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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카드 남발에 서민 빚 쌓인다

[양재찬의 프리즘] 카드 남발에 서민 빚 쌓인다

지갑이 두툼한 사람을 보면 현금이 많아서가 아니라 신용카드를 여러 장 꽂고 다녀 그런 경우가 있다. 신용카드가 많으니 신용도 높은 사람일까? 한국에선 이 방정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소득이 없어도 카드를 발급해주고, 모집인과 은행 직원에게 목표를 할당하는 등 무리한 고객 확보 경쟁이 여전해서다. 반갑지 않은 신용카드 1억 장 시대가 다시 다가오고 있다. 6월 말 현재 발급된 신용카드는 총 9220만 장. 2002년 카드대란 당시 1억480만 장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한 뒤 줄어들던 것이 지난해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3.9장꼴이다. 쓰든, 처박아 두든 카드 한 장 찍어내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든다. 이른바 공(空)카드에 정보를 넣어 쓸 수 있는 카드로 만드는 데 구식 마그네틱 카드가 한 장에 250~ 300원, IC칩 내장 카드가 1500~ 3000원이다. 후불 교통카드 기능을 넣자면 2500원이 추가된다. 여기에 카드 디자인 비용, 해외 제휴 카드사에 지급하는 사용료와 로열티, 인지세(1000원)와 배송비를 합치면 적어도 5000원, 많게는 2만5000원이 든다. 게다가 카드발급 비용이냐, 마케팅 비용이냐의 논란이 있지만 어차피 고객 부담인 카드 유치수당이 건당 3만~4만원이니 카드 한 장이 나오기까진 3만5000~6만5000원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1년 이상 사용실적이 전혀 없는 휴면카드가 지난해 말 공식 통계로 2999만 장이다. 전체 카드의 32.9%다. 사정이 이런데도 카드업계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멈출 줄 모른다. 경쟁적으로 할인 혜택과 부가 서비스를 내세운다.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5년 전 카드대란 때와 같은 거리 모집 행위야 없다지만 경쟁사 간 카드 스와핑(가입 맞교환)이나 모델 하우스 판촉 행위가 되살아났다. 한동안 자제하던 카드사들의 마케팅 전쟁이 재발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청산 위기까지 몰렸던 LG카드가 신한은행에 인수돼 통합 신한카드의 출범이 예고된 지난해 초부터다. 요즘 통합 신한카드의 TV광고에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LG카드는 무리한 외형 확장 끝에 업계 1위는 됐지만 2003년 11월 현금서비스를 중단할 정도로 사실상 파산 상태에 빠졌다. 결국 정부가 채권은행단을 압박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고 신규 자금도 투입했다. 내버려 뒀다간 이 카드, 저 카드로 돌려 막으며 지탱하던 수많은 사람이 동반 침몰할 판이었다. 플라스틱 버블이 꺼지면서 학습을 할 만큼 했는데도 카드사들 행태는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규모야 카드대란 때보다 줄었다지만 카드론은 이름부터 문제다. ‘현금서비스’로 불리니 ‘이자 없는 서비스’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단기 카드대출’이 정직한 표현이다. 더구나 이자(최고 연 25~29%)와 취급 수수료(연 3~5%)를 더하면 이자제한법의 한도 이자율인 연 30%를 넘는 고리채(高利債)다. 미국과 유럽(20% 미만), 일본(15~18%)에 비해 너무 높다. 지난해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수수료로 벌어들인 게 2조8644억원, 올해도 3조원의 수입이 예상된다. 이자도 문제지만 그 이름부터 바꿔라. 게다가 6월 말 현재 고객들이 적립만 해놓은 채 묵혀둔 신용카드 포인트가 총 1조4094억원어치다. 또 쓰지 않아 날아가는 포인트가 연평균 1100억원이다. 카드 사용액의 0.1~2%를 적립해주는 포인트는 5년이 지나거나 카드 가입을 해지하면 날아가 버린다. 카드사들은 매달 보내는 사용내역서에 누적 및 소멸 예정 포인트를 알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가입을 권유할 땐 그리 요란하더니만 정작 사라질 포인트를 전화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적극적으로 알려주는 곳은 없다. 발급 건수로 1등 하려 들지 말고 서비스와 질로 1등 해라. 신용카드가 많다고 신용사회인가? 아니다. 이름이 ‘신용’카드지 엄밀히 말하면 ‘빚’카드다. 정말 신용이 높은 사회인 미국이나 영국에선 은행계좌 잔액 범위 안에서 바로 결제되는 직불카드(debit card) 이용 비중이 신용카드보다 높다. 우리나라도 같은 기능의 체크카드 이용이 늘어난다지만 아직도 결제 건수가 신용카드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신용카드, 이제 신용 있게 발급하고, 신용 있게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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