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균 없애면 건강 해칠 수 있다
현대의학은 박테리아를 죽이는 데 힘쓰지만 몸에 이로운 박테리아를 적극 찾아내는 일도 중요 잠시나마 내 몸을 유기체로 보자. 수조 개의 세포가 서로 합쳐져 각기 다른 조직과 장기로 분화되고 유전정보(DNA)에 따라 생존과 번식의 기본 목표에 맞도록 짜인 유기체 말이다. 그러나 그뿐일까? 실제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인체에는 또 다른 생명체들로 가득하다. 피부, 입, 코, (특히)소화기 등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모든 신체 부위에는 박테리아(세균)·곰팡이·원생동물이 득실댄다. 세포 수의 10배, 어쩌면 100배나 된다. 그들의 조상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적지 않은 균이 서식하는 어머니의 몸에서 조금 빠져나오는 순간부터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우리의 시신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고 우리와 죽음을 함께한다. 결합 여하에 따라 “인간의 DNA나 지문처럼 고유한” 특성을 지닌 수천 가지 세균이 발견된다고 스탠퍼드대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렐먼은 말했다. 그는 세균들이 우리의 소화기 계통, 면역체계, 신경 계통과 유지하는 복잡한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학자다. 우리가 떠난 곳에서 세균은 새로운 삶을 시작할까? 세균은 “인간의 일부”라고 렐먼은 말했다. 렐먼은 인간과 세균의 관계를 재점검하는 분야의 선두주자다. 세균은 지난 세기 대부분 동안 완전히 박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인간이 세균을 대하는 방식은 끔찍하다. 아직도 사람들은 유익한 세균은 죽은 세균뿐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항생제와 손 세척제로 세균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세균은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만일 세상에 살모넬라균 한 마리가 남았다고 치자. 그러면 30분마다 배로 늘어난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설사를 일으키는 데는 1주일도 채 안 걸린다. 항생제 출시 초기만 해도 의사들은 전염병 박멸을 꿈꿨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미 의학협회지(JAMA)에 실린 새 논문에 따르면 합성 페니실린의 일종인 메티실린에 내성을 지닌 ‘황색 포도상구균(MRSA)’이 창궐한다. 그 세균 때문에 2005년 미국에서 1만90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기존 추정치의 약 2배인 이 수치는 에이즈 사망자 숫자보다 많다. 주요 전염병학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밴크로프트는 이 같은 발견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항생제의 효과가 떨어지자 연구자들은 파스퇴르 시대의 개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체 안에 둥지를 튼 세균군은 생물학의 외생적 변수가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 핵심적 요소며 수백만 년 전 시작된 진화의 여정에서 우리의 친근한 동반자라는 시각이다. 각종 과학전문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제시카 스나이더 사크스는 이 같은 시각을 획기적 신저의 제목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좋은 세균, 나쁜 세균(Good Germs, Bad Germs)’-. 인체 안의 세균은 내장에서 비타민을 합성하는 유익한 기능이 있다. 게다가 인체의 면역 체계뿐 아니라 세로토닌(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뇌 신경전달 물질)의 수준까지 조절한다. 그렇다면 세균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우리의 소화를 돕고, 우리의 식사량과 우리의 욕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체중 감량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도 인간의 유전자가 아닌 세균의 유전자에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얄궂게도 세균은 우리를 뚱뚱하게 만드는 데 관심이 더 많은 듯하다. 인간이 좋은 취지로 시작한 세균과의 전쟁은 오히려 세균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가혹한 적자생존의 결과다. 페니실린이 포도상구균에 잘 듣지 않자 의사들은 메티실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메티실린에도 내성을 지닌 MRSA가 곧 출현했다. 초기엔 주로 입원 환자들이 그 박테리아에 감염됐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안 걸린다고 장담 못한다. 대개는 병원 밖에서 감염되며 일명 ‘USA300’으로 명명된 그 균주는 인간의 면역체계를 공격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특히 취약한 집단이 바로 미식축구 선수들이다. 찰과상이나 타박상을 자주 입는 데다 오랜 훈련 기간 동안 장비를 함께 쓰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는 그런 장비 착용이 일시적으로 면역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박테리아의 출현은 지난 5년간 미 프로 미식축구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 텍사스대, 남가주대의 선수들을 괴롭혔다. 이제 트레이너들은 운동장비를 거의 매시간 소독한다. JAMA에 실린 새 논문은 항균제품 제조업자에겐 일종의 축복이었다. 올해만도 이미 200종이 미국에서 출시됐다. 업체들은 뻔질나게 보도자료를 언론사로 보내며 은이나 벌꿀 성분이 함유된 ‘기적의 제품’을 열심히 홍보했다. 애리조나대의 찰스 거바(환경미생물학) 교수는 십대의 경우 휴대전화를 함께 써도 MRSA에 걸린다고 경고했다. 거바 교수는 화이자사가 개발한 휴대용 ‘퍼렐 손 세척제’뿐 아니라 클로록스 소독제와 항균성 오렉 진공청소기 생산업체의 고문으로도 일한다(오렉 진공청소기는 카펫에 들러붙은 세균을 자외선으로 죽인다). MRSA는 분명 끔찍한 박테리아이고 확산 속도가 빠르며 진찰도 까다롭다. 빅토리아 출신의 치어리더 헌터 스펜스(12)는 5월 어느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왼쪽 다리에 고통을 느꼈다. 그래서 엄마에게 “장딴지 근육이 쑤신다”고 투덜댔다. 이튿날 고통이 심해지면서 약간의 고열을 느꼈다. 그러나 감염됐을 때 나타나는 다른 증상은 전혀 없었다. 의사도 독감에 걸렸으려니 했다. 그러나 수요일이 되면서 체온이 39도를 웃돌고 왼발의 고통은 참지 못할 정도가 됐다. 그러나 현지 병원 두 곳의 의사들은 혈액검사에서 MRSA 양성반응이 나온 금요일까지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녀가 코퍼스 크리스티에 위치한 드리스콜 아동병원에 헬기로 실려올 무렵 체온은 42도를 넘고, 맥박은 분당 220회를 기록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생존 확률을 20%로 추정했다. 헌터는 감염을 치료하려고 다음주 내내 8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게다가 지복스(Zyvox)와 큐비신(Cubicin) 등 강력한 신종 항생제 두 가지를 주사 맞았다. 그녀는 살아났고, 지금은 집에서 지낸다. 그러나 폐 기능은 정상의 35%밖에 안 된다. ‘USA300 균주’에 “감염된 사례뿐 아니라 더 심각한 감염도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라고 드리스콜 아동병원에서 스펜스를 치료한 의사 제이미 퍼기는 말했다. 감염 경로가 파악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퍼기가 2005년 서로 무관한 증상으로 드리스콜 아동병원에 입원한 아동 3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1%가 MRSA 보균자였다(대개는 코에서 세균이 발견됐다). 상처가 나거나 손을 씻지만 않아도 감염됐다. 그럼에도 손을 안 씻는 사람은 많다. 애리조나대의 거바 교수는 손을 제대로 씻는 사람은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손가락 사이사이와 손톱 밑 부분까지 최소 20초간 깨끗이 씻어야 한다. 미국인은 19세기 세균의 역할이 밝혀진 이래 제거에만 혈안이 됐다. 그러나 몸을 청결히 하기보다는 항생제나 소독제 등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데 더 급급했다. ‘세균의 복음(The Gospel of Germs)’을 쓴 낸시 톰스는 이 같은 호들갑은 탄저병·사스·조류독감 등의 사회적 근심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고 말한다. 감염과 은근히 연관성이 있는 테러행위나 이민 등과 같은 문제를 우려하는 정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 “빈 라덴으로부터는 스스로를 못 지켜도 내 몸의 세균은 제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균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은 미국인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곧잘 빠져드는 버릇”이라고 톰스는 말했다. 1997년 퍼렐 손 청결제 출시를 계기로 막이 오른 알코올 성분이 든 겔 형태의 쥐어짜는 소독제는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부적’이다. 댈러스의 부동산업자로 어린 세 딸을 둔 샤론 모리슨은 언제든 많게는 10개가 주위에 비치됐다고 말했다. 집·자동차·지갑·사무실, 그리고 자녀들이 등에 지고 다니는 가방 안이다. 장 볼 때 몰고 다니는 카트도 일회용 소독제로 닦고, 자녀가 더 어렸을 적에는 베이비 시트용 커버까지 따로 갖고 다녔다. 식당에 갈 때도 방석을 가져갔다. 지난해 퍼렐 손 청결제가 9000만 달러어치나 팔린 사실을 감안하면 그녀만 신경과민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런 소독제가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도 씻는 행위만은 못하다. 미 질병통제소(CDC)의 웹사이트는 알코올은 먼지가 한 층만 쌓여 있어도 세균에 닿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세균에게서 수분을 빼앗아 죽이는 알코올 젤은 MRSA 같은 초강력 세균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내성을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 청결 문화의 일부임엔 분명하다. 전염병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교외 지역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보다 거주 환경이 훨씬 좋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항생제와 매우 근시안적인 거래를 했다. 연구자 대부분은 이제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이 알레르지·천식·자가면역 질환 등 큰 대가를 치르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질환은 우리의 선조들은 대부분 모르고 지냈다. 과학 전문 기고가인 사크스는 많은 사람은 이런 사실에서 완전히 그릇된 결론을 도출한다고 경고했다. 어릴 적에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리면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는 오해 말이다. 인간은 유익한 세균에 더 많이 노출될 필요가 있을 뿐이며 의학도 앞으론 몸에 해로운 세균과 이로운 세균을 구별해 내야 한다. 그런 결론은 여러 나라가 5년 간 연구에 참여하는 ‘인간 미생물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의 최종 목표다. 옹호자들은 그 계획이 최근에 완성된 인간 유전체 지도처럼 생명의 비밀을 풀어주리라 기대한다. 인간 지놈 프로젝트의 당혹스러운 결론 중 하나는 연구자들이 찾아낸 인간의 유전자 수가 파리의 유전자에 버금가는 약 2만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 “실종된” 유전자 중 일부를 인체에서 득실대는 세균에서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일부 연구자는 믿는다. 인간 미생물군집 프로젝트는 다양한 기후와 문화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연령의 피험자 100명의 몸 구석구석을 ‘채집’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 지놈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작업”이라고 뉴욕대 메디컬스쿨의 마틴 블레이저 박사는 혀를 내둘렀다(아니면 자랑했다). 그는 이번 연구에 참여한 학자 중 한 명이다. 인체의 여러 조직은 각기 별개의 생태계다. 가령 구강 내 치아 두 개가 각기 서로 다른 박테리아에 점령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발견하게 될 사실을 대개는 이미 안다. 모든 인간의 장에서 발견되는 이콜라이 박테리아를 포함한 대장균, 질(膣) 속에서 살아가는 젖산균, 피부에 붙어 사는 포도상구균 등이다. 그러나 특정 세균과 균주의 혼합은 사람마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가령 남성과 여성의 장에는 비슷한 세균이 살지만 피부엔 서로 다른 세균이 산다. 이처럼 우연이나 성에 따라 세균이 달라지고, 사회경제적 지위와 문화도 변수로 작용한다(인종은 별 영향이 없어 보인다). 세균은 일단 자리를 잡으면 죽을 때까지 머무르며 새로운 침입자를 쫓아낸다. 효과가 광범한 항생제는 그중 대부분을 죽이기도 하지만 대개 몇 주만 지나면 똑같은 종류가 다시 생겨난다. 세균들이 서로, 그리고 인체 세포와 상호 작용하는 방식은 가장 큰 골칫거리다. 미 국립 인간지놈연구소의 제인 피터슨은 “인체의 모든 곳에서 3가지 방향의 대화가 이뤄진다”며 “그런 대화가 건강과 질병 사이의 공백을 메워준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고 말했다. 인체의 세균 중 절대 다수는 소화기 계통에서 산다. 유아의 위산이 대부분의 침입자를 죽이기 이전인 생후 몇 달 안에 입을 통해 들어간다. 대장에서 발견되는 역겹고, 악취 나고, 얼핏 쓸모없어 보이는 내용물은 현대의학 초기만 해도 의사들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한 관장제를 이용해 그런 물질을 장에서 세척하려 했다. 그러나 미생물학자에겐 장내 박테리아야말로 경이로운 존재다. 고유한 DNA를 지닌 사실상의 인체기관이기 때문이다. 듀크대의 연구자들은 인간의 충수돌기(막창자 꼬리)가 아직 붙어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충수돌기는 이질이나 설사 같은 질환으로 장 세척을 한 뒤에도 장 속을 다시 점령하는 유익한 세균을 저장하는 창고 기능을 한다. 세균은 특히 원자의 길이가 수백, 수천 가지나 되는 감자·쌀 등의 식품에서 발견되는 다당류나 녹말 분자의 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장 등 소화기는 그런 성분을 활용 가능한 6가지 당분으로 분해하는 99가지 효소를 분비한다. 그러나 복부 팽만을 초래하는 세타 박테리오이드균만 해도 거의 250가지의 효소를 분비해 우리가 음식을 통해 흡수하는 에너지를 크게 높인다. 물론 ‘에너지’는 ‘칼로리’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워싱턴대의 제프리 고든 교수는 쥐의 창자에서 세균을 완전히 제거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했다. 그랬더니 정상적인 쥐보다 30%나 많이 먹고도 체내 지방은 정상 쥐의 절반도 채 안 됐다. 나중 기존의 박테리아를 투여했더니 급속히 정상 체중을 회복했다. 고든 박사는 “우리는 음식의 영양가에서 개인차가 심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 차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장내 세균”이라고 말했다. 물론 인간을 특수 상황 하의 실험실에서 키우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장내 세균의 차이가 체질의 차이를 초래한다는 증거가 있다. 거기엔 녹말에서 칼로리를 흡수하는 능력 외에 다른 요인도 작용하는 듯하다. 박테리아는 식욕과 신진대사를 관장하는 게레린과 렙틴이라는 호르몬의 수준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고 추정된다. 네슬레연구소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세균은 초콜릿을 먹고 싶은 욕구와도 연관이 있다. 게다가 일부 사람의 경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세타 박테리오이드균의 폭발적 증가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앞서 언급된 세타 박테리오이드균은 체중 증가와 관련된 녹말 소화 박테리아). 그렇다면 ‘스트레스성 폭식’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러나 당근과 사탕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와 같은 개인적 문제에까지 우리가 아닌 생물체가 개입한다는 사실은 매우 당혹스러울 뿐 아니라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세균은 외부의 생명체 중 우리와 가장 밀접하다. 워낙 가깝다 보니 평소 같으면 외부의 유기체를 공격하는 면역체계조차도 침입한 수조 개의 세균을 묵인한다. 건강의 진정한 의미를 둘러싼 수수께끼다. 평생 우리와 함께 사는 세균들은 면역체계가 아직 발달하지 않은 생후 수 주에서 수 개월까지 우리 몸속에 ‘식민지’를 건설한다. 사실 그들은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 인체의 면역세포는 호흡기나 소화기 계통에 정찰병을 보내 우리가 코로 들이마시거나 입으로 삼키는 모든 세균을 감시한다. 그러나 똑같은 세균이 지속적으로 관찰되면 인터루킨-10이라는 염증 억제 물질을 분비해, 세균을 잡아먹는 T-세포에 활동 중단 신호를 보낸다. 그런 신호는 건강한 면역체계 발달에 필수적이다. 인체의 면역 반응은 긍정적인 상호 소통과 부정적인 상호 소통이 적절히 뒤섞인 회로망에 의존한다. 따라서 치명적인 침입자를 무시할 위험과 거꾸로 무해한 자극에 지나치게 반응할 위험을 잘 피해야 한다. 그러나 면역체계가 제대로 발달하려면 일찍부터 여러 종류의 무해한 세균에 노출돼야 한다.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유아들은 대부분 그런 상태에서 지냈다.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오두막 바닥의 흙을 카펫으로 덮고, 농장 안의 동물을 멀리 떨어진 전문 사육장으로 보내며, 귀에 염증이 생기면 페니실린으로 치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염증을 가라앉히는 인터루킨-10의 반응도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청결을 중시하는 현대의 위생 체계나 도로 포장도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결과 아이들은 세균들로부터 계속 멀어진다”고 사크스는 말했다. 따라서 면역체계가 외부 자극이나, 심지어 인체 세포에까지 과잉 반응하는 경우가 생긴다. 전자의 경우엔 알레르기나 천식이 생긴다. 사크스는 “생후 한 살까지 항생제를 투여받은 아이는 아동기가 돼서도 알레르기나 천식을 앓는 빈도가 두 배를 넘는다”고 썼다. 그러나 거꾸로 면역체계가 인체 세포를 공격하면 과민성 장증후군·남창·다발성 경화증이 생긴다. 우리 선조들은 거의 모르고 지냈지만 선진국에서 갈수록 흔해지는 수많은 자가면역 질환의 대표적인 예다. 데이비드 스타라천이 1989년 최초로 세운 ‘위생 가설’(위생 조건이 좋을수록 천식이나 알레르기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가설)의 핵심이 바로 그렇다. 스트라천은 당초 아이들이 어릴 때 앓는 질환은 보호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불행히도 많은 부모가 그렇게 믿었다). 심지어 아이들을 일부러 질병에 노출시키는 유행이 한동안 번진 적도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제 놀이터나 공원에 사는 여러 종류의 무해한 세균에 노출돼야만 면역력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유익하면서도 해로운 기능을 함께 가진 박테리아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예가 바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다. 위장의 산성 환경에서도 살아가도록 진화한 그 균은 위벽의 점액 분비막을 뚫고 들어가 산성도를 떨어뜨리는 효소를 분비해 생존한다.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배리 마셜과 로빈 워런은 그 균이 웨궤양과 위암을 일으킬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그 후 추가 연구를 통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식도 역류와 식도암 예방 기능이 있으며 천식 발병률도 낮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을 함께 마시거나 식구 간의 직접 접촉을 통해 퍼지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수 세대 전만 해도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됐지만 선진국에선 현재 거의 사라졌다. 덕분에 위궤양과 위암은 줄었어도 식도암과 천식은 갈수록 는다(식도암은 미국에선 다른 암보다 발생 속도가 계속 빠르다). 앞으로 어떤 암이 늘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부터 인간의 소화기관을 점령했다. 무턱대고 제거하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뉴욕대 메디컬센터의 블레이저 박사는 말했다. 블레이저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죽이는 일이 과연 옳은가”라고 묻는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생명공학적으로 처리된 그 균을 의도적으로 투여해 위암의 위험 없이도 몸에 이로운 기능을 계속 유지하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 알약과 음식을 불문하고 이미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박테리아(일명 복합유산균) 시장도 급속히 커졌다. 지난해 미국 소비자들은 한 병에 이로운 세균이 “수십억 마리”가 들어 있다고 떠들썩하게 선전하는 다농의 ‘액티비아’를 1억 달러어치나 마셨다. 그 요구르트에 든 세균은 장의 정상적 운동을 돕는 동물성 비피더스 균주다. 회사 측은 교묘하게도 “정상성(regularity)”의 회복을 돕는다고 선전한다. 다농은 그 점을 강조하려고 균주의 이름까지 “비피더스 레귤라리스(Bifidus regularis)”로 다시 지었다. 감염에 맞서는 임파구 세포의 생산을 촉진하며 장에 이로운 유산균이 든 제품도 시판된다. 시장에 출시된 제품 중 다수는 검증받지 않아 효과가 의심된다. 참고로 ‘항생제에 내성이 있다(antibiotic resistant)’고 주장하는 제품은 자랑이 아니라 경고다. 박테리아는 유전물질을 서로 교환하므로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박테리아는 제 아무리 인체에 이롭다 해도 절대 몸속에 들여보내면 안 된다. 세균의 기능 중엔 어쩌면 가장 놀라운 기능이 한 가지 더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 연구진은 동아프리카의 흙에서 발견되고 면역체계 강화에 매우 효과적인 마이코박테리움 바케에 암치료 기능이 있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확실한 결론은 못 내렸어도 놀라운 결과를 확인했다. 그 박테리아를 투여받은 환자는 암의 호전 여부와 관계없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 크리스 로우리는 그 박테리아를 생쥐에 투여했더니 놀랍게도 전전두엽 피질에서 세로토닌 수용체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쉽게 말해 일종의 항우울제로 작용했다. 불면증이나 불안감 등의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연구자들은 마이코박테리움 바케가 인터루킨-10의 통로를 따라 작동한다고 믿는다(정확한 작동 원리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세균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할지 모른다는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운 암시가 읽힌다. 위생가설이 무엇보다도 우울증 증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까? 그렇다고 말하기엔 아직 멀었다. 그런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이제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 박테리아를 죽일 방법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With MATTHEW PHILIPS, RAINA KELLY and KAREN SPR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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