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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투기꾼이 부동산 싹쓸이

잡식성 투기꾼이 부동산 싹쓸이

▶재개발 예정지역인 종로구 낙원동 166번지 일대. 3.3㎡당 최근 거래가격이 4500만원에 이르고 있다.

서울 강북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노원구만 해도 아파트 값이 3개월 만에 10.3%나 뛰었다. 이유는 뭘까. ‘강남의 큰손’들이 강북 부동산을 싹쓸이한 게 주된 원인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무분별한 뉴타운 공약을 한 게 불을 질렀다. 집값 폭등의 진원지인 상계동과 종로 일대를 찾아가봤다.
2007년 11월 말.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A씨의 집에 50대 여자가 찾아왔다. 그 여자는 낯설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이었다. 그 여자는 A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건넸다. 그러던 중, 그녀는 A씨에게 “집이 참 예쁘다”며 “이 집을 8억원에 사고 싶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그집에 살았던 A씨는 당황했지만, ‘8억원’이란 말에 혹해 “좋다”고 했다. 계약은 바로 이뤄졌다. 일주일 만에 모든 거래가 끝났다. 그 여자는 A씨 집으로 이사를 왔고, A씨는 그 돈으로 종로구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를 새 집으로 장만했다. 2008년 4월 초.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사동을 찾은 A씨는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인근에 있는 낙원동 옛 집을 찾았다. 그동안 정들었던 집도 보고 싶었고 그 여자에게 인사나 할까 해서였다. 문을 두드리니 처음 본 여자가 대문을 열었다. “예전에 살던 사람인데, 집주인 좀 뵈러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넨 A씨에게 그 여자는 “제가 주인인데요. 왜 그러시죠?”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그는 “일주일 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덧붙였다. 의아했던 A씨는 집주인에게 “얼마에 들어오셨느냐”고 물었다. 집주인은 “9억2000만원”이라고 답했다. 그제야 A씨는 그 여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1년 6개월 전만 하더라도 낙원동 집값은 3.3m2(평)당 2500만원 안팎이었다. 지금은 최고 4500만원에 거래된다. 한 달에 100만원씩 뛴 셈이다. 2007년 3월 서울시는 낙원동 166번지 일대를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재개발 기대심리 덕분일까? 2006년 중순부터 낙원동 집값은 꿈틀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높아도 3.3m2당 2000만원을 넘지 않았던 이곳이 재개발 발표 직전에는 2500만원까지 올라갔다. ‘재개발’은 분명 호재다. 그러나 그렇게 급속히 집값을 끌어올린 것은 ‘복부인’들이 몰린 탓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인근 J부동산 사장은 “지난 2년 동안 집주인이 10번 이상 바뀐 곳도 있다”며 “투기 세력들은 부동산중개소를 거치지 않고 주민들과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현재 실거래가도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주인이 부르는 대로, 투기세력이 주는 대로 집값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100만원, 200만원씩 오르다 보니 어느새 4500만원까지 다다랐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낙원동 주민들은 집값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쭉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갈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네에 모르는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이웃이 높은 가격에 집을 팔았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나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에서 국밥집을 하는 K씨는 “원래 돈 욕심 없고 착한 사람들이었는데, 돈 몇 푼 더 받고 이 동네를 떠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J부동산 사장은 “아직도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투기세력들의 공략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로변 낙원동 상가들은 거래가가 3.3m2당 1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국민은행 부동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서울 강북 지역(14개구)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 3월까지 4.5% 올랐다. 또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노원구는 10.3% 상승했다. 노원역 바로 옆에 있는 상계 주공 7단지 아파트 80m2(24평)의 경우, 1년 새 가격이 2배 올랐다. 요즘은 보통 3억30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고 한다. 노원구 역시 실수요자보다 투기를 위해 모이는 사람이 많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이들이 지난해 말부터 노원구 일대 59m2(18평) 아파트를 싹쓸이한다는 것이다. 대형 아파트보다 더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중계동 132~165m2(40~50평) 아파트 가격이 평균 5000만원가량 올랐던 것에 비해 59m2 아파트는 평균 8000만원가량 올랐다. 상계동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Y사장은 “요즘 83m2(25평)이하 아파트는 씨가 말랐다”며 “심지어 어떤 부동산에서는 구입 대기자에게 번호표를 발급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입자 대부분은 이 일대 아파트를 보통 4~5채 이상 보유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한 아파트 단지를 분양하면 80%가 실거주자, 20%가 외부인 또는 투기 세력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노원구에서는 일반적인 이 공식조차 깨지고 있다. 중계동 K아파트를 보면 전체 3500가구 중 2000가구가 실거주자이며 나머지 1500가구가량은 외부 사람들이 투기나 기타 목적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42%가 외부인이다. 외부인은 지난 1년간 500가구 이상 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실거주지가 경기도인 어떤 사람은 이 단지에서 아파트 11채를 갖고 있으며, 3채 이상 가진 사람도 200명이 넘었다. 비단 중계동 이 아파트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노원구 영향으로 주변 강북구, 도봉구에서도 아파트 사재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노원구도 모자라 투기세력이 강북구 수유동 일대, 도봉구 창동 일대까지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지역도 매월 1%씩 집값이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구 필운동도 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필운동은 종로구 배화여대 주변 지역이다. 주변 옥인동·누하동·체부동이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아직 필운동은 어떠한 움직임도 없으며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 투기 세력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다. 이곳은 최근 들어 세입자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이 동네의 세입자 비율은 10% 이하였다. 지금은 40%가량쯤 된다. 누하동에서 20년가량 살아온 박정식(53)씨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발제한구역이라 주택 매매 거래가 거의 없었다”며 “주변 지역 재개발 영향으로 큰돈을 든 이들이 요즘 이 집 저 집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집값도 1~2년 전과 비교해 2배가량 뛰었다. 정부는 투기 세력을 잡는다고 다양한 정책을 발표한다. 하지만 투기 세력은 줄어들고 있지 않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김성환 공인중개사는 “현재 투기 세력을 잡기 위한 관련 법을 보면 허점이 많다”며 “정부는 좀 더 현실적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타운 공약에 폭탄 맞은 강북


“총선 때 거짓말로 올린 집값 어쩔거냐”
이번 18대 총선의 가장 큰 이슈는 ‘뉴타운’이었다. 동작을에서 당선된 정몽준(한나라당) 의원이 선거운동 때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사당지역 뉴타운 지정을 약속 받았다”고 한 말을 기점으로 후보들은 뉴타운 신규 지정과 기존 뉴타운 조기 추진을 주요 공약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서울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한 32개 선거구 중 22개 선거구에서 뉴타운과 관련된 공약이 나왔다. 이 중 신규 뉴타운 지정과 관련된 공약을 내세운 곳은 강서갑, 도봉갑 등 9곳이었으며, 기존 뉴타운 지역 확대와 신속한 추진을 약속한 곳은 동대문갑, 서대문갑 등 13개 선거구였다. 강서갑에서 당선된 구상찬(한나라당) 당선자는 선거운동 당시 자신의 홈페이지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오랜 친구”라고 강조하며 “관련 법규를 개정해 화곡동 일대를 뉴타운 지구로 지정토록 하겠다”는 글을 게재했다. 이에 맞서 같은 선거구 신기남(통합민주당) 후보도 “서울시장과 시의원을 설득해서라도 화곡동을 4차 뉴타운으로 만들겠다”고 응수했다. 신지호(한나라당) 도봉갑 당선자와 장광근(한나라당) 동대문갑 당선자도 선거운동 기간 내내 뉴타운 신규 지정을 강조했다. 신 당선자가 약속한 지역은 도봉구 창 2·3동, 장 당선자가 약속한 지역은 제기동·청량리동 일대다. 이 밖에 강승규(한나라당) 마포갑 당선자, 정태근(한나라당) 성북갑 당선자 등도 뉴타운 신규 지정을 약속했다. 이미 뉴타운 지정이 완료된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은 뉴타운 조기 추진과 지정 지역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은평갑에 출마한 안병용(한나라당) 후보는 “은평뉴타운의 확대”를 강조했다. 은평뉴타운은 2002년 시범 뉴타운으로 지정돼 올해 6월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곳이다. 건립이 80% 이상 완료된 은평뉴타운 확대를 주장한 것만 봐도 뉴타운이 이번 선거에 얼마나 큰 이슈였는지를 알 수 있다. 뉴타운 바람으로 해당 지역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써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뉴타운 신규 지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지역의 다세대주택 가격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써브의 정태희 연구원은 “집값이 오르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상승세는 총선 출마자들의 뉴타운 공약이 가장 큰 이유”라고 분석했다. 화곡뉴타운과 미아뉴타운 지정을 약속한 강서갑 지역과 강북을 지역의 3.3㎡(평)당 상승폭은 최대 500만원이었다. 강서갑의 경우 2007년 12월 다세대주택 3.3m2(평)당 가격이 2500만원에서 현재(2008년 4월)는 30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강북을과 도봉갑도 마찬가지. 평균적으로 한 달에 100만원씩 오른 셈이다. 도봉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뉴타운 지정 얘기가 새 이슈로 부각되자 매물이 사라지고 있으며, 하루에 3.3m2(평)당 가격이 30만원까지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강북의 부동산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다”며 “이런 시점에서는 절대 뉴타운 추가 지정을 고려할 수 없다”고 4차 뉴타운 공약에 못을 박았다. 당선을 위해 지역구 내 뉴타운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건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직무유기”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되돌려지고 있는 형국이다.


신기루 같은 뉴타운


원주민에게는 뉴타운 아닌 ‘No타운’
“다시는 이 동네(은평구 진관내동)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히 살고 싶어도 여기에 집을 구할 능력이 안돼 못 들어옵니다.” 20년 전 은평구 진관내동에 터를 잡은 김제일(44)씨는 이 동네를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줄곧 살아왔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3월 진관내동을 떠나 구파발동으로 집을 옮겼다. 문제는 자발적인 이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쫓겨난 것”이라고 표현했다. 진관내동은 은평뉴타운 3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지난해 3월께부터 철거가 시작됐다. 김씨를 포함한 주민 20여 명은 철거 직전까지 진관내동을 떠나지 못했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돈이 문제였다. ”SH공사(은평뉴타운 개발사)에서 평당 300만원에서 700만원까지 보상을 해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는 집 대부분이 10평 안팎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받을 수 있는 돈은 많아야 8000만원이에요. 그 돈으로 어딜 갑니까?” 그래도 김씨처럼 몇천만원의 보상금을 받은 경우는 다행이다. 세입자들은 10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고 거의 쫓겨나다시피 했다. 진관내동에서 쫓겨난 이들의 주거 환경은 피폐하기 그지 없었다. 진관내동 내 집에서 살던 K씨는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에서 세입자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진관내동 세입자였던 H씨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산 중턱에 무허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비닐하우스에서 산다. 2007년 1월 본지는 뉴타운 개발을 주도한 SH공사가 작성한 ‘은평 재개발 지구 주민 이주 현황’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이코노미스트 873호). 보고서에 따르면 은평구 재개발 지구 원주민 5172가구 중 1490가구는 서울을 떠나 경기도 등 지방으로 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원도(17가구), 경상도(15가구), 전라도(17가구)로 간 이들도 있었다. 3가구 중 1가구는 지방으로 떠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은평갑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된 이미경(통합민주당) 의원은 “은평구 일대 재개발 지역의 원주민 재입주율이 20%에도 못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재개발이 원주민들을 내쫓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다. 길음뉴타운도 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따. 길음뉴타운은 은평뉴타운과 더불어 2002년 시범 뉴타운으로 지정된 곳으로, 얼마 전부터 주민 입주가 시작됐다. 길음 뉴타운의 경우 원주민 재정착률은 17.1%다. 현재 서울 시내에는 35곳의 뉴타운이 지정돼 있따. 이 중 미아뉴타운, 가재울뉴타운, 노량진뉴타운 등 5곳이 얼마 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이들 지역 역시 원주민 재정착 문제가 핵심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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