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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한은과 MB정부와의 ‘갭’ 좁힐까

[ISSUE] 한은과 MB정부와의 ‘갭’ 좁힐까

▶이성태 한은 총재는 경기부양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으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중앙은행 총재는 외로운 자리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한 말이다. 경기 부양 정책을 거들라는 정치적인 압력에 처할 때면 외로움은 더욱 깊어진다. 경기 부양 압력은 새정부 출범 초기에 특히 거세게 마련이다. 이 총재가 이명박 정부와의 ‘온도 차’를 어떻게 좁혀 나갈까. 중앙은행 총재라는 자리, 그 어려운 역할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2008년 1월 4일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 은행, 증권, 보험 등을 망라한 각 금융사의 경영진과 금융당국의 간부 1000여 명이 모이는 금융인 신년 인사회가 열렸다. 신년사는 세 사람이 차례대로 했다. 권오규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맨 처음 연단에 섰고, 이어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마지막으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 순서에서 밀렸다고 중앙은행인 한은을 정부의 하부 기관쯤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한은의 존재감은 정부와는 사뭇 다르다. 한은도 엄연한 국가 기관이지만 다른 정부기관의 통제나 지시를 일방적으로 받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에선 재정과 금융의 분리 원칙에 입각해 금융정책 권한을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나 정부의 지시·감독·간섭으로부터 독립해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은법에도 “한은은 매년 정부와 협의해 물가안정 목표를 정하고 이를 포함하는 통화신용정책 운영계획을 수립 공표한다”고 돼있다. 정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협의’를 통해 통화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여기엔 총재의 정치적 감각과 의사소통 능력이 요구된다. 극단적인 예로 대통령은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는데 한은 총재는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높여 돈줄을 죈다면 어떻게 될까. 경기 부양도 어렵고, 물가 안정도 곤란해진다. 극단적인 예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이게 요즘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 되고 있다. 물가는 계속 오르고 경기는 식고 있다. 경기가 하강하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새 정부는 이미 고성장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니 어떻게든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자세다.
새정부 한은에 “정책 협조” 요청
한은 총재의 입장은 이럴 때가 가장 애매하다. 경기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압력성 주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발족 직후부터 나왔다. 먼저 “한은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발언이 인수위에서 나왔다. 경기 부양을 거들라는 얘기다. 게다가 인수위는 정치적인 고려를 담아서인지 물가까지 잡아야 한다고 들고 나왔다. 고성장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내건 새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모순이다. 경제이론에 따르면 경기를 자극하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선 금리를 올려야 한다. 1월 9일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업무보고에서) 한은도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말하면서 “통화량의 지나친 조절이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갈피를 잡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에 대해 이성태 한은 총재는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여야 할 입장이었다. 그는 1월 10일 정기 금통위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새정부의 경제정책이 한은과 상충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게 한 해, 두 해 높이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높이려면 경제가 안정돼야 하고,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맡고 있기 때문에 새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한은의 자세나 사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인수위가 먼저 던진 공이 선을 넘어 아웃되자 한은이 원론적인 수준의 서브로 공을 인수위로 다시 넘긴 셈이다. 그 공이 넘어올 때까지 이성태 총재는 물가불안을 계속 강조했다.  
이성태식 절묘한 우회 화법
그러던 중 이 총재는 2월 13일 절묘한 시그널을 시장에 내보냈다. 금통위가 2월 콜금리 운용목표를 6개월째 연 5%로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향후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1월과는 다소 다른 코멘트를 한 것이다. 이 총재는 특히 경기하락에 대한 우려를 비중 있게 설명했다. 1월에는 쓰지 않던 ‘경기의 하방 리스크’란 표현을 썼다. 경기가 하락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경제성장률 전망이 아래쪽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경기가 예상대로 상승기조를 탈 것이란 한 달 전의 예상은 “예상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후퇴했다. 벗어나더라도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란 뜻이다. 물가가 불안하고 시중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금리 인하의 여지를 보이지 않던 1월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새정부의 정책 방향과의 차이를 적잖게 좁힌 셈이다. 물론 이 총재가 콜금리를 언제, 얼마나 내리겠다고 암시한 것은 없다. 언제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만 말했다. 갑자기 핸들을 확 꺾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단 차선을 바꾼 셈이다. 이처럼 중앙은행 총재에겐 특유의 화법이 따로 있다. 딱 부러지게 말하는 법이 없다. 시장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과잉반응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상식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일반인에겐 그게 그거란 느낌을 주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시장은 이를 이해하고 움직인다. 물론 역대 총재들은 성격에 따라 말을 하는 방식도 달랐다. 전임자인 박승 전 총재는 상대적으로 말이 많은 편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의 밑에서 일하던 한은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중앙은행 총재라는 ‘유일한’ 자리
“박 총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연설이나 강연에서 실무자가 써준 원고를 일일이 고쳐 다시 쓰곤 했지요. 출입기자들과 식사할 때도 총재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 옆에서 조마조마해 하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기자가 밥 먹다 말고 총재의 말 한마디를 듣고 휴대전화를 들고 나가기도 했어요. 본사에 기사를 부르려고.” 이경식 전 총재도 입이 무거운 편은 아니었다. 특히 술이 들어가면 말 실수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한 신문사 여기자에게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기사로 호되게 당한 적도 있다. 한은 총재는 행정부의 장관급 예우를 받지만 장관과는 격이 다르다.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과 같이 한 나라에 딱 하나밖에 없는 자리다. 그렇다고 경호원이 붙어 다니거나 총재 관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한은 총재가 지금처럼 통화신용 정책의 수장으로서 권한을 지닌 것은 1997년 한은법의 개정으로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게 된 다음부터다. 그 전엔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의장을 재무부(재경원) 장관이 맡았다. 한은이 정부의 그늘에 있었던 시절이다. 현행 한은법에서 총재는 한은의 정책결정기구인 금통위의 정책을 수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마치 금통위의 정책을 수동적으로 집행하는 듯한 표현이지만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총재가 한은의 정책 수립·결정·집행의 전권을 행사한다고 봐도 된다. 또 총재는 국무회의의 구성원은 아니지만 통화금융 분야에 대해선 정부의 정책수립에 한은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할 수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 그는 10년여 전 이성태 당시 한국은행 기획국장과 대립했었다. 쟁점은 중앙은행 독립과 은행감독권이었다.

실제 금통위의 구조를 보면 통화정책에 있어서 한은 총재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현재 이성태 총재는 본인을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3명을 우군으로 확보하고 있다. 당연직 위원인 이승일 한은 부총재는 물론, 한은 총재의 추천 몫인 이덕훈 위원, 그리고 전 한은 부총재를 지냈던 심훈 위원이 그들이다. 이 총재는 6명의 위원이 동수로 의견이 나뉠 때에 한해 어느 한 편을 들어 의사결정을 한다. 의견이 4대 2, 또는 5대 1로 나뉠 경우엔 총재는 의사 표시 없이 다수 의견을 금통위의 결정으로 삼는다. 최근 총재가 직접 의사 표시를 한 것은 2007년 8월 콜금리 인상을 결정했을 때였다. 한편 총재의 임기는 한은법에 4년으로 돼있다. 97년 한은법이 개정된 다음 취임한 전철환 박승 총재는 임기를 제대로 마쳤다. 하지만 그 전의 이경식(95년 8월~98년 3월)·김명호(93년 3월~95년 8월)·조순(92년 3월~93년 3월) 총재는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대통령과 뜻이 안 맞거나, 한은 내부에 불미스런 사고가 나거나, 법이 바뀌거나 해서 임기를 못 채웠다. 정부의 입김이 더 세던 시절엔 임기를 굳이 따지는 게 별 의미가 없었다. 한은 총재도 월급 받아 사는 생활인이다. 그의 연봉은 3억8750만원. 기본급이 2억5000만원이고 나머지가 상여금과 수당이다. 이는 7억4200만원에 달하는 김창록 산은 총재의 절반 수준이다. 업무추진비도 차이가 많다. 한은 총재가 연간 8400만원인 데 비해 산은 총재는 1억3200만원에 이른다.
명예롭지만 보수 적고 제약 많아
이 총재의 지갑은 비교적 얇은 편이다. 그는 평소 지갑에 5만~10만원쯤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현금을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 월급 통장은 직접 관리한다고 스스로 밝혔다. 부인이 쓰는 생활비 통장은 따로 있지만 전반적인 가계자금 운영은 이 총재가 직접 결정한다고 한다. 이 총재의 자산운영 성적은 2007년 7월, 3월 말 관보에 고스란히 게재돼 있다. 이 총재의 등록재산은 14억3861만원. 한은 내부에선 이승일 부총재(23억4615만원)나 남상덕 감사(23억5962만원)보다 적은 액수다. 부동산이 4억9200만원, 예금이 9억466만원, 콘도 회원권 595만원으로 구성돼 있다. 부동산 비중은 34% 정도다. 원래 한은 총재는 재테크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운 자리다. 금리정책과 같이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는데 이를 관장하는 한은 총재가 재산을 이리저리 굴린다는 것은 맞지 않다. 물론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고(故) 전철환 전 총재는 취임 직전 자녀들을 불러 이런 지시를 했다고 한다. “너희 아버지가 중앙은행 총재를 잘 마칠 수 있게 하려면 주식거래는 지금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움직이지 말아 달라.” 금전적 보상 이외에 ‘총재’란 호칭도 큰 예우다. 금융계에서 총재란 타이틀을 지닌 곳으론 한은 이외에 산업은행이 있다. 행장이라고 하지 않고 총재로 부른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해방 후 국내에선 중앙은행의 설립 주도권을 놓고 일제 시대 개발 사업을 지원하던 식산은행과 일제 때부터 발권 기능을 하던 조선은행이 경합했다. 결국 조선은행이 한국은행으로, 식산은행이 정부 산하의 산업은행으로 교통정리가 됐다. 당시 은행의 규모 인력 보수 등에서 식산은행이 우위였으나, 조선은행이 발권기능 덕분에 중앙은행이 됐다고 한다. 당시의 경쟁심 탓인지 산업은행은 한국은행과 똑같이 총재(governor)란 타이틀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한은 총재는 한은 입행 동기생 중 선두주자 몫이 결코 아니다. 이성태 총재도 그동안의 경력을 보면 동기생인 박철 전 부총재에 대체로 밀리는 편이었다. 이 총재와 동기생 중 한은 부총재보 이상으로 올라간 사람은 이 총재를 포함해 박철 전 부총재, 강형문·윤귀섭 전 부총재보 등 모두 4명이다. 부총재보 승진은 박 전 부총재가 가장 빨랐고 이 총재와 강 전 부총재보가 두 번째였다.
곡절도 겪어본 이성태 총재
그는 한때 물을 먹은 적도 있다. 96년 3월 11일 홍보부장에서 관리부장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가 그랬다. 그는 95년 5월 23일 한은 홍보부장이 된 뒤 열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관리부장으로 발령받았다. 보직부장, 그것도 총재와 수시로 접촉하는 중요 포스트를 일 년도 채우지 못한 그를 두고 당시 “물 먹었다”는 뒷공론이 돌았다. 조간 신문의 가판에 한은에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면 심야에 신문사로 뛰어가 매달리기도 해야 하는 게 홍보부장이다. 한참 나이 어린 출입기자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려야 한다. 이것이 뻣뻣한 원칙론자인 그에겐 도무지 체질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그런 일을 영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김명호·이경식 총재에겐 성이 차지 않았던 듯하다. 관리부장으로 옮긴 뒤 그가 술자리에서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통영 촌놈이 올라와 한국은행 관리부장까지 됐으면 할 만큼 했지.” 전직 한은 간부에 따르면 단둘이 한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홍보부장에서 관리부장으로의 이동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잘 보여준 말이었다.  
“한국은행은 외롭고 의로운 호민관”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통해 호민관 역할을 잘 해야 합니다.” 이성태 총재가 2월 14일 한은 본관에서 열린 ‘청소년 경제캠프’ 다과회에서 한 말이다. 이 총재는 또 “물가를 안정시키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일반 서민”이라고 덧붙였다. 호민관은 고대 로마에서 평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평민 중에서 선출한 공직자를 일컫는다. 즉 서민들을 위한 관직인 호민관처럼 한은도 물가를 안정시켜 일반 서민들이 혜택을 받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 총재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총재 자신은 호민관의 총사령관인 셈이다. 그리고 다른 자리에선 그 같은 일을 하는 곳이 다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한은은 외롭다고도 했다. “중앙은행 사람은 외롭습니다. 동료 집단이 없기 때문이지요. 외국에 나가 그 나라의 중앙은행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말이 통합디다.” 이 총재가 말하는 외로움이란 따지고 보면 무시할 수 없는 한은의 책임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은뿐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이 왜소화와 고립의 길을 걸어온 가장 큰 원인의 하나는 ‘정치 알레르기’ 체질이란 지적이 많다. 중앙은행으로서의 독립성과 고고함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의로운 호민관’이 되는 것만으로는 외로워지기 쉽다. 국민적 지지를 폭넓게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칫 정치권력과 의견 충돌이 있거나 시장이 폭주할 경우 한은의 입지가 매우 약해진다. 한은의 현직 고위간부도 비슷한 말을 한다. “밖에서 한은을 도와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언론과 여론 밖에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이 오락가락하는 지금이야말로 이성태 총재의 정치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얘기다.


고결하면서도 정치력 있어야


중앙은행 총재의 조건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앙은행 총재는 고고하고 다소 신비롭기도 한 자리다. 권력보다는 권위와 명예가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구 한은법에는 한은 총재의 자격 요건으로 “고결한 인격과 금융에 관한 탁월한 경험을 가진 자”라는 규정을 뒀다. 1997년 한은법을 개정하면서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정부가 삭제하긴 했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럽에선 오래 전부터 중앙은행 총재의 3대 자질로 초연한 권위, 지적 엄격성 그리고 교활함이 꼽혔다고 한다. 여기서 ‘교활함’이란 기민한 정치력을 가리킨다. 중앙은행의 역할 자체가 정치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 듯하다. 51년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19년 동안이나 맡았던 윌리엄 마틴은 이렇게 말했다. “중앙은행 총재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펀치(술, 설탕, 우유, 레몬, 향료를 섞어 만든 음료) 그릇을 치워버리는 것이다.” 흥겨울 때 다들 술을 더 마시고 싶어 할 텐데 그릇을 싹 치우다니, 얼마나 욕먹을 일이며, 얼마나 하기 어려운 일인가. 경기가 좋을 때 과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당히 긴축을 해야 하는 중앙은행 총재의 역할을 비유한 것이다. 어쨌든 좋은 얘기 듣기 어려운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정치력이 필요하다. 88~98년 스위스 국립은행 총재를 지냈던 마르쿠스 루서(Markus Lusser)도 국민적 신뢰 확보를 중앙은행 총재의 진정한 정치력으로 봤다. “각 방면으로부터의 정치적 압력 가운데 중앙은행 총재가 적절한 정책운영을 하려면 늘 국민의 신뢰가 불가결한 전제가 된다.” 이성태 총재도 정치력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있다. 그는 17년간 FRB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의 능력 가운데 정치력을 높이 산다. 이 총재는 과거 한은의 독립성을 둘러싼 정부와의 갈등 과정에서 ‘매파’라는 별명을 얻긴 했지만 최근 통화정책과 관련한 발언의 변화에선 유연한 자세가 감지된다. 한은의 독립성을 외치며 정부와 정면 충돌해 장렬히 산화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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