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 선생님은 여고생 클레오
내 문학 선생님은 여고생 클레오
때늦은 공부로 무식함을 면해 보려는 44세의 남자다. 광산과 철강의 도시인 펜실베이니아주 앨런타운에서 자라면서 당시 그 지역 남자들이 으레 그랬듯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건설 노동자가 됐다. 그 다음에는 건물의 현관 안내인으로 일하다가 바텐더가 됐다. 처음에는 프랑스 와인에 관한 지식보다 억센 힘과 도시생활의 영악함이 더 유용한 싸구려 술집에서 일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분야에서 최고 수준까지 올라 워싱턴 DC의 ‘고급 회원제 클럽’을 맡아 몇 년 동안 잘 관리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프로 레슬러 헐크 호건이나 액션 배우 빈 디젤처럼 힘깨나 쓰는 사람들을 동경하지 않는다. 요즘 내가 본받고 싶은 사람은 열일곱 살 여고생 클레오파트라다. 바텐더로 일하는 동안 대여섯 건의 체포에 연루됐고, 스트립쇼 클럽에서 숱한 살인협박을 받았으며, 한 건의 형사 재판과 마약·알코올·도박 문제에도 관련됐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학교에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클레오를 알게 됐다. 클레오는 내 여자친구의 딸이다. 그 애는 평점(GPA) 4.0을 받는 우수한 학생이다. 사실 그 애의 평점은 4.0을 넘어 4.25에 이른다. 전국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학교의 명예를 빛내거나 우수반 수업(AP classes)을 들어서 ‘가산점이 포함된 평점’(weighted GPA)이다. 메릴랜드주 타우슨대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아직 클레오를 만나기 전이었다. 처음에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등록했다가 두 과목의 시험을 통과한 뒤 학위과정으로 옮겼다. 한두 번 낙제도 했지만 나이 서른아홉이 다 돼가던 2002년 2.16이라는 기대 이상의 평점을 받고 졸업했다. 지금은 존스 홉킨스대에서 문예창작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존스 홉킨스대의 강의는 우연한 기회에 워싱턴 DC 캠퍼스에서 처음 듣게 됐다. 내가 일하던 스트립쇼 클럽에서 걸어서 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클레오는 마음만 먹으면 아주 매력적인 소녀가 될 소질이 다분하지만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기를 즐긴다. 물론 공부도 많이 한다. 내가 그 애를 처음 만났을 때 열다섯 살이었지만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애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때는 자신의 성적표를 냉장고에 붙여놓았다. 성적표에는 그 애의 우수성을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 교사들의 의견이 곁들여져 있었다. 며칠 후 내가 존스 홉킨스대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자랑했을 때 그 애는 참 대단하다고 감동한 척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애 어머니는 클레오가 8학년 때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본 뒤로 줄곧 그 학교에서 입학을 권유해 왔다고 말해줬다. 어쨌든 나는 내 입학허가서를 프린트해 냉장고 위에 붙였다. 하지만 나는 늘 진짜 교육의 기초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존스 홉킨스대에 들어간 뒤 서둘러서 다른 학생들을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보다 15~20년 어린 우리 과의 똑똑한 여학생들이 클레오의 나이 때 읽었을 법한 필독서들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몸무게가 90kg이나 나가는 10대 미들라인 배커(미식축구 포지션 중 하나)를 가르쳐 보려고 최선을 다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 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하루에 두 번 점심을 먹고 수업 시간에 졸았던 기억밖에 없다. 클레오는 여름 방학 때 ‘싯다르타(Siddhartha)’를 읽었다. 그 애는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주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필독서로 지정해 준 책이니?” 내가 물었다. “아뇨. 하지만 작년에 필독서로 읽은 고학년 친구들이 꼭 읽어보라고 했어요.” “와, 멋지다.” 내가 말했다. 클레오의 친구들도 아주 똑똑하다. 대다수가 같은 2중언어 유치원에 다녔고,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또 모두 파리와 남미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클레오에게 그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클레오는 내 문학 선생님이 됐다. 그 후 얼마 안 돼서 클레오네 집 식탁 위에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가 눈에 띄었다. 그 애 오빠나 어머니의 책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 클레오에게 그 책은 어땠느냐고 물었다. “좋았어요. ‘1984년’보다 나았어요.” 그 애가 말했다. 이번에는 빌려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바로 반스&노블 서점으로 달려갔다. 다음은 ‘동물농장(Animal Farm)’이었다. 나는 조지 오웰의 작품들을 다 읽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클레오가 그 책은 ‘1984년’보다 더 짧다고 말했다. 잘 됐다. 내 나이 벌써 마흔넷이니 시간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다음 책은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였다. 그 책은 앉은 자리에서 거의 다 읽었다. 클레오는 좋은 길잡이였다. 나는 클레오의 집에서 새 책이 눈에 띄면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식탁 위에 쌓인 물건 중에서 책장이 너덜너덜해진 커트 보네거트의 ‘챔피언들의 아침식사(Breakfast of Champions)’를 발견했다. 이 책이 내 다음 교재인지 빨리 알고 싶었다.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클레오를 큰 소리로 불렀다. “어이, 클레오….” [필자는 메릴랜드주 프레더릭에 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IDC "삼성 태블릿, AI 기술 탑재 이후 판매량 급증"
2신한라이프케어, 장기요양시설 1호 ‘분당데이케어센터’ 개소
3진단검사 디지털 혁신하려면..."제품 표준화 필요해"
4메트라이프생명,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첫 발간…“ESG경영 강화”
5두나무, 업비트 시장감시 시스템 업그레이드…시장동향 모니터링 강화
6국민이주㈜, 미국영주권 금융서비스 확대...4대 은행과 업무제휴, 9일 미국투자이민 설명회
7금융당국, 카카오모빌리티 분식회계 ‘중과실’ 결론…검찰 이첩
8청년재단 중앙청년지원센터, ‘2024 청년센터 종사자 역량강화 집합연수’ 성공적 마무리
9뉴햄프셔주 딕스빌노치서 해리스·트럼프 '각각 3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