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어머니 피 꿈틀대는 女帝
강인한 어머니 피 꿈틀대는 女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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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빌레미나(1880~1962) 여왕은 10세 때인 1890년부터 1948년 딸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58년간 왕위를 지켰다. 네덜란드 역대 군주 가운데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켰다. 군주직을 물려준 뒤에도 14년을 더 살았다. 퇴임하지 않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리에 머물렀으면 72년을 재임하는 대기록을 세울 뻔했다. 베아트릭스의 할머니 빌레미나는 재임 중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우선 제1, 2차 세계대전을 지켜봤으며, 1933년 대공황도 겪었다. 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주요 제국이던 네덜란드가 식민지 독립으로 서서히 몰락해 가는 것도 목격했다. 그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침공하자 타협하지 않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결연한 저항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자국 내 레지스탕스 활동을 독려했다. 망명해서 살던 집이 나치에 폭격 당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연한 의지로 망명 정부를 이끌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빌레미나 여왕에게 ‘망명정부 내 유일한 남자’라고 불렀을 정도다. 전후 고국에 돌아온 그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며 국민의 재건을 독려했다. 네덜란드 국왕 윌리엄 3세의 딸인 빌레미나 여왕은 1901년 독일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가문 출신의 핸데릭과 결혼해 딸 하나를 두었다. 빌레미나의 딸인 율리아나와 손녀인 베아트릭스도 함께 망명해 할머니의 고군분투를 지켜봤다. 손녀이자 현재 네덜란드 여왕인 베아트릭스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전후 귀국해 1956년 라이덴 대학에서 사회과학·법학·역사학·경제학·헌법 등을 공부했다. 율리아나는 1937년 리페-비에스테르펠트 가문의 독일 귀족인 베른하르트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936년 알프스산맥에 면한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 올림픽이 오래전부터 각국 왕가나 귀족 가문의 남녀들이 서로 만나는 사교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이 결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베른하르트는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던 아돌프 히틀러 지배하의 독일 남자였기 때문이다. 베른하르트가 빌레미나 여왕의 장녀로 왕위 계승자인 율리아나와 결혼하는 것도, 그 후손이 앞으로 네덜란드를 이끌어 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빌레미나 여왕이 2차 대전 발발 뒤 독일에 집요하게 저항한 것도 이러한 국민 정서를 감안했을 수 있다.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면 입헌군주제를 공화제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부는 결혼해 딸 넷을 얻었다.
여왕의 재산 |
왕실 전체 재산 47억 달러 베아트릭스 네덜란드 여왕의 경제 사정은 어떤가. 포브스는 올해 세계 왕족 재산 순위에서 그를 14위에 올려놨다. 이 잡지는 여왕의 재산을 3억 달러로 집계했다. 2005년 포브스는 여왕과 가족을 포함한 왕실 전체 재산을 47억 달러로 집계했다. 그의 재산에는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과 주택, 그리고 투자 지분이 포함됐다. 하지만 네덜란드 대중은 베아트릭스 여왕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군주라고 믿고 있다. 재산 집계에 고가의 그림과 골동품, 그리고 장서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왕은 이 재산을 개인 명의로 하지 않고 왕가 재단 명의로 해 뒀다. 왕관의 보석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보물도 빠졌다. 베아트릭스 여왕은 지난해 궁전 거주비용과 자동차, 말 이용료, 그리고 궁전 직원 급료를 비롯해 유지비로만 2400만 유로 정도를 썼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포함해 지난해 8370만 유로를 왕실 예산으로 지출했다. 보안비용과 유지비가 오르면서 전년보다 3000만 유로를 더 사용했다. 베아트릭스 여왕과 빌렘-알렉산더 왕세자, 막시마 왕세자비는 지난해 모두 570만 유로를 받았다. 여왕은 390만 유로, 왕세자는 95만7000유로, 왕세자비는 84만5000유로를 받았다. |
여왕 결혼에 시위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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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독자는 스포츠광 여기서 잠시 베아트릭스의 잘생긴 아들 빌렘-알렉산더에 대해 알아보자. 왕세자 빌렘-알렉산더는 비행기 조종과 각종 스포츠가 취미다. 비행기 조종면허가 있는 그는 1989년 ‘아프리카 의료 연구·교육 재단(AMREF) 요원으로 아프리카 케냐에서 지원 항공기를 직접 몰기도 했다. 빌렘-알렉산더는 마라톤광이기도 하다. 그는 왕가인 오렌지-나사우의 성인 ‘반 부렌’이라는 이름으로 마라톤 신청을 했다. 이모인 크리스티나 공주와 여러 사촌과 함께 뉴욕 마라톤에 참가했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그가 겨울 극한 스포츠광이라는 점이다. 네덜란드 북부 프리즐란드에서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프리즐란드 11개 도시 아이스 스케이팅 마라톤(현지어로 Elfstedentocht)’에도 참가하고 있다. 이 행사는 겨울철에 200㎞의 얼어붙은 운하와 강, 호수를 스케이트로 달리며 11개 도시를 순회하는 극한 스포츠다. 드물게 야외의 천연 얼음 위를 스피드 스케이트로 달리는 장거리 경주다. 기후 때문에 매년 열리지는 못한다. 스케이트로 이 지역 전체를 다닐 정도의 강추위가 매년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행사가 열리면 네덜란드는 물론 전 세계에서 1만5000명 정도의 참가자가 몰리기 때문에 얼음이 여간 꽁꽁 얼어서는 개최 자체가 힘들다. 이 기준에 맞추려면 대회가 열리는 모든 물길에 두께 15㎝ 이상의 얼음이 단단하게 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물길이 이렇게 얼기는 힘들기 때문에 일부 장소에서는 얼음 보강공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예로 1997년 대회에서는 물살이 세게 흐르는 다리 아래처럼 얼음이 단단하게 얼기 힘든 곳에 다른 곳의 두꺼운 얼음을 가져다 덮는 ‘얼음 이식’이 처음 도입됐다. 이 대회는 스피드 스케이팅이 핵심이지만 동시에 자전거 타기, 걷기(5일간 열림), 행글라이딩 등 다양한 경기가 함께 열린다. 행사가 있는 날 마지막 골인 지점인 프리즐란드의 주도 레우바르덴 시는 도시 전체가 파티장으로 변한다. 인구 8만 명인 이 도시 전체가 대회 참가자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주민들이 참가하는 흥겨운 축제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프리즐란드 지역 주민들은 경기 당일 모두 대회가 열리는 물길로 나오거나 텔레비전 앞으로 몰려가 중계를 지켜본다. 빌렘-알렉산더는 축구광이기도 하다. 유로 2000 경기가 네덜란드에서 열렸던 2000년 빌렘-알렉산더 왕자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 색깔로 가득한 경기장에서 자국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장면이 수시로 목격됐다. 당시 네덜란드 팀은 이탈리아 팀을 상대로 준결승전에서 점수를 내지 못해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렸다. 결과는 네덜란드 팀이 두 골을 실축해 1-3으로 패했다. 네덜란드 팀이 두 번째 승부차기를 실축했을 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경멸과 불만으로 가득 찬 괴상한 웃음을 짓는 빌렘-알렉산더 왕자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축구에 대단히 열정적인 네덜란드 국민의 당시 실망을 대변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 네덜란드 올림픽위원회의 패트론으로 활동했으며, 1998년부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빌렘-알렉산더 왕자의 결혼도 화제를 몰고 왔다. 그는 1999년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앞으로 10년 안에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32세였다. 사실 자신의 아버지도 거의 40이 다 되어 결혼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2002년 막시마 초레기에다 체루티라는 이름의 아르헨티나 여성과 결혼한 것이다. 스페인, 바스크 이탈리아계 조상을 가진 이 여성은 뉴욕의 투자은행에 근무하다 왕자와 만났다. 가톨릭 신자다.신교도 국가인 네덜란드 왕실이지만 워낙 열린 사회라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영국 왕실의 방계 혈족으로서 갖고 있던 왕위 계승권은 이 결혼으로 잃었다. 신교 전통의 영국 왕실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에겐 왕위 계승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상징 색이 오렌지색인 이유 | |||
여왕의 이름 속에 해답 있다
베아트릭스 여왕의 정식 이름은 베아트릭스 빌헬미나 아름하르트 반 오라녜-나사우. 맨 뒤의 오라녜-나사우는 가문의 이름이다. 영어로 오렌지-나소라고 한다. 나사우는 독일 서부의 도시, 오렌지는 프랑스 남부 론강 유역에 있는 오랑주라는 작은 영지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아비뇽에서 21㎞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중세 이 지역의 영주가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영지를 시집간 여동생의 아들에게 물려줬다. 여동생이 시집간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의 나사우 백작 가문이었다. 이 가문은 독일 서부가 본거지인데, 중세 엥겔베르트 1세라는 인물이 부르고뉴 공에게 봉사한 대가로 네덜란드 여성과 결혼하고 네덜란드에 영지를 갖게 됐다. 영지가 있는 지역을 따서 이 가문의 새로운 가지를 나사우-브레다라고 부른다. 이 가문의 헤드릭 3세는 16세기에 홀란드와 질랜드의 총독으로 임명된다. 그의 아들인 르네는 프랑스 남부에 영지를 갖고 있던 삼촌 오랑주 공이 후손 없이 떠나면서 그 영지를 물려받는다. 물려주는 조건의 하나가 오랑주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르네는 나사우-브레다 출신의 르네 대신 오랑주의 르네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그도 후손 없이 젊은 나이에 전사하면서 그 자리는 조카인 빌렘 1세에게로 넘어간다. 그 이후 이 가문은 오랑주-나사우로 불리게 된다. 네덜란드에도 없는 지명인 오랑주, 오렌지가 그 나라 왕가 이름에 있는 이유다. 네덜란드 색깔인 오렌지도 여기에서 비롯한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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