많이 붙어 있기로는 막내 동생 성중(成中) 회장과 막상막하가 아닐까 모르겠다. 성실하다 보니 친구가 따라붙는 것이다. 어쨌건 그는 3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군 생활을 계속 했고, 6·25 전쟁 중에는 그 유명한 강원도 인제 북방 854고지 전투에서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하면서도 악을 쓰고 버티던 악바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훈장에 연연하는 스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858고지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면 무공훈장을 받게 돼 있었다. 그렇지만 두 번이나 부상을 당했고, 오늘날에도 이름이 남아 있을 만큼 치열했던 격전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나 그는 받은 훈장이 없었다.

▶김관중씨는 자신이 모셨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을 ‘존경할만한 분’으로 기억한다. 사진은 정승화 전 총장(왼쪽)과 각 지구 계엄지휘관들이 국립묘지 관리소장의 안내로 박정희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하고 있는 모습.

오히려 훈장을 상신하는 행정장교들이 훈장은 더 많이 받는다고 그러던데 그래서 훈장이 없습니까? “핫핫핫, 그럴 리가 있나. 부하 전우의 공이 더 컸으니까 당연히 부하를 줘야지요. 나한테 훈장 상신한다고 연락이 왔지만 먼저 간 전우도 많고, 나보다 더 심하게 부상을 입은 전우도 있는데 뒤에서 진격하라고 소리친 사람이 염치없이 어떻게 받아. 핫핫핫.” 마침 대창기업 중역으로서 같은 부대에서 복무했던 사람이 당시를 회고했다. “김 장군님은 모군단에 계실 때 막말로 재벌 김우중 회장의 형인데도 아는 사람이 몇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군인 이외의 세계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나타내는 일도 없었죠. 그리고 정말 대단했습니다. 운동경기를 비롯해 사격대회니 뭐니 대회가 있다 하면 모조리 휩쓸었으니까요. 성봉부대기는 말할 것도 없고 모군단의 우승기는 전부 독차지했었습니다.”

“동생한테 술값 많이 얻었지” 아무튼 사회로 나온 김 장군은 대창기업 회장에 취임한 뒤부터 소위 말하는 ‘권력층’ 근처에는 의식적으로 가기를 꺼렸다. 장군으로 예편했으면 가까운 전우가 오죽 많았겠는가? 그럼에도, 그를 아는 사람들은 김 장군이 군 시절 인맥을 내세우며 비즈니스를 위해 나타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게 처신하는 것은 옛 전우나 권력층 인사들에게 정신적인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배려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동생 김우중 회장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르겠다. 자칫 처신을 잘못했다가 결과적으로 동생한테 누를 끼치게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장군이 별을 달 때도 동생의 영향력은 결코 활용한 적이 없다고 했다. 외부의 영향력을 활용한다고 해서 장군 심사에 도움이 되던 시절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 장군의 경우는 오히려 모시고 있던 정 승화(전 참모총장) 장군이 적극 추천했다는 것이다. “내가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해야 하는 시점인데 그쯤 되면 여기저기서 온갖 얘기가 다 나와요. 심지어 누구는 어떤 ‘빽’이 있으니까 별을 단다느니, 누구는 어떤 집안이라서 이미 결정이 났을 거라느니 하고 말이오. 근데 나는 진급 심사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부터 일부러 주말이 되면 동료하고 술 마시러 다녔어요. 왜 술 마시러 다녔느냐, 진급에 관심 없고 제대할 사람이니까 괜히 동생 들먹거리지 말고 유언비어 퍼뜨리지 말라 이거지요. 그래서 동생한테 용돈은 많이 얻었지. 술값 내느라고. 핫핫핫.” 정승화 장군을 모시고 있었습니까? “그랬지요. 대령 때 그분이 군단장 하셨으니까. 근데 그분 참 존경스러운 점이 많았어요. 정승화 장군께서 공개적으로 그러시더라고. 진급 심사가 있으면 굉장히 예민해지고 말 한마디라도 상당히 조심하는 게 대부분이거든? 그런데 장군은 농사짓는 집안에서도 나와야 하고, 재벌 가문에서도 나와야 하고, 공무원 집안에서도 나와야지 안 된다는 집안이 있어서는 군이 절대 발전할 수 없다, 이러시는데 내가 감명을 받았어요. 맞는 말 아니요? 자격이 된다면 집안이 무슨 상관이오. 그러고 나서 나는 아예 기대도 안 하고 제대해서 뭘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진급이 되었더구먼. 안 된 사람들한테 어찌나 미안한지 말이오. 그래서 나는 진급 술을 산 게 아니라 위로주를 샀어요.” 정 장군이 회장님 승진에 영향을 줬겠지만 그래도 김우중 회장이 형님을 생각하지 않을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동생도 노력을 했다고 그래요? (들은 얘기가 없다고 하자)그런 건 워낙 말이 없는 동생이니까 모르지. 또, 동생이야 나도 모르는 사람을 원체 많이 아니까, 아들 군대 보내놓은 부모의 심정처럼 형이 군에 있다는 정도로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요. 그건 대우 회장이니까, 더 이상 깊숙하게 얘기하면 도리어 역효과요. 장군 심사는 엄정해요. 분명한 건 동생한테 술값을 많이 얻어 썼지. 핫핫핫. 정승화 장군이 점수를 많이 줬을 겁니다.” 에피소드지만 김 장군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었다. 김 장군의 정승화 장군과 인연은 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예편하고 대창기업을 경영하고 있을 때였다. 10·26과 신군부의 반란으로 총장에서 물러난 정승화 장군이 자식 문제를 김 회장(김관중)과 상의했다. 그것도 편지를 통해서였다. “어버이 심정은 다 같은 거 아니오. 정 총장이 그런 처지가 됐으니 자식도 충격을 받았을 것 아니겠어요. 정 장군께서도 괴로우셨겠지. 자식 잘되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어요. 길게 설명할 것 없고, 정 총장님 편지 받고 내가 5층 회장실(김우중)로 내려갔어요(대창기업이 대우빌딩 16층에 있었다). 동생한테 무조건 그 친구(정 총장 아들)를 대우에 입사시켜 해외 지사로 내보내라고 했지요. 동생이 웃기만 하고 쳐다보면서 말을 안 해요. 그러더니 형님, 한 가지만 물어보자고 그래요. 도대체 누군데 형님이 직접 내려와서 그러시냐고.” 보통 때는 회장님이 안 내려가시는 모양이지요 ? “평소에는 내가 볼 일이 있어도 동생이 꼭 올라오고 그랬지요. 김우중 회장이 정말 깍듯이 하는 동생입니다. 나도 많은 기업인을 보게 되고 얘기도 듣고 하지만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참 바르고 예의가 깊어요. 전경련 회장을 할 때도 젊은 나이에 했던 편이지만 1세대 창업주들을 한번도 소홀히 대한 적이 없어요. 하여간 도대체 누군데 대우에 입사를 시키고 해외 근무를 시키라고 하느냐면서 굉장히 의아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시침 딱 떼고 첫사랑 했던 여자의 아들이라고 했지 뭐. 핫핫핫. 정 장군님이 부탁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 믿고 나한테 부탁을 했는데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회사는 또 원칙이 있고 룰이 있다지만 그걸 못 들어주면 회사 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어요? 그러고 인간사가 어찌 되겠소. 나는 그렇게 사는 사람이야. 되게 문제가 많은 사람이지요. 내가? 핫핫핫.”

“ 막걸리로 빚은 청자 같은 사람 ” 회장님 부탁대로 입사시켜 해외근무를 하게 됐습니까? “제일 좋다는 곳으로 보내서 두 번이나 옮겨줬는데, 잘하고 있겠지 뭐. 허허.” 김관중 회장은 대우의 울타리로 들어서면 역시 철저한 기업가로 변한다. 몸에 밴 습관 탓에 현장점검을 누구보다 철저히 하는 스타일이지만 회의 주재는 대우 형제 중에서 가장 짧고 적게 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내가 주재할 때는 전부 중역들이 참석하는 거 아니오. 중역들은 나보다 현장 경험이 많고, 어떻게 해야 이익 창출이 더 되는지를 잘 알고 있는데 길게 붙잡아 놓고 회의할 게 뭐 있겠어요. 다만 늘 이 얘기는 하지요. 1억원 남기려고 평생 3000만원 모아 내 집 마련한 사람들 가슴에 못 박는 공사는 절대 하지 말라고. 철저하게 시공하라고.” 대우 5형제 중에 사실상 맏형처럼 처신했던 김관중 회장은 믿기지 않겠지만 집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형을 김우중 회장이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김 회장이 방배동으로 이사하면서 신문로에 있던 자신의 집을 형에게 준 것이다. 물론 김관중 회장도 훗날 성북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동생이 준 신문로 집에 살면서 여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랬던 김 회장이 대우 사태로 동생이 어려움을 겪자 제일 먼저 자진해 대창기업을 정리해 동생을 지원하면서 손을 털었다. 가족은 김추자 여사와의 사이에서 선경·선창·선운(딸)·선준 등 3남1녀. 아무튼 김관중 회장의 인물평은 ‘막걸리로 빚은 청자’라고 하면 근사치가 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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