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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키아’ 꿈꾼다

한국의 ‘노키아’ 꿈꾼다

▶세하의 첫 자원개발 사업인 사크라마바스 광구. 카자흐스탄 악토베 지역에 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최강자 노키아는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사실 별 볼일 없었다. 다각화를 통해 TV와 소형 컴퓨터를 생산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80년대까지는 임업제품과 펄프·종이 등을 생산해 온 지극히 평범한 회사였다. 노키아는 130년간 ‘펄프·종이’를 대변하는 회사였을 뿐이다. 하지만 92년 사장을 맡은 요르마 올릴라는 이 뻔한 회사를 어떻게 바꿀지 결단을 내렸다. 올릴라 사장은 통신산업이 21세기를 선도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도 없이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이미 대형 통신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며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다. 다들 노키아의 변신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노키아는 부동의 세계 1위 휴대전화 업체로 성장했다. 종이를 만드는 회사인 세림제지가 완전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노키아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사업 영역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세하’로 회사 이름까지 바꾸고 기존의 제지사업 외에 자원개발과 첨단소재, 환경, 문화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23년간 제지 외길에서 벗어나 카자흐스탄 유전에서 자원을 개발하고, 하수처리 기술로 환경산업에 나서고 있다. 또 일본 덴츠, 닛폰TV 등과 제휴해 첨단 공연장을 건립하는 등 문화사업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이 회사가 전통산업인 제지에서 벗어나 다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변화하는 환경 때문이다. 제지 사업의 경우 이미 중국의 추격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 이동윤 회장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중국에 밀리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인건비, 원자재 확보 면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환경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세하는 향후 제지 분야는 고부가가치 상품의 생산 및 판매 비중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환경과 문화사업에도 관심 문제는 기존 제지사업을 대체할 신사업이다. 세하 역시 각종 사업을 검토했다. 제지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90년대 중반에는 필리핀에서 조림사업도 검토했고, 한때 동해펄프 인수도 고려했다. 자동차 부품사업, IT사업 등 다양한 분야를 모색했다. 하지만 세하가 최종적으로 판단한 것은 자원개발 사업. 중국, 인도 등 거대 국가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지하자원의 수급 불균형이 점점 커질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2005년 6월 카자흐스탄의 악토베 지역의 2개 광구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세 개의 시추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는 낙관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다. 세하 측은 “지난해 말 두 광구 중 하나인 사크라마바스에서는 심도 4500m에서 석유가 분출됐고,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매장량이 많고 원유의 질이 좋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밝혔다. 세하 측은 자세한 매장량을 밝히지 못하는 것과 관련해 “카자흐스탄 정부의 엄격한 기준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발표가 다소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광구인 웨스트보조바 광구에 대해 “현재 4100m까지 시추가 진행됐으며, 인근 중국국영석유공사(CNPC)가 소유한 켄키약, 자나졸 광구 등에서 기존 생산 광구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희망적”이라고 밝혔다. 세하는 자원개발 산업이 성공할 경우 여기서 얻은 노하우와 자금을 기반으로 추가적으로 자원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또 제조업 분야에서는 첨단소재 산업으로 다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동윤 회장은 “첨단소재라는 방향은 정해졌고,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를 할지 스터디(study)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면 기술을 가진 기업을 M&A할 수도 있고, 외국의 기술을 도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세하는 향후 자원개발과 첨단 소재 사업을 주축으로 제지·환경·문화 사업을 이끌어 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변신은 이미 10년 전부터 고민해온 결과”라는 것이 김현준 부사장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노키아의 성공담 뒤엔 수없이 쓰러져간 회사들의 실패담이 숨어 있다. 세하가 성공담의 주인공이 될지, 실패담의 주인공이 될지 현재로선 장담하기 힘들다. 다만 변화하지 않다가 사라지는 회사가 되진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인터뷰-이동윤 세하 회장


“변화는 스트레스지만 안 하면 죽는다”

이동윤 세하 회장은 무림제지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무일 회장의 3남이다. 현재 무림페이퍼와 무림SP를 경영하고 있는 이동욱 회장이 친형이다. 이 회장은 90년대 중반부터 사업 다각화나 제지사업 이후의 신수종 사업을 고민해 왔다. 이 회장은 “바뀐 패러다임에 맞게 사업을 재구성하는 것이 나의 과제”라고 했다.

언제부터 사업구조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가?
“90년대 중반께 중국이 우리 시장에서 경쟁자로 바뀌었다.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뭔가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신사업을 구상했다. 원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펄프나 조림 쪽도 생각해 봤고, 정보통신이나 자동차부품 등도 생각해 봤다. 바이오나 IT업체에 투자도 했다. 하여튼 그때부터 뭔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사업구조 변경에 나선 때는 언제인가?
“범용 제지분야에서 최근 2~3년간은 경쟁이 아니라 완전히 밀리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신사업을 다각도로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경험이 쌓였다. IT나 바이오 등 이른바 ‘뜨는’ 사업도 검토해 봤다. 하지만 자원이 우리와 익숙했고 기회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원개발을 택한 배경은?
“우선 중국과 인도의 발전으로 자원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봤다. 두 나라 등장 이후 자원에 관한 이전의 통계자료는 다 찢어야 할 정도로 의미가 없어졌다. 그중에서도 석유의 공급 부족이 심했고, 상대적으로 여지가 있는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사업 구조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더라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려운 결정이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따져봤다. 우선 석유공사 등 오일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분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다. 최소 4~5년간 고유가가 지속되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행히 우리가 광구를 계약할 때는 조건도 좋았다. 타이밍이 좋았던 셈이다. 자금 조달도 고민거리였는데 다행히 해외 자금의 투자가 가능할 것 같다. 그래도 이런 큰 변화는 스트레스다. 그게 내 몫 아닌가?”

세하 정도의 규모로 자원개발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자금이나 인력, 노하우가 부족할 텐데….
“석유 메이저와 경쟁하는 건 아니다. 그쪽에는 그쪽 일이 있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이 있다. 경제성 있는 광구에서 성공하면 그게 성공이다. 투자 대비 수익률은 우리가 더 클 수도 있다. 인력이나 노하우 문제는 애로가 있다. 처음 하는 거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점점 노하우도 쌓이고, 인력도 확보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점이 줄어든다.”

향후 사업 구조도 자원개발 중심인가?
“자원개발이 주력사업 중 하나인 것은 맞다. 제지 쪽은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간다. 환경, 문화사업은 미래산업으로서 가치가 크다. 지금 있는 분야 외에 첨단소재 사업을 구상 중이다. 방향은 정해졌고, 어떤 소재 사업을 할지 연구 중이다. 중국, 인도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그쪽에 소재를 팔아야 한다. 정해지면 M&A, 기술 도입을 통해 진출할 것이다.”

앞으로도 몇 년간 변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 변하면 어떡하겠나? 제지업계에서는 우리가 빠른 편이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빠르다고 할 수도 없다.”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
“정해지지 않았다. 각 분야에서 강자가 되고 결실을 봐야 된다. 모든 분야에서 글로벌하게 결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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