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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에 어둠이 내리면 네온으로 치장한 트라이시클이 거리를 질주한다. |
보고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순박한 소읍이지만 환경 좋고 안전한 곳이라 필리핀 부자들이 이곳에 별장을 많이 두고 있다. 이곳은 필리핀에서 가장 깨끗하고 푸른 곳으로 네 차례나 선정됐다.
1500년대로 들어서며 대항해 시대가 열린다. 동양의 향신료를 찾아 모두가 희망봉을 돌아 동쪽으로 가는데 거꾸로 서쪽 바다로 향했다. 천신만고 끝에 남미대륙 끝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마젤란 해협을 발견하고 생과 사를 넘나들며 수많은 부하들을 바다에 수장시키고 태평양을 건너 동방의 섬나라에 닿는다.
 | ▶1 보고의 인근 마을 카양에서 마을 축제가 열렸다. 2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닭싸움이 벌어진다. 3 보고 죄수들이 평상복을 입고 교도소 마당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 |
마침내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하고 지구가 둥글다는 걸 완강히 거부하던 교황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십자가를 세우고 추장들과 친교를 맺으며 성취감에 들뜬 마젤란은 이웃한 작은 섬의 추장이 호의적이지 않은 데 분노한다. 60명의 부하들과 1,000여 명의 원주민을 데리고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작은 섬으로 향한다. 순순히 항복할 줄 알았던 작은 섬의 추장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창에 머리가 찔리고 독화살이 다리에 꽂혀 마젤란은 어이없이 목숨을 잃었다. 5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마젤란이 상륙했던 곳은 필리핀 한복판에 있는 섬인 세부이고, 세부의 위성 섬 막탄에서 마젤란은 죽었다. 마젤란을 죽인 막탄 섬의 추장 이름을 기려 이 작은 섬은 라푸라푸 시티라 불린다. 이곳에는 세계 일주의 위업을 이룬 마젤란은 죽어 마땅한 인물이고, 최초로 서양 침략자를 무찔러 죽인 라푸라푸는 영웅으로 그의 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세부는 오뉴월 엿가락 늘린 듯이 남북으로 길고, 동서는 폭이 좁아 산등에 올라 고개만 돌리면 동서쪽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쪽 해안 가운데 세부 시티가 있고 길지 않은 다리 두 개로 막탄 섬 라푸라푸 시티가 연결됐다. 세부시의 공항은 막탄 섬에 자리 잡았고 막탄 섬 바닷가엔 호화로운 리조트가 늘어섰다. 인천 공항에서 날아온 직항 비행기는 우리나라 허니문 커플들을 꾸역꾸역 쏟아낸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호화판 리조트가 아니다. 땅은 자동차로 덮이고 하늘은 빌딩으로 덮인 세부시도 아니다. 다리 건너 세부에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두 시간 반쯤 오르면 시간이 멈춰 버린 곳, 보고가 나온다. 보고는 인구 4만 명의 해변 소읍이다. 주변 어촌과 농촌 마을을 제외한 읍내 인구는 2만 명도 채 안 되지 싶다. 보고 읍내를 슬슬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벽이 없는 이발소 나무의자에 목 아래로 보자기를 덮은 이웃 아저씨가 부지런히 가위질을 하는 이발사와 얘기를 나누고, 길가엔 장작 장수가 끈으로 장작단을 묶고, 불로 달군 철판에 설탕을 부어 토끼 모양, 개 모양 사탕 과자를 찍어내는 좌판엔 아이들이 빙 둘러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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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보고의 야참 골목은 밤이 깊어지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우) 메르세데스 농장 GC 옆으로 아직도 사탕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엮은 판자가게엔 사카린·소다·머리핀·고무줄, 형형색색 실타래를 팔고 있다. 신던 신발이 산더미를 이룬 좌판에선 맘에 드는 신발 한 짝을 들고 다른 짝을 찾아 뒤지고 있고, 함석대야 물방개 룰렛 주위엔 하굣길 학생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보고는 세상과 담을 쌓은 꽉 막힌 곳이 아니다. 시내 한복판엔 백화점이 있고 대학이 있고 쇼핑몰도 있다. 도시의 기능을 갖췄지만 사람들은 순박하고 밤에 골목길을 혼자 다녀도 안전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 필리핀 환경청에서는 ‘푸르고 깨끗한 곳(The National Clean & Green)’ 캠페인을 벌인다. 보고는 필리핀에서 가장 깨끗하고 푸른 곳으로 네 차례나 선정됐다. 보고 시내를 살짝 벗어나 10~20분쯤 나가면 산골 동네의 닭싸움 축제에 함께 어울려 1,000?,000원을 베팅할 수 있고, 거미 싸움에 푼돈을 걸 수도 있다. 보고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순박한 소읍이지만, 환경 좋고 안전한 곳이라 필리핀 부자들이 이곳에 별장을 많이 두고 있다. 부자들의 취향도 갖가지다. 보고 시내에서 10여 분 떨어진 외곽에 자리 잡은 드넓은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한 부자는 사탕수수 밭을 밀어버리고 챔피언십 골프코스를 만들어 놓았다. 바로 메르세데스 농장 골프클럽(Mercedes Plantation G.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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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골프장 인근 마을의 어부 집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우) 골프코스 너머에 있는 리조트와 그 건너편에 태평양이 펼쳐졌다. |
이 골프코스를 장기 임대해 운영하는 사람은 우리 한국의 젊은 사업가다. 이 골프클럽에서는 회원권을 팔고 있다. 총 입회금 350만원의 5년 소멸형으로 회원은 무기명 1인을 동반할 수 있어 따져보면 회원권 값이 1인당 175만원이란 계산이다. 무제한 라운드, 그린피 무료, 숙박 무료, 한식 뷔페 1일 3식 무료, 거짓말 같은 조건이다. 선뜻 회원권을 구입하기가 찜찜하다면 항공료 포함 4박5일 95만원짜리 골프 투어를 가서 탐색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02-786- 4568, www.cebugolf.co.kr). 보고 시내에서 한두 달 보내려면 기본적으로 1층 거실과 부엌, 2층 침실(에어컨), 욕실이 있는 현대식 주택이 월세 20만원, 월 생활비(2인)는 모두 합쳐 100만원이면 풍족하게 살 수 있다. 출퇴근하는 가정부 월급이 2만6,000원이다. 이곳에서는 자가용 장기 임대가 필요없다. 이곳의 택시인 모터사이클을 개조한 트라이시클은 시내에서 골프코스까지도 1,300원이다. 에어컨에 기사가 운전하는 세단을 하루 빌리는 데는 4만원이다. 보고 주변에는 많은 여행지가 있고 하루 만에 배를 타고 보홀 섬에 가서 그 유명한 초콜릿 동산을 보고 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중 1·2학년 수준의 영어만 하면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보고 즐기기 항공편 : 인천공항~세부섬 /
숙박 : 현대식 주택 월세 20만원
식사 : 기본 부식비 저렴 /
교통 : 트라이시클 /
골프 : 메르세데스 농장 골프클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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