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인가
▶2008년 1월 9일 열린 금융인 간담회에서 시중은행 행장들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리처드 워커 외환은행장, 박해춘 우리은행장, 강정원 국민은행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회장. |
“인맥을 짚어라.” 연초 인사 시즌을 앞두고 금융권 CEO들이 고민에 빠졌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데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로 새로운 엔트리(Entry·선수명단) 구성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권 CEO들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금융 빅뱅을 염두에 둔 엔트리 작성에 고심하고 있다. 새 정부는 금융 선진화의 일환으로 국책은행 민영화와 함께 금융회사 간 M&A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60조원짜리 빅딜인 산업은행 조기 민영화 방안을 발표한 상태.
은행권 MB 인맥으로 ‘물갈이’ 산업은행 민영화는 국내 투자은행 업계 판도를 뒤바꿀 수 있는 대사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우리금융, 기업은행 등 굵직한 매물들도 대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권 CEO들은 금융 빅뱅에 대비해 창과 방패가 될 수 있는 뉴 파워 인맥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금융권에 급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파워 인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동지상고와 고려대 출신 인사들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들을 ‘MB 인맥’이라 부르고 있다. MB 인맥이 가장 먼저 급부상하고 있는 곳은 지난해 말부터 대규모 인사를 진행 중인 은행권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농협중앙회. 지난해 12월 27일 정대근 전임 회장의 법정 구속으로 회장 선거를 실시한 농협중앙회는 최원병 경북 안강조합장을 후임으로 선출했다. 최원병 회장은 이명박 당선인의 동지상고 후배로 경북도의회 의원(한나라당)을 지낸 바 있다. 당초 농협중앙회 회장에는 김병원 나주 남평조합장이 유력한 것으로 분석됐다. 회장 선거 때도 1차 투표에서 김병원 조합장이 압도적인 표차(137표)로 최 회장을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2차 결선투표가 실시됐고, 그 결과 최 회장이 선출되는 대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이를 두고 농협중앙회 내부에서는 “대선 결과가 표심(전국 1183명의 조합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뒷말이 무성했다. 농협중앙회 개혁보다는 신·경 분리 반대 등 농협의 목소리를 정권에 전달할 수 있는 창구로 최 회장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 한 관계자는 회장 선거 결과에 대해 “결국 새 정부를 겨냥한 포석 아니겠느냐”며 “신·경 분리 등 농협과 관련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0일 단행된 신한은행 임원 인사에서는 이 당선인의 동지상고 9년 후배인 이휴원 투자은행(IB) 담당 부행장이 연임에 성공해 금융권의 이목을 끌었다. 임기가 만료된 6명의 현직 부행장은 모두 퇴진했지만 이 부행장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실속과 인맥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인사였다는 평가다. 즉 대운하 개발 등 새 정부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국내외 개발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인물을 경영진에 그대로 앉혔다는 것. 신한은행도 “IB사업의 연속성을 고려한 인사”라고 설명했다. 이 부행장은 노조위원장 출신 부행장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신한은행의 투자은행 업무를 키워온 사람이다. 신한은행의 캄보디아 진출 등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은행 임원 인사에서도 이 당선인과 고려대 경영학과 동문인 이창식 전 구로금천영업본부장이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은행 등 금융권뿐만 아니라 금융감독 당국 내에서도 ‘MB 인맥’이 뜨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윤창 금융감독원 국제업무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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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상고 출신들 ‘아! 옛날이여’ 김 사장은 현대증권을 정상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범 현대가 경영권 분쟁에서 현대그룹을 구해낸 일등공신 중 한 사람이다. 하지만 지난해 김중웅 회장이 입성하고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김 사장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건강상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퇴진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통상 사장 퇴임 이후 배려 차원에서 경영고문 등의 역할을 주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엔 이마저도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부산상고 출신인 선환규 우리은행 부행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부행장 승진 8개월 만에 옷을 벗었고, 역시 부산상고 출신으로 국민은행 행장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김정민 부행장도 최근 인사에서 자회사 대표로 물러나고 말았다. 정권교체로 부산상고 출신에 대한 처우도 180도 달라진 분위기다.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금융인 간담회에서 지방은행 대표라 할 수 있는 이장호 부산은행장 대신 이화언 대구은행장이 참석해 관심이 쏠렸다. 현재 지방은행 간사는 부산은행이다. 간사 은행은 은행연합회 이사회를 포함해 각종 모임에 지방은행 대표로 참석하는 것이 관례다. 이화언 행장은 이 당선인의 모교인 고려대 출신이고, 이장호 부산은행장은 참여정부에서 약진했던 부산상고 출신. 간사 은행인 부산은행이 빠지고 대구은행이 참석한 것에 대해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이례적인 일이다. 권력이동을 실감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처럼 정권교체로 권력이동이 시작되면서 금융권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다른 부산상고 인맥들의 퇴진 여부로 모아지고 있다. 현재 금융권에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김대평 금융감독원 부원장, 김장수 은행연합회 상근부회장, 옥치장 증권선물거래소 본부장, 오정희 한국자금중개 사장, 이양한 예금보험공사 감사, 이수희 증권예탁결제원 감사, 오재찬 서울보증보험 감사, 박철용 신용보증기금 감사, 김영길 제주은행 감사 등 부산상고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는 상태다. 증권선물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정부 입김이 미치는 곳부터 퇴진이 시작되지 않겠느냐”며 “보험, 증권사 등의 결산이 끝나는 3월 전후로 또 한 번 대규모 인사태풍이 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권에서는 정권교체에 따른 권력이동에 대해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친정부 인맥 구축은 기업 경영을 위한 ‘필요악’이라는 설명이다. 한 외국계 금융회사 대표는 “기업에 있어 인맥은 최고의 창이자 방패”라며 “한국 사회에서는 기업의 인맥 활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높지만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업의 최고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인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골드먼삭스나 론스타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사실 ‘인맥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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