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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학 평가 거부 진짜 속셈 따로 있다

美대학 평가 거부 진짜 속셈 따로 있다


순위 밀려나면 치를 곤욕이 두렵기 때문 대학 총장들은 언론 검열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작은 집단으로 간주된다. 하기야 대학 총장이라면 지식의 확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정말 그럴까?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약칭 유에스 뉴스)의 대학 평가 조사에 대학 총장들이 반발하고 나선 사태는 필자의 생각을 뒷받침한다. 마지막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46개 인문대학 총·학장들이 유에스 뉴스의 연례 대학 서열 조사에 부분적으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버나드·케년 같은 저명한 학교도 동참했다. 대학 총장들은 서열 조사가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거나”또 “입학지망생들의 이해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 미국의 대학 입시는 갈수록 과열되고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들의 그런 지적은 겉보기에는 타당한 문제제기인 듯하다. 그러나 실은 안 그렇다. 먼저 입시 경쟁이 치열한 대학들은 주로 명문대다. 미 대학입학상담자협회의 데이비드 호킨스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대학은 지원자의 약 70%를 합격시킨다. 또 캘리포니아대(UCLA) 부설 고등교육연구소에 따르면, 대학 신입생의 약 3분의 2는 1차로 선택한 학교에 재학 중이다. 게다가 명문대의 입시 경쟁이 치열한 이유는 대학 서열 조사 때문이 아니다. 미국 자체가 경쟁이 매우 치열하고 사회적 신분 의식이 강한 사회다. 명문 입학은 일종의 전리품이다. 우수 학생 수의 증가 속도는 등용문의 증가 속도를 앞질러왔다. 대학 서열 조사가 없어진다고 해서 이런 흐름이 변하지는 않는다. 여러 경험을 통해 필자는 세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첫째, 인생에서의 성공은 출신 학교가 아니라 각자의 재능과 기질에 크게 좌우된다. 이 분야를 훨씬 더 많이 연구해온 학자들의 결론이다. 어떤 둔재가 어쩌다가 앰허스트대 같은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해서 천재로 변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천재가 어쩌다가 3류대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천재다. 어떤 대학에 들어갔든 기회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둘째, 명문대 입학 경쟁은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학부모들에게는 자식 자랑이 일종의 권리다. 셋째, 유에스 뉴스의 대학 서열 조사는 이른바 ‘명문대’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사실상 약간이나마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윌리엄스대(평가 순위 1위)와 스와스모어대(3위)가 정상급 인문대학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상위 10위 안에는 미네소타주의 칼튼대(6위), 캘리포니아주의 포모나대(7위),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데이비드슨대(10위)처럼 비교적 덜 알려진 대학도 있다.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존재하면, 근거없이 명문대인 양 하는 속물적인 태도는 어느 정도 줄어든다. 대학 서열 조사가 사라진다 해도 학생과 학부모가 얼마나 혜택을 입을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유에스 뉴스의 대학 평가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평가 순위에서 10~20 등급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해서 큰 의미는 없다. 그러나 대학 평가 조사는 여러 대학을 비교해 볼 객관적인 자료를 많이 제공한다. 예컨대 대학수능시험(SAT) 성적, 합격률, 졸업률, 학생 대 교수의 비율 같은 자료다. 대학 평가가 사라질 경우 정말로 혜택을 입는 사람은 대학 총장과 학장들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동문, 기부자, 학부모들로부터 “왜 우리 학교의 서열이 더 높지 않으냐?”는 식의 질문에 시달린다. 그 대학의 서열이 87위인데, 전통적으로 경쟁 관계인 대학의 서열이 56위라면 총장님들은 입장이 곤혹스러워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불평하는 대학의 다수는 서열이 낮게 나온 학교들이다. 일부 대학은 기존의 평판보다 훨씬 낮은 평가를 받은 듯하다. 예를 들어 버나드대는 26위, 케년대는 32위로 평가됐다. 또 디킨슨대(41위), 새러 로런스대(45위), 얼햄대(65위) 등은 더 낮은 등급을 받았다. 대학들은 학생들을 유치하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또 필요하다면 자기네 대학 홍보에 그런 대학 서열 자료를 활용한다. 케년대의 웹사이트는 뉴스위크 선정 ‘25개 신생 아이비리그 대학’ 목록에 자기네 대학이 포함됐다고 자랑한다. 또 여자 대학인 버나드는 타임지 설문조사와 프린스턴대 리뷰를 인용해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 기숙사의 40%는 여자대학에 있다”고 선전한다. 대학 평가에 반발하는 총장들의 집단 움직임에서 가장 부끄러워해야 할 점은 반(反)지성주의다. 대학 서열 조사에서 나타난 정보의 많은 부분은 어떤 면에서 볼 때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다. 그러나 대학 측이 싫어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그 내용을 보완해주거나, 혹은 반박하는 논리 제시가 지성인의 태도다. 그런 정보를 억누르려는 태도는 잘못이다. 그러나 대학 총장들은 유에스 뉴스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대학 평가 작업을 방해하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더 나은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시각을 통제하겠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의미의 검열 행위다. 이번 사태로 학생들은 냉소적인 시각에서 교훈을 얻게 될 듯하다. 명문대 당국자들이 거창하고 기만적인 수사(修辭)를 동원해 교묘하게 이기주의를 은폐하려든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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