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용 가구 1위 기업 퍼시스 손동창 회장
사무용 가구 1위 기업 퍼시스 손동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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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보급과 함께 투박한 철제 사무가구를 날렵한 기능성 제품이 대신하고 있다. 진화하는 사무가구의 중심에 퍼시스가 있고, 30년 한 우물을 판 가구인 손동창(59) 회장의 열정이 배어 있다.
사무용 가구 시장 1위 기업 퍼시스의 서울 오금동 사옥 가구는 특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중역 회의실 탁자와 의자가 영 기대 밖이다. 장식 없는 목재 탁자는 10년도 훨씬 더 된 것 같고, 의자는 윗부분 가죽이 사람들 손끝에 약간 닳아 있다.
국내 1위 사무용 가구업체 사무실 가구가 왜 이러냐고 물었다. 손동창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가구가 쉽게 망가지지 않아요. 가구도 도자기처럼 오래될수록 정이 들거든요.”
이런 손 회장이 2001년 인천공항에 100억원 규모의 가구를 납품할 때 “이제 우리도 공공장소에 좋은 시설과 가구를 놓을 때가 됐다. 국가의 관문이니 이익이 안 남아도 제대로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납품 과정에서는 공항 설계를 맡은 측과 옥신각신했다.
전체 디자인 컨셉트에 맞춰야 한다며 모서리가 각진 제품을 요구해서다. 제품의 안정성과 친환경성을 강조하는 손 회장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데 모서리에 부딪혀 다치면 어떡할 거냐며 디자인 변경을 요구했다. 설계를 맡은 데서 거부하자 공항안전관리공단에 직접 진정까지 하며 끝내 뜻을 관철시켰다.
좋은 제품이 가장 좋은 광고
“가구는 제품도 좋아야 하지만 관리가 안 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예요. 얄팍한 상술로 많이 파는 것보다 품질과 디자인을 인정받는 게 중요해요. 좋은 제품이 가장 좋은 광고입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사무실은 투박한 철제 가구가 점령하고 있었다. 무거운데다 녹이 슬기도 했다. 83년 이런 사무실을 즐겁게 일하는 쾌적하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바꾸겠다고 나선 기업이 퍼시스다.
“사무실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무실은 작업 공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삶 자체의 공간으로 확대돼야 합니다.”(퍼시스 창업 기념사)
손 회장의 가구와의 인연은 특별하다. 60년대 초 중학교에 다닐 때 서울 을지로5가 메디컬센터에 갈 기회가 있었다. 외국의 원조로 지은 병원이라 병원 가구도 유럽 쪽에서 들여왔다.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고급이었다. 어린 나이에 본 유럽산 가구는 충격이었다. 중학생 손동창은 여기서 “우리도 저렇게 만들어보자”고 다짐한다.
그는 경복중을 졸업한 뒤 일반 고교가 아닌 경기공업전문학교(현 서울산업대 전신)에 들어간다. 5년 동안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76년 부엌가구 업체 한샘에 디자이너로 들어가 생산과장까지 지냈다. 80년에 독립, 한샘공업을 세워 싱크대 부품을 만들다가 83년 퍼시스를 세우고 사무가구 시장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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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스는 창업 초기부터 확실한 전문화를 추구했다. 여기에 표준화 · 단순화를 더했다. 이른바 ‘3S’다. 전문화의 핵심은 디자인과 품질.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사무환경을 파는 회사’가 되려고 디자인에 역량을 집중했다.
원목 사무용 가구를 국내에서 처음 선보였다. 초기 시장 반응은 별로였다. 산뜻하다는 평은 들었는데 철제보다 값이 두 배 이상 비싸서다. 품질을 앞세워 외국계 회사를 공략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80년대 중반부터 PC가 보급되면서 맞춤형 사무가구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PC 환경에 맞는 사무가구가 뜨리란 예측이 적중한 것이지요. 덕분에 처음부터 시장을 확실하게 리드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처음 가구 연구소 만들어
퍼시스의 경쟁력은 끊임없는 연구 · 개발(R&D)에 있다. 89년 국내 최초로 가구 연구소를 세웠다. 58명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함께 일한다.
“우리는 매출의 몇 %로 못 박아 놓고 R&D 투자를 하지 않아요. 필요할 때 얼마든지 투자합니다. 배 고프면 밥 먹듯 말이죠. 회사가 굴러가도록 한 뒤 남으면 연구 · 개발(R&D)데 쓰면 되지요.”
1조원 규모의 국내 사무가구 시장에서 퍼시스의 점유율은 16%. 시장의 70%를 브랜드 없는 군소업체가 점유하는 것을 감안해 브랜드 제품만 따지면 점유율은 54%로 올라간다.
“디자인을 통해 사무가구의 한계와 고정관념을 떨쳐내야 합니다. 인체공학에 맞는 의자, 작업 동선을 고려한 책상이 디자이너와 엔지니어의 합작품입니다.”
대도시 외곽 공장에서 수공업으로 만든 엉성한 가구가 아니다. 인체공학과 정보기술(IT)을 접목해 기능성을 높이고, 소재와 디자인도 가구가 들어갈 건물과 공간에 맞춰 달리한다.
퍼시스는 99년부터 무차입 경영하고 있다. 창업 초기에만 외부 자금을 조금 썼을 뿐이다.
“(금융기관을 돌며) 돈을 빌러 다니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제품을 제대로 만드는 데 썼지요.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막고…. 금융 부채가 없으니 억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아요.”
중국 제치고 유럽 넘어서 세계 일류로
가구업계도 샌드위치 상황이다. 중 · 저가 제품은 중국 및 동남아산이 밀고 들어오고, 고가 브랜드는 유럽산에 치인다. 가구류 수입이 연간 8억 달러에 육박한다. 일찌감치 샌드위치 상황을 내다본 손 회장이 내세운 전략은 ‘극중월구(克中越歐; 중국을 극복하고 유럽을 뛰어넘자)’.
손 회장은 퍼시스 창업 초기부터 중국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 견문을 바탕으로 2003년 마침내 중대 결심을 한다. 중국에는 진출하지 않기로. 대신 국내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중국은 아직 기술력 · 인력 ·제품력에서 한국보다 한 수 아래다. ‘Made in China’로는 세계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을 공략하기 힘들다.
“해외에 아웃소싱해 돈 남기고 파는 업체들도 있지요. 마치 유통업으로 전환한 것 같아요. 쉽게 돈 벌자고 이러다간 시장을 내주고 말 겁니다. 결국 한국 가구업은 사라질 것이고….”
가구인 손 회장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래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자금력이 있는 퍼시스가 앞장서기로 했다. 직접 진두지휘에 나섰다. 국내 설비투자를 늘렸다. 공장도 더 지었다. 그전보다, 경쟁사 제품보다 낫게 만들도록 특명을 내렸다. 그 결과 퍼시스 제품은 95% 이상이 자체 생산이다. 관계 협력회사와 분업 체계를 통해서다.
“‘가구 코리아’가 소리 높여 외치기만 한다고 되겠어요? 비록 조금 늦고 힘이 들어도 우리 브랜드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지요. 그래야 세계 시장에서 통합니다. 가구산업은 내수산업이란 인식부터 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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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기업은 있지만 사양산업은 없다
퍼시스는 외형 · 품질 ·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세계 10위권이다. 미국 스틸 케이스(SteelCase)와 허먼 밀러(Herman Miller), 일본 오카무라(Okamura) 등과 어깨를 나란히 견준다.
“창업 초기부터 비전으로 삼은 세계 일류의 문턱을 이제 막 넘어선 것 같아요. 가구산업은 이미 글로벌 경쟁 환경에 노출돼 있습니다. 세계적 수준을 겨냥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되고 맙니다.”
퍼시스 제품은 중동과 중남미를 중심으로 40여 개국에 수출된다. 지난해 수출 실적은 1,900만 달러. 올해 신제품 엑스페이스를 앞세워 미국 시장에 본격 상륙할 계획이다. 엑스페이스는 코드와 전선이 파티션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고, 바퀴를 달아 혼자서도 쉽게 옮길 수 있는 책상 옆에 작은 개인 옷장도 마련한 차세대 전략제품이다. 중동 시장은 교육용 가구 팀스가 스트라이커로 나선다. 2010년 월드컵 개최지 남아공화국도 집중 공략 대상이다. 올해 수출 목표는 2,100만 달러다.
퍼시스는 가구업계에서는 흔한 구조조정을 한 차례도 겪지 않았다. 외환위기 직후 가구업계가 줄줄이 도산할 때 인테리어 가구업체 일룸을 설립했다. 2003년 교육용 가구 ‘팀스’를 개발했다. 이어 병원 · 기숙상용 가구에 눈을 돌렸다.
“시장의 요구에 맞춘 제품은 이미 늦습니다. 시장이 요구할 만한 제품을 미리 앞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팀스는 기존 책 · 걸상 교체와 도서관용 가구에 이어 교무실 · 실험실 가구, 전자 칠판 · 교탁 쪽으로 계속 새 제품을 내놓고 있다. 전자 칠판 · 교탁 모니터에 전자펜으로 쓰면 칠판의 대형 모니터에 크게 나타난다. 가구와 IT를 결합한 제품이다. 첫해 23억원이었던 팀스의 매출은 3년 만인 지난해 220억원으로 뛰었다.
퍼시스가 짧은 기간에 시장 1위로 올라선 것은 품질이 좋을 뿐더러 선진 사업모델을 앞서 실천한 덕분이다. 제품을 부품으로 생산한 뒤 현장에서 조립 · 생산하는 ‘녹다운(Knock-down) 방식’을 국내 처음 도입했다. 그 결과 물류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단순히 책상 하나, 의자 하나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효율적인 사무 환경을 만드는 시스템화를 이끌었다. 물류 · 설치 · 시공 및 사후관리서비스(AS)는 전문 관계사를 통해 본사가 맡고, 판매는 100% 대리점에 맡기는 유통 모델도 세웠다. 본사에선 대리점과 겹치는 영업활동은 하지 않는다. 당연히 대리점과의 관계가 좋고 충성도가 높아져 결과적으로 판매에 도움이 된다.
깊이 경영에 고가(高價) · 고품질로 승부
퍼시스는 창업 이후 계속 흑자 행진이다. 지난해 기준 1,212억원의 현금자산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사옥 세 채를 동시에 건설중이다. 서울 오금동 현 사옥 옆에 신사옥을, 대전 · 광주에 전시장 및 물류센터로 쓸 건물을 짓고 있다. 왜 다른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사업이 잘 돼 돈이 많이 들어왔고,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게 도움이 됐지요. 국내 1위가 아니라 세계 일류가 목표라서 다른 사업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요.”
손 회장의 경영 방침은 가구업 한 길로 깊이를 더하는 방식이다. 98년 퍼시스에서 인테리어 가구 일룸을, 올해 초 일룸에서 의자 브랜드 시디즈를 만들 듯 말이다. 그러면서 고(高) 품질 · 고가(高價) 전략을 썼다. 접착제와 스티로폼을 쓰지 않는 등 친환경 제품 개발에도 열심이다.
그는 지난해 7월 퍼시스 식구에게 ‘깊이 경영’을 주문했다. 이것저것 벌이지 말고 될성부른 제품에 올인 하라는 뜻이다.
“단기적인 필요에 급급해 품목 수만 늘려선 곤란합니다. 일시적으로 매출에 도움은 되겠지만 장기적으론 기업 가치를 훼손하게 되거든요. 더디고 힘들더라도 차별화로 앞서 나가야 합니다. 규모가 곧 선이요, 효율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거든요.”
손 회장은 소탈했다. 때로 수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꾸밈없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창업 스토리와 가구론(論)을 언급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잘 모르는 일에 집적대지 말고 아는 우물을 깊이 오래 파는 게 좋은 경영 아닌가요? 경영자는 보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 회장은 신입사원들에게 <난중일기> 를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 속에 담긴 이순신 장군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을 배우라는 뜻이다.
그는 타고난 가구인이다. 아호도 목훈(木薰 · 나무 향내)이다. 외환위기 때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많은 것을 보고 사재로 ‘목훈재단’을 설립, 매해 고등학생 30여 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지급한다. 아울러 이순신 장군 관련 학술행사도 지원한다.
손 회장은 가구를 생명처럼 아낀다. “가구란 우리 삶의 한 부분입니다. 기능과 심미적인 면을 함께 충족시켜 줘야 해요. 가구를 소유한 본인 못지않게 옆에서 보는 이도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인터뷰를 마친 뒤 사옥 맞은편 건물 쇼룸으로 향했다. 그곳의 가구는 모두 최신 디자인에 고급이었다. 퍼시스 제품에 자신 있는 듯 고객더러 비교한 뒤 구입하라고 유럽산 고급 중역 가구를 수입해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본지 편집위원)
손동창 회장의 ‘멋진 기업’론
손 회장은 96년 기업을 공개하면서 개인 지분의 3%를 우리사주조합에 내놓았다. 퍼시스의 2000년 이후 평균 배당률(액면 기준)은 34.2%다. 86년 장호원 공장을 준공하면서 직원들에게 “마이카 시대가 머지않았다. 여러분도 준비하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반신반의하자 93년부터 창립기념일이면 10년차 직원들에게 티코를 사줬다. 퍼시스의 사훈은 ‘바로 알고, 바로 살며, 서로 도와 하나 되자’다. 평소 “조직의 모든 병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 강조하는 손 회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창업 초기 퍼시스는 ‘정직 관리 제도’를 만들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협력업체 · 관계사를 망라해 ‘약속(Promise)’이란 윤리강령을 만들어 선포했다. “한국 경제가 압축 성장하면서 기업들도 성장 제일주의에 빠진 감이 있는데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기업경영의 기본 중의 기본은 회계의 정직성이다.” 창립 25돌을 맞는 중견기업 퍼시스. 2001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선정한 ‘경제정의기업상’ 대상을 받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사양산업처럼 여겨지는 전통 제조업에서, 그것도 일류 대기업을 제치고 시민단체가 주는 최고기업상을 받아서다. “나라든 기업이든 조직을 경영하는 책임자는 미래에도 잘 움직이도록 밤잠을 설치며 준비하고 일해야 한다. 경영이란 물 위에 배를 띄우는 것과 같다. 상류에 띄우면 자연스럽게 하류로 흘러가지만 하류에 띄우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어도 상류로 밀어올리기 쉽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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