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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의 경영 승계(上)

LG그룹의 경영 승계(上)

한국 재계의 과거와 현재에서 LG그룹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3대에 걸쳐 60년이 넘도록 재계 최상위 순위를 지켜왔다. 또 경영권과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 불거지지 않았다. 구본무 회장은 ‘인화’의 전통에 성과주의를 접목해 LG의 도약을 주도하고 있다. ‘매끄럽다’는 평을 듣고 있는 LG그룹의 경영승계 과정을 2회에 걸쳐 조망해본다.
국내 최초로 국산화한 전화기로 시험통화 하는 구인회 창업회장(가운데).

기업은 3대를 넘기가 어렵고 나라도 3대째가 가장 고비라는 말이 있다. 3대쯤 되면 초창기의 힘찬 에너지가 소진돼 기득권층이 발호하고 조직 피로가 발생한다. 한번 대대적인 개혁을 해 조직이나 사람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참신한 기풍을 일으키고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무사안일과 경직화에서 빠져 나와 재도약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1대는 창업자이기 때문에 에너지가 넘치고 2대째는 고군분투하는 창업주 1세대를 보았기 때문에 긴장을 풀지 않지만 3대쯤 가면 좋고 쉬운 것만 찾게 된다. 측근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기업이나 나라가 융성하려면 뛰어난 3대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최우석 저 <삼국지 경영학> 중)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의 망중한.

올해 60주년을 맞은 LG그룹은 이런 측면에서 앞으로 다른 그룹들이 벤치마킹할 대상이다. 우리 기업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자산총액 기준 30대 그룹 가운데 직계로 3대째 이상 경영을 승계하면서 계속 사세를 키워온 곳은 LG와 두산 정도밖에 없다.

더욱이 3대째에 이르면서 LG에서 여러 그룹이 갈라져 나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LG의 성과는 더욱 돋보인다. 이를 가능하게 한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는 LG가 가동해온 경영승계 시스템이 아닐까.

LG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그룹이 치른 것과 같은 형제 간, 심한 경우엔 부자지간의 경영권 다툼이 없었다는 것이다. LG그룹은 고 구인회 창업주(1907~1969)에서 구자경(82) 명예회장으로, 그리고 구본무(62) 회장으로 두 차례의 회장 승계를 순조롭게 마쳤다.

이어 현재 LIG손해보험인 LG화재, LG벤처투자, 아워홈, LS그룹을 분가시켰다. 2005년에는 두터운 신뢰를 지켜온 허씨 집안과의 동업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LG의 경영승계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에서 출발해 오랜 수련기간을 거친다는 점이다. 구본무 회장은 75년에 ㈜럭키(현 LG화학)의 과장으로 입사해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총괄본부장 등을 거쳤다.

입사 6년 만인 81년에는 금성사(현 LG전자)의 이사로 승진했다. 이후 금성사의 일본 주재 상무, 럭키금성(현 LG) 회장실 전무, 부사장 등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왔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현장에서 경영을 배운 과정은 훨씬 혹독하고 철저했다. 그는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이따금 화장품 공장의 힘든 일을 돕곤 했다. 그러던 50년 5월, 그는 “교직을 그만 두고 내 일을 도우라”는 부친의 말에 따라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구 명예회장은 고향 선배 한 명과 함께 새벽마다 몰려드는 상인들에게 제품을 나눠주고 나서 낮에는 공장 일을 한 뒤, 밤이면 이틀에 하루씩 숙직을 했다. 추운 겨울이면 판자방에서 군용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몸이 녹을 때까지 잠을 설치곤 했다.

그는 자신의 경영혁신 이야기를 쓴 <오직 이 길밖에 없다> (92년·행림출판)에서 “이 생활이 무려 4년 가까이 계속 됐지만 창업회장께서는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으셨다”며 “그때 나의 간절한 소망은 창업회장에게서 칭찬 한마디 들어보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2007년 5월 폴란드 브로츠와프 시에서 구본무 회장이 ‘LG 폴란드 LCD 클러스터’ 준공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간절한 소망은 부친의 칭찬 한마디”


약 20년 뒤인 69년 가을. 뇌종양으로 병상에 누운 부친은 아들 구자경 부사장에게 비로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너는 장남이라서…. 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공장에 와서 고생하게 했을 때, 너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제? 하지만 그래서 니는 많은 것 안 배웠나. 그게 밑천인 기라. 너만치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앞으로 자신을 가지고 일해라.”(연암 구인회 전기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 중)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가업을 수성하며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 취임 당시 8개 계열사, 임직원 2만 명에 매출액 260억원이었던 그룹을 94년에 50개 계열사, 임직원 10만 명에 매출액 30조원 규모로 키워 놓았다.

95년 취임한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매출을 85조원으로 늘렸다. 그 사이 해외현지법인은 90개에서 130개로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6조8,000억원에서 62조원 규모로 불어났다. 다만 전자·화학 등에 집중하면서 계열사 수는 50개에서 32개로 줄었다.

이헌조(75) 전 LG전자 회장은 구본무 회장 대에 이르러 LG가 이룬 발전과 관련해 “구자경 명예회장은 수성의 경영색채가 강한 반면 구본무 회장은 충분한 발전동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전 회장은 발전동력의 원천에 대해 “완전히 체제를 갖춘 현대적 기업에서 밑바닥부터 수련을 했고, 충분히 준비되고 예고된 상황에서 경영권을 승계했다”고 설명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오랜 기간 호된 수련 기간을 거쳤지만 총수 자리에 오를 준비는 하지 못했다. 창업회장이 와병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타계했기 때문이다. 구본무 회장에게로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을 보면 아들에게 자신이 처했던 것보다 더 좋은 여건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배려가 엿보인다.

우선 그는 아들에게 미리 일러둬 총수직 승계를 차분히 준비하도록 했다. 또 창업회장과 함께 그룹을 일궈 온 집안의 원로들과 상의해 이들과 동반은퇴했다. 구본무 회장과 허창수 LG전선 회장 등 후대 경영인들이 독자적으로 활동할 여건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구자경 명예회장은 회장 시절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면현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선대 경영인들의 뜻을 구하고 동의를 거쳤다. 88년 자율경영 체제 도입과 관련해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비록 내가 그룹의 최고경영자이긴 하지만 그 분들은 엄연히 나의 숙부요, 사돈이며, 사업의 선배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서서 ‘전문경영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십시오’라고 하겠는가.”( <오직 이 길밖에 없다> 중)


구인회 회장은 유비형 창업주


▶버섯재배와 된장겷뺑뮌?개발에 몰두하며 자연인으로 돌아간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경 회장은 가끔 경영진들에게 “만 70세가 되면 경영일선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94년에 원로 경영진들에게 은퇴 의향을 구체화했고, 그 해 12월 구본무 그룹 부회장에게 이를 통보했다. 구자경 회장은 95년 1월 1일을 기해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꾼 뒤 2월 22일 긴급 사장단회의를 소집해 공식적으로 퇴임을 발표했다.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은 삼국지의 유비 같은 인덕을 가진 큰 인물이었다. 넓은 도량에 매료된 많은 인재가 그에게 모여들었다. 창업주와 1세대 경영자들은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화학, 전자, 정유산업을 개척해나갔다. 이에 비춰보면 2대 구자경 회장은 급속한 확대보다는 내실 있는 안정 성장을 꾀했다.

조직이 성공한 뒤에는 내부에서 쇠퇴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자기만족과 무사안일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위험은 2·3대로 넘어갈수록 현실로 나타나기 쉽다. 구본무 회장은 LG가 현재에 안주하지 않게끔, 그리고 더 높은 목표를 지향하도록 독려했다. 구 회장은 2002년 시무식에서 ‘일등 LG’를 구호로 내걸었다.

인사가 만사다. 구본무 회장의 인사 스타일은 구자경 명예회장과 가장 대조되는 부분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인화를 중시했고 내부에서 CEO를 발탁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런 방식은 위험하다고 지적받기도 했다. 90년 여름 제주도에서 열린 경영자 세미나의 식사 자리에서 구본호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구자경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경영자를 모두 내부에서 육성한다는 원칙은 위험합니다. 때로는 경륜이 많은 외부의 훌륭한 인재들을 영입함으로써 조직 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구자경 회장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이는 그가 92년 펴낸 <오직 이 길밖에 없다> 에서 확인된다. “사업도 잘 모르고, 고객도 잘 모르는 외부 사람에게 다른 일을 잘한 경력이 있다는 명망만을 믿고 (경영을) 맡길 수는 없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이 원칙에 얽매여 외부인사의 영입을 근원적으로 막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외부인사라 해도 훌륭한 자질과 해당 사업에 대한 충분한 경험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입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사장으로 직접 영입하는 것보다 임원이나 중간 간부급으로 발탁해 사업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게 하고 럭키금성인으로서의 자세를 익히게 한 다음, 경쟁을 통해 최고경영자로 키우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반면 구본무 회장은 외부 인재를 CEO로 불러들여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 2005년엔 LG생활건강의 CEO로 P&G와 해태제과를 이끌었던 차석용 사장을 영입했다. 이어 지난해 1월 신재철 전 한국IBM 사장을 LGCNS 사장으로 등용했다.

요즘 들어서는 과단성 있는 인사로 분위기를 쇄신했다. 지난해 말 LG필립스LCD의 CEO를 동생 구본준 부회장에서 권영수 사장으로 교체했다. LG전자에는 김쌍수 부회장 대신 남용 사장을 기용했다. 앞서 2005년 말엔 LG화학에서 실적부진에 대한 인사가 단행돼 노기호 사장이 물러나고 김반석 사장이 취임했다.

구본무 회장은 인사와 함께 보상체계를 개편했다. 외부에서 영입된 LG 계열사의 한 중역은 “임원 보수 시스템이 개인의 실적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는 쪽으로 바뀌면서 조직 문화가 경쟁적으로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밖에서 갖고 있는 ‘인화의 LG’ 이미지와 안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조직 문화 사이에 차이가 크다”고 들려줬다.

인사와 보상 시스템에 변화를 주자 내부 구성원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자신이 모험적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LG그룹은 70%를 웃돌았다. 반면 다른 그룹 임직원 가운데 그렇다고 대답한 비율은 약 47%였다. 아주대 경영연구소가 LG·삼성·현대차·SK 등 4대 그룹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올해 초 발표한 결과다.

LG그룹의 변화는 과거 시점과의 비교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아주대 경영연구소 김관영 연구원은 “95년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4대 그룹 모두 모험을 즐긴다는 쪽으로 답변이 옮겨갔는데, 그 정도가 특히 LG에서 두드러졌다”고 밝혔다.

질문 문항은 모험을 즐길수록 1에 가까운 숫자를, 반대로 안정을 중시할수록 8에 가까운 숫자를 택하란 것이었다. 답변 수치의 평균이 95년 조사에서는 4대 그룹 전체가 5.46, LG그룹은 5.33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 조사에서 LG그룹의 평균은 3.12로, 4대 그룹 전체 평균 4.39보다 훨씬 더 모험을 선호한 쪽으로 기울었다.

지난 몇 년 동안 LG그룹에 인사 컨설팅을 해 온 타워스페린 서울사무소의 박광서 사장은 “LG의 조직 문화가 실적 지향, 성과 중시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박 사장은 “인화와 같은 한국적 가치를 중시하면서도 한 차원 높은 쪽으로 조직 문화를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부진했던 LG의 주력 계열사들이 올해 들어 호전된 실적을 내놓았다. LG전자·LG필립스LCD·LG화학 등 주력 계열 3사의 영업이익은 올해 1~9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58억원보다 약 9배 많은 2조298억원으로 급증했다. 타워스페린의 박 사장은 “CEO 교체 시기가 적절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구본무 회장은 시선을 더 멀리 두고 있다. 임직원에게 단기 성과에 자만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지난 10월 초 열린 계열사 임원 세미나에서 그는 “사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단기적인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영속 가능한 1등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헌조 전 회장 서면 인터뷰


“구본무 회장은 성공한 3세대”


“구자경 명예회장은 수성의 경영색채가 강했다. 그래서 혹자는 구자경 명예회장을 한국기업 1.5세대라고 한다. 그러나 구본무 회장은 명실상부한 제3세대다. 충분한 발전동력을 갖추고 있다.”

LG의 ‘산 역사’이자 대표적인 경영자인 이헌조(75) LG전자 전 회장의 평가다. 그는 1957년 공채 1기로 입사해 금성반도체·럭키금성상사·금성사 등 주요 계열사를 경영했다. 이어 LG인화원에서 인재를 길러냈다. 이 전 회장에게서 LG그룹의 전통과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구본무 회장은 성공적인 수성은 물론 ‘일등 LG’란 기치를 앞세워 영역 확장도 이뤘습니다. 구본무 회장이 승계한 이후 기업문화와 가치, 인재상 등 측면에서 LG그룹의 변화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국내외 경영 정세의 변화와 한국 기업의 발전 단계적 추이에 따르는 것이긴 하나, 구본무 회장 대에 와서 뚜렷하게 달라진 것은 기업의 선진화 전개라 할 수 있다. 생산과 시장의 글로벌화가 가일층 촉진됐으며 연구·개발도 국외로 일부 전개되고 있다.

인재의 등용도 기존 조직을 자극할 만큼 과감해지고 일에 대한 보상도 매우 성과주의로 변화해 조직이 활성화되고 있다. 기업문화 측면에서는 창업세대부터 내려오는 인화와 정도경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변화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할 LG그룹의 정신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LG그룹의 창업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발전과정에서 분명한 부분이 LG는 사업에 착수하거나 발전을 시도할 때에 제일 먼저 기술을 자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한계에 부딪히면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고 합작도 불사한다. LG가 기술의 발전과 상관없이 합작하거나 기업을 매수하는 예는 거의 없다.

LG는 경영이념에서도 밝힌 것처럼 사람을 존중한다. 어느 기업이 인재를 중요시하지 않을까마는, LG는 인간을 그 자체로서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사람으로 인한 말썽이 적다. 유교의 좋은 전통이다. LG는 창업 때부터 소비자가 찾는 것을 찾아서 제공하려고 했고 그래서 사내에 철저한 고객 중심의 가치관도 생겼다.



구인회 창업주는 인재를 끌어들이는 리더십으로 기업을 키웠다는 평가입니다. 이에 비춰 구자경 명예회장과 구본무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창업회장께서 뜻하지 않게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수성의 경영색채가 강했다. 제2대에 있어서 기업경영과 사업의 현대화가 과감히 전개됐지만 보유한 인재의 역량 한계도 있고 한국 기업의 여건도 있어서 지나친 도전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혹자는 구자경 명예회장을 한국기업 1.5세대라고 한다.

그러나 구본무 회장은 명실상부한 제3세대다. 첫째, 그는 완전히 체제를 갖춘 현대적 기업에서 밑바닥부터 수련을 했고, 충분히 준비되고 예고된 상황에서 승계를 받았기 때문에 충분한 발전동력을 갖추고 있다. 또 제2대가 각 내부 기업을 공개한 시기라면 제3대는 지주회사를 통한 경영의 시기다.

그래서 경영의 권한과 책임의 이양이 대폭 담당 사장으로 넘어간다. 제2대와 달리 실적이 없거나 실패가 있으면 사장도 과감히 회사를 떠나게 한다. 기술·생산·시장의 글로벌화뿐만 아니라 과감한 경영이양이 진행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업경영의 선진화 시대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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