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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큰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기업은행 반월시화공단 기업상담센터에서 한 기업인이 기업승계와 관련해 상담하고 있다.



#사례1. 연 매출이 500억원에 달하는 절삭공구 제조업체 A사는 갑작스레 CEO가 사망해 30대 중반의 아들 P씨가 사업을 물려받았다. P씨는 미국 유학 후 2년째 경영수업을 받던 중이었다. 그러나 A사는 후계자 선정 이외의 기업승계에 필요한 플랜은 준비해 두지 않아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1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야 했지만 갑자기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고, 주요 거래처는 P씨의 경영능력을 신뢰하지 못해 거래를 끊었다. 이뿐만 아니라 회사 핵심인력 중 일부가 P씨의 경영스타일에 반발해 퇴사하면서 회사는 존폐 기로에 서게 됐다.

#사례2. 선박엔진 부품을 제조하는 H사의 60대 후반 S사장은 건강이 예전 같지 않자 회사에 근무 중인 장남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 했다. 세무사에게 문의한 결과 장남에게 회사를 상속할 경우 세금이 생각보다 많고, 경영권 승계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돼 거래은행에 기업승계 컨설팅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배당을 통해 증여세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제시 받은 S사장은 장남에게 자신의 지분을 사전 증여해 지분 이전 작업을 마무리했다. 또 장남을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더욱 깊게 참여시키는 등 기업승계 플랜을 바탕으로 후계자 승계를 성공적으로 진행 중이다.
두 사례는 미래를 대비한 사전 기업승계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기업은 사전에 후계자를 정해 경영수업을 시키는 등 내부적으로 후계자 선정과 양성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자본과 인적자원에서 열악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장기간 이어지는 경기불황까지 겹치자 기업승계를 두고 중소기업 CEO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폐업을 고려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은 300만1000여 개에 달하며 국내 전체 사업체의 99.9%를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8.1%다. 이뿐만 아니라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9.5%에 달한다. 이를 감안하면 중소기업의 승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신한은행 전략영업본부 기업금융팀 오영진 부장은 “우리와 제휴한 일본 미즈호은행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 500만 개 중 연 30만 개가 가족승계 과정의 문제로 폐업신고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중소기업 사장들 나이가 60세 전후가 많지만 이들이 60대 후반으로 넘어가면 향후 2~3년 안에 승계 실패로 인한 폐업이 사회문제로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기업 승계와 관련한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시중은행 가운데 일부가 지난 1~2년 사이 기업승계 컨설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서비스에 발 벗고 나섰다. 기업승계 컨설팅은 은행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상속·증여세 관련 소유권 승계와 경영 이전 관련 경영권 승계로 크게 구분하고 있다. 최근 은행들은 기업승계에서 경영권 승계를 중시해 이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컨설팅 진행은 기업으로부터 승계 컨설팅을 의뢰 받은 뒤 시작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해당 기업에 전문가를 파견해 상주시키며 CEO 인터뷰 등 기업 현황을 체크한다. 이 과정이 보통 1~3주 걸린다. 그 후 후계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 소유권 이전에 따른 세금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후계자 경영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등을 단계별로 계획해 승계에 필요한 로드맵을 만들어 기업에 제공한다. 로드맵에 따른 실행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지 사후 점검도 빠뜨리지 않는다. 기업승계 컨설팅 비용은 단계별로 무료 또는 유료로 은행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500만원 안팎이다. 기업은행은 2006년 말부터 기업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동안 121개 업체를 상담했고 그 가운데 45개 업체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컨설팅 과정은 현황진단, 기업승계 방향 도출, 승계전략 설계 3단계로 진행된다. 현황 진단은 CEO 인터뷰, 내부자료 분석 등을 통해 기업의 이익구조와 자산구성 분석, 승계 대상 자산 평가, 내부관리체계 현황을 살피는 것.


TIP 기업승계 지원센터 문 열어

중소기업청이 지정한 ‘중소기업가업승계지원센터’가 중소기업중앙회 건물 내에 지난 4월 문을 열었다. 센터는 가업상속 세제개편 조사연구 진행, 컨설팅 전문기관과 연계한 상담 및 컨설팅 제공, 가업승계 정보 제공, 후계경영자 교육, 가업승계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청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6개 기관이 참여해 만든 ‘중소기업M&A지원센터’도 기업은행 본점 건물에서 문을 열었다. 이곳은 M&A를 통한 기업승계 외에 기업가치 평가, M&A 관련 법률·회계 자문, M&A 중개 및 주선 등의 서비스를 한다.



승계 준비 안 하면 폐업할 수도 현황진단 자료를 토대로 핵심이슈를 도출하고 승계전략 설계방향을 설정한 승계 실행계획을 짠다. 컨설팅 결과 도출된 로드맵은 사후 점검을 통해 이행 여부를 체크하는데 이행 과정에서 새롭게 불거진 문제가 있으면 조정을 통해 새 방향을 제시한다. 기업은행은 지난 4월 기업승계와 관련해 상속·증여세를 대출해 주는 금융상품을 마련했다. 기업은행은 다른 업종 교류를 통한 인맥형성과 경영자로서의 역량개발을 위해 건국대와 연계해 ‘차세대 CEO(후계자) 과정’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데 최근 1기 과정이 끝났다. 또 반월·시화공단에 ‘기업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M&A 및 기업승계 전문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기업승계 관련 ‘신한밀레니엄컨설팅’ 서비스를 지난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본격 서비스에 앞서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돌며 기업승계 세미나를 개최하고 가이드라인과 뉴스레터 발간 등 중소기업 CEO를 대상으로 정보 제공에 힘써 왔다. 컨설팅 서비스는 내부 전문인력 8명과 함께 제휴한 외부 회계법인과의 연계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15개 업체를 상담했고 2개 업체의 컨설팅을 완료했다. 나머지 1개 업체에는 1차 컨설팅 완료 후 5년간 계약을 맺고 연간 1~2차례 중간점검을 통해 피드백 하는 ‘스탠딩 컨설팅(지속적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 기업승계 컨설팅은 사업용 자산 등 재산의 승계, 친족 간의 합의도출을 통한 갈등관리, 최적의 상속 및 증여 방안 수립을 주목적으로 하는 소유권 승계와 경영권 승계로 나누어 진행된다. 경영권 승계는 후계자를 위한 경영환경 조성, 내부관리 강화와 조직 및 인사제도 개선 등을 통한 내부통제 강화, CEO 노하우의 매뉴얼화, 후계자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신한은행 전략영업본부 기업컨설팅팀 이형용 팀장에 따르면 앞으로 서비스가 더욱 강화될 예정이다. 승계에 따른 세금 납부자금 관련 ‘승계론(가칭)’ 상품 개발, 승계 초기단계에서의 자금지원 등이 추진될 계획이다. 이 외에 기업승계를 위한 M&A에 필요한 자금 지원, 승계 과정 또는 승계 이후 신규 사업과 사업전환에 필요한 자금지원도 계획하고 있다. 기업승계와 관련한 내부 직원의 역량 강화, 기업 후계자 모임 설립도 추진 중이다. 오는 10월이면 기업승계와 관련한 금융상품이 출시된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2월부터 ‘백년대계컨설팅’이란 이름으로 기업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실적은 총 45개 업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제조업체가 29개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매출액은 100억원 미만 업체가 62%가량이다. CEO 연령을 보면 66~70세가 24명으로 가장 많고 71세 이상 CEO도 6명에 달했다. 우리은행의 컨설팅 서비스는 약식백년대계, 정밀백년대계, 종합백년대계 세 개로 나뉘는데 기업이 원하는 서비스를 골라 받을 수 있다. 약식백년대계는 승계과정의 절세방안을 수립해 주는 소유권 승계 관련 서비스다. 정밀백년대계는 절세 방안, 후계자의 경영권 조기 확보와 조직 안정을 위한 컨설팅 개발과 계획 수립을 서비스한다. 종합백년대계는 종합적인 승계 로드맵을 수립해 주는 서비스다. 경영권 승계 컨설팅의 주요 내용은 후계자가 조기에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직운영방안 수립, 후계자 육성을 위한 경력개발(CDP) 관리방안, CEO 선발기준 수립 제시 등이다. 이 외에 기업승계와 관련한 지속적인 사후점검을 위해 마련한 별도 프로그램으로 ‘캠프(CAMP)컨설팅’이 있다. 일명 기업조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캠프컨설팅은 1년 단위로 기업을 방문해 승계 플랜의 이행 정도를 체크하고 수정, 보완해 준다. 이 프로그램을 따로 만든 것은 지나친 관심으로 자칫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기업에 한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업승계 관련 금융상품으로는 퇴직신탁이 있다. 퇴직신탁은 종업원의 퇴직금을 연금신탁으로 해서 승계 시 절세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우리은행 기업컨설팅팀 지경환 팀장은 “최근 기업승계 시 외부 전문경영인을 선호하는 CEO의 요구가 있다. 이에 맞춰 승계 초기부터 지원할 수 있도록 외부 전문경영인을 판단, 선별하는 적절한 툴을 개발 중에 있다”고 했다. 국민은행은 여의도와 강남의 HNWI 전용 PB센터에서 기업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HNWI(High Net Worth Individuals)란 국제적으로 통상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이 100만 달러 이상인 개인고객을 지칭한다. 국민은행은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개인고객, 기업체 CEO 및 임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PB사업부 임현정 차장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여의도에 HNWI 전용 PB센터 1호점을 개설하면서 기업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한층 강화했다. 컨설턴트, 경영지도사, 회계사, 세무사 등 8명의 은행 내부 전문가 외에 제휴 네트워크를 구축한 전문 변호사 등 내외 기업승계 전담 전문가를 팀 단위로 연계해 컨설팅 서비스를 하고 있다. 미래의 CEO가 될 고객의 자녀를 위한 리더십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해외 명문 대학과 제휴해 CEO로서 갖춰야 할 경영 관련 기초교육, 리더십 소양교육을 하고 글로벌 기업을 탐방해 CEO를 직접 만나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이 있다.

기업의 代 끊기는 일 없어야 하나은행은 따로 기업승계 컨설팅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대신 CEO 고객의 요청이 있을 경우 PB파트와 RN(기업여신)파트가 연계해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 내부 전문 인력으로 팀을 구성한 뒤 기업승계 컨설팅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외부 제휴 기관과의 연계도 지원한다. 신한은행 이형용 팀장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부분이 가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창업자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부의 세습’이라는 안 좋은 사회 분위기 때문에 기업승계를 미루거나 은밀히 진행하는 경영자가 적지 않다. 현장에 나가 보면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을 크게 느끼는 CEO가 많다. 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후계자에게 회사를 물려줘서 폐업 등으로 기업의 대가 끊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얘기했다. 승계 문제로 기업이 폐업하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업의 오랜 노하우가 사장되는 등 국가적으로 손해가 매우 크다. 창업 1세대에서 2, 3세대로 이어지는 중소기업의 지속성장과 발전을 위해 사전 승계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공하는 기업승계 10계명

1. 기업승계는 최소 5년 걸리는 작업임을 인식하고 시간을 두고 착실히 준비하라. 2. 후계자가 경영하기 좋은 최적의 기업환경 정비를 우선으로 승계계획을 세워라. 3. 상속재산 배분을 명확히 해 경영권과 재산권 분쟁으로 기업의 신용을 잃는 일 피하라. 4. 회사에 기여도가 큰 창업공신, 임원을 배려해 후계자에게 문젯거리를 남기지 마라. 5. 경영자와 후계자가 함께 일하면서 공동체험을 통해 사업과 회사에 대한 가치관과 방향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라. 6. 경영자와 후계자, 임원들이 기업승계 계획을 통해 회사 내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고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라. 7. 후계자가 다양한 실무경험을 익히도록 기회를 주고, 노하우를 전수해 경영능력을 향상시키도록 하라. 8. 중소기업 영업은 경영자 개인의 신용도가 중요하므로 거래처를 방문할 때 후계자와 동행하라. 9. 기업승계 문제와 관련된 조언자나 조정자 역할을 할 전문가를 잘 활용하라. 10. 승계 후에 전임 경영자는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말고 뒤로 한 발 물러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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