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조선족이 북방 경제 ‘심장’을 깨우다

조선족이 북방 경제 ‘심장’을 깨우다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중국 속의 거대한 코리아 타운이다. 중국 동북3성 가운데 하나인 지린성 동부에 있는 이곳은 인구 220만 명 중 38%가 조선족(중국 교포)이다. 전 세계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 한민족) 중 유일하게 한민족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땅이기도 하다. 언어·문화·교육 면에서 거의 완벽하게 한민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옌볜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조선족은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접속하는 인터페이스다. 특히 중국의 거대 IT시장에 우회 진출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 옌볜은 또 남북 경협으로 태동 중인 북방경제의 거점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중국의 변방에서 동북아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 수교 15돌, 옌볜조선족자치주 창립 55돌을 맞아 ‘기회의 땅’ 옌볜을 현지 취재했다.
“앞으로 2년 후 이런 가게 사장 되는 게 꿈이야요.” 중국 옌지시 서시장(西市場) 327호점에서 청 의류를 파는 리은영(20)씨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를 운영해 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한 달 봉급이 600위안(7만2000원)인 그가 혼자 힘으로 임차보증금 20만 위안(2400만원)인 가게의 주인이 되려면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주말도 없이 매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한다는 이 조선족 여성은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기자가 60위안(7200원)이라는 여아용 청 반바지를 골라놓고 “안 깎아 주느냐”고 묻자 대뜸 “155위안부터 시작하는데 남자분이라 제값을 불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베이징에서 만들었다는 반바지는 디자인이 퍽 세련돼 보였다. 그는 “60위안에 팔면 5위안의 마진이 남는다”고 했다. 맞은 편에서 구두 가게를 하는 김선자(53)씨는 “있는 사람들 중엔 백화점을 둘러보고 물건은 여기 와서 사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러면 100위안(1만2000원)은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건을 볼 줄 알면 이렇게 싸게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옌볜조선족자치주는…

▶ 창립 1952년 9월 3일(1955년 12월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전환)

▶ 인구 220만 명(조선족 인구 비율은 38%)

▶ 면적 4만2700km2(남한의 약 절반, 지린성의 약 4분의 1). 위치는 동북3성 중 하나인 지린성 동부.

▶ 주도 옌지시(인구 42만, 조선족 인구 비율은 57.7%). 기타 둔화, 룽징, 투먼, 훈춘, 허룽 등 5개시와 안투현, 왕칭현 등 2개 현으로 구성.

▶ 역내총생산액 243.4억 위안(2조9208억원, 전년비 12.1% 증가, 2006년 기준)
▶ 무역액 11.1억 달러(1조323억원, 전년비 54.7% 증가, 2006년 기준)

▶ 역내소비액 119.3억 위안(1조4316억원, 전년비 16.4% 증가, 2006년 기준)

▶ 실업률 7%

▶ 주택보급률 12%
전주 김씨라는 그에게 기자가 “나는 전주 이씨”라고 했더니 “두 집안은 성은 달라도 본관이 같아 혼인을 못한다”고 농을 했다. 말씨만 북한 주민에 가깝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한국의 여느 재래시장 상인과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옌볜대 의학원을 나왔다는 자신의 딸은 옌볜인민제2병원에 인턴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7년 전 퇴직했다는 그는 “딸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훈춘시에서 이사를 왔는데 거기에도 집이 있다”고 자랑했다. 월 수입은 3000~4000위안(36만~48만원). 옌지시 해방로에 자리 잡고 있는 서시장은 한국의 밀리오레 같은 실내시장이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보니 ‘시장의 활력’이 느껴졌다. 천장에선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는 선풍기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3층 문해서점 서가엔 한국 책들이 꽂혀 있었다. 『존 템플턴의 성공론』 『직업과 건강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존경 받는 리더는 어딘가 특별하다』. 한국의 성공학 교범들이 옌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조선족 교포 여직원은 “특별히 잘나가는 책이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60,70년대 남대문시장을 연상시키는 서시장은 실내시장으로는 중국에서도 큰 축에 속한다. 하루 유동인구는 5만 명, 연간 거래액은 7억6018만 위안(912억2160만원. 2002년 기준)에 이른다. 옌지시를 벗어나 맞닥뜨린 옌볜 농촌은 한국과 닮은꼴이었다. 승용차로 30여분 달려 투먼시 용가 2대에 접어들자 조선족 여성들이 담뱃잎을 따고 있었다. 처녀 때 왕청현 백초구진에 살았다는 최영순(48)씨는 기자가 말을 건네자 대뜸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테레비를 보면 한국 실정을 알 수 있는데 위성 안테나를 못 달아 못 보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마을에서 마주친 김철국(34)씨는 “농촌은 낙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저녁이면 한국 TV 드라마를 보거나 동네 선후배와 어울려 술을 마신다”고 했다. 밭이 3ha에 소도 세 마리 키운다는 그는 “부모들이 세상을 떠나면 도시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중국 속의 거대한 코리아 타운 지린성 동부에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중국 속의 거대한 코리아 타운이다. 우리에겐 만주와 북간도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이곳에 1952년 9월 3일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옌볜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됐다. 55년엔 자치주로 전환됐다. 옌볜은 전 세계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 한민족 또는 이산 한민족 거주지역) 중 유일하게 한민족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땅이다(같은 지린성 백두산 서쪽에 장바이조선족자치현이 하나 더 있다). 더욱이 언어·문화·교육 면에서 거의 완벽하게 한민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황제시각’이라는 베이징 시각을 사용해 한국보다 1시간 늦지만 백두산 동북쪽에 위치해 대부분의 지역이 한국보다 해가 먼저 뜬다. 과거 부여·고구려·발해가 지배했던 옌볜에 한민족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것은 19세기 초 이후. 220만 명인 옌볜 인구의 38%, 83만여 명이 조선족 교포다. 역외에서 이주해 온 소수 민족인 조선족이 자치권을 받은 것은 중국의 건국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자적인 말과 글, 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은 민족적 자부심도 강하다. 조선족 교포인 옌지시 아이엔티그룹의 박권일 회장은 “조선족은 문맹이 없는 민족”이라고 말했다. 옌볜이란 이름은 주도(주정부 소재지)인 옌지시와 그 주변 지역을 한꺼번에 일컫은 데서 유래했다. 면적은 지린성의 4분의 1 정도로 남한의 절반에 가깝다. 옌볜 경제는 오랫동안 낮은 성장에 그치고 있다. 변경 지역이라서 불리한 물류 여건,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하자원 등이 주 요인이다. 심지어 중국 평균에 비해서도 성장률이 낮은 실정이다. 옌볜의 1인당 GDP는 2000년 이후 중국 평균보다 1000위안(12만원) 이상 낮다. 중국의 개혁·개방 후에도 이어진 이 같은 부진엔 옌볜의 보수적인 경제체제도 한몫했다. 옌볜의 제조업은 또 다른 지역에 비해 비중이 작고 기술집약적이라기보다 자원지향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 붐에 조선족 사회 해체 위기 옌지(延吉)란 지명에 대해 옌볜 작가 류원무는 자신이 편저한 『연변취담』에서 ‘상서로움을 맞는 도시’ ‘길이 길할 도시’라고 풀이했다. 옌지가 맞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은 한국에서 발원한 것이다. 박권일 회장은 “옌볜 사람들의 생활이 5년 전보다 윤택해졌다”고 했다. 한국 등 역외에서 막대한 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외부경제다. 박 회장은 “옌볜의 일반적인 가정의 경우 가계 수입의 60%가 한국에서의 송금으로 충당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의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다고 덧붙였다. 옌볜과기대 출신인 김호남 LG전자중국유한회사 부장은 그러나 “한국에서 돈이 유입되면서 소비성향이 높아져 옌지의 경우 한 달에 5000~6000위안(60만~72만원) 못 벌면 살 수 없는 도시가 돼 버렸다”고 개탄했다. 도시가 기형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금호연건유한회사 양균호 부총경리는 “한국으로의 노무 송출로 가족과 함께 사는 조선족 직원이 5% 미만”이라며 “이렇다 보니 가족 모임을 한국에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 바람’이 조선족 사회의 해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무 송출을 둘러싼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의 조선족 기업인을 취재하고 돌아오는 길에 옌지행 야간열차에서 만난 마영철 옌볜동방화원무역유한회사 총경리 등도 방문취업 사기에 걸려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고 호소했다. 쌍태전자실업유한회사 정강환 동사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하얼빈시의 쌍태어언문화학교 측이 한국 방문취업 알선을 미끼로 20일짜리 한국어 과정을 개설하고 최고 5000위안(60만원)의 수강료를 챙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학교 측 위탁을 받아 수강생을 모집했는데 학교에서 약속한 지난해 말까지 한 명도 취업이 안 됐으며 약속과 달리 수업료도 반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정 이사장은 이에 대해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서로 취업을 보장한 일이 없으며 ‘열심히 공부시키는데 왜 취업이 안 되겠느냐, 시험에 떨어지면 수업료를 돌려주겠다’고 한 일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9월 16일 첫 한국어 시험을 치렀는데 등록 인원이 적어 응시한 쌍태학교 수강자들은 다 합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 송출 경제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옌지진달래민족찬음유한책임회사 고봉열 총경리는 “옌볜 경제가 IMF 전 한국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임금은 낮은데 물가는 지린성 성도인 창춘보다도 비쌉니다. 부동산도 올랐습니다. 거품이 낀 거죠. 노무 송출로 한국에 나간 가족이 부쳐주는 돈을 조선족 교포들이 탕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물가가 뛰면 공무원 봉급이 오르고 그에 따라 임금이 오릅니다. 위안화 가치가 계속 상승하고, 현재 3000위안인 공무원 봉급이 7000위안까지 뛰면 한국에 안 갈 겁니다. 비용까지 감안하면 실익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돼 한국에 간 사람들이 다 돌아왔을 때가 문제입니다. 전부 공무원이 될 수도 없고.” 조선족 교포들의 국내 취업이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그 시점을 길어야 3년 후로 내다봤다. 코리안 드림의 시효가 3년이 채 안 남았다는 주장이다. 옌볜 사람들이 해외 노무 송출로 벌어들이는 돈은 지난해 10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재정 수입의 3배가 넘는 규모. 고 총경리는 노무 송출 경제에 대한 옌볜의 의존도를 90%로 평가했다. 이 수입이 머지않아 끊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옌지 서시장의 리은영씨(오른쪽)는 이런 가게 사장이 되는 게 꿈이다.

조선족 교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되면 옌볜이 조선족자치주로서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교포 수가 줄어드는 것은 무엇보다 조선족의 출산율이 낮기 때문이다. 2000년 현재 배우자가 있는 15~50세 조선족 여성의 평균 출생아 수는 1.02명에 불과하다. 권태환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자신이 편저한 『중국 조선족사회의 변화』에서 “조선족의 출산율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최근 10년간의 이런 추세는 조선족 사회의 해체 위기에 대한 우려를 낳을 만하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의 도시행과 그에 따른 만혼 풍조도 출산력을 떨어뜨렸다. 이 같은 출산의 감소엔 또 조선족 여성의 한국으로의 출가도 영향을 미쳤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 여성은 15~24세 한국 여성 인구의 20%가 넘는 4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통계청 ‘인구동태통계:혼인이혼편,2000’). 권 교수는 그래서 조선족의 이동을 부추긴 변수를 ‘한국열’과 ‘도시열’로 규정한다. 조선족이 줄어드는 것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빠져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권일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대도시와 연해 지방에 진출하면서 생긴 일자리를 이렇게 빠져나간 교포들이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에서 통역과 현장 관리는 교포들이 도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족이 떠난 빈자리는 타지에서 유입된 한족이 채우고 있다. 이래저래 조선족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10년 조선족 비율이 20%대로 떨어질 것이란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자치주의 지위를 상실하고 옌지를 중심으로 한 자치시로 격하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경제 살아나면 U턴할 것 조선족 교포의 옌볜 엑소더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고봉열 총경리는 “옌볜의 젊은이들은 대도시의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이거나 또는 아무런 계획 없이 고향을 떠나는데 무턱대고 떠났다가 성공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선족 교포인 최선 지린성배달창업투자유한회사 동사장은 “옌볜으로 U턴하려는 교포들은 많은데 이들을 수용할 산업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역시 조선족인 김란수 옌볜신광국제경무유한회사 동사장도 “옌볜 경제가 살아나야 외지로 나간 교포들이 회귀한다”고 말했다. 옌볜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조선족 교포는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접속’하는 데 필요한 인터페이스 같은 존재다. 중국과 한국을 이어주는 다리랄까? 조선족 교포에 대해 김한수 옌볜과기대 교수(경영정보관리학과)는 “정체성 면에서 옌볜의 명물인 사과배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구사하고 중국의 주류사회에도, 한반도의 한민족에게도 동화되기 어려운 마지널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사과배는 70여 년 전 옌볜의 한 조선족 농민이 북한의 함경남도 북청에서 들여온 배나무를 옌볜의 야생 돌배나무에 접목시켜 만들어낸 품종. 외관은 사과와 흡사한데 맛은 배에 가깝다. 이들은 그러나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국적의 한국 전문가 집단이기도 하다. 한국은 한국대로 이들을 중국의 지한파로 만들 수 있다. 사과도 되고, 배 행세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옌볜의 경제적 비전은 무엇인가? 노무 송출 경제 이후 옌볜이 주력할 산업은 무엇인가? 고봉열 총경리는 무역과 관광이 옌볜의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러시아와의 무역, 장백산(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관광이 활로입니다. 제조업은 물류망이 취약해 어렵고 농업도 고도가 높은 데다 분지라 한계가 있어요. 옌지시도 홍콩 같은 소비 도시로 나아가야 합니다.” 박권일 회장은 “녹용·웅담·버섯 등 특산물, 냉면·개량한복 등 전통 상품을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품은 우리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물류비에도 영향 받지 않습니다. 자체 브랜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지 브랜드에 그치고 있죠.” 김란수 동사장은 물류 애로가 절대적인 장벽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류상 애로는 넓히면 됩니다. 북한의 나진항·청진항, 러시아의 자루비노항·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하고 러시아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어요. 북한의 체제 내지는 정책이 변수지만 변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이용하고 있는 나진항의 부두도 우리가 임차하는 겁니다. 북한의 회령과 마주보는 지역엔 지금 보세창고를 짓고 있습니다. 길은 뚫으면 돼요. 옌볜은 뱃길을 뚫어야 삽니다.”

▶(좌) 투먼시 농촌 마을의 조선족 여성들. (우) IT밸리가 자리 잡고 있는 옌지시 경제개발구.



한·중·러 교차 지역 여건 활용 그 역시 무역이 옌볜의 주력 산업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역할 만한 산업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역이 산업을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북한·러시아 3국의 교차점으로서의 지경학적 여건을 활용해 북한·러시아 무역이 제조업을 견인하도록 하는 겁니다. 장차 동북아 시대의 물류 거점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중국 내수시장으로의 운송도 해운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린성을 포함해 중국의 동북 3성은 전국적인 콩·옥수수·쌀 산지입니다. 곡물을 실어나를 때 철도를 이용하면 해운 요금의 2배가 들어요. 이 역시 북한·러시아의 항구를 통해 배로 남방으로 실어내는 겁니다.” 김호남 부장도 역발상으로 물류망을 확충해 동북아의 물류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성 옌지시 IT밸리투자관리위원회 총경리는 “IT가 옌볜의 미래”라고 주장했다. 그는 “IT야말로 옌볜 조선족 사회의 미래 먹을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족 교포들은 3D 업종을 기피합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막말로 노가다 일을 싫어하죠. 그러니 한국 기업이 제조업 공장을 지어봤자 조선족은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한국보다 길게는 30년 뒤진 나라에 사는 조선족이 신기하게도 인터넷 사용능력이 뛰어납니다. IT 업계로서도 조선족을 필요로 하고요.” 더욱이 IT 산업은 물류의 영향을 덜 받는다. 옌지에 중한(中韓) IT합작기지 건설을 추진 중인 조철학 옌지시장도 “IT 업종은 물류비용과 별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선족 교포들이 인터넷에 능한 것은 이들이 한국의 사이트를 드나들며 스스로 훈련을 쌓았기 때문이다. 국내 사이트들이 교육 인프라 구실을 한 셈이다. 양철형 금호연건개발유한회사 총경리는 “조선족은 창의력이 뛰어나고 벤치마킹에 능해 IT 업종이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초급 기술자로서는 탁월하다”고 덧붙였다. 옌볜과기대 김한수 교수는 “한국 IT 기업이 옌볜을 중국 IT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옌볜의 저가 ‘메이드 인 차이나’를 중국의 거대 IT 시장에 우회 수출하는 겁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은 IT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03년 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이후 5년간 부족한 IT 인력이 10만 명입니다. 이공계 기피의 부산물이죠. 일본도 2005년 이후 6년간 50만 명이 부족합니다. IT 산업은 기질적으로도 한민족과 잘 맞습니다. 당연히 조선족 교포에게도 잘 맞죠.” 그는 나아가 한국 IT 기업이 해외개발센터(ODC)를 중국 동북지역에 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조선족 IT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이 옌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IT 인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철형 총경리는 “옌볜은 콜 센터의 입지로도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호남 부장은 한국이 비교 우위에 있는 애니메이션과 패션 디자인도 유망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에 옌볜은 과연 ‘기회의 땅’인가? 옌지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이정기 기림세미텍 대표는 옌볜의 장점으로 언어와 문화가 같은 조선족 사회라는 점 외에 ▶습도 등 기후 조건이 좋고 ▶공항이 가까우며 ▶주변에 대학이 많다는 점을 꼽는다. 정당하게 취득한 이익금을 송금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 해고도 쉬운 편이다. 옌지에서 만난 한국 기업의 한 간부는 “여기 공인들은 노동법을 따질 만한 그런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한수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옌볜자치주, 나아가 지린성을 한국의 농산물 공급기지로 활용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잔류 농약 기준을 표준화해 농약 사용량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나는 안전한 농산물을 한국에 들여갈 수 있습니다.” 한계도 있다. 우선 물류망이 취약하다. 이 같은 약점은 물류비 비중이 큰 제조업체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옌지기림반도체유한회사 서재형 과장은 “한국과의 거래는 괜찮지만 남방에서 원자재를 육상 운송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납기가 길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양철형 총경리는 원자재 물류보다 판매 물류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변에 판매 시장이 없다 보니 판매 물류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옌볜의 낙후된 이미지도 발목을 잡는다. 양철형 총경리는 “한국 사람들이 서울에서 만들었다고 해야 신뢰하듯이 여기서도 옌볜 제품을 못 믿는다”고 말했다.

▶금호연건개발유한회사에서 조선족 교포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여기서 제조업이 안 되는 이유죠. 완제품은 제조 지역의 네임 밸류가 중요합니다. 가령 ‘메이드 인 인제(강원도)’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이 사겠습니까?” 그래서 “옌볜엔 네임 밸류에 영향 받지 않고 기업간 전자상거래(B2B)로 거래되는 IT 중간품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그는 제안했다. B2B 거래는 전문가들이 제품 검사를 하기 때문에 네임 밸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 그는 또 옌볜은 임금·물가 등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조선족 프리미엄 등으로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금호연건의 경우 조선족은 인건비가 50% 더 든다. 문화 공간도 부족하다. 변변한 영화관조차 없다. 한 곳뿐인 골프장은 한국이나 중국의 남방보다도 그린피(900~1100위안)가 비싸다. 서재형 과장은 “유흥업소만 있지 술 안 마시고 시간 보낼 곳은 한국 당구장 한 곳과 볼링장 정도”라고 말했다. 인천 직항 항공료도 비싸다. 성수기 요금(80만원)은 인천~베이징 간 항공료의 4배에 이른다. 직항 항공료가 비싼 것은 늘 수요 초과 상태이기 때문이다. 옌지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인은 “인천~옌지 노선 증편이 안 되고 있는 것은 중국 당국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중국 정부는 조선족이 한국 사람과 많이 접촉하면 그 고유의 민족성이 약해진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동북아경제공동체 중심축 예약 옌지경제개발구고신기술산업국 원일 과장은 옌볜에 진출하는 기업은 “현지인 사장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사업 파트너를 만나야죠. 경제개발구 같은 정상적인 통로를 이용하면 좋은데 더러 아는 사람에게서 소개 받았다 낭패를 봅니다.” 옌볜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곳이 장차 열릴 북한 시장의 전진기지이기 때문이다. 옌볜과기대 김한수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통일시대, 동북아시대를 내다보고 미래에 투자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옌볜에 대한 투자는 말하자면 통일시대·동북아시대에 대비한 포석이죠.” 같은 대학 정진호 교수는 “지금은 옌볜이 변방의 소외지역이지만 남북이 통일되면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땐 변방이 아니라 동북아 기업이 중동·유럽으로 뻗어나가는 길목이 될 겁니다.” 양철형 총경리는 “옌볜이 북한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의 근거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북한 시장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지만 앞으로 북한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이 근거지를 옌볜으로 옮길 거예요. 북한 시장도 조만간 열릴 겁니다. 그때에 대비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조선족을 고용하고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는 옌볜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물류비를 지원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올린 매출에 대한 법인세를 면제해 줄 수도 있고요. 어떤 식으로든 수익성을 보전해 주는 거죠. 그러다 보면 민간 기업들이 옌볜에 구축한 교두보를 우리 정부가 활용할 날이 올 겁니다.” 한국의 자본·기술, 옌볜의 인프라, 북한의 인력이 결합한 한민족 경제권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옌지기림반도체 서재형 과장은 “옌볜은 은퇴하면 와서 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노후에 연금 수입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은퇴 이민 후보지로 옌지를 고려해 볼 만하다는 것.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 비하겠습니까? 치안이 엉망이라는 것도 잘못 알려졌습니다. 밤에도 나다니고 밤길에도 택시 타고 다닙니다. 지난 2년 동안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어요. 중학교 3학년인 큰 애의 교육 문제가 걸리지만 옌볜의 명문인 옌볜일중에 사실상 한국 학생을 위한 외국인반이 있습니다. 7명의 한국 학생이 다니고 있죠.” 부인이 동의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막상 와서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LG화학, 나주공장 알코올 생산 설비 가동 중단..."비용 절감"

2여야의정협의체, 20일 만 와해...의료계 "정부·여당 해결 의지 없어"

3일주일에 네 번 나오라던 포스코...팀장급 주5일제 전환

4득남 '정우성', 이정재와 공동매입 '청담동 건물' 170억 올랐다

5 대한의학회·의대협회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중단"

6한국은행 "내년 근원물가 상승률 2% 밑돌며 안정"

7"월급 안 들어왔네"...직장인 10명 중 4명 임금체불 경험

8국내 기업 절반, 내년 '긴축 경영' 돌입...5년 새 최고치

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예산 증액, 정부가 수정안 내면 협의”

실시간 뉴스

1LG화학, 나주공장 알코올 생산 설비 가동 중단..."비용 절감"

2여야의정협의체, 20일 만 와해...의료계 "정부·여당 해결 의지 없어"

3일주일에 네 번 나오라던 포스코...팀장급 주5일제 전환

4득남 '정우성', 이정재와 공동매입 '청담동 건물' 170억 올랐다

5 대한의학회·의대협회 "여야의정협의체 참여 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