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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손해 봐도 ‘무조건 내놔’

투자자 손해 봐도 ‘무조건 내놔’

▶증권회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주식거래수수료가 크게 떨어졌지만 투자자들의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 주식 투자비용의 절대 금액을 차지하는 거래세와 증권유관기관 수수료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거래하면 수수료는 누가 제일 많이 챙길까? 대부분은 주식거래를 중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증권회사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돈을 더 많이 챙기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정부와 증권유관기관(증권거래소·증권예탁결제원·증권업협회)이다. 이는 현행 수수료 체계가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기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직원 연봉이 공기업 최고 수준인 증권유관기관의 방만경영도 이 같은 불합리한 수수료 체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기는’ 주식거래 수수료 체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식을 거래할 때 드는 수수료(비용)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알아야 한다. 현재 투자자들이 주식을 거래할 때 드는 수수료는 크게 증권회사에 지급하는 ‘주식거래 수수료’와 정부에 내야 하는 ‘거래세’로 나뉜다. 주식 매매를 중개해주는 대가로 증권회사가 받는 주식거래 수수료는 주식을 사거나 팔 때마다 적용된다. 이에 반해 거래세는 주식을 팔 때만 부과된다. 또 투자자들은 잘 모르지만 증권회사가 받는 주식거래 수수료에는 증권거래소·증권예탁결제원·증권업협회 등 이른바 증권유관기관의 몫(수수료)이 들어 있다. 증권유관기관도 주식 매매에서 저마다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수수료를 챙겨가고 있다. 문제는 고객과 직접 대면하고 각종 주식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회사보다 정부나 증권유관기관이 떼어가는 몫이 더 많다는 점이다. 최근 주식거래 수수료는 증권회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으로 0.015%까지 떨어진 상태다. 지난 4월 하나대투증권을 시작으로 키움증권, 이트레이드증권, 한국투자증권, 동양종금증권 등이 잇따라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를 낮추면서 업계 최저 수수료는 0.015%가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권업계 온라인 최저 수수료는 0.024%였다. 종전보다 37%가량 수수료가 하락한 것이다. 예컨대 투자자가 1억원의 주식을 매매할 경우 기존에는 증권회사에 2만4000원을 수수료로 내야 했지만 이제는 1만5000원만 지급하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증권유관기관의 몫은 얼마나 될까. 무려 60%가 넘는다. 현재 증권회사의 주식거래 수수료에서 0.0093%포인트는 증권유관기관 몫이다. 개인이 1억원의 주식을 매매해 증권회사에 1만5000원을 수수료로 낼 경우 9300원은 증권유관기관이 챙겨가는 것이다.
증권회사들이 수수료를 낮춰도 증권유관기관의 몫은 변동이 없다. 관련법상 증권유관기관의 수수료 변경은 증권거래소·증권예탁결제원·증권업협회 등이 각자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증권업계에서 “주객이 전도됐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뿐만 아니라 선물 옵션 ELW 등 파생상품 거래에 대해서도 증권유관기관은 수수료를 떼가고 있다. A증권사 사장은 “현재 주식거래 수수료 체계를 보면 답답해서 말이 안 나온다”며 “증권사들은 고객 확보를 위해 수수료 인하라는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와 상관없이 증권유관기관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투자자가 주식을 팔 때만 지급하는 거래세는 0.3%나 된다. 증권회사의 온라인 최저 주식거래 수수료보다 무려 20배나 높은 것이다. 더욱이 현행 법규상 투자자가 주식을 팔아 손해를 봐도 거래세를 내야 한다. 주식을 팔 때만 부과된다고는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비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한 투자자는 “거래세는 세금이라고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수료와 마찬가지인 비용”이라며 “특히 주식거래 수수료보다 20배나 높은 것은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주식거래 수수료 체계 개편해야
상황이 이렇자 최근 증권업계에서는 주식거래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증시침체 속에 개인투자자들은 주식투자로 손해를 보고 있고, 증권회사들은 수익감소에도 불구하고 고객 확보를 위해 수수료 인하라는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정부나 증권유관기관은 손쉽게 이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 들어 국내 증시가 대내외 악재로 흔들리면서 1분기 종합주가지수는 10% 정도 떨어졌다. 연초 1억원을 주식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라면 3개월 만에 1000만원가량 손실을 본 셈이다. 증시 하락으로 손실을 봐도 수수료는 내야 한다. 개인투자자가 투자원금의 10% 손실을 본 채 주식을 팔았을 경우 증권회사에 낸 수수료는 매수-매도 모두 합쳐 1만830원(0.015% 수수료율 적용)이다. 하지만 정부와 증권유관기관에 낸 비용은 각각 27만원(매도시 0.3% 적용), 1만7670원(매수+매도수수료, 0.0093% 수수료율 적용)이나 된다. 온라인증권사 한 임원은 “주식투자로 손해를 보면 투자자들은 수수료가 높다고 증권회사에 불만을 털어놓는 것이 현실”이라며 “하지만 실제 증권회사가 받는 수수료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투자자는 드물다”고 밝혔다. 고객 확보를 위한 수수료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증권회사들의 수수료 수익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내 대표 온라인증권사인 키움증권의 경우 이번 수수료 인하로 올해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26% 정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심규선 CJ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수료 인하에 따른 영향은 증권사별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익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우선 증권유관기관의 주식거래 수수료부터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증권유관기관 중에서도 증권업협회의 주식거래 수수료(0.00102%)는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증권업협회는 비영리단체임에도 증권회사의 협회비 명목으로 주식거래 수수료를 받고 있다.
증권업협회는 거의 매년 예산을 초과하는 수익을 주식거래 수수료로 벌어들이고 있다. 2007년에도 수수료 수입이 당초 예산 책정액보다 202억원을 초과했다. 증권업협회는 “초과한 수수료 수입은 회원사인 증권회사에 반환한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과 수입을 반환한다고 하지만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조삼모사에 불과하다”며 “수수료 수익으로 협회비를 챙겨왔던 것이 잘못인 만큼 여타 협회처럼 직접 회원사들로부터 일정액의 협회비를 걷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증권선물거래소(0.00557%)나 증권예탁결제원(0.00275%)의 주식거래 수수료도 투자자들의 투자비용 절감을 위해 증권회사 수수료 인하 수준에 비례해 낮추거나, 정액제(거래 건수당 수수료 부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예탁결제원은 주식거래 수수료로만 각각 1030억원, 510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증권회사 한 애널리스트는 “외국의 경우 증권유관기관이 국내처럼 정율제 수수료를 받는 경우는 드물고 거래 건수당 일정액을 받는 정액제로 돼 있다”며 “투자자들의 투자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수수료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증권유관기관의 방만한 경영도 독점적인 수수료 수익에 기인하는 만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전에 정부가 나서 수수료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거둬들이는 거래세에 대해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증시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수수료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거래세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증시 침체에 빠진 중국은 최근 증시 활성화를 위해 거래세를 기존 0.3%에서 0.1%로 내렸다. 또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과세원칙에 따라 투자수익에 대해서만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증권연구원 한 연구원은 “거래세를 개편하면 세수 확보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이자나 배당, 부동산 매매 등 여타 자본소득과는 달리 주식만 투자결과와 상관없이 거래세를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신도 탐내는 증권유관기관


“뭘 하는데 연봉이 9000만원 넘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연봉이 그렇게 많죠?” 최근 기획재정부가 302개 공공기관 직원(임원 및 비정규직 제외) 1인당 평균 연봉 자료를 발표하면서 상위에 오른 증권유관기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평균 연봉이 가장 높았던 공공기관은 증권예탁결제원으로 무려 9577만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9.8%나 늘어난 것으로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평균 연봉 6021만원)보다도 무려 40% 이상 많은 수준이다. 증권예탁결제원은 직원들의 연봉만 높았던 것이 아니다. 사장 연봉도 4억7300만원으로 공공기관 기관장 중 6위를 차지했다. 또 3위는 코스콤이 차지했다. 코스콤의 1인당 평균 연봉은 9185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콤은 지난해 비정규직 대량 해고 문제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도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노조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태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에는 인색했지만 코스콤 사장 역시 지난 한 해 4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기획재정부 자료에서는 빠졌지만 증권선물거래소, 증권금융 등 나머지 증권유관기관들 연봉도 만만치 않다. 증권선물거래소는 증권예탁원과 코스콤의 모회사임에도 지분구조상 순수 민간회사(28개 증권회사가 85% 지분 보유)라는 이유로 이번 자료 공개에서 제외됐다. 증권금융도 같은 이유로 자료 공개를 피할 수 있었다. 경영공시 자료에 따르면 증권선물거래소는 지난해 급여 및 복리후생비 등을 합쳐 795억원가량의 인건비를 지출했다. 이를 임직원 수(723명)로 나누면 1인당 평균 연봉은 무려 1억원이 넘는다. 증권금융도 지난해 급여·상여금·복리후생비 등을 모두 합쳐 194억원(임직원 220명)을 지급, 1인당 평균 연봉이 8800만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도 탐내는 직장’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문제는 증권유관기관이 정부가 인정한 독점사업을 통해 돈을 벌면서도 제대로 경영감시를 받지 않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선물예탁원은 주식시장 개설 및 운영, 유가증권 거래, 예탁 등이 주 업무다. 또 이와 관련된 주식거래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 수익이 주 수입원이다. 코스콤과 증권금융도 증권선물 전산 인프라 제공, 고객예탁금 관리 및 운영 등을 하면서 각종 수수료 수익을 챙기고 있다. 증권유관기관이 챙기는 수수료는 영업이나 서비스 개선 노력과는 상관없이 앉아 있기만 하면 들어오는 수입이다. 법적으로 그들만 영위할 수 있는 독점사업이기 때문에 경쟁도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독점사업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증권유관기관은 증권시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망할 이유가 없다”며 “쉽게 돈을 벌면서도 자본시장의 서비스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자기 배부터 채우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실제 증권유관기관은 독점사업으로 쉽게 벌어들인 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증권예탁결제원 임원들은 2005~2007년 사이 법인카드를 유흥주점, 나이트클럽에서 사용했다. 지난해 11월 하반기 신규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는 필기시험 점수, 면접 점수까지 조작해 순위에 든 5명을 탈락시키는 ‘채용부정’까지 적발돼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증권선물거래소도 1년9개월 동안 골프접대비로만 10억원을 지출하는 등 방만 경영이 도마에 오른 상태다. 오래전부터 증권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의 선진화 및 효율화, 투자비용 절감 등을 위해 증권유관기관을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06년 자본시장통합법이 논의됐을 때도 증권유관기관 통폐합은 쟁점사항이었지만 각 기관의 로비와 제 밥그릇 챙기기로 인해 사실상 무산된 바 있다. 증권연구원 연구원은 “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예탁결제원의 청산·결제 기능 등 증권유관기관의 통폐합은 오래전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다”며 “하지만 시장논리보다 정치논리가 앞서면서 번번이 통폐합은 무산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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