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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 필요없는친환경 건축

첨단기술 필요없는친환경 건축

프레이저 플레이스는 환경 친화적 건물로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2005년 선전에 세워진 초승달 모양의 이 오피스텔은 중국 최초의 친환경 상업용 빌딩이다. 창문은 미풍이 들어오도록 설계돼 에어컨 사용 필요성을 줄였고, 빗물은 정원용수로 쓰도록 저장된다. 이 건물은 선진 디자인 개념과 신기술, 안전한 자재의 결합으로 입주자에게는 건강을, 건물주에게는 효용성을, 대지에는 부담감을 덜어준다. 이 건물은 준공 후 1년 동안 같은 규모의 다른 편의시설에 비해 17만7857달러의 에너지를 절약했다. 그 덕분에 프레이저 플레이스를 비롯한 아시아의 몇몇 유사한 건물이 오늘날의 기후 논의에서 이목을 끈다. 아시아의 에너지 수요 증가는 석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는 주요 원인이며, 생물연료 시장을 뜨겁게 달궈 식량 공급마저 위협한다. 1950년대 기술로 설치된 화력발전 시설은 주로 석탄을 연로로 사용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되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다. 따라서 중국과 인도는 분명히 청정 발전시설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효과가 입증된 친환경 기술을 사용해 에너지 효율을 갖춘 도시들을 더 많이 세워야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사실이 점차 확실해져 간다. 예일대의 환경법 교수이며 ‘녹색황금(Green to Gold)’의 공동저자인 대니얼 에스티는 “기후변화 대응의 성공 여부는 아시아의 도시 건설 방법에 달려 있다. 이것은 큰 도전인 동시에 큰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왜 하필 아시아일까? 급속한 경제성장과 아직도 거대한 인구가 사는 이 지역 농촌이 21세기 도시화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미가 겪은 발전 과정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가 힘들다. 아시아 농촌인구의 도시 이주로 매년 수백만 명이 TV와 냉장고, 에어컨을 갖춘 아파트에 입주한다. 그중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매일 도시생활의 궁극적인 장식품인 자동차를 구입한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되면 2020년 중국 한 나라가 세계 석탄의 50%와 석유의 5분의 1을 수입하고 현재 3000만 대인 자동차는 1억5800만 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안은 뭘까? 하이테크나 고비용 기술이 아닌 기존의 친환경 공법을 이용해 건물을 짓는 방법이다. 대다수 전문가는 그렇게 함으로써 건설 비용이 약간 추가되겠지만 기존의 도시들보다 에너지 비용이 30~50% 낮은 도시가 건설된다고 본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친환경 건축 회의에서 호주에 본부를 둔 세계 친환경건축위원회(World Green Building Council) 의장을 역임한 체 왈은 환경오염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도시를 “달리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들이 생태 친화적으로 건설되면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환경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도시에서 주민들은 직장과 가까운 곳에 거주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너지 수요가 적은 경제발전을 이룩한다. 그는 “건축 부문에서 최대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소비의 약 절반은 건물이 차지하며 4분의 1이 교통수단 몫이다. 도시화로 이 두 가지 비율이 모두 늘어난다(반면 산업용 에너지 수요는 준다). 결국 에너지 절약의 잠재적인 요인은 도시들이 안았다. 매킨지 쿼털리지에 실린 최근의 한 연구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킬 만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검토한 결과 “감축 가능한 양의 75%가 실증된 기술(건물의 절연 시공과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의 광범위한 이용이나 기술과는 관련 없는 방법으로 달성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훌륭하게 설계된 건물은 대지에 어떻게 들어서느냐에 따라 자연 채광이 가능해지고 빗물을 저장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절약한다). 그 연구는 또 가장 값싸게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친환경 건물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반면 ‘청정 석탄’ 기술은 가장 비싼 방법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거의 절반은 건물이 차지한다. 친환경 건물 주창자들은 우수한 설계와 시공만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말한다. 프레이저 플레이스 설계와 시공에 컨설턴트로 참여한 EMSI사의 제이슨 헤인라인 사장은 “청정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건물을 건축하는 방법으로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편이 더 낫다”고 말했다. “설계를 통해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일이 그 첫 단계다. 거기에는 추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 친환경 건물의 세계적인 붐은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고, 아직도 에너지 과소비국이라는 오명을 지닌 미국 덕분이다. 아시아에서 발휘되는 미국 영향력의 대표적인 사례는 1998년 이래 미국 친환경건축위원회가 수여하는 에너지와 환경디자인리더십(LEED) 상(賞)이다. 이 제도는 실내 환경의 질과 자원 사용, 에너지와 물의 소비 같은 요인들을 기준으로 건물들의 등급을 책정하고 인증서를 발부한다. 여기서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건물들의 시장 가치는 10%까지 올라간다. 홍콩의 친환경건축위원회 부회장인 K S 웡은 “미국 친환경건물위원회의 운동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LEED는 시장성 면에서 세계적인 표준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현재 인도는 논란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새로운 에너지 절약 방법을 찾으려고 기존의 기술을 사용하는 데 가장 열성적인 국가다. 어느 면에서 친환경 건물의 전통은 마하트마 간디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신의 집을 와틀(엮은 나무 줄기)과 다우브(짚이나 흙을 소의 배설물과 혼합)로 지은 적이 있다. 1945년 인도를 처음 방문해 인도인으로 귀화한 영국 출신의 건축가 로리 베이커는 그런 간단한 미적 감각에 영향 받아 현지의 건축자재로 지붕이 움푹 들어가고 바람이 통하도록 벽면이 숭숭 뚫린 건물을 설계했다. 뭄바이 소재 STUP 컨설턴트사의 건축 담당 책임자이며 저명한 친환경 건축가인 아빈 알림찬다니는 “1960년대와 70년대 인도는 기후 적응과 자연 냉방, 그리고 현지에서 생산되는 건자재 사용의 경향이 우세했다”고 말했다. “그런 건물들은 LEED의 등급 부여에서 뛰어난 성적을 얻었다.” 인도 친환경건축위원회에 따르면 2003년 이래 30개의 인도 건축 프로젝트가 LEED 인증서를 획득했다. 그중에는 현재 하이데라바드에서 완공을 앞둔 인도 최초의 친환경 공항, 뉴델리와 뭄바이, 벵갈루루에 위치한 유명 기업들의 본사 건물들, 그리고 도시 규모의 특별경제구역인 푸네의 블루 리지가 있다. 알림찬다니는 “현재 그 다섯 배의 프로젝트가 준비 중”이라면서 인도 친환경건축위원회는 2010년까지 1000개의 친환경 프로젝트 진행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IGBC사의 프렘 C 제인 회장은 지난 9월 데칸 헤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우리는 이런 건물들의 발주와 모의실험, 그리고 운영을 감독하는 데 막대한 인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가장 야심적인 친환경 프로젝트는 대량 판매를 겨냥했다. ‘친환경지역(Eco Precinct)’이라고 명명된 주거단지는 712가구를 수용하며, 친환경 혁신공법을 동원해 하이테크 마술이 아니라 기본적인 설계 논리가 돋보이는 쾌적하고 효율적인 아파트를 건설했다.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의 조니 웡은 “우리의 사명은 최첨단 기법의 동원이 아니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대신 기본을 철저하게 지킨다. 단열 처리된 ‘시원한 벽’과 친환경 지붕, 나무 그늘이 드리운 주차장의 수평지붕은 태양열을 흡수한다. 창문들은 아침과 저녁에 드는 햇볕을 막으려고 남북 축을 향하며, 얇은 고층 설계로 통풍을 최대화했다. 공동구역은 태양열 발전으로 조명하며, 저장된 빗물로 단지의 외부 온도를 섭씨 4도까지 낮춘다. 단지 내 아파트는 이미 80%가 분양됐으며, 2009년 싱가포르에 건설될 공공주택의 3분의 1이 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지어질 계획이다. ‘친환경지역’은 현지 조건 적응의 사례 연구로 꼽힌다. 이곳 아파트들은 추운 지방에서 선호되는 완전 차단된 이중창 건물이 아니다. 그런 건물이 더운 지역에서는 에어컨 사용량을 늘린다. 이 프로젝트의 친환경 지붕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의 실험 결과 온대지방에서 선호하는 옥상 정원 방식은 물 공급이 필요하고, 모기의 서식처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적합한 식물 선정 과정에 싱가포르 국립대학과 공원관리국 전문가들이 동원됐고, 흙 대신 사용된 자갈 크기의 자기 파편은 뿌리의 부패를 막고 물이 고이지 않게 한다. 웡은 친환경지역은 재래식 공공주택보다 건설 비용이 5~8% 더 들어간다면서 “어느 정도 에너지를 절약할지 말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아시아와 세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현재의 실험적인 건축의 기본요소들을 미래의 기준으로 만들어 친환경 건설을 보편화시키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고무적이다. 친환경 인증서를 받는 프로젝트 숫자가 곳곳에서 늘어나며, 기업들은 LEED의 인증서를 받은 본사 건물이 홍보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또 건설업자들은 에너지 절약 건물들이 판매나 임대 시장에서 추가 비용을 상쇄할 만큼 유리하다는 점을 깨달아간다. 최고의 척도는 친환경 기준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비용이 상승한다는 사실이다. 체 왈은 “새로 건설되는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건물들은 조기에 낡은 구조물이 되는 현실을 맞을 운명”이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보다 중요한 점은 친환경 건물들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의 관점에서 각국 정부가 기존의 건축법을 재고한다는 사실이다. 홍콩의 행정장관은 최근의 연례 정책연설에서 강화된 에너지 절약 기준을 마련 중이라고 암시했다. 싱가포르는 가장 낮은 수준의 그린 마크 인증서를 신규 건축에서 최소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얼마 전 중국은 막강한 건설부 대표단을 시카고에서 개최된 미국 친환경건축위원회의 연례 회의에 파견했다. 그 회의에서 회원들은 중국이 에너지 절약과 2010년의 탄소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낮추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개발 중인 등급 책정과 인증서 제도를 제시했다. 제이슨 헤인라인 사장은 “이 제도는 한 줌의 샘플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계의 주도국이 되려는 중국은 자국의 환경정책을 바꾸고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있다.” 아시아는 영국의 환경 유지 정책을 잘 살펴보면 좋은 열매를 맺을지 모른다. 영국 정부는 이미 2016년 이후에는 탄소가스 배출이 전무한 주택 건설을 목표로 건축법을 단계적으로 정립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친환경 주택 건축법은 물 사용과 쓰레기 배출, 건축 자재와 에너지 소비에서 기준을 제시하며, 이 기준은 온실가스 배출 전무 목표연도까지 향후 9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높아진다. 환경 전문 기업 페이버 마운셀의 컨설턴트 니젤 뱅크스는 “이것은 장기적인 법률 제정의 훌륭한 예”라고 말했다. “이 기준은 건설업자들이 소규모로 아이디어들을 시험하도록 하고 자신들의 투자가 열매를 맺으리라는 점을 알면서 신기술에 투자하게 한다.” 유사한 기준을 세계적인 규모로 적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점을 등한시할 때 찾아올 위험은 막대하다. 구식 건물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지만 신식 건물은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 특히 아시아는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기 때문에 친환경적 건축으로 향후 10년이나 2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과 지구온난화를 현 수준으로 동결하고, 장기적으로는 감소시킬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프레이저 플레이스는 별로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시사하는 점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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