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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서비스의 본질은 오랜 시간 안전하게 자산을 키우는 것이다.” -이정걸·국민은행 팀장 |
은행금리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시대에 주목 받는 직업이 있다. 바로 ‘금융주치의’ ‘재무집사’라 불리는 PB다. 자산 규모가 커 전문 관리자가 필요한 부유층에게나 PB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누구에게나 재무설계는 필요하다. 그런데 막상 PB 서비스를 받으려니 걱정이 앞선다. ‘이 사람, 믿어도 될까?’ 내 소중한 돈을 믿고 맡기려면 PB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코노미스트가 PB들이 말하는 PB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시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타운. 이곳에서는 늘 각 금융기관 PB센터들의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상가 단지 안에 PB센터 이름을 단 곳만 5곳이다. 여러 은행·증권 등 금융회사에서 알짜 자산가들이 많은 이곳을 전략지역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이정걸 국민은행 PB팀장은 5년째 150여 명의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 관리자산은 총 1200억원 정도다. 이 정도 관리자산 규모면 국민은행 내에서는 열 손가락에 드는 정도.
고객 쟁탈전이 심한 이곳에서 꾸준히 고객과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이 팀장은 “관심은 나의 힘”이라고 말한다. 돈이나 명예,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조차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150여 명의 고객이 힘에 부칠 법도 하지만 그는 포트폴리오, 가족 관계를 모두 기억하려고 한다. 금융 지식이나 시장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다. “좋은 PB와 나쁜 PB를 가르는 기준은 커뮤니케이션 능력 아니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요즘같이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는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기보다 고객의 목표 수익률에 맞춰 계획대로 관리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끔 돈 벌자고 저를 찾아오시는 분이 있다. 그러면 PB서비스의 본질은 오랜 시간 안전하게 자산을 키우는 것이라 설명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자산관리 철학과 고객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으면 고객은 만족할 수 없다. 고객을 1 대 1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 PB 서비스인 만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어떤 PB를 막론하고 강조하는 영역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다른 말로 바꾸면 빠른 상황 판단력과 순발력도 될 것이다. PB는 때로 카운슬러가 되기도 하고, 영업사원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여러 가면을 쓸 수 있지만 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질은 ‘듣는’ 능력이다.
 | ▶“펀드와 주식을 양손잡이처럼 다룰 수 있는 PB는 증권사에 있다.” -이동희·한국투자증권 여의도 PB센터 | |
이동희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PB센터장은 지금 함께 일할 PB를 찾고 있다. 사내공모제로 PB를 지원하는 사람은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그의 입맛에 꼭 맞는 PB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가 함께 일하고 싶은 PB는 다음과 같다. “영업 경력이 있으면 좋겠다. 인터뷰했을 때 말투나 듣는 태도까지 고객에게 거슬림이 없어야 한다. 금융지식은 필수지만 부자 고객들은 이미 전문가 수준이 많으므로 고객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나아가 영업력을 갖춘 직원이 PB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PB 1세대인 김인응 우리은행 강남센터 팀장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52명 고객의 자산 총 1100억원을 관리하고 있다. “금융자산 20억~30억원을 맡기는 고객 중 대부분은 주변에 금융전문가 한 둘은 두고 있다. 본인이 아니라면 자녀가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이 무언가 말했을 때 나중에 알아보고 말하겠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준비하고 공부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외국 유명 애널리스트가 고가에 판매하는 정보까지 습득하고 있다. 물론 그 정보를 그냥 믿는 것은 아니다. 인맥과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정보들을 취합해 논리를 튼튼히 만들어 놓는다.”
 | ▶“PB는 고객의 기분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에서 배웠다.” -김인응·우리은행 강남센터 팀장 | |
PB 고객의 전화는 대부분 불시에 걸려온다. 전화벨이 울리고 질문이 쏟아지면 김 팀장은 어떤 질문이든지 대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김 팀장의 목소리는 언제나 자신 있다. 조윤석 PCA생명 하나지점 FC(Financial Consultant)는 “보험설계사와 편안히 대화하려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는 상담하기 전 이 말부터 한다. “부담 느끼지 마시고 상담만 하셔도 좋다.” 그가 편안함을 강조하고 부담 없는 상담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영업을 지속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두 번은 가족이나 친척, 주변 사람에게 보험 가입을 권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한두 번이다. 그래서야 영업 몇 년이나 하겠나. 나는 고객 만족도를 확인하면서 항상 ‘제 서비스가 부담되지 않으셨고 수준이 높았다면 주변에 소개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계속 고객을 늘려나가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 누가 더 셀까 위 네 사람의 PB(FC)는 모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고객을 중시하는 태도를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자산관리 스타일은 서로 다르다. 은행권 PB들은 보통 안정성을 중시한다. 김인응 팀장은 “거액 자산가들은 높은 수익성보다는 자산가치를 지키는 데 치중하고 대출, 여신 등의 관리가 편리한 은행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 ▶“돈이 있는 사람만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 |
반면 증권사 PB들은 수익성을 좀 더 강조하는 편이다. 이동희 한투증권 팀장은 “펀드와 주식을 양손잡이처럼 다룰 수 있는 PB는 증권사에 있다”며 “전통적인 펀드의 강자는 증권”이라고 강조했다. 안정성과 수익성 중 PB는 어느 면을 더 고려해야 할까. 정답은 고객 마음대로다. 이동희 팀장은 “한 명의 고객이 여러 명의 PB를 두는 것도 봤다”며 “포트폴리오를 고루 짜는 것이 옳다고 해도 고객이 이미 안정자산을 다른 PB에 맡기고 여유자금으로 투자하고 싶어 증권사를 찾아왔다면 그 금액을 굳이 분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걸 국민은행 PB팀장은 “고객과 궁합을 맞추고 목표에 대한 뚜렷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첫째 과제”라고 설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서 PB란 생소한 용어였다. IMF 직후 은행에서 거액의 예금이 이탈하면서 이를 붙들기 위해 시작한 VIP마케팅이 국내 PB 서비스의 시초다. 10년 새 PB는 자산관리전문가로서 인정받으며 사내공모 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보직이 됐다. 사내공모와 외부 인력 영입으로 각 기관들이 PB 수요를 충당하고 있다. 이때 PB가 갖춰야 할 자질로서 평가되는 것이 경험이다. PB 10년 차인 김인응 우리은행 강남센터 팀장은 “요즘처럼 시장이 좋지 않을 때 IMF 외환위기 이후를 떠올리며 고객에 대응한다”고 말했다. 그는 “PB는 고객의 기분에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험에서 배웠다.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지금같이 장이 나쁠 때 오히려 희망을 보고 다음 걸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PB 수요 날로 커져 2000년 들어 본사 기획팀에서 2년 정도 근무한 후 2004년 다시 PB로 현장에 뛰어든 그는 현장·기획 업무 모두를 겪어본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PB가 고객에게 해 줘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은행이 PB에게 어떤 지원을 해 줘야 할지 다양한 측면에서 PB 업무를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 김 팀장도 10년 전 외환위기로 자본시장이 변화하면서 임원의 권유로 PB가 됐을 때만 해도 PB라는 직종에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1997년 초 PB 영업을 시작하면서 남들은 1억원 이상 자산가들을 놓치는데 우리은행(당시 한일은행)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서 VIP 마케팅, 곧 영업에 확신을 갖게 됐다. 행장 표창을 받고 사내 우수 사례로 PB 영업이 주목을 받으며 그는 PB라는 일의 비전을 보게 됐다. 김 팀장은 “기업금융은 IB, 개인금융은 PB로 크게 양분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희 한투증권 팀장은 10년 전만 해도 러시아 기업을 탐방 다니던 펀드매니저였다. 지금이야 러시아 펀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그 당시만 해도 국내 펀드매니저가 외국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미심쩍어했다. 그런 중에 UBS와 함께 공동펀드를 운영하게 됐다. UBS의 발달된 PB서비스를 보면서 그는 한국도 앞으로 PB 업무가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해 2003년 PB가 됐다. 그는 “펀드매니저 경험이 있기 때문에 펀드에 대해 좀 더 잘 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PB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후 해도 좋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조윤석 PCA생명 하나지점 FC는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이다. 결혼해 가정까지 꾸렸는데 다니던 엔지니어링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옮기게 됐다. 하루 종일 도면과 씨름하는 것에 지친 그는 영업직을 꿈꾸게 됐고 그가 선택한 곳이 PCA생명이었다. 그는 “돈이 있는 사람만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을 떠올리면 고객을 상담할 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헤드헌팅사에 따르면 현재 스타 PB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태다. 해외 금융사나 국내 손보사 등에서 PB영업부를 신설하며 기존 PB들에 대한 영입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몸값은 고객 확보 리스트에 따라 정해지며 연봉 2억~3억원을 부르는 곳도 많다. PB가 되는 길은 보통 사내공모를 통해 이뤄지지만 외부인력 영입 때는 기존에 있던 PB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오는 것이 보통이다. PB서비스는 좀 더 세분화될 전망이다. 김인응 우리은행 팀장은 “현재 10억원 이상 금융자산가보다 PB들의 수가 더 많은 실정”이라며 “앞으로는 PB들도 세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걸 국민은행 팀장은 “거액자산가의 패밀리오피스만을 관리하는 PB도 생겨날 것”이라며 “자신만의 경쟁력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 언제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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