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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경영] 인삼을 불태운 임상옥의 결단

[역사와 경영] 인삼을 불태운 임상옥의 결단

흔히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한다. 누구는 뭘 해도 돈을 버는데 또 누구는 뭘 해도 말아먹고 만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업은 별것 아닌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치는데 어떤 기업은 엄청난 아이디어로도 쪽박을 차고 만다. 그래서 팔자니 운수소관이니 하는 말이 나오고 철학관·운명상담소들이 돈을 긁어 모은다. 물론 운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실패를 운 없는 탓으로 돌리기만 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운이란 노력의 부산물이고 그래서 행운은 노력하는 사람만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데는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정확한 미래 예측, 풍부한 자금과 정보력, 근면성실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 달리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역발상이다. 역발상은 상식과 관습을 뒤집는 것이다. 상식과 고정관념을 따르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은 수많은 경쟁자가 득실대는 레드 오션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 생각하는 것이라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그럴 바에는 남들이 가는 길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게 나을 수 있다. 물론 위험이 따르지만 대담하게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역발상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과 반대로 간다고 블루 오션에 이르는 건 아니다. 현실에 순응해 따르는 대신 현실을 능동적으로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역발상이다. 『사기』가 소개하는 진나라 때의 인물 임공(壬公)은 그러한 역발상의 롤 모델이 될 만하다. 임공의 집안은 대대로 관청의 창고지기를 지내며 살아왔다. 하지만 임공은 가난한 조상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돈을 모으기 위해 창고지기를 그만두고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 안 신는 오랑캐에 신발 판 임공
우선 그는 적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소금장사를 시작했다. 돈을 조금 모은 뒤 다시 목축업과 농업에 뛰어들었다. 임공이 살던 때는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이 죽고 2세 황제 호해가 다스리던 시절이었다. 어리석은 황제 대신 교활한 환관 조고가 권력을 주무르자 세상은 크게 어지러웠다. 사람들은 다투어 사치를 부렸다. 금은보석으로 몸을 치장하고 화려한 수를 놓은 비단옷이 유행했다. 하지만 임공은 사치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 곧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조고의 폭정이 계속되자 각지에서 영웅호걸들이 들고 일어났다. 진승과 오광이 일어나고 이어 항우와 유방이 거사했다. 천하는 전쟁터가 됐고 사람들의 피난 행렬이 줄을 이었다. “피난을 갈 때는 금이 최고다. 들고 가기에도 간편하고 피난지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금값이 폭등하고 곡식 값은 폭락했다. 하지만 임공은 사람들과 반대로 움직였다. 곡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그런 임공을 가족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아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님, 세상에 난리가 났는데 곡식을 사들여서 어쩌시려는 겁니까? 다른 사람들은 금을 사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소리 말아라. 금 덩어리 몇 개가 요긴하게 쓰일지는 몰라도 대상(大商)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금값이 폭등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어찌 부를 이루길 바라겠느냐. 아무 소리 말고 곡식이나 부지런히 사들여 땅속에 묻거라.” 아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임공이 시키는 대로 곡식을 사들인 뒤 땅을 파고 잘 보관했다.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 더욱 격렬해지면서 양쪽의 수십만 대군은 군량이 부족해 백성들의 양곡을 빼앗아갔다. 전쟁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는 데다 보관해둔 양곡마저 빼앗기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사람들은 집 안에 있는 모든 패물을 꺼내 들고 곡식을 사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금값은 폭락하고 곡식 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임공이 아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비축해뒀던 곡식을 꺼내 팔거라.” 임공은 양곡을 팔아 금은보화를 거둬들였다. 유방이 항우를 누르고 천하를 통일했을 때 임공은 한나라 최고의 거부가 될 수 있었다. 한고조 유방이 임공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불렀다. 유방이 물었다. “그대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고 하는데 무슨 비결이 있는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것을 역발상이라 하지요.” “예를 들어 보겠는가?” “남월에 사는 미개한 오랑캐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남월에 가서 신발을 팔라고 했지요. 아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찌 신발을 팔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발을 신도록 풍습을 바꾸면 될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아들은 그 말을 듣고 남월에 가서 많은 돈을 벌어 왔습니다.” “풍습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먼저 몇몇 여자에게 돈을 주고 예쁜 신발을 신게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여자가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앞다퉈 신발을 샀습니다. 결국 남자들까지 신발을 신게 됐지요.” 결과만 놓고 보자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 쉬워 보인다. 하지만 실제 실행에 옮기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들이 다 오른쪽으로 가는데 혼자만 왼쪽으로 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고독한 결정이 따라야 하는 일이다. 그러한 결정을 위해서는 정확한 판단력과 남다른 결단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능력을 모두 갖춘 인물이 우리나라에 있었다. 조선 후기의 의주상인 임상옥이다.
청상들 농간 꿰뚫어 본 판단력
임상옥은 전국에서 최상품 인삼을 사들인 뒤 동지사 일행을 따라 청나라에 들어갔다. 연경에 도착해서 인삼을 펼쳐 놓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청국 상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인삼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예전에는 조선 상인들이 오면 청국 상인들이 먼저 달려와 인삼을 찾았으나 이번엔 청국 인삼가게들을 찾아다니며 사라고 해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싸다고만 했다. 경상·송상·만상 등 조선 상인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조선으로 돌아가야 할 날은 다가오는데 인삼을 한 뿌리도 못 팔았으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조선 상인들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제 어쩔 수 없소. 청상이 부르는 가격에 그냥 팝시다.” 조선 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쪽 구석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임상옥이 말했다. “청상들이 부르는 값에 팔려면 제게 파십시오.” 조선 상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가 전 재산을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아니, 당신 인삼도 팔지 못하면서 우리 인삼까지 사겠다는 거요?” “제 신용을 아시지 않습니까? 어음을 써 드리겠습니다.” 임상옥은 상인들에게 어음을 써주고 인삼을 모두 인수했다. 그러고는 객사 앞에서 인삼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사실 청상들은 조선 인삼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비매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귀국 날짜가 다가오면 조선 상인들이 인삼을 안 팔래야 안 팔 수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임상옥은 이를 간파하고 다른 상인들의 인삼을 모두 사들인 것이었다. 조선 상인들의 동향을 살피고 있던 청상들은 조선 상인들이 머물고 있는 객사 마당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발견했다. 임상옥이 인삼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청상들은 대경실색해서 달려왔다. “아니, 그 귀한 인삼을 태워버리다니 도대체 왜 그러시오?” 청상들은 사색이 돼 임상옥의 소매를 잡고 만류했다. 그들은 고려인삼을 사기 위해 돈까지 빌려왔기 때문에 인삼을 사지 못하면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임상옥은 장작불에 인삼을 던지며 태연히 말했다. “인삼은 헐값에 팔면 약효가 없다오. 그래서 이렇게 태워버리는 것이오.” 청상들이 애원했다. “우리가 두 배로 값을 쳐 드리겠소. 우리에게 파시오.” 하지만 임상옥은 막무가내였다. “이미 태운 게 있어서 갑절이라도 손해를 메울 수 없소.” “그렇다면 열 배에 사겠소. 제발 이제 그만 하시오.” 임상옥은 그제야 못 이기는 체하고 인삼을 팔았다. 임상옥은 조선 상인들의 인삼을 모두 거둬 열 배로 팔아 조선 최고의 거부가 됐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도 되기 전의 일이었다. 남들은 팔지 못해 안달일 때 모두 사들이는 역발상과 사들인 것을 모두 불에 태워도 좋다는 결단력, 그리고 청상들의 농간을 꿰뚫어 본 판단력이 그를 거상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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