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먼삭스 ‘꿈도 꾸지마’
한국판 골드먼삭스 ‘꿈도 꾸지마’
|
“자통법 시행으로 자본시장 규제체제가 혁신되면 국내에도 글로벌 투자은행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7월 자통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 권오규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국판 골드먼삭스’를 거론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자통법 시행으로 증권·선물·자산운용을 망라하는 금융투자회사가 만들어지면 국내에도 골드먼삭스와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물론 증권 업계도 자통법 국회 통과에 박수를 쳤다. 업계에는 “글로벌 금융회사들과도 이제는 해 볼 만하다”는 경쟁의식까지 생겨났다. 때마침 종합주가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달리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호기를 만난 듯 증권사들은 저마다 글로벌 투자은행, 글로벌 자산관리를 목표로 자본금 및 인력 확충 등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자통법 준비에 분주하게 움직인 것은 증권 업계뿐만 아니다. 은행·보험 등 여타 금융회사들은 물론 대기업까지도 증권업 진출을 선언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통법을 계기로 증권업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깔리면서 증권사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상 현상마저 벌어졌다.
하나대투증권 등 수수료 인하경쟁 지난 2월 말 현재 금융감독 당국에 증권사 신규 설립을 신청한 곳은 무려 13곳이나 된다. 이들 신설 증권사의 비전 역시 글로벌 투자은행, 글로벌 자산관리다. 자통법 통과 9개월이 지난 지금, 과연 증권 업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시기상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지만 사실상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특히 위탁매매수수료에 의존하는 천수답식 경영 방식은 그대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신설 증권사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제살 깎기식 수수료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형국이다. 자통법을 계기로 글로벌 투자은행, 글로벌 자산관리로 거듭나겠다던 대형 증권사들마저 위탁매매수수료 인하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최근 증권업계 위탁매매수수료 인하경쟁에 다시 불씨를 지핀 곳은 하나대투증권이다. 이 증권사는 이달 중 온라인 주식 위탁매매수수료를 현행 0.1%에서 업계 최저 수준인 0.019%까지 대폭 인하할 예정이다. 현재 업계 최저 수수료는 한국투자증권, 이트레이드증권 등이 적용하고 있는 0.024%다. 하나대투증권 관계자는 “현재 온라인 주식 위탁매매수수료를 업계 최저인 0.024~0.019%로 인하하는 것을 준비 중에 있다”며 “하지만 시행시기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위탁매매수수료를 인하하면 그만큼 증권사의 수익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나대투증권이 수익감소에도 수수료 인하에 나선 것은 지지부진한 주식매매영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하나대투증권은 외형상 대형 증권사에 속하지만 주식매매영업에서는 업계 하위그룹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따라서 단기간에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수수료 인하 카드를 꺼낸 것으로 업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허약체질로는 자통법도 ‘먹통법’ 이처럼 증권업계가 또다시 수수료 경쟁으로 치닫자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증권산업의 다운그레이드(Down grade)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통법 시행에 앞서 대형화와 수익구조 다양화 등 체질을 개선해야 할 증권사들이 과거와 같은 천수답식 경영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증권사들은 골드먼삭스 등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비교할 경우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수익 구조도 매우 열악한 상태”라며 “수수료 과당경쟁은 증권업계 전체 수익성만 악화시켜 결국 대형화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은 자통법 시행을 계기로 글로벌 투자은행과 글로벌 자산관리회사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지만 수익구조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실제로 국내 6개 대형 증권사의 수익구조는 과거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지난해 3월 말 현재 6개 대형사는 전체 수익의 50% 이상을 위탁매매수수료에 의존하고 있다. 투자은행·자산관리·자기매매 등은 모두 합쳐 15%를 간신히 넘는 상태다. 이에 반해 골드먼삭스와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전체 수익 중 위탁매매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0~12%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투자은행·자산관리·자기매매 등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위탁매매수수료는 증시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증시가 침체될 경우 수익감소로 이어진다”며 “수익이 감소하면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대형화나 투자은행도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자통법을 기반으로 국내 증권사들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수수료 경쟁보다는 수익구조를 개선해 자본을 확충하고, 인수합병(M&A)을 통해 지속적으로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당국도 규제만 완화할 것이 아니라 우리투자증권 등 정부 산하 증권사의 M&A를 통해 대형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자통법을 계기로 너도나도 증권업에 진출하면서 오히려 과당경쟁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있다”며 “자통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증권사들이 대형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더 힘써야만 한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SM정밀기술, 제네시스 GV90 첫 수주...범퍼 금형 제작 나서
2LG전자, 11개국 주뉴욕총영사단 초청해 기술력 선봬
3"내 월급만 안 오르네"...소비자 물가, 2년 연속 껑충
4"백종원 빽햄 논란"...더본코리아 주가 연중 최저가 기록
5삼성, 상반기 약세 지속 예상...올해 전망은?
6"딥시크 쇼크 뒤엔 中 젊은 천재들"...20대 'AI 신동' 여성도 화제
7"인터뷰 꺼리던 T.O.P까지 나섰다"...'오징어게임3' 공개 날 확정, 언제?
8고려아연 SMC “영풍 지분 취득, 적법하고 정당”…영풍은 법적 대응
9코스피, ‘딥시크 충격’에 하락 마감...2510선 후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