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트랜스젠더도 햇빛 본다
한국의 트랜스젠더도 햇빛 본다
5월 19일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씨의 결혼 주례는 동아대 의대 김석권 교수가 맡는다. 1995년 19세이던 하리수씨는 김 교수의 집도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하씨는 “국내 성전환자 중에서 공개리에 결혼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인 듯한데 교수님을 꼭 주례로 모시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다. 김 교수도 “나에게도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응낙했다. 사실 두 사람은 한국 사회의 트랜스젠더들에겐 기념비적인 존재다. 하씨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예인이고, 김 교수는 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가장 많이 집도한 의사다. 김 교수가 수술한 성전환자는 하씨를 포함해 지금까지 240명에 이른다. 1986년이 처음이었다. 부산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 교수에게 어느 30대 남자가 찾아왔다. 여성이 되고 싶어 이미 5년 전 어디선가 남성의 상징을 절단했다고 밝혔다. 질 성형수술을 통해 보다 완전한 여성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말했다. 처음엔 김 교수도 성전환이 뭘 의미하는지 제대로 몰랐다. 외국 논문을 들춰보고, 의학 서적을 탐독한 끝에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없다는 판단이 섰다. 정신 세계와 육체가 따로 노는 사람에게 성전환 수술이 얼마나 절실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일부 동료 의사 사이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됐다. 당시만 해도 공개리에 성전환 수술을 한다고 나선 의사는 김 교수 말고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대학병원과 심지어 몇몇 개인병원에서도 성전환 수술을 할 정도가 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20년 전만 해도 의사들조차 모르던 성전환 수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해 살던 부부가 어느 한편의 성정체성을 뒤늦게 확인하고 함께 찾아와 수술을 상담할 정도로 많이 개방됐다.” 성전환자란 자신의 육체적 성이 아닌 다른 성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실제 수술을 받지 않아도 심리 검사, 호르몬 검사, 염색체 검사를 통해 수술받으려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 또한 트랜스젠더”라고 성형외과 전문의 한동균 원장은 설명했다. 미국 정신과학회는 성전환증을 “자신의 선천적 성을 지속적으로 불편하고 부적절하게 느끼며 성징을 제거하고 반대 성징을 얻으려는 집착에 2년 이상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성전환자는 동성애자나 여장남자와는 다르다. 한동균 원장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자신의 육체적 성을 인정하면서 동성을 사랑한다는 면에서 타고난 성을 부정하는 성전환자와 구별된다. 또 여장남자 중에서도 남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수술이나 외과적 치료를 통해 자신의 성을 바꿀 의향이 없는 이들도 많다. 한국에 성전환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당사자들이 노출을 꺼려 전수 조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의료계에서는 말한다. 선진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드러난 성전환 수술과 정신과 상담 사례를 통해 추정할 뿐이다. 성전환자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는 경우(MTF· Male to Female)와 여성에서 남성으로 전환하는 경우(FTM·Female to Male)로 나뉜다. MTF는 인구 1만 명당 1명(네덜란드)에서부터 10만 명당 1명(미국)까지, FTM 또한 3만 명당 1명(네덜란드)에서 40만 명당 1명(미국) 등 제각각이다. 1994년 미국 정신과학회는 정신장애의 진단과 통계 편람 제4판(DSM-Ⅳ)에서 이런 국가간 차이를 종합해 “MTF는 3만 명당 1명, FTM은 10만 명당 1명 정도 된다고 보고했다”고 이무상 연세대 의대(비뇨기과) 교수는 지적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의료계는 국내 성전환자가 대략 1000~1200명이라고 추산한다. 일각에서는 대한의사협회 통계라며 국내 성전환자를 4500명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한의사협회 홍보실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그런 통계를 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성전환 수술을 집도한 김석권 동아대 교수는 “아무리 많아도 1500명은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비를 따져보면 세계적으로 MTF와 FTM 비율이 3대 1 정도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는 비율이 높다고 추정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은 음경과 음낭을 잘라내고 질을 만드는 수술로 비교적 용이하고 성공률도 높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유방·난소 ·자궁·난관 등을 제거하고 남성 성기를 만들어 접합해야 하므로 보다 까다롭다. 동아대 성형외과의 경우도 MTF 수술이 FTM 수술보다 2배 이상 많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성전환자들은 혐오와 편견의 대상이었다고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은 말했다. 성전환 수술은 동아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몇몇 종합병원으로 한정됐고, 개인병원은 불과 한두 곳에 불과했다고 한동균 원장은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종합병원에서 그런 수술이 가능하다. 게다가 동아대 의대에는 미성년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의 성정체성을 상담하러 찾는 일도 늘었다. 최현숙 민노당 성소수자위원장은 “최근 숨겨온 자기 고민을 주변에 드러내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간다”고 말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 중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240건을 시술한 김석권 교수나 70건을 시술한 한동균 원장의 경우 원상회복을 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동균 원장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다. 어려서부터 수술을 갈구했고, 그 전부터 적응을 잘해왔기 때문이다.” 성정체성은 목숨을 거는 근본적인 선택(최현숙 민노당 성소수자위원장)이므로 성을 선택하는 결정 자체를 후회하는 경우는 없다. 단지 수술 후유증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은 간혹 있다. 또 종교적 성향이 강한 직장에 다니는 성전환자가 사내 압력과 주변의 시선 때문에 원상회복을 결심한 사례는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었다고 의료계는 전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몇 가지 상징적인 사건으로 성전환자를 향한 편견과 혐오의 감정이 조금씩 깨어져 나갔다. 우선 드라마, 영화 등의 주제나 내용에 성전환자들이 등장했다. 트랜스젠더 로커의 삶을 그린 뮤지컬 ‘헤드윅’은 조승우라는 걸출한 남자배우를 내세워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씨름선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천하장사 마돈나’도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트랜스젠더를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사회적으로 존재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 덕분이었을까. 하리수씨는 2002년 인천지법 결정으로 호적의 성별을 여성으로 변경했다. 1990년대부터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온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동성애자, 성전환자 운동 등으로 분화된 점도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다. 2004년엔 민노당이 성소수자위원회를 발족했으며 지난해엔 국내 최초 성전환자 인권운동단체인 ‘성전환자 인권연대 지렁이’가 결성됐다. 그 전까지는 소규모 친목카페로만 존재하다가 대외적인 활동과 권익 개선을 목표로 하는 인권단체로 발전한 셈이다. 지난해 정기국회에 노회찬 민노당 의원을 통해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출하기에 이른다. 특별법안은 성전환자들에게 일정한 요건 아래 성별의 변경을 인정토록 하는 내용이다. 국민 여론도 성전환자에게 개방적인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조인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과반수인 51.2%가 호적상 성별 변경을 찬성했다. 소수자의 인권과 행복추구권 보장 차원이었다. 반면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고 사회 혼란을 야기할지 모른다며 반대한다는 의견은 40.4%였다. 하지만 성전환자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아직도 심한 차별과 소외를 겪는다. 지난해 ‘성전환자 인권연대 지렁이’ ‘성적 소수자 문화 환경 개선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 ‘민노당 성소수자위원회’, 여성학과 대학원생 등이 참여한 ‘성전환자 인권실태 조사 기획단’은 100여 명의 성전환자를 대상으로 심층면접 혹은 설문조사를 벌였다. 9월 발표된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가려져있던 성전환자들의 실상이 일부나마 드러났다. 기획단에 참여한 최현숙 민노당 성소수자위원장은 “이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절대 빈곤층이며,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서 산다”고 평가했다. 예컨대 설문조사에 응한 성전환자 75명 중에서 호적상의 성별 변경을 못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64명(85.3%)이었다. 대부분 비용과 시간이 문제였다. 과거 성별 변경에 1000만원의 사례비가 요구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수술을 통해 생물학적인 육체가 바뀌었지만 판사의 판단에 따라 성별 변경이 허가되기도, 불허되기도 했다. 2004년의 경우 성별 변경이 22건 신청됐지만 10건만 허가됐다. 이런 이유로 실체적 성과 법률상 성이 일치하지 않는 불안정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꽤 있다. 그렇다 보니 직업 선택에서도 불이익을 받아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는 사례가 많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65.4%·51명)이 취업 과정에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었다고 했다. 자신의 외모와 상반된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했을 때 기업주가 나타낼 반응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따라서 2006년 6월 대법원의 결정은 성전환자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몇 가지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자신이 인식하는 성으로 육체를 바꾼 경우 호적상 성별 변경을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나아가 대법원은 2006년 9월 성전환 허가 기준을 정한 사무처리 지침(대법원 호적예규 716호)을 발표해 법률적 성전환 과정에 판사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를 가급적 제한했다. 이때를 전후해 성전환자 성별 정정 허가 신청도 현저하게 증가했다. 2005년 18건에서 2006년 8월 말까지 45건으로 크게 늘었으며, 9월 들어서는 한 달간 9건이 접수됐다. 허가 건수도 마찬가지여서 2006년 9월의 허가 건수는 8건으로 2005년 월평균 허가 건수 1.41건의 6배에 달했다. 그러나 성전환자 모임이나 인권단체는 대법원의 결정을 반기면서도 사무지침이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성별 정정을 허용하기 때문에 문호를 더욱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사무처리 지침에 따르면 미성년자나, 혼인한 사실이 있거나, 자녀가 있는 자는 허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병역기피나 범죄은폐 의도를 차단하고, 이미 형성된 가족관계의 안정을 감안한 조치들이다. 하지만 성전환자와 인권단체는 이런 지침이 상당수 선량한 성전환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우려한다. 최현숙 민노당 성소수자위원장은 주어진 성에 회의하다가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뒤에야 성정체성을 찾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또 성전환자들에 따르면 자신의 육체적 성에 느끼는 혼란과 위화감은 아동기부터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자각하는 많은 수의 성전환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미성년자의 성별 정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지침도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성전환자 단체와 민노당은 이런 논란이 관련 법률이 없는 데서 온다며 입법 활동에 주력한다. 지난해 9월 국회 법사위에 회부된 이래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은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을 17대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토록 압력을 가할 계획이다. 16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된 ‘성전환자의 성별 변경에 관한 특례법’(김홍신 전 의원)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다. 또 내년 총선에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인사를 민노당 비례대표 후보로 내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일본은 1970년대까지 성전환 수술을 불법화했다. 성전환 수술을 한 의사가 기소되기도 했다. 그런 일본이 2004년 들어 성전환자 성별 변경에 관한 특별법을 만들어 성전환자의 인권 보호에 나섰다.” 김석권 교수는 우리 사회도 결국엔 일본이 걸었던 길을 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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