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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한 소년의 슬픈 최후

커밍아웃한 소년의 슬픈 최후

15세의 로렌스 킹은 신장이 155㎝에 불과했지만 어디서나 금방 눈에 띄었다. 캘리포니아주 옥스나드의 E O 그린 중학교에 다니는 그는 지난 1월부터 여성용 액세서리를 온몸에 치렁치렁 매달고 등교했다. 어떤 날은 자신의 곱슬머리에 젤을 발라 가수 프린스처럼 크게 부풀리기도 했다. 때로는 손톱에 야한 핑크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볼에다 흰색이나 반짝이 파운데이션을 바르기도 했다. “나보다 화장을 더 잘했네”라고 같은 반 여자 친구인 마리사 모레노(13)가 말했다. 그는 대형 할인점 타깃에서 구입한 하이힐을 신고 학교 미식축구팀 운동복 상의를 입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러웠다. 그 옷을 입고 몸을 뒤뚱거리며 운동선수들을 뒤쫓아 다니면서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러나 2월 12일 아침, 래리(로렌스의 별명)는 모든 액세서리와 하이힐을 벗어놓고 집을 나섰다. 여느 남학생들과 다름없는 테니스화, 헐렁한 바지, 그리고 칼라가 있는 셔츠 위에 넉넉한 스웨터 차림으로 등교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 듯했다. 전날 밤 잠을 제대로 못 잤고, 이날 아침에도 먹은 것을 토했다고 한 교직원에게 말했다. 체중변화에 극도로 민감해 토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래리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뭔가에 쫓기는 듯 계속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한 학생에게 목격됐다. 1교시 영어수업을 맡고 있는 돈 볼드린 교사는 학생들에게 가방을 챙겨 컴퓨터 랩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리포트를 작성하게 할 생각이었다. 래리는 교실 가운데쯤에 앉았다. 바로 뒷자리엔 브랜든 매키너니(14)가 자리 잡고 있었다. 브랜든은 리포트 작업을 이미 끝냈다고 선생님에게 보고했다. 그러곤 역사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니 읽는 시늉을 했다. “계속 래리를 쳐다봤다”고 그날 아침 같은 교실에 있던 한 학생이 말했다. “책 한 번 보고 래리를 쳐다보고 다시 책을 들여다보다가 래리를 보곤 했다.” 오전 8시 30분, 수업 시작 후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브랜든이 슬며시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도 낌새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학교 안으로 어떻게 들여왔는지 모를 권총을 꺼내 래리의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교실 저편에서 다른 학생의 리포트를 살펴보던 볼드린 교사는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돌리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브랜든, 도대체 무슨 짓이야!” 브랜든은 다시 한 번 래리를 향해 총알을 발사하고 권총을 바닥에 내팽개친 뒤 조용히 교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그는 7분도 안 돼 학교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래리는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이틀 뒤 뇌손상으로 숨졌다. 이 사건은 10년 전 매튜 셰파드의 피살(동성애자 대학생이던 그는 남자 두 명에게 구타당한 뒤 숨졌다) 이후 게이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가장 유명한 범죄가 됐다. 그러나 모든 관심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래리가 숨진 이유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그리 간단치 않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최근 동성 간 결혼을 인정했다. 그리고 ‘가십 걸’과 ‘어글리 베티’ 같은 인기 TV 프로그램에 게이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요즘은 별다른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듯하다. 따라서 래리 같은 청소년들이 게이의 공개적인 노출에 너무 익숙해져 ‘커밍아웃’하는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한 조사에서는 청소년들이 자신이 게이라고 판단하는 평균연령이 13.4세로 내려갔다. 부모는 보통 그 1년 뒤에나 알게 된다. 게이의 이 같은 노출증가 추세가 어쩌면 래리의 죽음을 부른 주된 요인일지도 모른다.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해도 중학교에서 게이의 공개적인 노출은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서 어른들의 흉내를 내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교사와 부모들은 종종 그렇게 어린 청소년들의 성적인 문제에 대응하는 것을 거북해 한다. 학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어떻게 하면 부적절하고 때로는 피해를 주는 행위를 제지하면서 합법적이고 개인적인 표현을 보호할 수 있을까? 래리 킹은 확실히 많은 문제를 내포한 시범 케이스였다. 그는 자신의 성적 경향을 자랑 삼아 떠벌리고 마치 무기처럼 휘둘렀다. 그것은 종종 자신을 보호하는 첫째 방어막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관용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선을 긋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뒷받침하는 증거다. E O 그린 중학교의 사태가 보여주듯 그 균형점을 찾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래리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생모는 마약중독자였고 아버지가 누군 줄도 몰랐다. 두 살 때 그레그와 돈 킹 부부에게 입양됐는데 당시 규칙적인 식사를 못해 영양결핍이 있었다. 래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언어장애로 이해력이 떨어졌고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1학년 땐 유급을 했다. 자연과 뜨개질을 좋아하던 온순한 아이였지만 어릴 때부터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마트에 데려가기만 하면 항상 물건을 훔쳤다”고 그레그가 말했다. “방 청소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땐 드라이버로 벽에 구멍을 뚫곤 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약을 처방 받아 복용했으며 반응성애착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그레그가 밝혔다. 어린이가 보호자나 부모와 정상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희귀 질환이다. 래리가 해서웨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이 그를 두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전교생이 700명인 학교에서 래리를 모르면 간첩이었다”고 부교감이었던 새라 란지바르가 말했다. “약간 계집애처럼 행동했지만 개성이 뚜렷했다.” 마침내 그와 가장 친한 에이버리 래스키가 어느 날 수업이 끝날 무렵 그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래리, 너 게이니?’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가 별걸 다 묻는다는 듯 ‘응, 왜?’라고 대답했어요.” 이때 그의 나이 열 살이었다. 에이버리는 “그래도 난 상관 없어”라고 말했지만 래리는 딴 친구들에게도 떠벌리고 다니기 시작했고, 그들의 반응은 에이버리와 사뭇 달랐다. 그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가 하면 쉬는 시간엔 그를 ‘왕따’시켰다. 할로윈 데이엔 누군가 그의 집에 발연탄(發煙彈)을 던져 잭 러셀 테리어종 애완견이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6학년 때는 한 여학생이 래리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그에 관한 악성 루머를 받아 적어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책은 래리가 어떻게 동성애자가 됐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가 괴기스러운 차림과 여장을 한다는 거짓 주장을 했다. 그리고 위협으로 끝을 맺었다. 그 책을 본 한 부모의 기억에 따르면 “나는 래리 킹이 싫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교장이 아내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그레그가 말했다. “그 책을 우연히 발견한 교장이 뭔가 래리를 보호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는 래리를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시키면서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새 출발하길 바랐다. E O 그린은 핑크색과 노란색 주택들 속에 자리 잡은 하얀색 콘크리트 슬래브 건물이다. 오후엔 SUV 차량들이 쏟아져 나와 힙합 음악을 쿵쾅거리며 거리를 쏘다닌다. 학생들이 모두 귀가하면 두 개의 푸른 색 문이 잠기고 어두워진 뒤에는 갱단의 폭력이 두려워 교사들도 학교에 접근하지 못한다. 정문 앞엔 푸른 색의 낡은 안내판이 손님을 맞는다. 1994년에 캘리포니아주 모범교육기관이었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다른 교육청 소속이다. 래리는 E O 그린에 입학한 뒤 7학년(중학교 1학년) 때는 마음 편히 학교 생활을 했다. 그가 어울렸던 여학생들은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두 쌍수를 들어 환영한 것도 아니었다. 몇몇 친구에 따르면 체육시간이면 탈의실에서 남학생 여럿이 그를 밀쳐대곤 했다. 여장을 하기 시작한 뒤론 놀림이 더욱 심해졌다. 한번은 점심시간에 남학생들이 그의 하이힐 한 짝을 집어 들고 미식축구공처럼 서로 패스하며 그를 곯렸다. “아무나 그에게 다가가서 이유 없이 웃어대곤 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고 모레노가 말했다. 어느 날 과학시간엔 래리가 ‘Somewhere Over the Rainbow’(Rainbow는 동성애를 상징) 노래를 흥얼대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게이라고 놀려댔다. “래리는 ‘상관없어’ 라고 내게 말했다”고 같은 반 친구였던 바네사 카스틸로가 떠올렸다.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거야. 그때는 내가 유명해져 있을 테니까.” 래리의 가정생활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12세 때 면도칼로 남의 트랙터에 흠집을 내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정기적인 상담치료를 받기도 했다. 한 심리치료사는 래리가 자폐증일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14세 때 래리는 아빠에게 자신이 양성애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여겼다”고 그레그가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이해해 주면 몇몇 문제는 저절로 없어질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심리치료사는 래리가 단지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것 같으며 게이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그레그에게 귀띔해 줬다. 래리는 선생님들에게 아빠가 자기를 때린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그레그는 결코 아이에게 손을 댄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어쨌든 사법당국은 2007년 11월 래리를 부모와 격리해 옥스나드에서 8㎞ 떨어진 카마릴로의 그룹 홈 겸 요양 센터인 카사 퍼시피카에 맡겼다. 래리는 스페인말로 ‘평화로운 집’이라는 뜻의 카사 퍼시피카가 마음에 드는 듯했다. 여러 채의 통나무집, 농구장, 수영장을 갖춘 9만3000㎡의 시설은 대형 캠프장 같았다. 45개의 침상을 갖추고 임시 거처가 필요한 불우 청소년들을 수용했다. 운전기사가 매일 래리를 학교에 태워다 줬으며 몇 주간은 인근 벤추라로 가서 게이 청소년 그룹 모임에 참석했다. “이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말했다”고 그 센터의 비키 머피 사무국장이 말했다. 성탄절 때 센터에서 그에게 75달러짜리 타깃(대형 할인점) 상품권을 선물로 줬다. 그는 그걸로 갈색 하이힐을 구입했다. 카사 퍼시피카에서 몇 달을 지낸 뒤 1월이 됐을 때 래리는 여장을 하기로 결심했다. 액세서리로 온몸을 치장한 채 등교했으며 이미 튀는 개성 표현의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한 여학생의 면전에서 유방 확대수술을 했다고 면박을 주는가 하면 다른 여학생이 그의 구두를 보고 싫은 소리를 하자 “나는 네 목걸이가 마음에 안 들어”라고 쏘아붙였다. 래리는 카사 퍼시피카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성전환 수술을 받게 해 달라고 졸랐다. 한 교사에겐 레티시아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절반은 흑인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 교사는 “래리, 내가 너를 레티시아라고 부르는 일은 없을 거야”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군말 없이 물러섰다. E O 그린의 교직원들은 래리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골머리를 앓았다. 어떻게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표현의 권리를 보장하느냐는 게 문제의 핵심이었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청에 따르면 법적으로는 래리의 여장을 막을 수 없었다. 주의 증오범죄법에서 성차별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래리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최대한 이용했다. 점심 시간에 인기 있는 남학생의 테이블로 다가가 날카로운 고음으로 “여기 앉아도 되니?”라고 묻곤 했다. 종종 놀림을 받던 탈의실에서는 남학생들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몸매 죽인다”고 말하는 식으로 앙갚음을 했다고 한 학생의 어머니가 증언했다. 래리는 결국 다른 탈의실을 쓰도록 격리됐지만 학교 당국은 그가 다른 남학생들과 어느 정도까지 마찰을 빚었는지는 모르는 듯하다. 한 교사는 그 격리조치가 “예방”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설명했다. 한 학생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래리가 호소했기 때문이다. 다른 수업의 교사들은 래리가 그렇게 다른 학생들의 관심을 끌도록 놔둬야 하는지 당혹스러워 했다. “모든 교사가 수업 진행이 어렵다며 불평했다”고 한 교사가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복장 규정이 큰 문제다. 그것을 두고 매일 티격태격한다.” 일부 교사는 래리가 복장규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생각했다. 주의를 산만하게 만든다고 간주되는 의류의 착용을 금지하는 규정이다. 래리가 처음 립스틱과 아이라이너를 바르고 등교한 날은 한 교사가 모두 닦아내라고 명령하자 군말 없이 따랐다. 그러나 다음날은 화장을 더 짙게 바르고 등교했다. 래리는 화장을 하든 말든 그것은 자기의 권리라고 그 교사에게 말하면서 엡스타인 선생님이 그렇게 알려줬다고 덧붙였다. 조이 엡스타인은 그 학교의 교감 세 명 중 한 명이었으며 래리가 갈수록 거침없이 행동하면서 일부 교사가 엡스타인에게 느끼는 혼란과 분노는 더욱 커졌다. 갈색 머리에 이중초점 안경을 착용한 차분한 성격의 엡스타인은 동료들에게 동성애자임을 공공연히 밝혔다. 학생들에게는 대체로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책상 위에 놓인 파트너 사진을 몇몇 학생이 목격했다. 7학년을 담당했지만 당시 8학년이던 래리와 각별한 관계였다. 래리는 그녀의 방에 자주 들러 상담하거나 잡담을 나누곤 했다. 그녀는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밝히려 하지 않았다. “내가 특별히 래리 문제에 나설 만한 이유가 없었다”고 엡스타인이 말했다. “그가 나를 찾아왔다.” 몇몇 교사는 그녀가 일부의 표현대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래리의 튀는 행동을 부추겼다고 본다. 한 교사는 엡스타인이 게이임을 공개하고 자신의 여자친구 이야기를 늘어놓아(아마도 남편 이야기였다면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 문제를 교정에 끌어들였다고 비난했다. 엡스타인은 브랜든 재판의 증인으로 소환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래리에게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밝히지 않지만 그것이 핵심 쟁점 중 하나가 될 게 확실하다. 브랜든의 국선 변호인인 윌리엄 퀘스트는 변호전략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래리와 브랜든 간의 긴장이 고조될 때 학교 당국이 개입하지 않은 것을 비난했다. 퀘스트는 엡스타인을 가리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레즈비언 교감”이라고 불렀다. 래리의 아버지도 엡스타인을 비난한다. 그도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고의성 여부를 따지는 불법치사 소송(wrongful-death lawsuit)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중학교 교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혼동하기 시작했다”고 그레그 킹은 말했다.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앞세웠다고 생각한다.” 이런 비극에서는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그 책임을 물을 사람을 찾으려는 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엡스타인은 이번 사건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하려 하지 않으며 그녀가 재판정에 나가 증언할 때까지는 래리의 죽음을 부른 사건에서 그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엡스타인이 래리에게 무슨 말을 했든 커밍아웃 과정이 종종 그렇듯 래리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트윈스(보통 사춘기 직전 8~12세 어린이)가 게이라고 말할 때는 실제로 섹스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연구원 캐이틀린 라이언에 따르면 10세가 되면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의식할 수 있지만 그런 감정이 주된 동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모호하고 생소하다(실제로 래리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와도 키스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한 교사에게 말했다). 이런 아이들은 사실상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관심이 있다. “젖먹이 땐 배가 고파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줄 몰라서 우는 것”이라고 8학년 때 커밍아웃한 앨런 아체베도(19세, 샌디에이고 거주)가 말했다. “사람들이 어린 나이에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게이’라는 단어의 존재다. 그 단어가 자신들의 감정을 설명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대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트윈스는 속마음을 친구들에게 먼저 털어놓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더 잘 받아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연령대의 아이들은 종종 지극히 사적인 정보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며 중학교 교직원들도 자신의 성적 경향에 의문을 갖는 청소년들에 대한 대응 방법을 거의 교육받지 못했다. 동성애자인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의 연결을 후원해 게이 학생들을 포용하도록 장려하는 고등학교는 3600개교가 넘지만 그런 장치를 갖춘 중학교는 110개교에 불과하다. 동성애자 당사자나 교직원이 관심과 반발에 대한 준비를 갖추기 전에 학교 전체에 알려지는 경우도 많다. “내 이름이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됐다”고 8학년 때 커밍아웃한 그레이디 키프(19세, 코네티컷 주 브랜퍼드 거주)가 말했다. “상담 지도교사는 내가 상처를 받기 때문에 커밍아웃을 하지 말아야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E O 그린의 교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놓고 실험을 하는 래리를 도우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큰 소리로 떠벌리고 싶어 했다. 한 교사가 래리에게 복도에서 남학생들한테 짓궂게 구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애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요.” 그러나 브랜든 매키너니는 달랐다. 래리는 정말로 브랜든을 좋아했다. 래리가 종종 브랜든에게 다가가 그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고 한 학생은 기억했다. 래리는 브랜든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 한번은 그의 팔에 언제 긁힌 상처가 났는지도 알았다. 심지어 둘이 같이 있을 때 자신이 실수로 상처를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래리는 가까운 친구 한 명에게 자신과 브랜든이 한동안 사귀다가 헤어졌다고 말했다. 브랜든이 자신에게 더 잘해 주지 않으면 자신들의 관계를 학교 전체에 소문 내겠다고 위협했다고도 했다. 브랜든의 변호인인 퀘스트는 래리와 브랜든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래리의 교사 중 한 명도 래리가 아마 관심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래리와 마찬가지로 브랜든도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다. 부모인 빌 매키너니와 켄드라는 불화가 극심했다. 법원에 기록된 켄드라의 주장에 따르면 1993년 어느 날 저녁 빌이 만취상태로 귀가해 그녀에게 45구경 권총을 겨눠 팔에 총상을 입혔다고 한다. 두 사람은 브랜든이 6세 때인 2000년 파경을 맞았다. 9월의 어느 날 아침 켄드라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 한 명이 복용하는 ADHD 약을 훔쳐갔다며 남편을 몰아세운 뒤 대판 싸움이 벌어졌다. 법원에 접수된 켄드라의 진술서에 따르면 빌은 “나의 머리채를 붙잡고 내가 거의 의식을 잃을 때까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빌은 배우자 상해죄를 자인해 10일 구류형을 받았다. 2001년 12월에는 빌이 켄드라를 상대로 접근 금지명령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던 그녀가 집을 ‘마약 소굴’로 만들었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아주 멀쩡했다”고 훗날 한 지역 신문에 실린 메탐페타민(일명 히로뽕) 중독 관련 기사에서 켄드라가 설명했다. 그녀는 2004년 중독자 재활 센터로 보내졌고 브랜든은 아버지 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몇 년 동안을 전쟁 속에서 보낸 셈이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브랜든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8학년에 올라가면서 잠재됐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아버지의 직장이 96㎞나 떨어진 도시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일단의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려 해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머리는 좋았지만 학교 공부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오로지 히틀러에만 관심을 보였다. 뉴렘버그 재판(나치 전범재판을 말함)에 관해 속속들이 알고 있었으며 히틀러의 부하들 이름을 모두 알아맞혔다.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아느냐고 물으면 “히스토리 채널도 안 보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했다. 그의 아버지는 브랜든이 제 2차 세계대전에 흥미를 보였지만 엉뚱한 생각을 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1학기 말 그의 성적평균이 3.3에서 1.9로 떨어지면서 공부를 하지 않고 수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영어 우수반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볼드린 교사의 영어반으로 옮겨 래리를 만나게 된다. 래리의 성적도 떨어지고 있었다. 11월 1.71이었던 평균성적이 2월에는 1.0으로 떨어졌다고 그의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주위의 관심을 사는 데 정신이 팔려 성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뺨 쳤다”고 래리를 잘 알았던 한 교사가 말했다. “모두 그가 다음엔 어떤 행동을 할지 궁금해 했다.” 여학생들은 그의 모습을 카메라폰에 담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 그를 화제로 올렸다. “우리 반에선 래리가 화젯거리에 오르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그를 가르친 적이 없는 한 문과 교사가 말했다. 래리는 플레이보이지의 버니걸 목걸이를 착용하다가 한 교사로부터 여성에 대한 모욕이라는 꾸지람을 들은 뒤 벗었다. 그러나 타깃에서 구입한 갈색 하이힐은 계속 뒤뚱거리며 신고 다녔다. 래리의 차림새를 둘러싼 소동이 계속되자 학교당국이 마침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1월 29일 학생의 권리라는 제목의 e-메일이 모든 교사에게 전달됐다. 8학년 학생 주임 수 파슨스가 보낸 것이었다. “교내에 메이크업으로 자신의 성적 경향을 표현하려는 학생이 있습니다.” 메일은 래리를 직접 지목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권리입니다. 재미있어 하는 학생도 있는 반면 못마땅해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것은 그의 권리입니다. 교양인다운 자세로 그를 야유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일러주시길 당부합니다. 학생들이 그를 억지로 좋아할 필요는 없지만 그에게 설 자리를 줘야 합니다. 또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밖에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저나 엡스타인 교감에게 연락 바랍니다.” 제리 대넌버그 교육감은 래리 문제로 교육청에 접수된 민원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최소 두 명의 교사가 그 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항의를 시도했다. 첫 번째는 래리에게 얼굴 화장을 지우라고 명령했던 교사다. 그 교사가 맡은 반의 남학생 여럿이 찾아와 래리가 복도에서 자신들을 곯리는 탓에(“네가 나를 원하는 걸 다 알아”) 친구들로부터 게이라고 놀림 받는다고 하소연했다는 것이다. 그 교사가 몇몇 동료 교사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교감실을 찾아가 조사요청서를 제출하려 하자 엡스타인이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래리 문제인데요”라고 그 교사가 말했다. 그러자 엡스타인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엡스타인은 그 교사가 자신을 찾아온 적도 없었다고 말한다). 며칠 뒤에도 또 다른 교사가 조엘 로브스테트 교장을 찾아갔다고 주장한다. 그 교사는 래리가 걱정이 된다며 위험을 자초하는 것 같다고 교장에게 보고했다. 8㎝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발을 삐끗해 부상을 당할까 봐 걱정스럽다는 얘기였다. 교장은 어디라고 밝히진 못하지만 상부로부터 래리의 성적 표현에 간섭할 수 없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교사에게 답변했다(교장은 뉴스위크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특이한 학생 민원도 있었다. 래리의 동생 로키(12)도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1월 래리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짙은 핑크색 부츠를 신고 등교한 날부터 친구들이 그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로키는 엡스타인을 포함해 여러 명의 교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엡스타인 선생님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래리가 계집애 옷차림을 못하게 해 주세요. 래리가 게이니까 동생인 나도 분명 게이일 거라고 친구들이 숙덕거려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당수가 래리의 입장을 지지하려 했지만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블루칼라와 이민자가 많이 사는 옥스나드엔 변변한 게이 공동체 하나 없으며 대체로 동성애 문제는 거의 공론화되지 않는다. 최소한 래리가 피살되기 전까지의 상황은 그랬다. 그의 영어 교사인 볼드린은 정성을 다해 래리를 보호하려 애썼다. 래리가 새 집인 카사 퍼시피카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도록 그에게 선물을 하나 줬다. 자신의 딸이 입던 녹색 이브닝 드레스였다. 래리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그 옷을 입어 보려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몇몇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졸업식 때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밸런타인 데이 사건도 있었다. 총격사건 며칠 전 래리가 한 무리의 여학생들과 운동장에서 벌이는 게임 이야기로 학교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자신이 찍어둔 남학생을 찾아가 밸런타인 데이 파트너가 돼 달라고 요청하는 게임이었다. 여러 명의 여학생이 좋아하는 남학생의 이름을 댄 뒤 파트너를 찾아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래리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브랜든을 거명했다. 브랜든은 마침 멀지 않은 곳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래리는 곧장 경기가 진행 중인 농구코트 안으로 들어가 브랜든에게 밸런타인 데이 파트너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 옆에 있던 브랜든의 친구들이 그와 래리가 함께 ‘게이 베이비’를 낳을 것이라는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브랜든은 복도에서 래리의 한 여자친구 곁을 지나쳤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래리를 보지 못할 테니 미리 작별인사를 하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 친구는 래리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농담이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총격사건 전날인 2월 11일 래리와 브랜든 간에 또 다른 다툼이 있었다는 설도 많다. 둘이 싸우는 소리를 들었지만 실제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여러 명의 학생과 교사가 증언했다. 다음날 아침 카사 퍼시피카의 한 상담교사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래리는 막연하게 “이젠 지겨워요”라고 대꾸했다. 그가 학교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눈에 띄게 평범해진 그의 외모에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화장품과 헤어 젤이 떨어졌고(사실이 아니다) 발목에 물집이 생겼다고 대답했다(사실이다. 최근 부츠를 새로 샀다). 래리는 볼드린 교사와 나란히 컴퓨터 랩으로 걸어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몇 분 뒤 한 상담교사가 그를 자신의 방으로 호출했다. 성적이 너무 나빠 유급될 위험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래리는 그 뒤 다시 랩으로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리포트에 자신의 이름을 레티시아 킹이라고 적었다. 총성이 학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문을 부셔져라 닫는 소리 같았다고 누군가 말했다. 3월 7일 학교에서 래리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다. 엡스타인과 학생들이 연단에 올라 래리에 관한 좋은 추억을 담은 카드를 읽었다. “그는 다정하고, 독특하고, 용감했다.” 악대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연주했다. 20여 마리의 비둘기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에이버리가 시 한 편을 낭독했다. 친구는 정원에 뿌린 씨앗처럼 싹을 틔우던 중 변고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앞줄에 앉은 래리의 엄마가 울음을 터뜨렸다. 방청석 뒤쪽에서 한 8학년생이 브랜든의 친구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무 게이스럽다.” 이 시점에서 제기되는 명백한 의문은 래리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물론”이라고 대넌버그가 말했다. “왜 총기가 청소년들의 손에 들어가도록 하는가? 왜 충분한 예산지원으로 학교에 사회복지사를 배치해 학생들이 언제든 이용하도록 하지 못하는가? 이것은 사회의 문제다.” 하지만 많은 교사와 부모들은 그 대답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문제는 래리가 게이였느냐 아니었느냐가 아니라(그의 아버지는 아직도 아들이 게이였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그가 도를 넘는 행동을 하도록 허용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리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래리의 사망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탓하는 게 아니라(어떤 식으로든 살인은 정당화할 수 없다) 그의 살인자에게 동정의 여지가 없지 않다는 반응이다. “브랜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리 탓”이라고 한 교사가 말했다. “폭력이 반대방향으로 행사된다는 것을 몰랐다. 래리가 주목 받길 좋아했기 때문에 도를 넘는 행동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레그 킹은 브랜든에 대한 동정심은 없지만 자기 아들이 그를 성적으로 괴롭혔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는 동성애자 사회가 자신들의 더 큰 명분을 강화할 목적으로 아들의 피살을 이용했다는 점을 불쾌하게 여긴다. “동성애자 권익 운동가들은 내 아들의 죽음이 갖는 선정성 때문에 그것을 동성애자 권익 문제의 쟁점으로 만들려 한다”고 킹은 말했다. “그런 점이 못마땅했다. 내가 게이에게 반감이 있는 건 아니다. 게이 동료와 친구들이 많다.” 올여름 엡스타인이 한 초등학교의 교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분노가 더욱 커졌다. “이것은 우리 가족에 대한 모욕”이라고 그레그가 말했다. 래리가 숨진 뒤 그녀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기 때문에 교육청이 그녀를 전근시킨 게 아닌가 생각하는 교사가 많다. 대넌버그 교육감은 새 교장 자리에 그녀가 가장 적임자였다고 말한다. 학교 측도 나름대로 조사를 했지만 학교 측 변호사는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브랜든의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 브랜든은 1급살인과 증오범죄로 기소됐으며 7월 중순 법정에 소환됐다. 학교 친구 수백 명이 소년법정에서 재판 받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지방검사는 성인 자격으로 재판을 받도록 할 계획이며 그렇게 되면 짧게는 51년, 길게는 종신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 “브랜든은 테러를 당하고 있었다. 거의 스토킹 수준이었으며 당초 학교 측이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빌이 말했다. 그는 아들의 이름으로 공적 변호 기금을 설립했다. 래리와 브랜든에게 일어난 일은 분명 극단적인 사건이지만 미국 전체의 학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일이 다시는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48년간 그 학교 이사회의 임원을 지낸 일레인 가버(81)가 말했다. 래리 킹에 관한 이야기와 논란은 오히려 더 뜨겁게 달아오른다. E O 그린 중학교의 연감은 한 페이지를 그에 관한 이야기로 채웠다. 그는 인터넷에서 게이 순교자가 됐으며 동성애자 혐오증 문제의 공론화를 위해 만들어진 연례행사인 ‘전국 침묵의 날’은 올해 래리에게 헌정됐다. 그리고 에이버리 래스키는 래리가 총격을 당한 날 그의 회복을 기원하며 직접 만든 자주색 카드를 아직도 침실에 보관하고 있다. 당시엔 래리가 살아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자 의사들은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에이버리는 쉬는 시간에 수십 명의 교사와 학생들로부터 격려 메시지와 서명을 받아냈다. 볼드린은 파란색 펜으로 “래리, 보고 싶어. 회복하길 바라”라고 썼다. 교장은 “힘내. 많은 사람이 너를 응원하고 있어”라고 적었다. 반 친구 중 몇몇은 그를 놀린 것을 사과했다. 일부는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기기도 했다. 누군가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전화하라는 배려였다. 그러나 그날 에이버리는 귀가했을 때 래리가 치명적인 뇌졸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래리는 그날 오후 뇌사 판정을 받았고 가족은 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날인 2월 4일, 의사들이 그의 췌장·간·폐를 떼어냈고 가장 중요한 장기인 심장은 이제 한 10세 소녀의 가슴 속에서 고동치고 있다. 래리 킹은 밸런타인 데이에 자신의 ‘하트’를 선물했지만 그가 고대하던 방식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With ANDREW MURR and JENNIFER ORDONEZ

[뉴스위크는 5개월 동안 래리 킹의 사망을 조사하면서 교직원·학생·학부형 등 수십 명을 만났다. 기사에 거명된 학생은 모두 부모의 동의 아래 인터뷰했다. 우리 정보원 중 일부는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했으며 교직원들은 진행 중인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의 가능성 때문에 언론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제리 대넌버그 교육감과 E O 그린 중학교의 조이 엡스타인 전 교감은 공식 인터뷰에 응하긴 했지만 같은 이유로 발언에 제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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