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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의 그림읽기] 인생의 야망과 연륜 담아

[전준엽의 그림읽기] 인생의 야망과 연륜 담아

▶종이에 금지와 채색, 에도 시대, 각 병풍 155.6×172.7cm, 아타미 미술관.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자랑하는 대표적 소장품이 있다. 일본 에도시대 화가 오가타 고린(1658~1716)의 작품이다. 일본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인 장식주의의 정점에 서 있는 그는 일본 미술의 트레이드마크로까지 통한다. 일본 미술의 장식성은 아름다움 자체에 가치를 두고 추구하는 경향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강한 집착으로까지 이어진다. 이를 ‘탐미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성향은 20세기에 들어와 일본을 디자인 강국으로 만들어내는 원동력으로 발전했다. 요즘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자포니즘(Japonism)의 밑바탕에도 장식주의가 깔려 있다. 오가타 고린의 예술성은 오늘날 일본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가 일본의 국민화가로 추앙 받는 것이다. 그의 장식주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 고흐와 구스타프 클림트의 예술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세계에서 비싼 그림’ 5위 안에 드는 고흐의 ‘붓꽃’은 오가타 고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연자화도병풍’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클림트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화면 역시 오가타 고린의 회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클림트의 상징적 색채로 통하는 금색과 다양한 문양은 고린의 회화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따라서 많은 서구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화가로 오가타 고린을 꼽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홍백매도병풍’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두 개의 병풍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금지를 바탕으로 한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금색과 짙은 갈색의 격조 있는 대비다. 또 깔끔하고 강한 선이 선명한 이미지를 드러낸다. 매화나무의 복잡한 선과 강물의 유려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선이 그것이다. 둘로 나뉜 화면은 강물로 연결된다. 거의 검은색으로 보이는 짙은 강물은 깊고도 큰 강이라는 느낌을 준다. 강물 속에는 부드러운 문양 같은 물결이 너울거린다. 강물 속의 작은 너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긴 세월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 그림에 장식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에 그린 매화는 흰 꽃이다. 고목의 기운이 역력한 둥치는 부드러운 굴곡이 강조돼 있다. 화면 밖으로 나간 고목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듯 늙은 가지를 화면 안으로 늘어뜨린다. 백매(白梅)를 피운 가지는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며 구불구불 내려오고 있다. 그러다 가지 끝에서 힘차게 솟구친다. 이는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었던 작가의 생각을 대변해 준다. 그 생각은 젊은 날을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백매의 끝 가지 하나가 화면 중앙 부분으로 이어지면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끌어간다. 싱싱하게 기운이 오른 홍매(紅梅)다. 마치 무사가 떡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다. 젊은 날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가지에서는 인생의 성공을 향한 야망이 읽힌다. 누구나 젊은 날에는 욕심과 야망으로 성공을 설계한다. 그것이 삶의 에너지가 된다. 그러나 세월은 그 에너지를 숙성시켜 인생의 연륜으로 키워낸다. 이런 세월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강물같이 흘러가는 바로 우리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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