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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슨 브론슨의 ‘음, 맨덤!’ 신화

찰슨 브론슨의 ‘음, 맨덤!’ 신화

그 CF가 나간 다음날은 정말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져 있더라”는 바이런의 말을 실감케 했다. 1970년 일본에서는 처음 텔레비전 광고에 할리우드 스타를 기용했다. 주인공은 그 유명한 찰슨 브론슨, 광고는 남성화장품 맨덤. 하나의 도박이었다. 그 이유는 벼랑 끝에 선 회사가 광고 하나에 올인했다는 점이요, 광고 자체도 파격적이었다. 그때까지 남성화장품 광고는 상긋하고 프레시한 느낌이 주류였다. 거기에서 일탈해 찰슨 브론슨이 가진, 옆에 가면 땀 냄새가 날 것 같은 서부 카우보이 이미지를 강조한 투박한 남성미로 나갔기 때문이다. 터부에 도전한 것이라는 평까지 들을 정도였다. 결과는 요즘 말로 대박. 맨덤도 살고, 회사도 살고, 찰슨 브론슨도 살았다(그 후 찰슨 브론슨의 인기도 대박이 났다). 광고 자체도 광고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기록됐다. 지금도 어느 연령 이상이면 그때의 “음, 맨덤!”하는 대사며 배경음악을 콧노래로 부를 수 있을 정도니까. 곧이어 이 회사는 회사 이름도 아예 ‘맨덤’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 회사가 상품명을 회사 이름으로 바꾼 것은 이것이 세 번째다. 창업할 때 이름 ‘긴쓰루(金鶴)’ 향수부터 그랬다. 창업이라면 회사 이름을 짓고, 나중에 상품이 나와야 할 텐데 이 회사는 반대였다. 1927년 일본은 금융 공황 상태였다. 이 향수 명가 오사키구미(大崎組)사도 도산할 지경이었다. 이를 보다 못한 도매상, 원료공급처들이 손잡고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이 회사에서 생산해 명성이 높은 ‘긴쓰루 향수’로 회사 이름까지 바꿨다. 이렇게 해 1927년부터 채권단이 경영을 시작했다. 거의 1세기 전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30년 후인 1958년에는 마닐라에 기술제휴 회사를 가동한다. 해외 사업의 첫발이었다. 국내외 사업의 호조로 이 회사는 두 번째로 회사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번에도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명품 머릿기름인 단초치크에서 딴 ‘단초’다. 그 후 인도네시아에도 합병회사를 차리고 수출 공헌 기업으로 통산부장관 표창까지 받았으나, 머릿기름 하나로 회사를 꾸려 나가기는 어려웠다. 다시 무슨 변화를 시도해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파격적으로 찰슨 브론슨을 모델로 기용해 남성화장품을 선보인 것이다. 맨덤이란, man(남자)과 domain(영역)을 합한 조어로 남자의 영역, 남자의 세계를 나타낸 말이다. 광고 효과는 금방 나타나 회사는 승승장구한다. 그때까지 남자들은 아침에 세수하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조금 멋을 부리는 남자라도 머릿기름을 바르는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수염도 잘 깎기고 피부도 지켜주는 셰이버폼이며, 화장수며 오데콜롱, 헤어스타일에 따라 머리모양을 다듬을 수 있는 머릿기름을 선보이자 남성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막 ‘남자’가 된 세대들이 우선 쓰기 시작했다. 마치 그것을 바르면 멋있는 남자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이렇게 해서 이 회사 제품들은 만들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회사 이름 3번 바꿔 변화 시도 하지만 잘나가자 ‘맨덤’은 자만심이 생겼다. 1978년 맨덤의 다른 야심작 ‘개츠비’ 시리즈 출시에 맞춰 지금까지의 대리점 경유 판매에서 판매점 직접거래(직판)로 바꾼 것이다. “이익 나누어 먹기”에서 “나 혼자 먹기”로 바꾼 셈이다. 이 체제는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손을 들어야 했다. 거의 도산 직전까지 갔다. 직판 경영에 따라 우후죽순으로 판매소가 개설되고, 그에 따른 추가 인원이 크게 늘어 인건비를 대기도 버거웠다. 게다가 판매소는 무조건 많이 팔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이익이고 뭐고 팔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돈을 쏟아부었다. 직원 이동이 잦아 어제 채용됐는데 오늘 소장이 되는 일도 빈번했다. 이런 상황에 물품 횡령, 대금 체납 등 갖가지 불상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니 겉으론 아무리 맨덤이 잘 팔려도 회사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릴 줄 알았고, 직접 팔면 이익이 커질 것으로 알았지만 그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1980년, 맨덤은 견디다 못해 경영진을 바꾸며 대수술을 단행한다. 우선 직판을 다시 대리점 경유 방식으로 돌렸다. 동시에 간부 직원도 대대적인 세대 교체를 단행했다. 판매소를 접으면서 대량 구조조정을 했다. 경영방식도 선대의 ‘원맨’ (예를 들어 직판으로 가자고 한 것도 명령 하나였으니)에서 사원들의 목소리를 수렴해 해결해 나가는 ‘전원 참여’ 방식으로 바꾸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맨덤이 시들해질 무렵 발표한 ‘게츠비’가 효자 노릇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사 이름을 게츠비로 바꾸지 않았다. 대신 ‘남자는 이런 거’라는 이미지의 맨덤에서, 남자의 이미지를 빼고 human(人間)과 freedom(自由)의 조어를 맨덤의 기조로 잡았다. 말은 바꾸지 않고 뜻만 바꾼 것이다. 살을 도려내는 아픈 경험을 교훈으로, 인간을 생각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우선 다시는 사원을 내치는 일이 없어야 하니까. 경영도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강 위에서 그저 떠내려 보내기만 하면 누가 줍든 줍는다는 예전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목조목 따지고 없는 것은 창출해 나갔다. 없던 니즈를 원(want)하게 만든 것이다.
예컨대 남성화장품은 여성화장품의 “비싸면 좋겠지.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어”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서 확실한 것을 보여줘야 소비자의 관심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콧기름 닦는 시트도 여성용은 너무 닦으면 오히려 피부에 좋지 않아 종이를 사용하지만, 남자용은 확실하게 묻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필름을 사용했다. 이 같은 경영혁신으로 99년에는 100억 엔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이 해 한국에 현지 합병회사도 열게 된다. 이 금액은 사실 놀라운 숫자다. 여성화장품에 비해 싼값으로 이 정도 매출을 올렸다는 사실은 판매 상품 개수로 따지면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화장품이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최근 매출은 일본 내 200억 엔, 해외 100억 엔가량이다. 제품 판매 개수로는 4억 개에 달한다. 혹시 당신 주머니 속에도 콧기름을 닦은 시트가 들어 있는지? 이렇게 해서 머리모양을 금방 고칠 수 있는 왁스며, 땀 냄새를 금방 지울 수 있는 스프레이 등이 남성의 가방 한켠에 자리 잡는 시대가 되었다. 그 속에는 지난 70년 발표된 ‘맨덤’도 끼어있다. 이제는 장년이 된 옛 청년들이 아직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옛 청년은 아직도 ‘단초’ 를 찾고 있다. 이런 ‘고지식한 팬’ 덕에 오늘의 ‘맨덤’이 튼튼한 기둥을 세울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휴먼 프리덤’으로 일본의 전체 화장품 시장은 1조5600억 엔에 달한다. 이 중 80~85%가 여성화장품 시장이다. 그러니 여성화장품 사업에 진출하려는 꿈이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예전의 맨덤으로는 여성화장품을 만들어도 바르면 왠지 수염이 날 것 같은 이미지 때문에 쉽지 않단다. 하지만 ‘휴먼’으로 이미지를 바꾸자 여성 고객들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한다. 맨덤은 어떻게 옛날의 ‘뻔지’를 갚을까. 우선 급할 때 밑에서 받쳐주던 해외시장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동남아에서 온 유학생 30명에게 매년 대졸 초임 정도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미 10년이 지났으니 300명이나 키운 셈이다. ‘맨덤’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욕심과 정열의 차이를 알게 됐다. 올해로 창립 80주년이 되었지만 노환은커녕 앞으로도 더 ‘아름다워’지리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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