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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위기설 잠재울 비책 뭘까

자금 위기설 잠재울 비책 뭘까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초대형 M&A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단 2년여 만에 재계 순위 8위로 끌어올린 박삼구 회장. M&A 귀재라 불리며 시장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가 ‘유동성 위기’라는 시험대에 올랐다. 이에 따라 그의 고뇌도 깊어만 간다. 박 회장의 M&A 전략은 ‘승자의 축복’일까, ‘승자의 재앙’일까.
7월 31일 오후 5시, 여의도 CCMM빌딩 12층.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의 합동 기업설명회(IR)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그룹의 유동성 위기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진은 일제히 “위기는 없다”며 시장에 떠도는 유동성 위기설을 일축했다.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도 “현 상황을 위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합동 IR을 통해 시중의 온갖 소문이 해소되길 바란다”며 시장의 우려가 단순히 기우에 불과하다고 못 박았다. 그 이유로 오 사장은 그룹의 풍부한 자금력과 양호한 경영실적을 들었다. 이날 발표된 경영실적에 따르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분기 매출 6조38억원, 영업이익 3856억원, 당기순이익 2269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또 그룹 전체 보유현금은 4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면서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날 기업 실적과 함께 4조원이 넘는 유동성 확보 방안도 내놨다. 내년까지 대우건설, 아시아나항공, 금호산업 등 주력 계열사의 부동산과 보유 주식을 팔아 4조5000억원가량의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이 유동성 확보 방안의 골자였다.
과도한 자금 차입이 문제
그룹의 풍부한 자금력과 양호한 경영실적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금조달 방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오 사장은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바꿔 말하면 현 상황은 위기가 아니지만 언제든 시장의 우려대로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이는 시장의 우려만큼은 아니더라도 금호아시아나그룹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형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유령(소문과 설)과 싸우기 위해 4조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조달 계획을 준비하겠느냐”며 “유동성 확보 방안을 발표한 것 자체가 유동성 위기를 시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시장의 소문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면서도 유동성 확보라는 긴급 처방을 발표한 것은 유동성 위기설이 M&A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즉 유동성 위기를 시인하는 것은 박삼구 회장의 M&A 경영전략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 된다. 박 회장은 2006년 말 대우건설에 이어 올해 초 대한통운 인수를 주도하면서 재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단 두 차례의 M&A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3위였던 재계 순위가 8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그룹 규모도 2배 이상 커졌다. 그만큼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는 박 회장에게 최대의 성과이자 자랑이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시장의 소문대로 M&A 때문에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면 이는 그룹 오너의 명예가 달린 일”이라며 “내년 이후 그룹의 사세에 따라 오너의 운명까지 바뀔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사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은 올 초 대한통운 인수 때부터 흘러나왔다. 6조5000억원 규모의 초대형 매물이었던 대우건설 인수 후 불과 1년여 만에 또다시 4조원짜리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금융권에서는 그룹의 M&A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0조원이 넘는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풋백옵션 등 막대한 빚을 져야 했다. 이 때문에 그룹 전체의 부채비율은 한때 230%에 육박하기도 했다. 게다가 고유가, 미국발 신용경색 등에 따른 경기침체는 M&A 효과마저 희석시켰다. 내수부진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요 계열사들의 경영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 이는 1분기에 이어 2분기 경영실적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1%가량 증가했다. 이에 반해 영업이익은 4% 증가하는 데 그쳤고, 당기순이익은 19% 이상 줄었다. M&A로 덩치는 커졌지만 실속은 챙기지 못한 셈이다. 경영실적 및 재무건전성 악화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대한통운 인수 이후 지금까지 대우건설,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계열사들의 주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의 주가는 연초 고점 대비 반 토막 났고,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의 주가도 6만원대에서 1만원대로 추락한 상태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16조원이 넘었던 그룹의 시가총액은 10조원대로 급감했다.

유동성 위기 벗어날 수 있을까
주요 계열사의 주가 급락은 유동성 위기설을 더욱 키웠다. 특히 풋백옵션이 걸려있는 대우건설의 주가 급락이 문제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12월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과 ‘2009년 12월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4000원을 밑돌 경우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되사준다’는 풋백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8월 1일 현재 대우건설의 주가는 1만2000원대로 행사가격을 크게 밑돌고 있는 상태. 내년 말까지 주가가 회복되지 못할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약에 따라 4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월 30일에는 금호타이어의 풋백옵션이 터졌다. 2005년 2월 금호타이어 지분 750만 주를 인수하면서 전략적 파트너가 된 미국의 쿠퍼타이어가 주당 1만4650원에 재매각할 수 있는 풋백옵션을 행사한 것. 계약대로 쿠퍼타이어의 주식을 되살 경우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약 400억원의 손실을 안게 된다. 금호타이어의 1일 종가는 7000원대로 행사가격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결국 박삼구 회장이 자금 차입을 통해 M&A에 나선 것이 지금은 큰 짐이 된 셈이다. 증권회사 한 CEO는 “M&A는 기업 성장의 핵심이긴 하지만 잘못할 경우 독약이 될 수도 있다”며 “특히 무리한 자금 차입을 통한 M&A는 그룹 전체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만큼 자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기업들이 풋백옵션 등 무리한 자금 차입을 통해 M&A에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문제를 계기로 풋백옵션에 대한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고강도 자구책을 발표했지만 금융권의 반응은 냉담하다. 유동성 확보 방안에 따라 내년 말까지 4조5000억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하면 어느 정도 불안감은 해소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자금을 확보할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유동성 확보 방안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증권회사 한 M&A팀장은 “유동성 확보 방안이 현실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쿠퍼타이어의 옵션 행사와 같은 돌발변수들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고, 또 단기간 자산 매각으로 제값을 받을 수 없다는 변수도 있다”며 “이런 변수들이 돌출할 경우 유동성 확보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반응도 차갑다. 고강도 자구책 발표에도 그룹의 주요 계열사 주가는 여전히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증권회사들은 유동성 확보 방안이 발표된 이후 오히려 금호아시아나그룹 상장 계열사의 목표주가를 대폭 낮추거나, 주식 매도 의견을 내고 있다. 실제로 씨티그룹은 1일 대우건설의 목표주가를 1만8300원에서 1만2000원으로 하향 조정하고, 투자의견도 ‘보유’에서 ‘매도’로 바꿨다. 또 UBS는 금호산업의 목표주가를 7만원에서 2만4000원, 대우건설은 3만2000원에서 1만5500원으로 대폭 내렸다. 대신증권도 금호산업의 목표주가를 기존에 비해 53.2% 낮은 3만6000원으로 대폭 낮췄다. 모두 다 ‘여전히 불안하다’는 이유에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확보 방안이 계열사들의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그룹 측이 발표한 유동성 확보 방안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보유 유가증권 매각으로 2502억원, 사회간접자본 지분 매각으로 3102억원 등 총 2조124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금호산업 역시 부동산 및 보유 주식 매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모두 1조1505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도 비슷한 방식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1조4111억원의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계열사들의 돈이 될 만한 유휴 자산을 거의 대부분 매각하는 것이다. 박삼구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속병 앓는 대우건설


“주인 잘못 만나 빈껍데기 전락 우려”
시공능력평가 3년 연속 1위, 2007년 말 수주잔액 23조원으로 압도적 1위. 건설업계 전통의 강호 대우건설이 흔들리고 있다. 실적은 예년만 못하고, 대한통운 인수자금에서 비롯된 재무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공교롭게도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된 2006년을 기점으로 대우건설의 추락이 빨라지고 있다. 대우건설로선 시너지효과는커녕 M&A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는 셈이다. 대우건설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 줄어든 1362억원에 그쳤다.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동기 대비 무려 45.7% 감소한 646억원에 머물렀다. 매출액은 조금 늘었지만 이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올 2분기 매출은 1조7098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증가했지만 시장 예상치(1조7518억원)와 비교했을 때, 3% 밑도는 다소 부진한 실적이다. 게다가 대우건설은 이미 전국에 5000가구가 넘는 미분양 아파트를 보유한 탓에 하반기 실적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그러나 대우건설 측은 여전히 자신 있는 모양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주택 부문 매출이 부진하면서 전체 수익성을 악화시켰고, 일회성 비용도 증가했다”며 “2분기 실적개선을 어느 정도 이뤄냈기 때문에 3분기부터는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의견도 비슷하다. 조주형 하나금융그룹 연구원은 “대우건설의 영업실적은 올해 4분기부터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광수 동양종합금융증권 연구원도 “1, 2분기 실적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지만 조만간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수 연구원은 또 “특히 주택 부문에 대한 우려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대우건설의 미분양 주택이 소폭 줄고 있는 것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미분양 주택은 현재 5050여 가구로, 지난해 말 6200가구에서 지속적으로 주는 추세다. 연말까지 5000가구 미만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게 대우건설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대우건설의 고민은 따로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인수된 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재무 부담이 그것이다. 대우건설은 지난 3월 대한통운 인수자금 1조6457억원을 조달했다. 이 중 교환사채 등 외부 차입을 통해 조달한 현금만 1조1000억원이다. 이에 따라 올해 말 차입금은 2조5600억원, 순차입금은 2조1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채비율도 높아졌다. 대우건설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119%에서 지금은 181%까지 치솟은 상태다. 사실 대우건설의 금융차입은 낮은 편이었다. 2001년 이후 지속적 차입금 상환이 이뤄진 덕분에 2007년 말 총 차입금은 8881억원, 순차입금은 1246억원에 불과했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 인수에 동원됐다가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송준원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대우건설의 실적은 대한통운 인수비용 반영으로 당분간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무부담이 대우건설로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풋백옵션’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고민거리다. 대우건설은 향후 비핵심자산 매각 및 매출채권 유동화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자회사 등 보유 유가증권 매각으로 2502억원 ▶서울고속도로·일산대교 등 SOC 지분 매각으로 3102억원 ▶부산 밀리오레 등 유형자산 매각으로 5000억원 ▶대한통운 유상감자 등으로 9520억원 등 총 2조124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대한통운 차입금 일부를 상환하는 동시에 추락한 주가도 끌어올리겠다는 게 대우건설의 계산이다. 문제는 이 대책들이 대우건설을 위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위한 주가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우호지분으로 참여한 은행 등 투자자들에게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4000원을 밑돌 경우 주식을 되사주겠다”고 약속했다. ‘풋백옵션’이 바로 이것이다. 대우건설의 현재 주가는 1만2000원 선. 이에 따라 1년 후에도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손실을 온통 떠안게 된다. 이들이 대우건설을 이용, 적극적인 주가부양책에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창근 현대증권 연구원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위한 대우건설의 연이은 유상감자, 자산매각, 자사주 매입 등 본질적인 자금유출은 기업가치 상승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도 “지나친 주가부양대책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인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빈껍데기로 만들 우려가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송준원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새 주인(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잘못 만난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한때 알짜배기 회사들의 날개가 꺾이고 있다”며 “금호의 무리한 M&A 후폭풍을 정면으로 맞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윤찬 기자·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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