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된 ‘금융감독체계 개편’…다시 수면 위로
- [韓 금융의 길을 묻다 ] ③
17년 유지된 ‘금융위-금감원’ 체제…이원화 구조 개편 가능성 여전
“금융위→기재부, 금감원→분리…금융정책 강화·금융소비자 보호 차원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정권 교체기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정책과 감독의 분리(이원화)냐, 일원화냐를 두고 엇갈리는 주장 속에 수차례 시도는 있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흐지부지된 전례가 반복됐다. 일각에서 정책과 감독의 비효율적 분리, 기민하지 못한 제도 대응이 K-금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산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과연 이번에는 실질적인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골자는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보유한 권한 등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최근 10대 정책 공약에 넣지는 않았지만,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은 독립된 금융감독위원회(신설)에 맡기는 이원화 구조 개편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을 비롯한 금융권에서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라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도 관련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행 체제는 금감원이 1999년 외환위기 이후 통합형 감독기관으로 출범한 이래 2008년 금융위 신설과 함께 지휘권이 이관되며 지금의 구조가 형성됐다. 금융정책은 금융위가, 감독은 금감원이 맡고 있는 ‘이원화 구조’지만, 금감원은 법적 독립성이 없어 사실상 금융위의 지휘 아래 놓여있다. 이런 구조는 감독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금융정책 추진과 현장 실행 사이의 괴리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원화 혹은 독립기구 신설이 언급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회를 금융위로 바꾸면서 감독 기능은 산하 금감원에 분리시켰지만,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이 체계를 유지했고 문재인 정부 역시 큰 틀에서 변화는 없었다.하지만 매번 대선 캠프에서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나 ‘정책과 감독의 충돌 해소’를 명분으로 체계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대선에서도 여야 주요 후보 모두 금융감독체계 재정비를 공약했다. 이 같은 개편론이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와 감독·검사를 수행하는 금감원 간 역할 충돌 때문이다. 금융위는 정책 수립과 동시에 금감원 감독권을 행사하지만, 금감원은 법적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 ‘정책 종속형 감독’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금감원이 자율적으로 검사에 나서거나, 금융위 입장과 다른 방향의 소비자 보호 조치를 할 경우 ‘이견 조율’이라는 이름으로 견제가 가해지는 일이 빈번했다. 이러한 구조는 현장과 ▲괴리된 정책 추진 ▲감독 실효성 저하 ▲그리고 금융소비자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기능별 개편’이냐 ‘일원화’냐…정책·감독 충돌
개편 방향을 두고도 금융권 안팎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금감원 기능을 통합해 감독 기능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 경우 책임소재가 명확해지고, 감독의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기능별 감독체계’를 주장하는 쪽은 은행·보험·증권 등 업권별 구분 없이 리스크 중심으로 통합 감독하자는 입장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강화된 ‘거시건전성 감독’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학계와 정책연구소인 싱크탱크에서는 영국의 건전성 감독청(PRA)과 금융감독당국(FCA)처럼 이원화를 유지하되 감독 주체의 법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체계에서 금감원은 독립된 법인임에도 금융위원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이는 정치권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이며, 실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금감원장 교체와 정책 방향 선회가 반복됐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감독 기관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좌우되는 한 금융시장 안정성과 소비자 보호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개편 논의가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도 금융당국 체계 개편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빅테크·핀테크의 급성장 ▲디지털 자산 시장의 확장 ▲인공지능(AI) 기반 리스크 관리 등 기존 금융감독 패러다임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감독체계 개편은 단지 조직개편이 아니라, 금융산업의 방향성과 철학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의 문제”라며 “기능 중심이든, 조직 일원화든 핵심은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소비자와 산업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체계”라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감독기구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흐름 역시 강해지고 있다. 영국은 2013년 금융서비스청(FSA)을 폐지하고, 건전성 감독을 담당하는 건전성 감독청(PRA)과 소비자 보호 중심의 금융감독당국(FCA)으로 이원화했다. 일본도 금융청(FSA)이 내각부 산하의 독립 기관으로 자리 잡아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돼 있다. 한국은 여전히 정책기관 산하에 감독권한이 종속된 구조로 남아 있어 제도적 독립
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다만 현실적인 개편 시점이 정권 초기 ‘골든타임’을 벗어나면 급격히 동력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 ▲국회 입법 절차 ▲부처 간 이해관계 ▲내부 반발 등 복잡한 조율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정권 초반에 정치적 동력과 여론의 공감대를 끌어내야 실현 가능성이 생긴다”며 “중장기 과제로 미뤄질 경우 또다시 ‘논의만 반복된 개편론’으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매 대선마다 등장하는 ‘금융당국 개편’ 공약은 대개 정치 논리에 묻혀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실질적인 개혁 없이 자리 나누기식 재편에 그치거나, 개편이 더 큰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를 가로막았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제는 표를 얻기 위한 선언이 아닌, 금융시장 신뢰 회복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구조적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금융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지금이야말로 ‘근본적인 틀’부터 다시 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이준석 "결과 책임은 나…이재명, 경제 상황에 적확한 판단해주길"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재명 51.7% 김문수 39.3% 이준석 7.7% [방송3사 출구조사]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와!" 李 우세 출구조사에 시민들 `들썩`…金 지지층은 "무효야"[르포]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단독]프리드 인수한 웅진, 터키 렌탈 사업 정리…체질개선 속도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제2도약 청신호 SK바사, 후발주자서 선도 기업으로 입지강화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