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보다 바쁜 스타일리스트
연예인들 멋 내기 도와주는 패션 전문가의 손에 명품 브랜드 흥망이 달렸다 비 내리는 지난 2월 어느 날 오전, 퍼닌슐러 베벌리 힐스 호텔의 한 스위트룸. 레이철 조(36)가 휙 들어섰다. 마치 방 주인이라도 되듯 당당했다. 로베르토 카발리 재킷과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 차림에 클로에 벨트를 매고 굽이 13㎝인 롱부츠를 신은 조는 얼른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유명한 구두 디자이너 지미 추는 사교계 명사와 연예인, 또는 조 같은 일급 스타일리스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그 방을 예약했다. 조는 아카데미 시상식 주간에 열릴 수많은 만찬과 파티에 신고 갈 구두를 빌리려는 고객들을 대신해 그곳에 들렀다. 보티첼리의 그림에 나올 법한 긴 고수머리가 앞을 가리지 않도록 고개를 흔들면서 샴페인을 홀짝이는 수많은 가짜 금발녀 곁을 지나 침실로 직행했다. 그곳에는 가구가 치워지고 대신 긴 테이블들이 놓였다. 테이블마다 위험할 정도로 높고 엄청 비싼 여성용 구두가 수십 켤레씩 진열됐다. “샐마(샐마 하이예크)가 신을 사이즈 6짜리가 필요하다”고 조는 뉴저지 북부 억양으로 지미 추 매장에서 나온 직원에게 지시했다. 조는 끈 달린 금색 가죽 뾰족구두를 집어 들더니 이어 은색, 동색의 다른 구두를 지목하면서 여배우 겸 대본작가 줄리 델피용으로 예약했다. 검은색 플랫폼 슈즈(굽이 두꺼운 구두)도 두 켤레 골랐다. “이 플랫폼에 보석 장식 되나요?” 그가 날카롭게 물었다. 지미 추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재빨리 적었다. 조는 배우나 가수 등 연예계 스타들의 복장을 관리하는 대가로 하루 수천 달러씩 버는 할리우드의 일류 스타일리스트다. 10년 전만 해도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영화 시사회, 자선행사, 시상식 프로그램이 급증하고, 게다가 파파라치, 연예인 전문잡지, 연예오락 텔레비전 쇼 등이 급증하면서 스타들은 일주 내내 하루 24시간 언제라도 방금 패션잡지에서 나온 듯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홍보 담당, 개인 비서, 트레이너, 요리사와 마찬가지로 스타일리스트도 할리우드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됐다. 스타일리스트는 패션쇼에 참석하고 고객에게 가장 최신의 멋지고 섹시한 의상을 입히려고 끊임없이 쇼핑을 다닌다. 큰 행사가 있을 땐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연예인 고객에게 옷을 입혀주고 보석을 달아주며 천 허리띠를 올바르게 졸라매준다. 그 역할로 이들은 명품산업의 중요한 구성원이 됐다. 규모가 1570억 달러에 이르는 명품산업은 루이뷔통, 구치, 프라다, 디오르, 샤넬 같은 기업들이 지배한다. 이 회사들은 대부분 1세기 전 아름답게 만든 수공품을 부자들에게 파는 1인 가게로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재계 거물들이 많은 명가를 인수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세계적 브랜드로 키웠다. 명품 브랜드는 이윤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저급시장을 확대했다. 중산층 고객을 노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선글라스, 핸드백 등의 비교적 저가 상품을 내놓는다. 라스베이거스나 와이키키 같은 관광명소에 수천 개의 매장을 신설했다. 이월상품을 소매가의 50~75%에 파는 할인점도 열었다. 명품 기업들은 폭넓은 고객층을 겨냥해 광고예산도 대폭 늘렸다. 구치의 경우 광고비 지출이 1993년의 590만 달러(수입의 2.9%)에서 1999년에는 8600만 달러(수입의 7%)로 늘었다. 그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 1994~99년 사이 구치의 매출은 2억6400만 달러에서 12억 달러로 늘었다. 2004년이 되자 최고경영자 로버트 폴릿은 20억 달러인 구치의 수입을 2011년까지 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사는 그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다가간다. 신상품 개발, 할인점 신설, 광고비 증액에도 불구하고 명품 브랜드가 가장 싸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방식은 자기네 옷을 연예인들에게 입히는 일이다. “배우를 제대로 골라 붉은 카펫을 걸으면서 디자이너 이름을 자꾸 말하게 만들면 재미를 보게 된다”고 구치 그룹의 홍보실장을 지낸 리자 쉬크가 말했다. “그 규모는 엄청나다.” 조 같은 스타일리스트는 자신의 힘을 잘 안다. 자신이 내리는 결정이 모두 “100만 달러어치의 무료 광고”가 된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배우가 패션 매상을 올려주는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조앤 크로퍼드가 1932년 영화 ‘레티 린턴(Letty Lynton)’에서 에이드리언이 디자인한 하얀 이브닝가운을 입고 나오자 메이시 백화점에선 그것을 본뜬 옷이 50만 점이나 팔렸다. 그레이스 켈리가 1956년 모나코 왕자 레이니어 3세와 결혼식을 올릴 때 입은 드레스는 역사상 가장 많은 복제품을 낳았다. 할리우드 황금기에 스타들은 영화사 전속 의상 디자이너가 골라주는 옷을 입고 야간행사 나들이를 했다. 그것이 1950년대 들어 변했다. 소위 할리우드 반독점 판례로 알려진 대법원 판결로 영화사의 사업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배우와 마찬가지로 의상 디자이너를 더 이상 계약으로 묶어두지 못하게 됐다. 그들은 대신 자유의 몸이 되어 이 영화 저 영화 전전했다. 영화사 전속 디자이너가 공짜로 멋진 의상을 대주지 않자 스타들은 시사회나 시상식용 의상을 손수 구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문제는 대다수 스타의 안목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느긋하게 사는 도시로 유명한 로스앤젤레스가 문제를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사람들이 편하게 입는 법은 알아도 정식으로 차려 입는 법은 아무도 몰랐다. 벳시 블루밍데일이나 낸시 레이건 같은 사교계 명사들에게는 여전히 제임스 갈라노스 같은 디자이너가 있어 캘리포니아 남부 복식문화에 맞게 입혀줬지만 대다수 연예인은 스스로 알아서 입었다. 그러다 보니 처참한 몰골이 연출되기도 했다.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스판덱스 자전거 바지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나타나 붉은 카펫을 밟은 드미 무어의 모습을 누가 잊겠는가? 연예인들에게는 선배들 못지않게 우아하게 옷을 입혀줄 높은 안목을 갖춘 안내자가 필요했다. 조르조 아르마니가 기꺼이 그 일을 맡았다. 아르마니는 1970년대에 등장해 공업도시 밀라노를 하루아침에 패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 이탈리아 신세대 기성복 디자이너 가운데 한 명이었다. 잘생기고 차분한 아르마니는 소위 소프트수트를 개발했다. 감청색, 검은색, 진회색의 딱딱한 영국식 모직, 플라넬 복장을 버리고 대신 린네르, 울저지, 직조직물 등의 가볍고 부드러운 천을 선호했다. 그는 원래 남성복 전문이었으나 이내 여성 정장으로도 눈길을 돌렸다. “당시는 여권운동 시대였다”고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여성들은 작은 드레스나 몸에 딱 맞는 작은 정장을 넘어서는 옷, 다시 말해 힘과 권력을 제공하는 옷이 필요했다.” 아르마니의 할리우드 정복은 당시 무명이던 리처드 기어라는 배우가 1980년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에서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나오면서 시작했다. 아르마니의 소프트수트는 기어의 거만한 걸음걸이와 함께 펄럭였다. 몸에 딱 맞는 셔츠가 근육질인 기어의 상반신을 뚜렷이 살려주면서 그가 정장차림으로도 편안하고, 심장이 멈출 정도로 섹시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영화로 패션디자이너 아르마니의 명성은 높아졌지만 회사의 미국 매출액은 1400만 달러로 세계 매출액의 10%에 불과했다. 아르마니는 미국 배급망을 확대하는 동시에 더 넓은 고객층에게 다가갈 방안이 필요하며, 스타들에게 자기 옷을 입히면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대로 된 사람이 내 옷을 제대로 입어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아르마니는 뉴욕에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동생인 리 래지윌을 “특별행사 코디”로 고용했다. 래지윌은 발레, 오페라, 자선행사 등 가는 곳마다 아르마니를 입고 다녔다. 머지않아 카메라에 자주 잡히는 그의 사교계 친구들 역시 아르마니를 입기 시작했다. 아르마니는 할리우드에서 발이 넓은 사교면 편집자 출신 완다 맥대니얼을 고용했다. 그는 마리아 슈라이버가 1986년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결혼식을 올릴 때 신부들러리를 섰었다. 맥대니얼은 보수적인 재치와 할리우드 감각을 적당하게 고루 갖춘 사람으로서 할리우드 인사들이 아르마니를 입게 만드는 일이 임무였다. 맥대니얼은 연예인들의 홍보 담당, 매니저, 에이전트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아르마니는 곧 할리우드 제작자, 간부, 실력 있는 브로커들의 유니폼이 됐다. 맥대니얼은 1989년 아카데미 시상식 후 월척을 낚았다. 당시 조디 포스터가 ‘피고인(The Accused)’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포스터는 밀라노에서 쇼핑을 하다가 산 드레스를 입고 나왔는데, 엉덩이에 커다란 장식이 달린 하늘색 호박단 무도회 가운이었다. “모두들 꼴불견이라고 한마디씩 했다”고 맥대니얼은 돌이켰다. 즉시 포스터에게 전화 걸어 다음해 시상식 때 아르마니 드레스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다. “포스터는 ‘기왕 그러려면 내 평생 그래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포스터에겐 머지않아 동료들이 생겼다. 1990년 아카데미 시상식 때 맥대니얼은 제시카 탠디, 레나 올린, 댄 애크로이드, 톰 크루즈, 덴절 워싱턴, 스티브 머피, 제프 골드블럼, 데니스 호퍼, 사회자 빌리 크리스털에게 옷을 대줬다. 미셸 파이퍼의 경우는 옷만 골라줬을 뿐 아니라 파이퍼가 옷에 어울리지 않게 초라한 보석을 걸고 나타났을 때 자신의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빼서 손가락에 끼워줬다. 위민스웨어데일리는 그날 행사를 “아르마니 시상식”이라 불렀다. 매출이 급증했다. 1990~1993년 아르마니의 전 세계 수입은 4억4200만 달러로 두 배 뛰었다. “맥대니얼 혼자서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당시 랠프 로렌의 서부 영업담당으로 일했던 제니퍼 마이어가 말했다. 경쟁자들이 그 전략을 본뜨려 들었다. 라이벌 패션 명가들이 맥대니얼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아르마니를 떠나지 않았다. 캘빈 클라인은 베벌리윌셔 호텔에서 서부 매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선 멕 라이언, 골디 혼 등의 선택된 연예인이 그의 옷을 할인가에 샀다. 디자이너들이 파리나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스타들을 초대해 맨 앞줄에 앉히기 시작했다. 여행비가 공짜인 데다가 옷도 거저 줬다. 1993년 8월의 인스타일을 필두로 연예인들의 스타일만 취급하는 잡지들이 창간되면서 그런 연예인 구애작전의 규모도 커갔다. 보그나 하퍼스바자 같은 패션 잡지가 표지에 모델 대신 연예인 얼굴을 싣기 시작했다. “요컨대 연예인을 실어야 훨씬 잘 팔린다는 이야기”라고 보그 편집장 애너 윈투어가 말했다. 1990년대 초 패션 명가들은 연예인을 직접 유인했다. 연예인 구애작전을 펴는 디자이너가 늘어나면서 연예인들은 늘어나는 선택범위를 놓고 고를 머리 좋은 안내자가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전속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예인 대신 매장에 가서 옷, 보석, 구두를 고른다. 스타일리스트 중에는 패션 잡지의 기자로 일하면서 촬영이나 카탈로그 제작차 모델에게 옷을 입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다. 일은 꼼꼼하게 해야 한다. 스타가 홍보투어에 나설 경우 스타일리스트는 복장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조의 말에 따르면, “브래지어에서 구두에 이르기까지”)이 가득한 노트북을 작성한다. 그 안에는 어떤 행사에 어떤 옷을 입을지, 비가 오면 무엇을 입을지 다 적혀 있다. “여배우들은 예쁘기는 해도 옷 입는 법을 모른다”고 패션 홍보 전문사 피플스레볼류션의 창립자인 켈리 커트론이 말했다. “‘가빈치’가 아니라 ‘지방시’라고 디자이너 이름 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모르기 때문에 옷 입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구두를 신고 걷는 법도 가르친다. 그들의 능력으론 너무 벅찬 일이다. 그래서 스타일리스트가 필요하다. 전에 영화사가 했던 일을 대행하는 것이다.” 스타일리스트들은 머지않아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자신이 패션스타가 됐다. 제시카 패스터는 199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킴 베이싱어에게 에스카다의 담황록색 실크 호박단 이브닝가운을 입혔고, 미니 드라이버에게는 핼스턴의 선홍색 저지 일자 드레스를 입히고 거기에 어울리는 모피 숄을 두르게 해 이름을 날렸다. 미크 재거의 애인이며 190㎝가 넘는 장신에 칠흑 같은 머리를 자랑하는 로렌 스콧은 모델 출신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맞춤패션 스타일이다. 그의 주고객은 니콜 키드먼이다. 모델에서 패션 스타일리스트로 변신한 필립 블로크는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가는 할리 베리에게 당시 무명의 레바논 출신 디자이너 엘리 사브가 만든 사롱처럼 생긴 포도주색 치마와 가운을 입혔다. 그날 여우주연상을 탄 베리는 베스트드레서 명단에도 오르고 동시에 사브도 졸지에 파리 일류 디자이너 수준으로 뛰었다. 조는 업계에서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리스트다. 린제이 로한, 니콜 리치, 미샤 바턴, 제시카 심슨 등이 고객이다. 뉴저지에서 자란 조는 보그를 읽기 시작했고 열세 살 때 처음 루이뷔통 가방을 샀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공부했고, 정신과 전문의가 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대신 YM 매거진에 취직해 패션 편집부장까지 승진한 뒤 프리랜서가 됐다. 머지않아 백스트리트 보이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엔리크 이글레시아스 등이 그의 고객이 됐다. 일 때문에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일부 고객들의 지나치게 마른 몸매 때문에 소위 조 복제품으로 불리는 그들을 버려놓지 않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조는 고객들에게 다이어트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의 일부 고객은 원래 스타일이 멋지기 때문에 약간의 도움만으로 복장이 완성된다. 그런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봐줘야 멋진 모습이 만들어지는 사람도 있다. 하루 6000달러를 받고 조가 그 일을 해준다.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던 사람을 명품 패션을 걸친 멋쟁이로 둔갑시킨다. “그 여자들은 아침에 집을 나와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사진을 찍힌다”고 조가 말했다. 뉴욕 디자이너 마이클 코스의 말마따나 “레이철은 그 여자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사러 갈 때 멋있게 보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시상식 시즌이 되면 조는 하루 300통의 전화와 200개의 e-메일을 받는다. 부자들이 자기네 딸을 데리고 파리에 가서 쇼핑해주는 대가로 2만 달러까지 제의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임박하면 그와 두 조수는 거의 하루종일 일한다. 2006년 시상식 때 조는 가장 거물급 고객인 키이라 나이틀리의 옷을 직접 골라 입혔다. 베라 왕이 디자인한 한쪽 어깨에 걸치는 포도주색 호박단 이브닝가운이었다. 두 조수는 다른 고객들에게 보냈다. “지퍼가 고장나거나 단추가 떨어지는 등 비상사태에 대처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조는 말했다. 그의 고객들이 리무진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수백만 달러가 왔다갔다 한다. 커튼사가 2004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24세 여성의 27%가 옷 살 때 연예인들을 보고 힌트를 얻는다고 말했다. 1994년에는 15%였다. 25~34세 연령대에서는 1994년의 10%에서 2004년에는 18%로 뛰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급변한다. 2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 주간에 추문이 터졌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소수의 스타가 붉은 카펫을 밟을 때 입어주는 대가로 명품 브랜드에서 10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고 보도했다. 사실 “붉은 카펫 수입”이라 이름 붙은 그런 일은 소리는 나지 않지만 점점 관행으로 자리잡아간다. 할리우드의 대형 에이전시에는 연예인이 공식 행사에 나갈 때 입을 옷을 놓고 명품 브랜드와 협상을 벌이는 에이전트들이 있다. “돈을 내고 자기네 전속 스타에게 옷을 입힐 의향이 있느냐는 에이전트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스타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할리우드의 한 명품 브랜드 대표가 말했다. 업계 인사들은 붉은 카펫 수입이 머지않아 정체상태에 이르러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들의 위력과 고객 기반이 크게 떨어지리라고 내다본다. 조는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다. 멋 내는 재주를 활용해 다른 일들을 벌였다. ‘멋 내기 백과사전(Style A to Zoe: The Art of Fashion, Beauty, & Everything Glamour)’이라는 패션 안내서를 썼다. 올가을 출간 예정이다. 주디스 리버 브랜드로 만들 핸드백의 디자인도 맡았다. 핼스턴 브랜드와도 디자인 컨설턴트 계약을 맺었다. 옷장에서 연예인들 옷 골라주는 데 보내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의 도움을 원하는 잠재 고객은 줄지 않는다. 어쨌든 멋을 외면하는 날은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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