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시대의 ‘녹색 리더’
친환경 시대의 ‘녹색 리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따라서 환경보호 업적으로 칭찬받을 일은 없을 듯하다. 사실 이제까지 부시는 녹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1년 대통령 취임 후 첫 통치행위 중 하나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해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세계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또 알래스카 국립북극야생보호구역의 석유 채굴 허용이 국가안보에 꼭 필요하다며 의회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시의 색깔이 바뀌었다. 완전한 녹색은 아니어도 적어도 푸르죽죽하거나 연두색 정도는 된다. 4월 중순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 부과된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또 30년 만에 처음으로 자동차 연비 기준을 강화하고, 대체연료를 사용하는 법안에도 서명했다. 이렇게 부시가 임기 말에 와서 환경 문제에 대해 심경 변화를 일으킨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미국 내 여론 때문이다. 환경에 대한 우려가 미국인의 마음에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07년 퓨 세계 태도조사 프로젝트(Pew Global Attitudes Project)에 따르면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가 환경 문제라고 인식하는 미국인이 37%나 됐다(5년 전보다 61% 증가한 수치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환경보호주의 물결을 외면하면 역사책에서 세계가 직면한 환경 위험을 무시한 지도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크다는 점을 깨달았다. 차기 미국 대통령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도 모두 탄소 배출을 줄이는 총량거래제를 포함해 기후변화를 되돌릴 야심 찬 계획을 내놓았다. 환경 문제가 갑자기 주목 받는 것은 비단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퓨 세계 태도조사 프로젝트에는 미국 말고도 46개국의 조사 결과가 포함됐다. 그중 3개국(요르단, 레바논, 아이보리코스트)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2002∼2007년 환경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서유럽 사람의 45∼66%, 중국인의 70%가 환경 문제를 지난해 최고의 위협으로 꼽았다. 인도, 브라질 등 영토가 큰 개발도상국의 경우도 비슷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이유는 과학자들의 종말론적 예측이 쇄도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환경보호 캠페인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의 홍보 덕분일지도 모른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친환경 지도자를 원하고, 국민도 과거와 달리 지구가 처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할 태세다. 아울러 교토의정서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기후회의도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환경 문제를 중시한다는 점을 입증하고 싶은 지도자라면 지구의 북쪽을 바라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청정기술보다는 대구(大口)로 더 잘 알려진 아이슬란드에선 전력의 80%가 하천(수력)이나 땅속의 증기, 더운 물(지열)을 이용하는 발전 등 재생가능 에너지원에서 나온다.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게이르 H 하르데 아이슬란드 총리는 이제 그런 대체에너지 기술을 해외로 수출하고 싶어 한다. 아이슬란드의 기업들은 정부 지원 아래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을 지부티, 중국, 남부 캘리포니아 등 세계 각지로 이전한다. 물론 아이슬란드는 지열이 풍부하고 인구가 적은 아주 특이한 경우여서 이 기술이 다른 지역에서 효과를 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를 연구함으로써 적어도 아이디어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환경을 위해 국민에게 소득의 일부를 희생하도록 하는 것은 일본이나 영국보다 스웨덴에서 더 쉽다. 서유럽과 일본이 환경기술에서 세계 여타 지역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건 사실이지만 구태의연한 정치가 발목을 잡는다. 환경운동가들이 촉구하고, 정치인들이 입에 발린 말로 주창하는 조치 가운데 상당수는 로비스트와 복지부동하는 관료들의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환경보호를 자신의 상징적 이미지로 삼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과 유럽연합에서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조치를 제안했다. 하지만 메르켈과 블레어의 후임 고든 브라운 현 영국 총리는 그런 친환경 의제를 실행에 옮기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브라운은 석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소와 히스로 공항의 새 활주로 건설을 지지했다가 거센 비난을 불렀다. 메르켈은 독일의 막강한 석탄, 철강, 시멘트 업계에 탄소배출 감축을 강요하기가 어렵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친환경 대통령이 되려고 애썼지만 최근 유전자 변형 식품을 둘러싸고 환경운동가들과 갈등을 겪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도 환경을 우선 과제로 삼았지만(오는 7월 일본이 주최하는 G8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예정) 아직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외 다른 지역, 특히 아시아에서는 변화의 욕구가 더 거세다. 호주의 최근 총선은 ‘정치의 기후’가 얼마나 변했는지 잘 보여줬다. 호주에서 둘째로 장기 집권한 존 하워드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패했다. 그는 친기업 정책으로 이름을 날렸고, 호주의 석탄산업을 옹호했으며 탄소배출거래 제도를 “아무런 생각 없이 내놓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의 라이벌인 케빈 러드 노동당 후보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더 잘 호응했다. 교토의정서 비준을 공약으로 내세워 큰 표차로 하워드를 눌러 이겼다. 한국의 이명박 신임 대통령 역시 환경문제를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듯하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한국의 최대 기업 중 하나인 현대건설 회장에 올라 한국의 산업화에 앞장섰다. 그동안 한국은 철강, 석유화학 등 중공업 부문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으로서는 다른 노선을 택했다. 2002∼2006년 서울시장 재직 중 수도 서울을 친환경 도시로 만들어 전국적 지명도를 높였다(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1970년대 콘크리트 도로로 복개됐던 청계천의 복원이다). 한국 국민도 환경 우선주의에 동의한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3%가 환경보호가 개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같은 아시아 지도자들은 아직도 한 발을 구세계에 담그고 있다. 경제성장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척도인 곳을 말한다. 중국이 특히 그렇다. 어떤 잣대로 봐도 중국의 생태계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이제 후진타오 주석도 중국의 환경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충분히 인식하는 것 같다. 또 환경 피해가 좀 더 진행되면 경제가 비틀거리고 사회불안이 촉발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실히 아는 듯하다. 후 주석은 에너지 효율성 개선을 위한 야심적인 정책을 선보였고, 지속가능성과 재생을 기초로 한 ‘순환경제’ 구상을 내놓았으며 “다른 나라보다 한 발 앞선” 기후변화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홍콩의 공공정책 연구그룹 시빅익스체인지의 CEO 크리스틴 로가 말했다. 중국처럼 급속히 산업화하는 나라에서는 환경운동의 원동력이 현지의 환경오염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국제 환경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기후변화 대책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그런 지엽적인 감정을 억제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과학·기술·공공정책 프로그램 책임자 존 홀드런은 “다른 무엇보다도 기후변화가 현 시대 최대의 환경문제”라고 말했다. 과거 개도국들은 기후변화를 선진국들의 산업화에 따른 산물(일리가 있다)로 인식하고, 자신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경제개발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발리에서 열린 세계 기후회의에서는 “그런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고 홀드런이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가뭄, 홍수, 빙하 해빙 등으로 기후변화가 개도국에서도 이미 피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홀드런은 “이제 그들도 ‘기후변화가 우리에게도 해를 끼치고 있기 때문에 그 해결책에 우리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기후변화를 되돌리는 일은 이제 각국 지도자들의 환경보호 의지에 대한 시험대가 됐다. 사실 정치인들은 새로운 진실에 즉각 반응하는 현실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예컨대 호주의 러드 총리는 오래된 나무로 이뤄진 숲의 벌목을 지지한다. 중국의 지도부는 2020년까지 30기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풍력발전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지만 2006년 90기가와트를 추가로 생산하는 석탄연료 화력발전소들을 건설했다. 이런 양면성이 ‘녹색 시대’의 특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조지 W 부시에게 물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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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WILLIAM UNDERHILL, B. J. LEE, STEFAN THEIL and MELINDA L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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