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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펀드들이 거품 키우다 ‘펑’

한국 펀드들이 거품 키우다 ‘펑’

펀드는 대표적인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투자 결정과 그 결과는 고객의 몫이다. 하지만 펀드 투자를 위한 정보가 일방향이었다면, 그래서 손실을 입었다면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최근 자산운용업계에서는 베트남펀드의 대규모 손실에 대한 책임공방이 거세다.
2006년 최고의 이머징투자펀드라는 찬사를 받았던 베트남펀드는 출시 2년여 만에 원금의 30% 이상을 까먹었다. 또 일부 투자자는 원금의 절반가량을 잃었다. 비슷한 기간 중국펀드도 수익률이 곤두박질쳤지만 베트남펀드와는 그 원인과 결과가 크게 다르다는 것이 펀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펀드의 손실이 천재(天災)였다면 베트남펀드는 인재(人災)라는 평가다. 실적에 눈먼 판매사(은행,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무분별하게 펀드를 개발, 판매한 것이 화근이었다는 지적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베트남펀드의 추락 원인에 대해 펀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해외펀드 열풍에 힘입어 자산운용사들이 경쟁하듯 관련 펀드를 출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2006년 하반기 국내 펀드시장에는 베트남 열풍이 불었다. ‘전체 인구의 70%가 20대인 젊은 베트남에 투자하세요’ ‘베트남의 증시 상승과 경제 성장은 계속됩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시장을 도배했고, 해외펀드의 꿀맛을 본 투자자들은 돈을 싸 들고 달려왔다. 심지어 베트남은 ‘리틀 차이나’로 불리기까지 했다. 베트남펀드에 돈이 몰리자 자산운용사들은 유사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2006년 4개에 불과했던 베트남펀드는 이듬해 12개로 증가했다. 베트남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는 펀드까지 합치면 무려 30개가 넘는 상품이 출시됐다. A자산운용사 상품개발팀장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던 베트남이 각광받으면서 사내에서 관련 펀드 개발 압력을 많이 받았다”며 “일부 상품개발자는 펀드 출시를 반대하기도 했지만 시장 상황에 못 이겨 결국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자산운용사들이 경쟁하듯 상품을 출시하면서 베트남펀드의 자산규모는 날이 갈수록 증가했다. 2006년 하반기 6개월 동안에만 5000억원이 넘는 시중자금이 몰렸고, 2007년에는 1조원을 훌쩍 넘었다. 문제는 베트남펀드의 덩치는 커지고 있었지만 정작 투자대상인 베트남 증시는 준비가 안 돼 있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증시는 2005년 말 기준 시가총액이 5000억원 정도에 불과한 초미니 시장이었다. 웬만한 코스닥 상장기업 한 종목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였던 셈이다. 상장종목 수도 30여 개에 불과했다. 게다가 주식거래 제도도 제대로 정비가 안 된 상태였다. 이런 조그마한 시장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주식을 사려는 자금은 많은데 주식이 없다면? 당연히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2006년 6월 국내에 베트남펀드가 본격 출시되면서 한국 펀드는 베트남 증시에서 가장 큰 기관투자가가 됐다. 한국 펀드가 영세한 증시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2006년 6월 500포인트대였던 베트남 증시는 그해 말 700포인트를 넘어섰고, 2007년에는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같은 기간 국내 베트남펀드에는 1조원이 넘는 돈이 몰렸다. 지난 5월 18일 현재 국내 베트남펀드(베트남 투자 해외펀드 포함) 규모는 1조8000억원 정도. 이는 베트남 증시 전체 시가총액(약 17조원)의 10%가 넘는 수치다. 쉽게 말해 베트남 증시 10분의 1은 한국 돈인 셈이다. 또 베트남 증시의 전체 외국인 투자 중 한국 펀드 비중은 40%에 육박하는 상태다. 강영선 알리안츠자산운용 이사는 “베트남펀드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베트남 증시 하루 평균 주식거래량 중 30%가량을 한국 펀드가 차지할 정도였다”며 “베트남펀드를 운용하는 한국의 펀드매니저가 출근하는 날은 베트남 증시가 오른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고 말했다. 2007년 7월 한국 펀드가 베트남 증시의 고성장에 취해 있는 사이 해외자본들은 버블 붕괴를 우려하며 철수하기 시작했다.
당시 메릴린치, 골드먼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엄청난 유동성으로 인해 베트남 증시의 버블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투자 자제를 촉구했고, 일부 해외 펀드는 이미 주식을 내다 팔고 시장을 떠나고 있었다. 해외 펀드들이 빠져나가자 베트남 증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한국 펀드의 자금 유입은 계속됐다. 베트남펀드를 운용하는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는 “일시적인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베트남의 잠재 성장률은 높다”며 투자를 계속 권유했다. 이계웅 굿모닝신한증권 펀드리서치팀장은 “2007년에는 베트남 증시에 비해 한국 펀드의 자금 규모가 너무 커지면서 ‘유동성의 함정’에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며 “한국 펀드들이 베트남 증시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결국 먼저 들어와 있던 외국자본들에게 시세차익 기회만 주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해외자본 이탈로 시작된 베트남 증시의 버블 붕괴는 결국 국내 베트남펀드의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1170포인트까지 올랐던 베트남 증시는 최근 400포인트대로 주저앉은 상태다. 이에 따라 국내 베트남펀드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며 일부는 원금의 절반가량을 까먹은 상품도 있다. 이처럼 막대한 손실을 입어도 투자자들은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는 상태다. 대부분의 베트남펀드가 환매가 금지된 회사형 상품이기 때문이다. 베트남펀드에 투자한 한 투자자는 “베트남펀드에 투자하면 고수익이 가능하다는 말에 지난해 2월 4000만원을 투자했지만 현재 수익률은 -30%가 넘는다”며 “지금이라도 환매해 달라고 했지만 ‘환매는 안 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원금 손실에도 손 놓고 바라만 봐야 하는 베트남펀드 투자자들은 빨리 이 악몽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베트남펀드를 운용 중인 자산운용사들도 “베트남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지금은 성장통일 뿐이다”며 투자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 전망과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전망은 사뭇 다르다. 곳곳에서 베트남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급기야 지난 5월 13일에는 일본 다이와증권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베트남이 IMF 구제금융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까지 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S&P(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도 “버블과 물가, 무역적자 등 경제가 불안하다”며 베트남 외환 신용등급을 기존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했다. 실제 베트남은 올해 1~4월 무역적자가 111억 달러를 기록, 이미 지난해 전체 적자(124억 달러) 수준에 육박했고, 4월 소비자물가는 21.4% 급등하는 등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 현지 금융전문가들도 비슷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문구상 브릿지증권 호찌민 지사장은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물가가 폭등하는 등 경제가 불안해지자 올 초에는 달러/동 화폐교환마저 이뤄지지 않았다”며 “베트남 정부가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정책이 너무 성급한 데다 갑작스러워 더욱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송학 우리투자증권 호찌민 사무소장도 “현재 베트남이 경제위기와 금융위기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며 “베트남 정부가 리스크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말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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