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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결혼 늦어진 게 군대 탓일까

[양재찬의 프리즘] 결혼 늦어진 게 군대 탓일까

지난해 말부터 군 복무 기간 단축 문제가 이슈로 등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평통자문회의에서 “군대에 가서 몇 년씩 썩히지 말고 그동안에 열심히 활동하고 장가를 일찍 보내야 아이를 일찍 낳을 것 아니냐”고 발언하고 나서다. “결혼 빨리 하기 제도, 직장에 빨리 갈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바꿔주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지체가 된다”는 대통령의 말은 맞다. 그런데 군 복무 기간을 단축한다고 결혼을 빨리 하고 아이도 일찍 많이 낳을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첫 직장을 잡는 나이(入職 연령)는 27.2세.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22.1년)보다 5.1년이나 늦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이렇게 출발부터 늦으니 외환 딜러나 애널리스트 등 젊은 머리가 팍팍 돌아가야 하는 분야에서 경쟁력이 처지기 십상이다. 입직 연령이 늦은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복합병 때문이다. 또 그 병은 대학입시 및 교육, 일자리 문제와 관련돼 있다. 당장 ‘고교 4학년생’으로 불리는 대입 재수생이 16만∼18만 명이다. 수능시험 응시생의 4분의 1이 넘는 이들이 먼저 입직 연령을 1년 정도 늦춘다. 대학에 들어간다고 앞날이 환해지는 것도 아니다. 영어가 안 되면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세상, 어느새 대학 재학 중 해외 연수는 필수가 됐다. 여기서 또 6개월 내지 1년 더 입직 연령이 늦어진다.
더구나 외환위기 직후 나빠진 취업 여건이 도무지 나아지질 않았다. 그 결과 대학가에 졸업을 미루는 ‘NG(No Graduation=졸업 유예)족’이 생겨났다. 4학년을 ‘죽음의 사(死)학년’으로 부르며 학사모를 늦게 쓰려 애쓴다. 어느새 ‘1년 휴학’은 통과의례가 됐고, 군 입대 부담이 없는 여학생들도 3학년이 되면 휴학하는 경우가 많다. 2005년 4년제 대학생 186만 명 중 휴학생은 59만5700여 명. 셋 중 하나가 휴학생이다. 남학생의 평균 재학 기간이 7년, 여학생은 4년7개월로 ‘4년제’ 대학 간판이 무색해졌다. 이 밖에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수험생이 수십 만 명에 이른다. 이런 사정으로 첫 직장을 잡는 나이가 자꾸 늦어지니 결혼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중반까지 남자 나이 스물여덟을 넘기면 노총각, 여자가 스물다섯을 넘기면 노처녀 소리를 들었다. 이 무렵만 해도 군에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으니 남자 나이 스물여덟 전후에 결혼이 가능했다. 그런데 외환위기와 취업난은 결혼 전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스물여섯을 넘겼고, 남성은 취업난이 더욱 심각해진 2003년 서른을 넘어섰다. 90년부터 2005년 사이 15년 동안 초혼 연령은 3년가량이나 늦어졌다. 그런데 군 복무 기간은 육군을 기준으로 89년 33개월에서 2003년 24개월로 9개월 단축됐다. 군 복무 기간이 결혼과 첫 아이를 낳는 시기가 늦어진 결정적 요인이라면 그 사이 초혼 연령이 적어도 몇 달은 빨라졌어야 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 갔다. 이는 다들 대학에 들어가려 드는데 대학을 나와도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입직 연령의 고령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 결혼연령이 늦어지고 그만큼 출산 기회도 줄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집값이 뛰면서 전세 비용 부담이 커진 점도 결혼 연령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장가 빨리 보내기 정책의 으뜸은 경제 활성화로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 고등학교를 나온 현장 기능인력이 대접받도록 ‘학력지향’이 아닌 ‘능력지향’사회를 만들고, 우리 대학 교육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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