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주가 조작은 증시를 흙탕물로 만드는 미꾸라지라는 뜻의 퍼포먼스. | |
간 큰 도적들이 또 잡혔다. 주가를 조작해 돈을 벌려다가 최근 구속된 UC아이콜스와 루보의 작전세력 얘기다. 119억원의 부당 이득을 본 루보의 작전범들 11명이 얼마 전 구속됐다. 앞서 6~7개월 동안 주가를 만지작거리며 150억원의 차익을 남긴 UC아이콜스의 대표이사 역시 감옥 신세를 지게 됐다. 수법은 비슷했다. 철저한 시나리오를 짜고, 수백 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마음먹은 대로 주가를 올려갔다. 소문을 듣고 개인투자자들이 돈다발을 들고 추격매수에 들어오면 팔아 치워 이득을 남긴다. 전형적인 방법이다. 두 건의 범죄자들은 우리나라 역대 주가조작 부당 이득 1, 2위의 기록을 남겼다. 결국 꼬리는 잡혔다. 결과는 처참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루보는 11일, UC아이콜스는 13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소위 ‘똥주’가 됐다. 작전인 것을 알았든 몰랐든, 이들 주식을 사들였던 개미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됐다. 그렇다면, 루보와 UC아이콜스의 작전세력들은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지금까지의 판례대로라면 이들은 악랄하게 번 돈을 모두 토해 내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걸려도 남는 장사’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현행법(증권거래법)상, 주가를 조작하다가 적발되면 부당 이득금의 최대 3배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2001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용호 게이트’가 터진 후 마련된 법이다. 다시 말해 119억원을 챙긴 루보 세력들에 법원은 최고 357억원의 벌금을 매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사례는 없다. 오히려 부당 이득에 훨씬 못 미치는 관대한 처벌이 내려졌다. 지난해 김영주 열린우리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가 좋은 증거다.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2년간 주가조작 등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내린 벌금은 부당 이득의 57%에 불과했다. 100억원을 도적질하다가 걸려도 57억원만 내면 됐다는 얘기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루보와 UC아이콜스 사건 전까지 최근 3년간 가장 큰 규모의 주가조작 사례였던 남한제지 시세조종 사건. 이 사건에 가담했던 K씨는 시세조종을 통해 23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대법원은 K씨에게 벌금 15억원을 부과(징역 1년 6월)했다. 공범으로 16억원을 벌어들인 J씨는 부당 이득의 절반도 채 안 되는 5억7000만원의 벌금을 확정 판결(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받았다. 앞서 2003년 통일중공업 주식에 대해 고가 허수매매 등으로 시세조종을 해 6억원을 챙긴 이 회사 전무 L씨에게 법원은 벌금 없이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그런 문제가 있었지만, 올 들어 증권거래법 위반에 대해 벌금이 무거워지고 있다”며 “올 1분기 중에 증권거래법 관련 선고가 내려진 다섯 건을 예로 보면 부당 이득에 대해 약 2배의 벌금이 부과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앙지법 관계자가 제시한 예는 대부분 시세조종에 의한 주가조작 사건이 아니라, 내부정보(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증권거래법 위반 사건이었다. 세력이 붙어 주가를 조작하는 사건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로 범죄를 예방하기 힘들다는 것은 상식이다. 특히 제멋대로 주가 그래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돈을 챙기는 주가조작 같은 악질 경제범죄에 대해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것은 재범을 양산해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시세조종 위반사건 중 과거 전력자 비중이 15%를 넘는다. 이렇게 반복적, 상습적 위반이 계속되는 이유는 “안 걸리면 대박,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 때문이다. 안 걸리면 대박인 예가 있다. 지금은 이름을 바꾼 코스닥 등록업체 C사가 그 예다. 이 회사는 2005년 모 바이오벤처를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실제로 인수한 것은 맞다. 하지만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회사였다. 하지만 당시 바이오 붐에 힙입어 인수 당시 700원대였던 주가는 고공 상승을 시작했다. 이 사이 C사 대표이사를 비롯한 작전세력은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해가며 교묘히 주가를 조종해 나갔다. 두 달 사이 주가는 17배 가까이 올랐다. 당시 C사에 근무했던 관계자는 “회사의 바지(이름만 얹어놓은) 회장은 1억원을 빌려 무려 15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최고점 전에 빠졌다. 그 돈으로 강남에 아파트를 사서 집들이도 했다”고 말했다. 이후 주가는 다시 예전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회사는 결국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았지만, 대표이사만 증권거래법 혐의가 있다는 처분을 받았고, 2000만원의 벌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솜방망이 처벌이 범죄 키워 이런 사례들을 없애려면 ‘주가조작은 반드시 걸리고, 부당 이득은 완전히 몰수된다’는 인식이 시장에 뿌리내려야 한다. 관련 법도 마련돼야 한다.
현행법은 부당 이득의 3배를 벌금으로 부과할 수 있지만, 벌금 하한선이 규정돼 있지 않다. 때문에 부당 이득의 절반밖에 안 되는 벌금이 부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걸려도 변호사 잘 사서 집행유예만 받으면 감방도 안 가고 큰돈도 버는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가조작으로 얻은 부당 이득의 전부를 몰수할 수 있는 개정법이 이미 발의돼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김영주 열린우리당 의원은 “증권 불공정거래에 대하여 최소한 부당 이득 금액 이상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도록 벌금형의 하한선을 마련해 불법행위로 인한 이익금의 환수율을 높인다”는 취지로 증권거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대해 당시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경제 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며 “금감원도 법 개정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법률안은 8개월째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발의 당시, 금감위를 비롯해 학계와 법제처에서 적극 찬성하는 의견을 보냈고, 재정경제부와 의 협의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통과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미뤄져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 제정 취지에 이견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6월 임시국회 때는 통과될 것으로 봤는데,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한나라당 의원들이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모 의원실 관계자는 “6월 임시국회 때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쟁점이었기 때문에 미뤄진 것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25일 이귀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국정브리핑 기고를 통해 “경제적 이득(소위 범죄수익)의 유혹은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부정한 방법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범죄자들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나아가 한 번의 범죄행위로 얻게 되는 경제적 이득은 동종 범죄범의 재생산 동력으로 작용해 사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제범죄 재생산의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범죄수익을 완전히 박탈함으로써 범죄를 일으킬 동기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단 한마디라도 틀린 말이 있나? 그런데 이렇게 하자는 법은 왜 국회에서 잠들어 또 해를 넘기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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